[박선영의 금융 디파인(DeFine) <25>] 호르무즈가 닫힌 세계, 스태그플레이션의 그림자


2월 28일(이하 현지시각)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발발한 이란 전쟁은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 1970년대 이래 가장 심대한 공급 측 교란(supply-side disruption)을 야기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이번 사태를 “두 번의 오일 쇼크와 한 번의 가스 위기를 합친 수준”이라고 비견한 것은 수사적 과장이 아니라, 공급 중단 규모와 경로의 다중성을 반영한 진단이다.
정량적으로 살펴보면, 3월 한 달간 브렌트유는 50% 가까이 급등하며 배럴당 115달러를 돌파했다. 이는 1988년 선물 계약 도입 이후 역대급 월간 상승 폭으로,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당시 기록한 46%의 월간 상승률을 크게 상회한다. 절대적 가격 배율로는 1973년 욤 키푸르 전쟁 당시의 네 배 폭등에는 미치지 못하나, 글로벌 공급망 복잡성과 중간재 교역 의존도가 극대화된 현대 경제의 구조적 조건을 감안하면, 단위 유가 상승이 실물경제에 전이되는 충격의 밀도(shock intensity per unit price increase)는 오히려 그 시기를 능가한다고 평가할 수 있다.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역시 같은 기간 55% 이상 상승했으며, 항공유와 디젤 등 정제 유제품 가격은 연초 대비 약 두 배 수준으로 폭등하여 운송·물류 비용을 중심으로 실물경제의 비용 구조를 광범위하게 압박하고 있다.
이번 위기의 구조적 핵심은 호르무즈해협의 사실상 봉쇄에 있다. 전 세계 원유 및 액화천연가스(LNG) 물동량 약 5분의 1이 통과하는 이 해상 통로가 이란의 군사적 위협으로 차단된 것이다.
2022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당시와 비교하면, 그때는 러시아산 원유의 아시아 우회 수출 경로가 있었으나, 호르무즈해협의 물리적 봉쇄는 대체 경로 자체를 원천적으로 차단한다는 점에서 질적으로 다르다. 모건스탠리는 브렌트유가 2분기 배럴당 평균 110달러 선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하며, 수요 파괴가 현실화할 때까지 가격 상승세가 지속할 것으로 분석했다. IEA 주도로 4억 배럴 규모의 사상 최대 전략비축유 공조 방출 계획을 합의했음에도 시장 반응이 제한적이었다는 사실은 이번 충격이 일시적 수급 불균형이 아니라 에너지 공급 인프라의 구조적 훼손에 기인함을 시사한다.
에너지발 공급 충격은 이미 물가 지표에 가시적으로 반영되고 있다. 3월 유로존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기 대비 2.5% 상승하여 1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2월의 1.9%보다 급격히 상승한 이 수치는 유럽중앙은행(ECB)의 중기 목표치인 2%를 유의미하게 초과했다. 에너지 가격이 전년 대비 4.9% 폭등하며 물가 상승을 견인했다는 점은 전형적인 비용 인상 인플레이션(cost-push inflation)의 전이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음을 확인시켜 준다.

물론 유로존의 근원 인플레이션이 2.3%로 소폭 하락한 것은 에너지 가격 2차 파급(second-round effects)이 아직 본격화하지 않았음을 의미하나, 고유가 충격이 식품·공산품·서비스 전반으로 확산할 가능성은 여전히 크다. 시장은 이미 ECB가 연말까지 서너 차례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설 가능성을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 이는 저성장 국면에서 긴축을 강제당하는 중앙은행의 전형적인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 딜레마를 예고한다.그러나 유럽과 대조적으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현 단계에서 유가 충격에 대한 통화정책적 대응을 자제하겠다는 입장에 가깝다. 3월 30일 하버드대 강의에 초청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이란 전쟁으로 촉발된 에너지 공급 충격에 대해 연준이 ‘관망’ 기조를 유지할 것임을 시사했다.
그의 핵심 논거는 통화정책의 시차 구조에 있다. 통화정책은 길고 가변적인 시차를 두고 작동하기 때문에, 지금 긴축에 나서더라도 그 효과가 현실화할 시점에는 유가 충격이 상당 부분 소멸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시적 에너지 공급 충격에 대한 중앙은행의 표준적 대응은 이를 성급히 정책으로 상쇄하려 하기보다 일단 ‘관통’하는 데 있다고 판단한다.
다만 파월은 한 가지 조건을 분명히 달았다. 인플레이션 기대 이탈 여부다. 반복적 공급 충격이 기업의 가격 설정 행태와 가계의 물가 인식을 구조적으로 바꿀 경우, 연준 대응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시간대 소비자 조사에서는 단기 기대 인플레이션이 급등했지만, 5년 손익 분기 인플레이션율은 약 2.5%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아직 장기 기대 인플레이션이 정책 목표치에서 유의미하게 벗어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는 또한 연준의 이중 책무 간 긴장을 숨기지 않았다. 노동시장의 하방 리스크는 완화적 정책을, 인플레이션의 상방 리스크는 긴축적 대응을 요구한다. 하지만 아직 어느 한쪽 선택을 강요받는 단계는 아니며, 현행 기준금리 3.50~3.75%는 ‘좋은 위치’라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성급한 긴축도, 성급한 완화도 모두 경계하겠다는 뜻이다.

이번 위기가 제기하는 더 근본적인 질문은 경제 예측의 인식론적 한계다. 2025년 내내 주류 경제학계의 논의는 트럼프 정부 관세정책이 스태그플레이션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경고에 집중됐다. 그러나 실제 주식시장은 인공지능(AI) 투자 붐에 견인돼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고, 다수 전문가가 낙관론으로 전환하던 현시점에 역사적 스태그플레이션의 전형적 촉발 요인인 지정학적 유가 충격이 현실화됐다.
파월 역시 이 불확실성을 정면으로 인정했다.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수정 경제 전망(SEP)을 발표하면서 그는 “만약 경제 전망 발표를 건너뛸 수 있는 때가 있다면 바로 지금”이라고 말했다. 전쟁의 경제적 영향에 대해 “아무도 모른다(nobody knows)”는 그의 발언은 중앙은행 수장으로서 관례적 자신감을 넘어 모형 기반 예측의 한계를 인정한 것으로 읽힌다. 동시에 그가 하버드대 강연에서 현재를 1970년대식 스태그플레이션과 동일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언급한 것은 기대 인플레이션 고정 여부라는 핵심 조건이 당시와 다르다는 점을 시사한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가 미국 경제를 AI라는 단일 실린더 엔진에 의존하는 구조로 비유한 것은 성장 동력 편중이 외부 충격에 대한 복원력을 약화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블랙록이 지정학을 새로운 중력으로 규정한 것 역시, 지정학적 변수를 상시적 구조 요인으로 재인식해야 할 필요성을 보여준다.
이번 위기가 일시적 공급 교란에 그칠지, 혹은 글로벌 에너지 질서의 구조적 재편을 촉발할지는 지정학적 변수의 전개에 달려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에너지 공급 충격의 비대칭적 영향에 노출된 한국 같은 경제에는 지정학적 리스크를 상수로 내재화한 에너지 안보 전략과 공급망 다변화가 동시에 요구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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