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칼럼] 트럼프가 시작한 이란 전쟁의 최대 승자는 푸틴의 러시아다

크리스 패튼 전 홍콩 총독 2026. 4. 10.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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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설명│ 이 칼럼은 2026년 2월 28일(이하 현지시각),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이란 이슬람 공화국 핵 시설 정밀타격으로 촉발된 이란 전쟁과 그로 인한 지정학적 역설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이란의 ‘핵 위협’과 ‘인권 탄압’을 명분 삼아 정권 교체 수준의 개입을 정당화했다. 그러나 필자는 이것이 사실상 이스라엘의 전략적 의도에 미국이 동원된 결과라고 분석한다. 특히 마르코 루비오 미 국무 장관이 “이스라엘의 (대이란) 선제 공격 정보를 입수했기에 미국이 먼저 움직였다”고 밝힌 점은, 미국 외교가 자국 대통령의 판단이 아닌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는 비판의 근거가 됐다. 전쟁 여파는 미국의 계산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국제 유가가 배럴당 수백달러를 호가할 정도로 폭등하자,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제재로 고립됐던 러시아가 막대한 반사이익을 얻으며 부활한 것이다. 심지어 에너지난에 직면한 미국이 원유 수급을 위해 러시아산 원유 제재를 일시적으로 완화하면서, 결과적으로 숙적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하 푸틴)의 전쟁 자금줄을 미국이 직접 열어주는 모양새가 됐다. 이 같은 상황은 유럽의 안보 동맹인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내부의 균열로 이어졌다. 모든 자원이 중동에 집중되면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은 뒷전으로 밀려났고, 친러 성향의 헝가리 등이 이를 틈 타 유럽연합(EU)의 지원책을 노골적으로 저지하고 나섰다. 필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하 트럼프)의 무모한 군사적 결단이 서방 동맹을 약화하고, 러시아와 이란의 입지만 강화해 주었다고 비판한다. 그는 이 비극적 체스판을 뒤집을 유일한 변수로 11월 미국 중간선거를 지목하며, 현재 국제사회가 처한 절박한 위기감을 대변한다.
3월 26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러시아 산업인 및 기업인 연합 총회에서 연설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 로이터연합
크리스 패튼 전 홍콩 총독 - 전 유럽연합(EU) 대외관계담당 집행위원, 전 영국 옥스퍼드대 총장, ‘홍콩 다이어리’ 저자

트럼프가 이란 전쟁을 벌이는 이유는 분명하지 않지만, 이 전쟁의 최대 수혜자가 누구인지는 너무나 명확하다. 바로 푸틴이다.

트럼프와 참모들은 도덕적 공분을 앞세워 이란 군사행동을 정당화해 왔다. 이란 지도부를 ‘사악하다’고 규정하고, ‘자국민에 대한 잔혹한 탄압’을 거론하며, 미국이 이란의 통치 구조를 결정하는 데 직접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논리는 설득력이 약하다. 세계 곳곳에 자국민을 탄압하는 지도자가 적지 않지만, 그것이 곧 이들 국가의 정권 교체를 위한 미국의 전쟁으로 이어지진 않기 때문이다. 푸틴은 국내외에서 정치적 반대파를 제거한 인물로 악명이 높지만, 트럼프는 일관되게 푸틴을 달래는 데 공을 들여왔다. 만약 ‘사악함’만으로 전쟁이 정당화된다면, 세계 지정학 지형은 지금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이란이 자국민을 탄압해 온 것도 하루이틀이 아니다. 전쟁이 시작되기 불과 두 달 전에도 수천 명의 시위대가 정권에 의해 목숨을 잃었지만, 당시 미국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트럼프의 동기가 무엇이든, 거기에 이란 국민에 대한 진정한 우려는 담겨 있다고 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핵 위협은 어떤가.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해 미국을 공격할 가능성이 전면전을 정당화할 만큼 긴박한 상황이었을까. 이 역시 납득하기 쉽지 않다. 스티브 위트코프 미국 중동 특사는 이란이 핵무기 보유 능력 확보까지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이는 미국이 이란의 핵 시설을 “완전히 제거했다”는 트럼프 본인의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오히려 그럴듯한 설명은 루비오 장관의 발언에서 나왔다. 루비오 장관은 3월 초 기자들에게, 이스라엘이 곧 이란을 공격할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에 미국이 선제 타격에 나섰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의 공격이 이란의 미군 보복으로 이어지는 상황을 막으려 했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의 외교정책이 더 이상 자국 대통령의 독자적 판단이 아니라, 네타냐후 총리에 의해 좌우되고 있을지 모른다는 불편한 가능성을 제기한다. 역사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꼬리(이스라엘)가 몸통(미국)을 흔드는’ 이 형국이 과거의 재앙을 떠올리게 할 것이다. ① 세르비아 민족주의가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를 제1차 세계대전으로 끌어들인 사례가 대표적이다.

서방과 이란의 관계가 어쩌다 이토록 적대적으로 치달았는지 이해하려면 195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미국과 영국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모하마드 모사데크 이란 총리를 축출하고, 무함마드 리자 팔레비 국왕의 통치를 복원하는 쿠데타를 주도했다. 당시에는 가려졌으나, 그 동기는 사실 단순했다. 모사데크 정부가 영국 자본이 지배하던 앵글로-이라니안 석유 회사(Anglo-Iranian Oil Company)를 중심으로 한 석유 산업을 국유화하려 했기 때문이다.

팔레비 체제는 갈수록 잔혹하고 부패는 심해졌다. 이에 대한 반감이 확산하면서 이슬람주의 운동이 세를 얻었고, 그 중심에는 훗날 최고 지도자가 되는 루홀라 호메이니가 있었다. 호메이니는 수년간 망명 생활 끝에 1979년 혁명의 상징으로 돌아왔다. 수백만 명의 이란인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전국적 파업이 벌어지면서 팔레비는 결국 망명길에 올랐고, 이슬람 혁명의 길이 열렸다. 권력을 잡은 호메이니 세력은 국왕 타도를 함께했던 자유주의자와 좌파 인사를 살해하거나 투옥했고, 일부는 국외로 내몰았다.

이후 이란과 미국의 관계는 급속히 악화했다.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 점거와 인질 사태는 지미 카터 대통령 재임기의 상징적 사건이 됐다. 물론 이후에도 관계 개선의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모하마드 하타미 전 이란 대통령 같은 온건파 지도자는 서방과 관계를 조심스레 복원하려 했다.

문제는 그런 시도가 서방의 호의적 반응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가시적 성과가 있었다면, 온건파는 핵 개발 억제를 통해 실질적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강경파에게 보여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과 서방은 협상을 통한 절충의 기회를 번번이 허비했다. 2015년 체결된 ② 이란 핵협정(JCPOA·Joint Comprehensive Plan of Action)은 제재 완화와 핵 프로그램 제한을 맞바꾼, 사실상 마지막 타협의 기회였다. 하지만 ③ 트럼프는 2018년, 이 협정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했다. 그 결과 미국은 10여 년 전 협상으로 얻어냈던 조건을, 이제는 폭격이라는 극단적인 수단으로 이란에 강요하는 처지가 됐다.

전쟁의 명분이 무엇이든, 지금 누가 웃고 있는지는 분명하다. 수년간의 제재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비용으로 타격을 입었던 러시아 경제는 유가 급등에 힘입어 뜻밖의 횡재를 누리고 있다.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글로벌 원유 공급에 차질이 생기자, 트럼프 정부는 러시아산 원유 수출에 대한 제재까지 일시적으로 완화하여 푸틴 정권의 숨통을 틔워 주고 있다.

동시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축적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란에 드론전 전술을 조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협력은 유럽 나토 회원국을 겨냥한 사이버 교란 공작과 대리 세력을 활용한 비밀 작전 등 러시아의 전방위적 영향력을 한층 강화할 수 있다.

트럼프의 무모한 전쟁이 푸틴의 입지를 키우는 사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려는 EU의 노력은 흔들리고 있다. 최근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새로운 재정 지원을 막겠다고 나섰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이란 전쟁을 두고 서방이 한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현실 역시 나토 내부의 갈등을 키우고, 동맹의 결속을 약화하고 있다.

외교를 경시하는 트럼프의 성향을 고려할 때, 그가 재임하는 동안 이 악순환을 끊어내기는 어려워 보인다. 미국 밖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는 이들에게 11월 중간선거는 어쩌면 유일하게 남은 현실적 희망일지 모른다.

① 1914년 세르비아 민족주의 청년이 오스트리아 황태자를 암살한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소국인 세르비아의 돌발 행동이 동맹 체제에 묶여 있던 강대국을 원치 않는 대전쟁으로 끌어들인 대표적 사례다.

②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독일(P5+1)과 이란이 체결한 외교 합의. 이란이 핵 프로그램을 동결·감축하는 대가로 국제사회가 이란에 가해진 경제제재를 해제하는 것이 골자다. 무력 충돌 없이 대화를 통해 핵 확산을 막고 이란을 국제경제 체제로 복귀시키려 했던 '외교적 해법'의 상징적 성과로 평가받는다.

③ 트럼프 정부가 JCPOA를 ‘최악의 합의’라 비난하며 전격 파기하고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를 재개한 사건이다. 이 조치는 협정을 성실히 이행하던 이란 내 온건파의 입지를 없애고 강경파의 득세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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