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영의 ‘지피지기’ 일본역사] 암군 고다이고 천황, 나라를 두 동강 내다
![고다이고 천황 [출처 : 야후재팬]](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10/ned/20260410111306038smqj.jpg)

쿠데타 실패로 폐위, 그리고 유배
최근 가장 핫한 영화로 ‘왕과 사는 남자’가 꼽히는데 단종의 유배 생활을 그린 내용이다. 일본에도 권력 다툼 속에서 천황이 유배된 사례가 있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고다이고 천황이다.
1185년 일본 역사상 최초로 성립한 무사 정권, 가마쿠라 막부는 천황과 귀족들이 소유한 3000여 곳의 방대한 토지를 몰수해서 무사들에게 분배했다. 막부는 천황 계승자 결정권과 조정의 인사권에도 손을 뻗쳐서 천황의 권력 행사를 견제했다. 천황가 장악의 일환으로서 막부에게 고분고분한 고후카쿠사 천황계와 가메야마 천황계를 선정하여 이들 가문이 각각 10년씩 교대로 천황 자리에 오르도록 원칙을 세웠다(両統迭立).
이 방식에 따라 가마쿠라 막부는 1318년에 가메야마 천황계 출신인 고다이고 천황을 즉위시키고 조카 구니요시 친왕을 그의 뒤를 이을 황태자로 세웠다. 그런데 구니요시 친왕이 갑자기 사망하자 고다이고는 첫째 아들인 다카요시 친왕을 황태자로 내세우려 했으나 막부는 그의 뜻을 물리치고 고후카쿠사 천황계의 가즈히토를 황태자로 결정했다. 이때부터 고다이고 천황은 가마쿠라 막부에 대해 원망하며 반감을 갖기 시작했다.
고다이고 천황의 재위 기간이 10년을 넘기자 막부의 지원을 등에 업은 고후카쿠사 천황계가 퇴위 압력을 가하면서 고다이고 천황은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그러자 그는 왕정복고와 천황 친정체제 구축을 명분으로 내걸고 가마쿠라 막부 전복 쿠데타를 획책했다. 그러나 고다이고 천황의 쿠데타 계획이 사전에 새어나가는 바람에 그는 거처에서 탈출하여 교토 인근의 산에서 진을 치고 저항해 보지만 막부가 보낸 무사들 손에 체포되면서 그의 쿠데타 시도는 좌절된다. 막부는 그를 천황에서 폐위시키고 오키섬으로 유배를 보냈다(元弘の変).
![고다이고 천황의 맞수인 아시카가 다카우지. [출처 : 야후재팬]](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10/ned/20260410111306606mlnp.jpg)
유배지에서 필사의 탈출
천황을 추격하는 배 수십 척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선장은 황급히 천황을 배 밑창으로 밀어 넣고 그를 볏짚단으로 덮어 숨겼다. 추격자의 책임자로 보이는 인물이 선장의 배로 건너와 선체를 수색하며 물었다. “혹시 관복을 입은 사람들이 탄 수상한 배를 보지 못했는가?” 선장은 “네, 봤습니다. 그 사람들이 탄 배는 아침에 이즈모 쪽을 향해 갔습니다. 지금쯤 여기에서 5~6리 밖에 있을 겁니다”라고 거짓말로 둘러댔다. 그러자 그들은 서둘러 이즈모를 향해 뱃머리를 돌렸다(일본 남북조시대 역사서 ‘梅松論’).
오키섬 사람들의 도움으로 유배 생활 1년 반 만에 필사적으로 탈출하여 본토 호키(현 돗토리현)에 도착한 천황은 그 지역 호족 무사인 나와 나가토시와 함께 천혜의 요새, 센조산에 진지를 구축하고 전국 각지에 천황의 귀환을 알리는 사발통문을 돌렸다. 그리고 가마쿠라 막부 타도를 선포한 후 막부와 일전을 벌여나갔다. 막부는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여 센조산 공략에 나섰으나 패배만 맛보고 물러났다.
막부 편에 섰던 무사의 동량 아시카가 다카우지마저 천황 측으로 돌아서자 가마쿠라 막부는 1333년 5월, 이들의 공세를 견디지 못하고 속절없이 무너졌다. 막부가 세워진 지 150여 년만이었다. 가마쿠라 막부 몰락의 근본적 원인은 무사들에게 분배할 토지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생활이 궁핍해진 무사들은 토지와 부를 독점한 막부의 집권층 호조 가문에 대한 반감을 고다이고 천황 지지로 표출한 것이다. 정권을 되찾은 고다이고 천황은 교토로 귀환하여 친막부 세력을 일소하고 천황 친정체제를 선포했다. 그러나 모든 권한을 천황에게 집중하는 그의 독선적 전제정치는 무사는 물론이거니와 조정의 신하들에게도 반발을 사면서 실패로 끝났다.
![고다이고 천황을 업고 탈출하는 신하들. [출처 : 야후재팬]](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10/ned/20260410111306838abvq.jpg)
두 명의 천황, 두 개로 쪼개진 일본
고다이고 천황과 손잡고 가마쿠라 막부 타도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 아시카가 다카우지는 막부 잔당 세력이 가마쿠라를 점령하며 기세를 올리자 이들을 토벌한다는 명목으로 천황에게 쇼군 직책을 요구했다. 그러나 천황이 그의 요구를 거절하자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의 관계는 파탄 난다.
다카우지는 교토에 고후카쿠사 천황계인 고묘 천황을 새로 옹립하고(북조), 가메야마 천황계인 고다이고 천황은 나라현 요시노에 거점을 마련하여 독자 정권을 세우는데(남조), 이는 일본 역사상 두 명의 천황에, 두 개의 조정이 들어선 최초의 사례다(남북조시대). 이때부터 일본은 60년 남짓 내란에 휩싸이며 나라는 두 동강이 났다. 남북조시대 남조 측 고다이고 천황은 일본을 60년 남짓 전란으로 몰아넣은 장본인 가운데 한 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잘못된 인식과 판단으로 내린 결정이 수많은 사람을 희생시키고 고통으로 몰아넣었다. 고려말 조선 초에 왜구가 한반도에 나타나 준동하며 약탈할 때 왜구의 배후 세력이 규슈의 남조 세력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적지 않다.
‘임금이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어 국가에 큰 해악을 끼친 군주’를 암군이라 일컫는다. 그를 일본 역사에서 암군 반열에 올려놓아도 무방할 것 같다. 덧붙이자면 요즘 글로벌 사회는 인간의 목숨을 파리 목숨으로 치부하는 암군들이 활개를 치는 세상인 듯하다.
조선의 왕 단종 이홍위가 현대인의 마음에 큰 울림을 준 것은 청령포 사람들과 어우러져 그들의 삶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고자 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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