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이 무슨 수로 헤즈볼라를 무력화하는가 [트럼프 스톡커]
이스라엘, 휴전 직후 레바논 최대 규모 공습
트럼프, 네타냐후 전화에 돌연 합의안 제외
헤즈볼라, 정규군보다 강한데...“정부 협상”
이란은 비트코인·위안화 받고 15척만 통과
간극 심한 투트랙 담판...시장은 연일 급등락

미국과 이란이 2주간 휴전을 결정한 뒤에도 글로벌 금융시장이 극도로 불안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 20%가 오가는 호르무즈 해협이 완전히 개방되지도 않은 데다 이란이 요구한 10개 종전안을 둘러싼 논란도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스라엘과 레바논의 친(親)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 간 충돌까지 마치 독립 변수처럼 시장을 흔들고 있다. 이 분쟁은 휴전안에 사실상 포함되지 않은 채 이란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있다. 이웃국가이면서 외교 관계도 없는 이스라엘과 레바논이 헤즈볼라 무장 해체를 전제로 사상 처음 직접 협상에 나서겠다고 선언했지만, 시장은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휴전’이라는 명목 아래 최악의 사태는 피했으나, 중동 정세는 당분간 시장의 최대 시한폭탄 노릇을 할 것으로 보인다.

양국 사이의 이견을 제외하고도 휴전 상황을 불안하게 한 사안은 또 있다. 바로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이다. 네타냐후 총리는 8일에도 영상 메시지를 통해 “이스라엘에는 완수해야 할 목표가 더 많이 남아 있다”며 “언제든지 다시 전투에 복귀할 준비가 돼 있고 방아쇠에 손가락이 걸려 있다”고 역설했다.
실제 이스라엘군은 8일 이란 전쟁 발발 이후 레바논에 최대 규모의 공습을 단행했다. 이스라엘군은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를 공격해 헤즈볼라 수장 나임 카셈 사무총장의 개인 비서인 알리 유수프 하르시를 제거했다고 9일 공식 발표하기도 했다. 사망한 하르시는 카셈 사무총장의 조카이자 개인 비서 겸 고문 역할을 맡았던 인물이다. 이스라엘군은 8일 밤 레바논 남부를 관통하는 리타니강 인근의 전략 요충지도 대대적으로 공습했다. 이스라엘군은 이를 통해 레바논 남부 전역에 산재한 헤즈볼라의 무기 저장소 10여 곳을 비롯해 미사일 발사대와 지휘 통제 본부 등도 정밀 타격해 무력화했다고 주장했다.
레바논 보건부에 따르면 이 공습으로 이날 하루에만 최소 254명이 숨지고 100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 헤즈볼라도 휴전 발효 이후 처음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반격을 시작했다. 헤즈볼라는 성명을 통해 9일 새벽 이스라엘 북부 국경 지대를 향해 로켓을 발사했다며 “이스라엘의 계속되는 휴전 위반에 대한 대응”이라고 설명했다.
이스라엘의 공격에 이란은 물론 휴전 중재국인 파키스탄도 당황했다. 휴전 협상을 중재한 파키스탄의 셰바즈 샤리프 총리는 8일 X(옛 트위터)에 글을 올리고 “합의 위반 사례들이 보고되고 있다”며 “모든 당사국이 2주간의 휴전을 존중하고 극도의 자제력을 발휘해 줄 것을 간절하고 진심 어린 마음으로 당부한다”고 촉구했다. 같은 날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부 장관도 파키스탄의 무니르 최고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이스라엘이 휴전을 위반했다며 정식으로 항의했다.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 또한 9일 성명을 내고 “이스라엘의 레바논 타격은 휴전 합의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행위”라며 강력히 비난했다.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의회의장도 X에서 “레바논과 이른바 ‘저항의 축’ 전체는 이란의 핵심 동맹으로서 이번 미국과 2주 휴전 합의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부분”이라며 “이스라엘의 휴전 위반 행위에는 명확한 대가가 따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와 관련해 CBS는 9일 복수의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당초 레바논도 중동 지역의 휴전 대상에 포함하는 데 동의했다고 보도했다. 백악관 당국자는 이 같은 휴전 조건에는 이란과 파키스탄은 물론, 이스라엘도 찬성했다고 밝혔다. 상황은 트럼프 대통령이 네타냐후 총리와 전화 통화를 한 직후 급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네타냐후 총리와 대화를 나누자마자 레바논은 휴전 대상이 아니라는 쪽으로 입장을 갑자기 바꿨다. 이와 관련해서는 뉴욕타임스(NYT)도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월 11일 비밀회의에서 백악관 참모진보다 네타냐후 총리의 말을 더 신뢰하며 전쟁을 밀어붙였다는 보도를 내놓았다.
이스라엘의 공격이 휴전의 걸림돌이 되는 상황에서 AFP통신은 9일 레바논 내각이 베이루트에서 모든 무기 소지·운용 권한을 국가 공공기관으로만 제한하라고 보안군에게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나와프 살람 레바논 총리는 이날 각료회의 뒤 “군과 보안군은 베이루트 주 전역에 국가의 권위를 완전히 확립하기 위한 조치를 즉각 시작하라”고 명령했다. 특히 살람 총리는 “모든 무기는 오직 합법적인 당국의 손에만 있어야 하고 국가가 무력을 독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중동의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 입장에서 볼 때 마치 헤즈볼라에 대한 강제적인 무장 해제를 염두에 둔 명령으로 읽혔다.
이에 네타냐후 총리도 곧장 성명을 내고 “레바논 측에서 이스라엘과의 직접 협상을 개시해달라는 거듭된 요청이 있었다”며 “8일 내각에 가능한 한 빨리 레바논과의 직접 협상을 시작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이어 “레바논 정부와 회담은 헤즈볼라의 무장 해제와 양국 간 평화적 관계 수립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며 “베이루트 내 모든 무기 소유권을 국가가 독점하겠다는 살람 총리의 요구를 높이 평가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서는 미국이 이스라엘과 레바논 간 협상을 물밑에서 중재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CBS와 AP통신은 다음주 워싱턴DC에서 미국 국무부가 이스라엘, 레바논과 함께 하는 3자 휴전 회담을 연다고 전했다. 이 자리에는 미셸 이사 레바논 주재 미국 대사, 나다 하마데 모아와드 주미 레바논 대사, 예키엘 레이터 주미 이스라엘 대사가 참석할 예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NBC 전화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이 레바논에서의 작전을 축소하고 있다”며 “네타냐후 총리와 통화했다”고 말했다.

헤즈볼라는 1982년 이슬람 시아파 성향의 군부 세력으로 결성됐다.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에 대항한 민병대가 조직의 효시다.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이 당시 레바논 남부에 기반을 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를 공격하는 과정에서 민간인에게도 피해를 입히자 이에 강하게 저항했다.
1979년 이슬람 혁명에 성공한 이란의 신정 독재 정권은 자신들과 같은 시아파 계열이라는 점에서 헤즈볼라를 초기부터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이란은 이슬람 혁명수비대(IRGC) 대원들을 헤즈볼라에 파견해 청년들을 훈련시키고 자금도 제공했다. 미국과 서방에서는 테러 조직으로만 취급하지만, 헤즈볼라는 2005년부터 연정을 통해 레바논 집권 여당의 합법적인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4년 9월에는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32년간 조직을 이끈 하산 나스랄라 전 사무총장 등 지도부가 몰살당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헤즈볼라의 군사력은 레바논 정규군을 압도하는 것으로 잘 알려졌다. 전체 병력만 수만 명이 이르고 드론, 로켓 등 자체적인 군사장비도 다량으로 갖췄다. 전 세계에서 비국가 단체의 전력으로는 최강의 수준을 자랑한다. 행정력과 경제력이 떨어지는 레바논 정부가 정치력까지 갖춘 헤즈볼라를 통제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헤즈볼라는 이번 전쟁에서도 레바논 정부의 통제 바깥에서 움직이고 있다. 레바논 정부가 이란 전쟁 초기인 지난달 초부터 공식적으로 군사 활동을 금지했음에도 헤즈볼라는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고 이스라엘에 반격을 가했다. 당연히 네타냐후 총리도 이 같은 상황을 모를 리 없다. 네타냐후 총리가 레바논 정부와 직접 협상을 했음에도 헤즈볼라에 아무런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을 추후 재침의 명분으로 미국에 제시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WSJ은 트럼프 대통령이 8일 휴전을 두고 “완전한 승리”라고 주장했지만, 일부 측근들은 시기상조라며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WSJ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휴전 이후에도 이란의 잔존 군사 능력에 대해 보고를 받았다. 당국자들은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가 여전히 호르무즈 해협 내 선박들을 위협할 수 있는 수십 척의 소형 보트를 보유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이란이 보유한 미사일 발사대의 절반 이상은 파괴됐지만, 나머지 상당수는 지하에 아직 매설돼 있다고 덧붙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8일 이란이 2주간의 휴전 기간에도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선박에 가상화폐나 중국 위안화로 통행료를 받을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도 이란이 이 기간 통행료를 비트코인으로 지불할 것을 요구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통행료는 배럴당 1달러 수준이며 원유탱크가 비어 있는 유조선은 자유롭게 통과할 수 있다.
러시아 타스통신은 나아가 9일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하루 통과 선박 수를 최대 15척으로 엄격히 제한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해협 통제권을 이슬람혁명수비대에 넘기면서 미국에 대한 협상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려는 조치다.
아야톨라 세예드 모즈타바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도 같은 날 호르무즈 해협의 관리 수준을 새로운 차원으로 격상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모즈타바 최고지도자는 아버지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전 최고지도자의 사망 40일째를 맞아 성명을 내고 “우리나라를 공격한 침략자들을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것이고 그들이 저지른 행위에 대한 책임을 끝까지 물을 것”이라며 “피해에 대한 배상은 물론, 순교자들이 흘린 피의 대가도 반드시 청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AFP통신은 휴전 발표 이후 처음으로 이란 외 국가의 유조선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했다고 이날 전했다. 해당 유조선은 가봉 국적의 ‘MSG호’로 약 7000톤의 아랍에미리트(UAE)산 석유를 싣고 해협을 통과했다.
이란이 호르무즈 통행료로 장사를 하려고 하자 해협 건너편 국가인 오만은 이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오만 관영 알위살 라디오 등에 따르면 사이드 알마왈리 오만 교통장관은 8일 의회에서 “오만은 국제 해상 운송 협약에 모두 서명했으며 이에 따라 해협 통행에 어떤 수수료도 부과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호르무즈 해협은 인간의 개입으로 만들어진 인공 운하가 아닌 자연 통로이므로 수에즈 운하 등과는 달리 통행료를 징수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설명이었다.
호르무즈 해협의 가장 폭이 좁은 구간은 약 21해리(약 40㎞)다. 국제법상 인정되는 양국의 영해(해안선에서 12해리)의 합보다 해협 폭이 좁아 공해가 없다. 이에 따라 이 해협을 통과하는 배는 이란이나 오만의 영해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같은 날 트루스소셜에서 휴전 이전부터 반복됐던 ‘최대 공습’ 압박을 또 되풀이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상당히 약화한 적을 치명적으로 타격하고 파괴하는 데 필요한 모든 미군 함정과 항공기, 병력, 탄약, 무기체계는 진정한 합의에 도달해 완전히 이행될 때까지 이란과 그 주변에 그대로 머물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만약 어떤 이유로든 합의가 이행되지 않는다면 그 즉시 그 누구도 본 적 없는 강력한 방식으로 사격이 시작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FT는 8일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이란의 발전소를 초토화하겠다고 처음 위협한 시점부터 파키스탄에 휴전 중재를 요청했다고도 보도했다.
휴전에 대한 기대와 불신이 엇갈리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도 극도로 커지고 있다. 9일 뉴욕 증시는 휴전 합의가 하루 만에 흔들릴 조짐을 보이자 장 초반에는 약세를 보이다가 네타냐후 총리의 성명 발표 이후 급반등했다.
국제 유가는 휴전에 대한 불안 심리로 대폭 상승했다가 이스라엘과 레바논 간 협상 추진 소식에 오름폭을 축소했다. 이날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6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은 전 거래일보다 1.17달러(1.23%) 상승한 배럴당 95.92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5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3.46달러(3.66%) 오른 배럴당 97.87달러에 마감했다. WTI 선물은 장중 한때 8% 이상 오르며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기도 했다.
휴전 협상이 미국과 이란뿐 아니라 이스라엘과 레바논 사이에서도 진행되면서 중동 정세는 더 복잡하게 꼬이게 됐다. 더욱이 미국의 전쟁 배상과 헤즈볼라 무장 해제 등 현실 가능성이 떨어지는 요구 사항이 협상판에 너무 많아 합의 과정에서 꽤 긴 진통이 예상된다. 그 사이 금융시장의 불안정성도 높아질 수밖에 없게 됐다.

뉴욕=윤경환 특파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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