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 받던 날, 나는 ‘크리스티나’가 되고 싶지 않았다

크리스 2026. 4. 10.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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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퀴어로 살아가기⑴ 이름 짓는 존재

들어가는 말 – 아직도 동성 부부를 인정하지 않는 대한민국에서

어릴 때 나는 소꿉놀이를 하면 아빠 역할을 맡았고, 조금 커서도 격식을 갖춰야 하는 자리에서는 치마 정장 대신 바지 정장을 고집했다. 그때는 몰랐다. 그 고집이 결국 나를 설명하게 될 거라는 것을.

나는 지금의 파트너와 함께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채, 2013년 동성혼이 합법인 캐나다에서 결혼했다. 우리의 결혼은 미국에서도 법적으로 유효하지만, 정작 우리가 태어나고 자란 대한민국에서는 아직 그렇지 못하다.

나는 동성 배우자와의 관계에 대해 국내 항공사에 ‘가족 등록’(2019년 12월, 대한항공에서 마일리지 합산이 가능한 스카이패스 가족 고객으로 등록)을 하였고, 최근에는 대법원의 동성 동반자에 대한 피부양자 인정 판결이 나옴에 따라 ‘건강보험 피부양자 등록’까지 마쳤지만, 아직도 대한민국에서는 우리가 부부임을 인정받지 못한다.

▲ 나와 배우자는 2013년에 동성혼이 가능한 캐나다에서 결혼했다. 우리 결혼의 증인 ‘게이 부부’가 찍어준 결혼식 직후 사진. (크리스 제공 사진)

아버지 역시 오랫동안 내 결혼을 인정하지 않았다. 다행히 이제는 우리의 혼인 관계를 인정해 주는 친인척도 조금씩 생기고 있다. 그 사실이 긴 시간 속에서 나를 버티게 하는 힘이 된다.

가톨릭 신자이자 성소수자인 나는 오랫동안 내 정체성을 숨기며 살아온 시간과, 이제는 더 이상 숨지 않으려는 마음 사이에서 자주 묻는다. ‘사랑은 무엇으로 증명되는가, 그리고 누가 그것을 인정하는가.’ 이 질문이, 내 글을 읽는 누군가의 마음에도 가만히 닿을 수 있기를 바란다.

 

첫 세례식, 여자 아이에게 허락되지 않은 이름

유치원 옆 성당에서 세례를 받던 날, 나는 ‘크리스토퍼’가 되고 싶었다. 슈퍼맨을 연기한 배우 크리스토퍼 리브의 이름이었다. 빨간 망토를 휘날리며 하늘을 날아다니는, 세상을 구하러 온 영웅. 세례명으로 그 이름이 갖고 싶었다.

하지만 그 시절, 여자아이에게 남자 성인의 세례명은 허락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크리스티나’가 됐다. 크리스티나. ‘티나’라는 꼬리가 문제였다. 입 밖으로 내뱉을 때마다 혀끝에 닿는 발음이 어색했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예의 바르게 웃어야 하는 연극 같았다.

성당에서 첫 영성체 예식 때 여자 아이들만 미사포를 쓰고 흰 드레스를 입어야 한다는 지침이 참 싫었다. 초등학교 졸업식 날엔 고집을 부려 바지 정장에 넥타이를 맸다. 중학교는 사복을 입을 수 있는 학교에 다녔지만,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무렵 교복 자율화가 폐지되면서 대부분의 여학생이 치마 교복을 입어야 하는 상황이 왔다.

나는 치마를 입지 않아도 되는 학교에 가게 해달라고, 생애 처음으로 54일 묵주 기도를 했다. 매일 밤 촛불을 켜고 정성껏 기도했다. 당시 내가 치마 입기 싫어하는 마음을 잘 알던 어머니 주변 성당 분들도 함께 기도해 주셨다. 그리고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내가 배정받은 곳은 천주교 재단 여고였는데, 놀랍게도 그 학군에서 교복 의무화가 시행되지 않은 거의 유일한 학교였다.

 

신을 닮게 창조된 인간이 왜 여성 남성 둘 중 하나여야 하는가?

나는 오랫동안 레즈비언으로 정체화하고 살았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 명칭이 내 존재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는 갈증을 느꼈다. 크리스티나가 그러했듯 말이다.

이후 여러 젠더 개념들을 접하면서 나는 논바이너리(non-binary, 성별이 남성/여성이라는 이분법 틀에 갇히지 않는 정체성), FTM 스펙트럼(여성으로 지정된 출생 성별에서 위화감을 느끼는 범주)에 가깝다는 걸 알게 됐다. 나는 넓은 어깨와 단단한 근육을 가진, 키 큰 몸을 갈망한다. 여성스러운 가슴의 형태를 마주하는 일은 여전히 불편하다. 사람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것은 관념의 문제가 아니다. 매일 거울 속에서 실감하는 언짢은 현실이다.

어머니가 나를 향해 일컬었던 ‘중성’이라는 단어에는 부정적인 시선이 담겨 있었지만, 그 비하 섞인 명명은 어린 내게 뜻밖의 해방감을 선사하기도 했다. 그 말을 통로 삼아 나는 비로소 ‘여성’이라는 견고한 틀 밖으로 걸어 나갈 수 있었으니까.

기독교에서는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됐으며, 하느님과 천사들은 성별을 초월한 존재라고 가르친다. 가브리엘, 라파엘, 미카엘 — 대천사들은 여성도, 남성도 아닌 존재들이다. 그렇다면 하느님을 닮은 존재가 왜 이 땅에서는 반드시 둘 중 하나여야 하는가.

가톨릭교회에서 세례명은 한 번 받게 되면 수도자가 되거나 극히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고서는 평생 바꿀 수 없다. 고(故) 변희수 하사는 ‘가브리엘’이라는 세례명을 받았으나, 세상은 그녀가 떠난 뒤에야 비로소 ‘가브리엘라’라고 부르며 그녀를 추모한다. 죽어서야 온전한 이름을 얻을 수 있는 서글픈 현실이다. 때로는 성직자들의 비밀스러운 도움을 받아, 기존 이름의 주인을 ‘망자’(亡者)로 처리한 뒤 새 이름을 다시 등록하는 절차를 거치기도 한다. 죽어야만 이름을 바꿀 수 있는 시스템 안에서, 누군가는 그렇게 다시 태어난다.

▲ 배우자와 나는 캐나다에서 결혼을 하였고, 대한항공에 ‘가족’ 멤버십으로 등록되었고, 최근 대법원 판결 이후 ‘건강보험 피부양자’ 등록을 마쳤지만, 아직도 대한민국에서는 우리가 부부임을 인정받지 못한다. (크리스 제공 사진)

또한 교회는 하느님이 세상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했고 둘이 결합해 자녀를 낳는 것이 ‘자연의 질서’라고도 가르친다. 수컷과 암컷이 짝을 이루어 종을 이어가는 생태계처럼, 인간도 그 질서를 따라야 한다는 것. 그 질서를 벗어나는 존재는 ‘무질서’하고 ‘비자연적’이다.

그런데, 정작 자연을 들여다보면 어떤가.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다 보면 자웅동체로 태어나는 생물이 있고, 수백 종의 동물에서 동성 간 성적 행동이 관찰된다. 자연은 그들이 말하는 것보다 훨씬 다양하다.(이와 관련한 생물학 연구로 브루스 배게밀의 『생물학적 풍요』, 조안 러프가든의 『진화의 무지개』 등이 있다.) 무엇보다 신의 이름을 내세워 누군가를 배제하고 혐오하는 행위가, 과연 예수가 가르친 사랑의 본질과 맞닿아 있는지 깊이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많은 퀴어가 닉네임으로 살아간다

대학 시절부터 아버지는 남성적인 스타일을 선호하고 이성에게 무관심한 나를 보며, ‘결혼은 자식의 도리’임을 역설하셨다. 결국 내 정체성이 당신의 세계관과 충돌하자, “너 같은 자식은 없는 자식 취급하겠다”는 말로 선을 그으셨다.

내가 동성 배우자와 결혼한 사실을 밝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니가 무슨 결혼을 해? 니가 뭔 남자랑 결혼했냐.”

캐나다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대한항공에 배우자와 가족으로 등록되고,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인정받은 뒤에도…. 아버지에게 받은 그 모멸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국 성소수자들이 겪는 통증의 뿌리는 대부분 가족과 맞닿아 있다. 어떤 이에게는 평생의 흉터로, 어떤 이에게는 끝내 닿지 못한 후회로 기록될 그 파편 같은 말들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그 파편조차 마주하지 못한 채 깊은 침묵 속에 자신을 가두는 이들도 꽤 있다. 가족에게 상처받을까 봐, 혹은 내가 사랑하는 가족에게 상처를 줄까 봐 두려워 숨죽이며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날카로운 말들과 무거운 침묵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지나며 각자의 삶을 버텨내고 있다.

 

나와 배우자가 만든 가족에게 이름을 붙이다, 아콘네(Acorne)

나는 부모가 지어준 한글 이름이 불편하다. 그 이름을 부를 때마다 불효하는 마음이 따라온다. 성소수자 대부분이 커뮤니티에서 실명을 쓰지 않는다. 신분 노출이 두렵기 때문이다. 직장을 잃을 수도 있고, 가족에게 알려질 수도 있고, 때로는 안전이 위협받기도 한다. 온라인에서도, 오프라인 모임에서도, 인터뷰에서도 — 우리는 닉네임으로 존재한다. 이름을 숨겨야 살아남을 수 있는 세계에서, 내 영어 이름 크리스(Chris)가 더 편한 이유다. ‘크리스’는 크리스토퍼도 크리스티나도 아닌, 그냥 ‘나’다.

이름 하나에 이렇게 많은 것이 담긴다. 젠더, 가족, 신앙, 두려움, 그리고 살아남는 방식.

▲ 우리 부부의 영어 이름이 적힌 결혼 1주년 기념 케이크. Ari와 Chris의 첫 자를 따서, 우리 둘이 함께 구성한 가족의 이름을 만들었다. 아콘네(Acorne)라고. (크리스 제공 사진)

아버지가 호적에서 파내겠다던 자리에, 나는 새로운 이름을 넣곤 한다. 아내의 영어 이름 Ari와 내 영어 이름 Chris의 첫 자를 따서, 우리 둘이 함께 구성한 가족의 이름을 만들었다. 김가네, 최가네처럼 — 아콘네(Acorne)라고. 작은 도토리(acorn) 한 알이 참나무(oak)가 되듯 우리가 함께하면 크게 자란다는 뜻이다.

이름을 짓는 존재는 결국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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