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청년의 우상' 김수영… 생전 유일 시집 초판본을 만나다

아르떼 2026. 4. 10.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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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김기태의 처음 책 이야기
김수영 시집 <달나라의 장난>,
춘조사, 1959년 11월 30일 발행

대학 시절 만난 「거대한 뿌리」와 「풀」
그리고 김수영 시인

1980년대 국문학도 시절 김수영(金洙暎, 1921~1968) 시인은 한마디로 문학적 우상이었다. 문학평론을 하는 어느 선배가 시집 『거대한 뿌리』(민음사)의 1974년 초판본을 구하려고 동분서주하는 모습을 보며 도대체 어떤 시집이기에 저럴까 싶어 학교 도서관이었는지 학교 앞 책방이었는지 여기저기를 뒤지고 다녔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그 덕분에 1964년 시인이 마흔셋의 나이에 써서 잡지 《사상계》에 발표했다는 작품 「거대한 뿌리」를 읽고 받은 충격은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다.

“나는 아직도 앉는 법을 모른다/어쩌다 셋이서 술을 마신다 둘은 한 발을 무릎 위에 얹고/도사리지 않는다 나는 어느새 남쪽식으로/도사리고 앉았다 그럴 때는 이 둘은 반드시/이북친구들이기 때문에 나는 나의 앉음새를 고친다/8·15 후에 김병욱이란 시인은 두 발을 뒤로 꼬고/언제나 일본여자처럼 앉아서 변론을 일삼았지만/그는 일본대학에 다니면서 4년 동안을 제철회사에서/노동을 한 강자다”

이렇게 시작하여 이내 “나는 이사벨 버드 비솝 여사와 연애하고 있다”로 이어지면서 “전통은 아무리/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 “나에게 놋주발보다도 더 쩡쩡 울리는 추억이/있는 한 인간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는 진단으로 나아가는 이 작품은 당시 순수시 또는 참여시로 이분화된 시적 풍토에 길들어 있던 문학청년에게는 낯설면서도 신선한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작품 「풀」을 읽고 나서는 마침내 김수영 시인을 흠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인이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인 1968년 5월 29일에 쓰인 것으로 알려진 이 작품은 같은 해 8월 《현대문학》에 유고(遺稿)로 발표되었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 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시집 『거대한 뿌리』 1974년 판본 이전, 그러니까 김수영 시인 생전에 이미 한 권의 시집이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바로 시집 『달나라의 장난』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인터넷과 같은 정보망이 없었기에 그 판본의 실제 모습이 어땠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게다가 이상하게 유명 헌책방 순례에서도 구경할 기회조차 없었다.

그러다가 몇 해 전 어느 고서(古書) 경매장에 이 시집이 출품된다는 소식을 듣고 구경삼아 찾아갔던 적이 있다. 하지만 경매가 시작되자 치솟는 가격이 심상치 않아 아쉬움을 남긴 채 돌아서야 했다.

그리고 또 몇 해가 흘렀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부산에 사는 어느 고서 수집가로부터 연락이 왔다. 필자가 초판본과 창간호를 수집해서 ‘처음책방’이란 초판본·창간호 전문서점을 열었다는 소식을 들었다면서 몇 종의 희귀본을 구입할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

그런데 그때 그분이 보내온 희귀본 목록에 『달나라의 장난』이 들어 있는 게 아닌가. 게다가 가격도 매우 합리적이었다. 직접 만나 살펴본 시집의 상태도 세월의 흔적 말고는 매우 좋았다. 그렇게 해서 『달나라의 장난』은 우리 책방의 새로운 식구가 되었다.

시집 『달나라의 장난』의 이모저모와 숨겨진 이야기

김수영 시집 『달나라의 장난』 초판본은 가로 125mm, 세로 175mm 크기에 본문 118쪽의 양장 제책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959년 11월 30일 춘조사(春潮社)에서 <오늘의 시인 총서>로 발행했다. 먼저 표지 재킷을 보면 상단 중앙에 시집 제목 ‘달나라의 장난’이, 그 아래에 ‘김수영 저’라는 표기가 한자로 표기되어 있으며, 그 아래에는 삽화가 그려져 있다.

삽화 아래쪽으로 주황색 바탕에 ‘오늘의 詩人叢書(시인총서)’라는 백자(白字)가 보인다. 재킷을 벗기면 양장 표지가 드러나는데, 새겨진 활자는 재킷의 내용과 같다. 겉표지를 넘기면 속표지가 나오는데, 여기에 비로소 출판사 ‘춘조사’의 이름이 한자로 실려 있다.

다음 장을 넘기면 4쪽에 걸쳐 차례가 나온다. 모두 40편의 제목이 가지런히 실려 있다.

차례가 끝나는 그다음 쪽(뒷면)에 시집으로서는 특이하게 ‘편집위원’이라고 하여 세 사람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그들은 바로 장만영·박남수·김광균 시인인데, 아마도 춘조사 발행 ‘오늘의 시인총서’ 편집위원인 것으로 보인다.

이어서 시집 제목만 표기된 속표지가 나오고 그 뒷면에 “이 시집을 朴準敬(박준경) 兄(형)에게 드린다”라는 헌사가 붙어 있다. 여기 나오는 ‘박준경’은 화가 박일영(朴一英)을 말한다.

그렇다면 박일영이란 인물은 누구일까. 김수영 시인이 잡지 《청춘》 1954년 2월호에 「나와 가극단 여배우와의 사랑」이란 제목으로 쓴 산문에서 밝힌 내용에 따르면 “가극단 구경이 좋아서 저속한 노래와 춤과 값싼 경음악 같은 것을 들으러 따라다닌 시절이 나에게는 있었다. 그런 구경을 다닐 때는 반드시 P라는 화가와 같이 갔던 것이다. 벌써 지금부터 6, 7년 전 일이니까 나의 취미와 생활은 지금보다도 훨씬 더 낭만적이었고 열정적이었고 동시에 무질서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고 한다.

여기서 ‘6~7년 전의 일’이라고 했으니 1947년에서 1948년 사이의 어느 때엔가 있었던 일을 회상한 것이리라. 이 시기에 김수영은 주로 자신보다 나이가 열두어 살 많은 박일영을 따라다니며 간판화 그리기를 도우면서 통역 일에 종사했으니, 그의 본격적 문단 생활이라고 할 수 있는 ‘신시론(新詩論)’ 동인 활동 직전의 일이며, 1950년 4월 여섯 살 연하인 이화여대 출신의 김현경과 결혼하기 전의 일이다(김수영 시인과 김현경 여사에 관한 사연은 지면 관계상 생략한다).

이 글에 등장하는 P가 바로 ‘박준경’ 곧 ‘박일영’이다. 그는 또한 「목마와 숙녀」의 시인 박인환(朴寅煥, 1926~1956)이 종로에 열었던 서점 ‘마리서사’에 대해 쓴 김수영의 산문 「마리서사」에도 박인환과 김수영 등의 ‘스승’으로 등장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에 박씨 성을 일본식으로 불렀던 것 그대로 ‘복쌍’이라 불리던 박일영에 대해 김수영은 이렇게 쓰고 있다.

쓰메에리1)를 입은 인환을 브로드웨이의 신사로 만들어준 것도, 콕토와 자콥과 동향청아(東鄕靑兒)의 <가스빠돌의 입술>과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선언>과 트리스탄 짜라를 교수하면서 그를 전위시인으로 꾸며낸 것도, 말리서사의 ‘말리’를 <군함말리>에서 따준 것도 이 복쌍이었다.
[출처: 한겨레(2012.03.01.), 「김수영 산문 ‘여배우와의 사랑’ 발굴」(최재봉 기자)]


이처럼 김수영은 해방 전부터 스승처럼 모시고 따라다녔을 뿐만 아니라 급기야 첫 시집을 그에게 바친다는 헌사까지 남길 정도로 화가 박일영을 흠모했다. 헌사가 실린 면을 넘기면 이윽고 발표 시기의 역순으로 40편의 시가 실려 있다. 맨 처음 실린 시는 「死靈(사령)」이며, 스물세 번째로 실려 있는 「눈」은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작품이다.

이 시는 순결한 이미지의 ‘눈’이 새벽까지 살아서 이 세상의 위선과 거짓을 덮고 있는 현실을 비판한 것으로 보인다. 평론가 이남호는 “시인은 눈이 녹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서 이 세상에 아직도 많은 위선과 거짓이 저렇게 추악한 진실을 뒤덮고 있다는데 생각이 미치고 이어서 그러한 위선과 거짓에 대해서 젊은 시인은 강하게 비판해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하는 것”2)으로 이 작품을 해석하고 있다.


다음으로, 이 시집에서 서른일곱 번째로 실려 있는 표제작 「달나라의 장난」은 전쟁 직후인 1953년에 발표된 것으로, 그 전문(全文)을 보면 다음과 같다.

달나라의 장난

팽이가 돈다
어린아이이고 어른이고 살아가는 것이 신기로워
물끄러미 보고 있기를 좋아하는 나의 너무 큰 눈 앞에서
아해가 팽이를 돌린다
살림을 사는 아이들도 아름다웁듯이
노는 아이도 아름다워 보인다고 생각하면서
손님으로 온 나는 이집 주인과의 이야기도 잊어버리고
또 한 번 팽이를 돌려주었으면 하고 원하는 것이다
도회 안에서 쫓겨 다니는 듯이 사는
나의 일이며
어느 소설보다도 신기로운 나의 생활이며
모두 다 내던지고
점잖이 앉은 나의 나이와 나이가 준 나의 무게를 생각하면서
정말 속임 없는 눈으로
지금 팽이가 도는 것을 본다
그러면 팽이가 까맣게 변하여 서서 있는 것이다
누구 집을 가보아도 나 사는 곳보다는 여유가 있고
바쁘지도 않으니
마치 별세계 같이 보인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팽이 밑바닥에 끈을 돌려 매이니 이상하고
손가락 사이에 끈을 한끝 잡고 방바닥에 내어던지니
소리 없이 회색빛으로 도는 것이
오래 보지 못한 달나라의 장난 같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돌면서 나를 울린다
제트기 벽화 밑의 나보다 더 뚱뚱한 주인 앞에서
나는 결코 울어야 할 사람은 아니며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가야 할 운명과 사명에 놓여있는 이 밤에
나는 한사코 방심조차 하여서는 아니 될 터인데
팽이는 나를 비웃는 듯이 돌고 있다
비행기 프로펠러보다는 팽이가 기억이 멀고
강한 것보다는 약한 것이 더 많은 나의 착한 마음이기에
팽이는 지금 수천 년 전의 성인(聖人)과 같이
내 앞에서 돈다
생각하면 서러운 것인데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 된다는 듯이
서서 돌고 있는 것인가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이 시는 김수영이 포로수용소에서 나와 부산으로 갔을 때 잡지 《자유세계》로부터 청탁을 받아 쓴 작품이라고 한다. 전쟁 이후의 첫 작품인 셈이다. 그때 아내는 김수영이 죽은 줄 알고 다른 남자와 살고 있었다.

가족과 단절된 채 부산에 홀로 버려진 듯한 암담한 상황에서 쓴 시라는 점에서 지향점 없이 제자리에서만 맴도는 ‘팽이’에 투사된 자신의 모습과 달리 다른 사람들의 삶은 흡사 ‘달나라의 장난’ 곧 ‘별세계’나 다름없었는지도 모른다.

이윽고 마지막 시편 「토끼」를 넘기면 후기가 나온다. 아래에서 보는 것처럼 이 시집을 엮게 된 배경과 작품 선정 과정이 잘 나타나 있다. (괄호 안 한글을 제외하고 원문 그대로 옮김)

後記(후기)

이 詩集(시집)은 1948년부터 1959년에 이르기까지의 여러 雜誌(잡지)와 新聞(신문) 등속에 발표되었던 것을 추려 모아 놓은 것이다.
그러나 「토끼」 「아버지의 寫眞(사진)」 「웃음」의 세 작품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6·25 후에 쓴 것이며, 그중에도 最近(최근) 3·4년간에 쓴 것이 비교적 많이 들어 있다.
낡은 作品(작품)일수록 愛着(애착)이 더해지는 것이지만, 解放(해방) 後(후)의 작품은 거의 消失(소실)된 것이 많고, 현재 手中(수중)에 남아있는 것 중에서 간신히 뽑아낸 것이 以上(이상)의 세 작품이다.
특히 《民聲(민성)》誌(지)에 실린 「거리」와 《民生報(민상보)》에 실린 「꽃」은 꼭 이 안에 묶어두고 싶었지만 지금은 兩誌(양지)가 다 구할 길이 없다.
目次(목차)는 대체로 制作逆順(제작역순)으로 되어 있다.

1959년 11월 10일
김수영


위와 같은 ‘후기’를 넘기면 본문이 끝나고 간기면이 나오는데, 일반적으로 한 면에 간기(刊記) 사항을 인쇄한 후 인지(印紙)만 따로 붙이는 형식이 아니라 간기 사항 전부를 작은 종이에 인쇄하고 시인의 도장까지 찍은 다음 삐딱하게 붙여 놓은 것이 특이하다. 간기면을 통해 이 시집을 서울신문사에서 인쇄했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지만 시인의 후기에도 별다른 언급이 없어 출판사에 관해서는 알 길이 없다.

간기면 뒤에는 펼침면 양쪽으로 출판사 발행도서 안내가 실려 있다. 왼쪽 면에는 전체 다섯 권짜리 ‘효석전집(孝石全集)’을, 오른쪽 면에는 ‘오늘의 시인총서’를 소개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효석전집의 경우 제1권과 2권은 이효석의 단편소설들을 싣고 있으며, 제3권은 중편 「거리의 牧歌(목가)」·「聖畫(성화)」 그리고 장편 「花粉(화분)」을 실었다. 제4권에서는 이효석의 유일한 장편소설 「碧空無限(벽공무한)」을 전부 싣고 있으며, 제5권에서는 수필과 서한(書翰)과 잡문(雜文) 및 평론가들의 이효석론과 연보(年譜)를 실었다.

‘오늘의 시인총서’로는 모두 여섯 권이 소개되어 있다. 먼저 제1회 시인협회상을 수상한 김수영의 시집 『달나라의 장난』을 비롯하여 제2회 시인협회상을 수상한 김춘수(金春洙) 시집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과 제3회 시인협회상을 수상한 전봉건(전봉건(全鳳健) 시집 『사랑을 위한 되풀이』가 보인다. 그리고 제1회 한국문학가협회상을 수상한 김윤성(金潤成) 시집 『바다가 보이는 산길』, 그리고 ‘시와 시론’을 함께 실었다는 김경린(金璟麟) 시집 『오후의 예절』과 조향(趙鄕) 시집 『검은 DRAMA』도 소개하고 있다.

김수영 시인은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 펜클럽 주최 세미나에서 발표한 글 「시여, 침을 뱉어라」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그림자를 의식하지 않는다. 그림자에조차도 의지하지 않는다. 시의 형식은 내용에 의지하지 않고 그 내용은 형식에 의지하지 않는다. 시는 그림자에조차도 의지하지 않는다. 시는 문화를 염두에 두지 않고, 민족을 염두에 두지 않고, 인류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문화와 민족과 인류에 공헌하고 평화에 공헌한다. 바로 그처럼 형식은 내용이 되고, 내용이 형식이 된다. 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다.”

그렇다. 김용만 시인이 「폭설」이란 시에서 “뭘 더 보태고 뺄 것도 없다”고 했던 그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온몸을 밀고 나가는” 시 쓰기가 필요한 것이리라.

김수영 시인은 지금도 하늘나라에서 여전히 거짓과 위선이 판치는 세상을 내려다보며 연신 ‘기침’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와는 달리 빛깔은 하얘도 공해에 찌들어 그냥 먹을 수도 없고 지저분한 자국만 남기는 요즘의 ‘눈[雪]’을 시인은 알지 못 하리라.

한겨울 대지를 덮으며 내리는 눈도 진정 하얗게 쌓이고, 우리가 사는 세상도 거짓부리 없이 맑고 하얀 곳이 되기를 바라는 건 욕심일지 모르지만, 김수영 시인이 남긴 시편들만큼은 세상을 향한 일침(一針)으로 언제까지나 우리 곁을 지켜주리라 믿는다. 안타깝게도 시인의 부인 김현경 여사가 2025년 5월 22일 9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57년 만에 하늘에서 다시 만났을 두 분의 명복을 빈다.

김기태 ‘처음책방’ 설립자



1) 쓰메에리(つめえり,詰め襟): 일본에서 건너온 양복 가운데 하나로, 깃의 높이가 4센티미터보다 높게 해서 만든, 목을 둘러서 바싹 여민 양복이다. 학생복으로 많이 지었다고 한다.
2) 이남호(2011), “김수영의 시 「눈」의 해석에 대한 연구”(가천대 아시아문화연구소 《아시아문화연구》 제23집)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