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덕정 살인 사건
<연재 순서>
1 프롤로그_이성로 변호사
2 어두움의 끝_유령
3 육짓것의 시간
4 '게메'란 말은….
5 심층취재부
6 제주도판 '그것이 알고 싶다'
7 제주도 3대 영구 미제 사건
8 관덕정 살인 사건
9 유력 용의자의 등장
10 새벽의 루트
11 두 개의 모순점
12 나보다 더 센 놈이 나타났다
13 신탁의 밤
"우리 제주도 사름들은 어려서부터 독립심이 아주 강햇주마씨. 어멍 아방에게 기대질 않앗수다. 우리 세대는 부모님헌티 손을 안 벌리고 공부도 혼자 햇주. 어멍 아방은 허구헌날 밭이영 바당으로 나도는디 자식 교육에 신경 써지쿠가?"
허두가 뱀처럼 길었다. 고윤식은 관덕정 살인 사건의 최초 목격자였다. 통화할 때의 분위기와 달리 아래위로 옷을 쫙 빼입고 나온 게 TV 출연을 염두에 둔 모습이었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 출연해서 한차례 유명세를 탔기 때문이었다.
"초등학생 때야 밭이영 곶자왈이여 습지영 휩쓸고 댕기멍 지네를 잡앗수다. 지네 잡으면 침 빼서 한일소주 병에 담아 팔았곡. 당시에 지네 한 마리 값이 50원이었는데, 농심 소고기라면 값이난 막 지꺼졋주. 잘못 걸리믄 밭 돌담 다 무너뜨렸다고 아방 데려오라면서 멱살도 잽히곡. 중학생 땐 코를 놓아 꿩 잡아다 식당 같은 데 팔앗수다. 꽤 쏠쏠한 용돈 벌이엿주. 경헌디 고등학생이 되그네 시로 나와보니까 지네영 꿩이영 심어당 파는 것은 초등 애들이나 하는 거라. 갑자기 돈이 필요헌디 방법이 있어야 말입주."
"무사 돈이 급했습디가?"
김수남이 제주어로 맞장구를 쳐주었다.
"포경수술. 다른 애들은 다 해신디 나만 늦어서 마음이 막 급햇수다. 저디 올라가민 세종의원이라고 있어주마씀. 지금은 폐원했주마는 당시만 해도 거기가 제주도에서 최고라낫수다. 포경수술 안 허민 어른 못 된다고 허난 막 초조햇주. 어멍 아방헌티 부탁하기도 뭣하고 돈이 필요하긴 헌디 마땅한 디가 있어야 말입주."
"시민회관 위에 있던 세종의원 말입니까?"
"예게."
"거긴 내과 전문의 아닙니까?"
최근 폐원 소식을 알리는 기사가 떴다. 꽤 오랜 역사를 가진 병원이라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제주도 사람이라면 어렸을 때 추억 한두 컷쯤 있을 법한 병원이라 호의적인 댓글 일색이었고, 늙은 원장의 건강을 기원한다는 내용도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병원에서 포경수술을 했다는 얘기는 금시초문이었다.
"맞수다. 독감 걸려그네 그디 가서 주사 맞으면 입에서 약 냄새가 풀풀 났어신디. 그거 한 방 맞으면 거뜬헌 거라. 아무리 독한 감기라도 한소끔 자고 나민 그냥 나사부러. 약을 얼마나 독하게 쓰는지 운전도 못 할 정도로 어질어질했곡. 경찰 음주 측정 불민 걸리기 딱 좋을 만큼 약 냄새가 살벌하게 낫수다. 그디가 초창기에는 포경수술 잘 헌다는 소문이 돌앗주."
"그래서 여기 와서 잡부로 일하게 된 것입니까?"
김수남이 이야기의 끈을 바투 잡아끌었다. 마침 관덕정 인근에 고윤식의 자취방이 있었다.
"나도 노가다 처음 뛰는 거라 잘 몰랏주. 집에서 입던 추리닝에 쓰레빠 직직 끌고 무대뽀로 찾아간 거라. 근디 정문에서 검문에 딱 걸려부럿수다, 현장 소장헌티. 두말 않고 그냥 꺼지라고 헙디다. 동네 떠돌이 개 쫓듯 돌멩이라도 던질 기세라낫수다. 어찌나 쪽팔리던지 다음 날에는 작업복에 안전화까지 몬딱 수배해서 완전군장 차려그네 전날보다 호꼼 더 일찍 출근헌 거라. 전날 뺀찌 맞아부난."
고윤식이 아직도 생생하다는 듯 멀리 한라산을 바라보았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최초 목격자는 어느덧 삼십대 후반의 건장한 사내가 되었다. 머리를 바짝 쳐올린 모양이 지금도 주먹깨나 쓰는 왈패로 보였다.
"이 큰길이 관덕로우다. 관덕정과 목관아지 사이 저 골목. 지금은 저렇게 막혀 있지만 쪼꼴락한 골목길이 터져 있엇주. 저디서 단란주점 여주인이 발견된 거라마씀."
길에 쓰러져 있다가 다행히 목숨을 건진 단란주점 여주인 현 모씨를 말하는 것이었다. 14일 새벽 한 시, 현씨와 종업원 고춘자는 남자 손님 두 명과 단란주점을 나와 근처 소주방으로 2차를 갔다. 소주방에서 한 시간 남짓 술을 마시다가 새벽 두 시쯤 헤어졌고, 현씨와 고춘자는 단란주점으로 복귀했다. 이들은 단란주점에서 기다리고 있던 또 다른 종업원 서씨와 가볍게 맥주로 입가심하고 퇴근한다.
택시로 서씨를 칠성로까지 바래다주고 둘이 관덕정 분수대 앞에 도착한 시각은 새벽 3시쯤. 현씨의 집까지는 대략 50미터 거리였다. 두 사람 모두 술에 취해 있었지만, 고춘자는 현씨가 술에 취하면 집까지 꼭 바래다주었기 때문에 함께 택시에서 내렸다. 고춘자의 집은 전농로 쪽이었다.
범행 시각은 새벽 3시에서 3시 20분 사이로 추정되었다. 현장을 목격하고 119에 신고한 가구점 직원 채씨의 증언이 결정적이었다. 가구점은 범행이 일어난 골목 끝에서 불과 1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채씨가 새벽 3시쯤 가구점에서 친구와 술을 마시다가 밖으로 나왔을 때는 아무것도 없었다. 사건 발생 장소를 지나 중앙로사거리까지 친구를 배웅하고 다시 골목길에 들어선 시각은 3시 20분 전후. 바로 거기에서 현씨를 발견했던 것이다.
*
고윤식이 출근 시간보다 삼십 분 일찍 도착했기 때문에 공사 현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정문으로 들어가자 오른편으로 공사 시공자인 삼부토건 가건물 사무실이 보였다. 매미 소리가 쟁쟁하고 아침부터 욱욱한 햇살이 죽창처럼 내리 찍히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곧 인부들이 출근할 시각이었다. 작업장 정리를 해 놓으면 면목도 서고 일도 시켜줄 것 같았다. 사무실 벽에 기대 놓은 빗자루로 마당을 쓰는 순간, 그는 그대로 얼어붙는다. 쨍, 하고 머리에 전기가 일더니 뒤통수가 화석처럼 굳어버렸다. 그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파리 떼였다. 하얀 마네킹 같은 물체 위로 파리 떼가 새까맣게 들러붙어 윙윙대고 있었던 것이다. 정문 좌측 느티나무 아래였다.
"좀 더 가까이 가 보난 여자라. 여자여신디 이디 유두가 잘려져 있어. 거기서 피가 양옆으로 흐르다가 굳으난 파리 떼가 달라붙었던 거라.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빨간 매니큐어 칠해진 손톱하고. 파리 날아다니는 소리만 들어도 하, 미칠 것 같곡."
고윤식이 코끝을 찡그리며 진저리 쳤다.
"유두는 뭐로 자른 것 같았나요?"
"경황이 없어서 뭘로 앗아불었는지 확인할 수 없엇주. 바로 경찰에 신고해시난. 중앙파출소가 바로 이디 있었으니까."
"파출소 위치가 그렇게 가까웠나요?"
"여기 목관아지 매표소 자리 옆이난 바로 뛰어갈 수 있는 거리라낫수다. 우리 제주도 사람 중에 이디 중앙파출소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어신디. 여자들이 비명이라도 질렀으면 바로 들릴 만큼 가까운 디 아니꽈. 담력이 이만저만 아닌 놈인 거 같아마씀."
살해 장소는 차단 펜스가 설치되어 있어 인적이 아예 없는 곳이었다. 낮 동안 공사장 인부가 드나들 뿐, 밤에는 암흑천지로 변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고윤식의 증언과 달리 고춘자가 완전한 알몸으로 발견된 것은 아니었다.
윗옷은 벗겨져 등 뒤로 팔과 묶였고, 스타킹과 치마는 오른 무릎에, 팬티는 둘둘 말려 왼 발목에 걸려 있었다. 양쪽 유두는 이빨에 의해 물어 뜯겼고, 국부는 칼에 찔려 심각한 손상을 입은 상태였다. 정액은 발견되지 않았다. 뒤통수도 함몰되었는데 부검 결과 뇌출혈에 의한 두부 손상이 직접 사인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사체 주변에 떨어져 있던 피 묻은 쇠파이프를 범행 도구로 지목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이 공통으로 초동 조치 미흡을 지목하는 대목은 따로 있다. 그날 새벽 가구점 종업원 채씨에 의해 현씨가 발견되었을 때 경찰은 주변을 더 수색했어야 했다. 골목길에 현씨의 신발 외에도 다른 신발 한 켤레가 더 나뒹굴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씨와 고춘자는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 공사장 차단 펜스 때문에 밖에서 보이지 않을 뿐이었다. 경찰이 신고를 받고 출동한 시각, 고춘자가 살아 있었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었다. 범행 현장에서 시체 발견 장소까지 직선거리로 7m였고, 차단 펜스를 돌아 정문으로 들어가도 35m에 불과했다.
경찰은 현장에서 사라진 현씨의 손가방과 고춘자의 휴대폰에 주목했다. 손가방은 차단 펜스 안 북동쪽 180m 지점에서 불에 탄 채 발견되었지만, 고춘자의 휴대폰은 오리무중이었다. 현씨는 며칠 후 의식을 회복했으나 워낙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당시 상황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곧바로 산지천과 한천교 주변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탐문 수사가 진행되었다. 현상금 2백만원이 걸렸고, 제보자를 찾는 전단 2만 매가 뿌려졌다. 범인 검거 유공 경찰관에게 1계급 특진이라는 파격적인 보상이 내걸렸다. 서귀포 미소카페 살인 사건까지 하룻밤에 두 건의 강력 사건이 터졌으니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당연했다.
"분수대 인근에서 담배꽁초도 발견되었다고 헙디다."
고윤식이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조사가 얼마나 되었는지 떠보는 질문이었다.
"오마샤리프였죠. 피해자를 공격하기 전 시간을 보냈던 대기 장소, 즉 분수대에서 담배꽁초가 발견되었습니다. 저쪽 북동쪽 펜스 현씨의 가방을 태운 곳에도 오마샤리프 담배꽁초가 떨어져 있었죠. 경찰은 이 담배를 피운 사람을 범인으로 특정했습니다. 저도 거기까지는 동의합니다만. 다른 증거는 일절 발견되지 않았어요. 유일하게 밝혀진 단서는 담배에서 검출된 혈액형이 A형이라는 것뿐이었죠."
고윤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더 물을 것이 없느냐는 듯 김수남을 쳐다보았다.
"파출소에 신고하고 나서 공사장 아르바이트는 했나요?"
"공사가 그날부터 며칠 동안 올스톱되수다. 첫날은 현장소장헌티 뺀찌 맞아불고, 둘째 날은 여자 시체 발견하곡, 에이 영 재수가 없어서 다 설러부럿주. 이거 뭐 재수에 옴 붙은 것도 아니고."

조중연
2008년 계간『제주작가』에 단편소설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탐라의 사생활』,『사월꽃비』가 있다.
kalito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