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 ‘노잼특별시’의 운명을 거부하려면

광주는 언제부턴가 ‘노잼(재미가 없는)도시’라는 꼬리표를 달게 됐다. 누군가는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부족하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폐쇄적인 지역 분위기를 탓한다. 다 맞는 말이다. 2022년 지방선거를 강타한 ‘노잼’ 담론 이후 광주는 강기정 광주시장을 필두로 ‘노잼도시’ 탈피를 기치로 내걸었고 기대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2028년부터 ‘더현대 광주’나 ‘광천터미널 복합화’, ‘어등산관광단지 개발 등이 순차적으로 이뤄지면 분명 볼거리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고 해서 ‘노잼도시’ 탈출이 가능할까? 광주가 노잼도시가 된 이유 중 하나는 문제 해결 능력 부재에 있다. 새롭고 흥미로운 제안이 나와도 그 동력이 금세 사그라든다. 혹은 용두사미가 된다. 제안이 나왔을 때 상상력을 더해 풍성하게 완성해 가는 것이 오히려 상상력을 깎아내는 데 익숙하다. 갈등이 발생하면 정면 돌파하기보다 회피하는 데 익숙해진 관성은 도시의 역동성을 앗아갔다.
전남이라고 다를까? 오히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 그런 광주와 전남이 통합해서 오는 7월 전남광주통합특별시(약칭 광주특별시)가 탄생한다. 이름은 ‘특별시’인데 운영 방식은 예전 그대로라면 결과는 뻔하다. 간판만 커졌을 뿐 의사결정은 더 느려지고 책임은 더 흐려질 가능성이 크다. ‘노잼특별시’가 될 운명인 셈이다.
본질적 원인은 ‘관(官) 주도 기획’의 한계다. 광주와 전남은 공무원 도시다. 산업과 자본, 기업의 발달이 부족하니 관 중심의 도시 성장이 이뤄졌다. 소위 말해서 관이 이끌고, 민간이 이에 붙어서 가는 구조가 고착화 돼 있다. 문제는 관이 주도하는 기획은 태생적으로 뻔할 수밖에 없다. 실패에 대한 책임 회피와 관료적 경직성은 기획의 날을 무디게 만든다. 획기적인 아이디어도 예산 심의와 행정 절차를 거치며 ‘축소와 복제’ 과정을 밟는다. 새롭기보다 익숙하고 매력적이기보다 무난한 결과가 쌓인다. 광주·전남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공공 건축물만 양산되는 이유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통합특별시는 규모가 커진다. 4년간 정부가 주는 통합 지원금으로 최대 20조원의 추가적인 재정 여력이 발생한다. 벌써부터 돈 잔치할 생각에 설레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이대로라면 그저 거대한 관료 조직이 탄생하는 데 그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들을 중심으로 또 뻔하디뻔한 기획물이 나온다고 생각하면 한숨부터 절로 나온다.
통합특별시가 ‘노잼의 굴레’라는 운명을 거스르려면 철저하게 관성에서 탈피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관이 독점하고 있는 기획권부터 내려놓아야 한다. 민간의 창의적이고 적극적인 참여가 실질적으로 보장되는 거버넌스 구축이 필수적이다. 다만, 거버넌스가 또 다른 형태의 ‘문제 해결 걸림돌’이 돼서는 안 된다. 목소리 큰 특정 시민단체가 주도하는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신 개인 단위의 우수한 인재와 민간 전문가들이 정책의 결정 단계부터 기획의 핵심까지 깊숙이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줘야 한다.
도시의 매력은 행정 서류가 아니라 시민의 상상력에서 나온다. 관은 그 상상력을 관리하려 들지 말고 현실이 되도록 지원하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통합특별시가 진짜 ‘특별’해지는 길은 관의 힘을 빼고 민간의 활력을 채우는 데 있다. 상상력을 빼는 도시가 아니라, 상상력을 현실로 구현하는 도시로의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
그런 점에서 광천터미널 복합화 사례를 볼 필요가 있다. 이 사업은 민간 기업인 신세계가 제안하고 광주시가 적극 지원한 사례다. 백화점 하나 만들고 끝날 수도 있는 신세계백화점 확장 사업이 광주의 얼굴을 바꿀 사업으로 변모했다. 터미널이 지하로 내려가고 그 위에 백화점과 5성급 호텔, 공연장, 주거·의료·교육시설을 올린다. 광주 최고층 마천루(180m)와 도시 전망대, 신세계 남산 트리니티홀을 능가하는 하이엔드 공연장이 들어선다. 광주의 보잘것없던 관문이 도시를 대표하는 랜드마크가 된다.
단지 자본력을 갖춘 기업의 투자여서 그런 게 아니다. 관과 민간이 함께 상상력을 키워낼 수 있는 힘은 규모를 가리지 않는다. 통합특별시는 새롭게 추진하는 사업들이 대거 예정돼 있다. 그저그런 B급들 여러 개가 아닌 하나를 만들더라도 명품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 스스로 자부심 느끼고 전국에서, 세계에서 찾아올 ‘특별한 장소’, ‘특별한 정책’으로 만들어야 한다. 오는 6월 3일 선출될 통합특별시장의 리더십은 그래야 한다.
이삼섭 취재1본부 차장대우 seob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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