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부부’의 인기 뒤에 남겨진 불안감 [콘텐츠의 순간들]

코미디는 타자를 관찰하는 기술이다. 그 관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상의 보편성을 짚어내는 것이다. 공감을 많이 살수록 코미디의 기술은 유효해진다. 그래서 많은 코미디언들이 ‘중년’이라는 카테고리를 애용한다. 중년은 특정한 집단이 아니라 대부분의 인간이 거치는 보편적인 시기를 의미하기에, 그 전형성을 건드리는 게 일종의 해학으로 승인된다. 김신영·김영희·신봉선의 억척스러운 경상도 아줌마, 김대희와 장동민의 고집 센 ‘꼰대’ 아저씨, 피식대학의 ‘한사랑 산악회’와 랄랄의 ‘이명화 여사’에 이르기까지 한국 코미디언들은 중년의 일상에 과장된 연기를 입혀 오랜 시간 익숙한 쾌감을 만들어왔다.
유튜브 콘텐츠 ‘낭만부부’ 역시 ‘경제적 자유’를 이루고 귀농을 꿈꾸는 중년 부부를 코미디 소재로 다룬다. 쇼츠 조회수가 1000만에 육박하는 이 시리즈의 위력은 청년 세대와 대비되는 중년 세대만의 사교적인 모습을 모사하는 데 있다. 코미디언 김해준과 나보람이 연기하는 이 부부는 시장에서 처음 본 행인에게 서슴없이 말을 걸고, “고로케는 ‘고렇게’ 먹어야 한다” 같은 시시한 말장난에 자지러지며, 화려한 원색의 옷과 금붙이를 두른 채 거리를 활보한다.
이 콘텐츠의 주 시청자인 청년층은 이들이 구현하는 중년 특유의 뻔뻔함과 촌스러움에 원초적인 웃음을 터뜨리면서도, 동시에 그들에게서 자기 부모의 모습을 떠올리며 미워할 수 없는 애착을 드러낸다. 젊은 남녀만 보면 오지랖을 부려 결혼하라 부추기고, 자기 말을 들으라며 고집스럽게 조언을 건네는 이 중년 부부의 모습은 사실 무례하고 보기 민망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무채색 옷을 입으며 타인의 눈치를 보는 것에 익숙하고, 터치 한 번으로 상대를 차단하는 문화를 체득한 청년 세대에게, 관계를 멋대로 침범하는 이들의 모습은 일종의 해방감을 주기도 한다.
유튜버 ‘명예영국인’과 유병권이 만든 시트콤 〈하우스 오브 피스〉는 ‘중년 캐릭터’를 향한 이러한 젊은 대중의 관심과 애정을 가장 감각적으로 파고든 콘텐츠다. ‘이모 키드(emo kid)’를 자처하는 딸 이자벨을 걱정하는 영국 교포 그레이스, 미국 출신이라고 우기지만 자신의 정체를 제대로 증명하지 못하는 재클린은 우리가 매체에서 보던 중년 여성의 모습과 거리가 멀다. 이들은 건장한 이웃 남자를 유혹하며, 글로벌 데이팅 앱 ‘틴더’에서 ‘원나잇’ 상대를 찾고, 별난 하숙생의 기행에 지쳐 맞담배를 태우며 중년 여성의 전형을 발칙하게 무너트린다. 이 과정에서 국적, 혼인, 나이 심지어 성별까지 모호한 재클린의 존재는 부모와 자식으로 이루어진 ‘정상 가족’의 규범을 벗어나, 이제껏 본 적 없는 급진적 중년의 모델을 우리에게 보여주며 한국 코미디가 벗어나지 못하는 ‘중산층 부모’의 표상을 무너트린다.
중년의 모습을 정교하게 재현하거나 그들의 삶을 다채로운 욕망으로 변주하는 이러한 코미디는 우리가 막연히 기대하는 ‘어른’으로서의 중년, 그 통념을 흔든다는 점에서 긍정적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중년이 주인공인 코미디에 열광하는 젊은 대중의 태도까지 덮어두고 긍정적으로 보기는 어렵다.
유머를 자신들의 전유물이라 믿는 젊은 세대는 유행에 둔감하고 분위기를 읽지 못하는 고집 센 현실의 중년을 결코 닮고 싶지 않은 불안한 미래로 여긴다. 이러한 불안은 ‘영포티’를 향한 집요한 조롱이나 지하철 1호선에서 마주치는 노인에 대한 거부감, 그리고 정치·종교 집회에서 악을 쓰는 중장년을 향한 냉담한 시선으로 구체화된다. 젊은 세대가 이들에게 갖는 적대감에는 분명한 실체가 있다는 것이다.
입체적인 중년 그린 코미디를 기대하며
청년에게 중년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나이를 먹는 과정이 아니라 그 불안의 실체와 대면하는 일이다. 그러니 정상성을 강요하며 부조리를 당연하게 여기는 중년의 모습은 청년이 회피하고 싶은 고독이자, 조롱하고 싶은 불안이다. 나는 청년의 그 욕망을 지지하면서도 동시에 대상을 끊임없이 경계하고 타자화하는 행위가 결국 나의 불행으로 되돌아올 거라는 사실을 알기에 두려움에 빠진다. 바로 이 지점에서 코미디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수단이 된다.

기성세대의 구태에 저항하면서도 그들을 진심으로 이해하며 세대가 연결되기 위해 코미디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조롱의 모델을 확장하는 것이다. 모든 중년에겐 청년이었던 과거가 있기에 코미디는 그들의 과거를 다양하게 상상하고 정교하게 모방하여, 청년들이 그 상상과 모방 위에 자신의 모습을 겹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또한 중년의 권위를 날카롭게 저격하며 그들에게 자기 자신을 바라보게 하고, 또한 그들이 소통 의지를 상실하지 않도록 계속해서 그들을 소환하여 중심부에 두어야 한다.
실컷 비하하고 기꺼이 조롱하는 일은 서로의 모습을 반사하는 일종의 ‘거울 싸움’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코미디는 중산층 부모의 속물적 근성을 드러내는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가 아니라 좀 더 복잡한 계급적·문화적 층위를 가진 입체적인 중년의 모습 아닐까. 공감을 얻기 위해 가장 보편적인 캐릭터를 만들거나, 어떤 캐릭터를 사랑하기 위해 그들에게서 ‘무해함’을 찾는 관성을 의심해본다. 다양한 종류의 삶을 상상하며 조롱의 스펙트럼을 넓힐 때 우리의 코미디는 입체적인 영토를 확보하며 모두에게 위안을 마련해줄 것이다.
복길 (자유기고가) editor@sisain.co.kr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