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최저임금, 무엇을 남기는가 -일본의 경험과 한국의 선택

안주영 2026. 4. 10. 07:02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안주영 일본 류코쿠대 교수(정책학부)
▲ 안주영 일본 류코쿠대 교수(정책학부)

2005년에 일본으로 유학 와 어느덧 20년 넘는 시간이 흘렀다. 가끔은 30년 가까이 살았던 한국에서조차 어딘가 어색함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가 한국과 일본 사이의 경계인이 돼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처음 일본에 왔을 때 여러 가지 차이를 느꼈지만, 그중에서도 지금까지 인상에 남아 있는 장면이 하나 있다. 대학교 앞 편의점 문에 붙어 있던 아르바이트 모집 포스터였다. 시급이 700엔을 넘었는데, 이는 당시 한국의 최저임금 2천840원과 비교하면 두 배가 넘는 수준이었다. 이 정도 금액이라면 대학생들이 생활을 위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동시에 한일 양국의 경제적 격차를 매우 분명하게 인식하게 됐다.

두 배 이상 차이가 나던 양국의 최저임금은 불과 15년 만에 거의 같은 수준에 도달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구매력 기준 달러로 보면 한국의 최저임금은 일본보다 더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한일 양국 모두에서 최저임금이 경제정책의 주요 쟁점으로 부상했다는 사실이다. 한국에서는 2017년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 성장의 핵심 수단으로 최저임금 인상을 추진하면서, 정권 내내 이를 둘러싼 격렬한 논쟁이 이어졌다. 일본에서도 2015년 아베 정권이 '일하는 방식 개혁'을 경제정책의 핵심 과제로 추진하면서 최저임금의 매년 3% 인상과 전국 가중평균 1천엔 달성을 목표로 제시했다. 이후 자민당 정권은 보수정권임에도 불구하고 최저임금 인상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으며, 2025년 7월 발표된 '경제재정 운영과 개혁의 기본방침'에서는 1천500엔이라는 목표까지 제시됐다.

비슷한 듯 다른 한일의 제도

최저임금은 이처럼 양국 모두에서 중요한 정책 쟁점으로 떠올랐지만, 제도를 살펴보면 그 구조는 상당히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일본에는 전국적으로 통일된 최저임금이 존재하지 않고, 광역자치단체 단위로 각각 최저임금이 설정된다는 점이다. 2025년도 기준으로 도쿄도의 최저임금은 1천226엔으로 전국에서 가장 높고, 오키나와현과 미야자키현은 1천23엔으로 가장 낮아 지역 간 약 20%의 격차가 존재한다. 반면 한국은 최저임금위원회가 전국 단일 금액을 결정하는 구조다.

이러한 차이는 단순한 운영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의 성격 자체를 가르는 요소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최저임금위원회의 권한, 심의 절차, 결정 시한 등이 법률에 비교적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다. 반면 일본은 중앙최저임금심의회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47개 도도부현의 지방최저임금심의회가 이를 바탕으로 최종 결정을 내리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일본의 최저임금법은 후생노동대신(장관)이나 도도부현 노동국장이 최저임금심의회에 조사심의를 요구하고, 해당 의견을 들은 뒤 최저임금액을 결정해야 한다는 정도로만 규정하고 있다. 즉 심의회의 의견을 '들어야' 하지만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며, 심의회가 어떤 방식으로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도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한국과 달리 중앙최저임금심의회에 언제 자문을 하고 언제까지 답신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법정 시한도 정해져 있지 않다.

이러한 제도적 특징은 실제 운영 과정에서도 나타난다. 예를 들어 2022년까지 중앙최저임금심의회는 47개 도도부현을 4개 지역으로 나누어 인상액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으나, 2023년부터는 이를 3개 지역으로 조정했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변화가 법령 개정이 아니라 심의회 논의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는 일본의 최저임금이 법률보다 정책 판단과 심의회 운영을 통해 유연하게 조정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한국이 법률 중심의 제도 운영이라면, 일본은 심의회와 정책 판단을 중심으로 유연하게 작동하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일본 최저임금제도의 역사와 변화

이러한 일본의 특징은 제도의 역사적 형성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일본은 1959년에 최저임금법을 제정했지만, 당시 주요 결정 방식은 업자 간 협정 방식과 단체협약 승인 방식이었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 실제 신청 건수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제도 도입 초기에는 업자 간 협정 방식이 중심적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사용자 주도의 결정 방식은 곧 비판의 대상이 됐고, 1968년 법 개정을 통해 해당 방식은 폐지됐다.

이후 1971년 일본 정부는 국제노동기구(ILO) 26호와 131호 협약을 비준하면서, 최저임금제도는 노사 참여를 전제로 하는 구조로 전환됐다. 동시에 전국 전 산업을 포괄하는 제도로 자리 잡게 됐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도 전국 일률적 규제를 강화할 것인지, 지역별 자율성을 유지할 것인지가 중요한 쟁점으로 남아 있었다.

노동조합쪽은 중앙최저임금심의회가 전국적인 최저임금을 결정하고, 추가 인상이 필요한 지역에 대해서만 보완적으로 인상하는 방식을 주장했다. 반면 경영자쪽은 지방최저임금심의회의 자율성을 강조하며 중앙의 역할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두 입장의 타협으로 현재와 같은 구조가 형성됐다. 즉 지방최저임금심의회가 구체적인 금액을 결정하되, 중앙최저임금심의회가 가이드라인과 참고액을 제시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정착된 제도는 2007년을 계기로 중요한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최저임금이 장기간 정체되는 가운데, 일부 지역에서는 그 수준이 생활보호액을 밑도는 이른바 '역전 현상'이 발생했고, 이는 사회적 문제로 부각됐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법 개정이 이루어졌으며, 동시에 정부는 최저임금을 적극적인 경제정책 수단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특히 2007년 일본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을 포함한 성장력 강화 전략 발표 이후 후생노동대신이 최저임금심의회에 심의를 요청하면서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 방침을 고려할 것을 요구하는 사례가 등장했다. 이후에도 정권의 정책 방향에 따라 표현은 달라졌지만, 최저임금 인상을 정책적으로 유도하는 심의 요청이 반복됐다.

최근에는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 크게 확대되고 있다. 코로나 이후 물가 상승과 인력 유출 문제가 심화되면서, 각 지자체가 최저임금 인상을 주요 정책으로 인식하게 됐고, 중앙의 가이드라인을 넘어서는 결정을 내리는 사례가 등장했다. 2024년 도쿠시마현이 중앙 가이드라인을 크게 상회하는 인상을 단행한 '도쿠시마 쇼크'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더 나아가 2025년에는 인근 지역보다 높은 최저임금을 설정하기 위해 결정 시기를 늦추는 이른바 '치킨 레이스' 현상까지 나타났다. 이로 인해 최저임금의 적용 시기가 지역마다 달라지는 상황도 발생했다. 각 지역의 최저임금이 전국적인 산업구조와 생활 안정이라는 관점보다는, 지역 간 경쟁 속에서 결정되는 경향이 점차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 주는 시사점

한국에서도 2016년 이후 최저임금이 급격히 인상되면서 제도 전반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이어져 왔다. 2018년 최저임금법 개정을 통해 상여금과 복리후생비 일부가 산입범위에 포함됐고, 이후에는 주휴수당 문제가 핵심 쟁점으로 부상했다. 동시에 경영계를 중심으로 지역별 최저임금제도 도입에 대한 요구도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일본의 경험은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최저임금은 더 이상 단순한 임금 규제가 아니라, 지역정책과 산업정책까지 결합된 정책수단으로 작동할 수 있다. 동시에 제도의 효과는 법 조문뿐 아니라 누가 어떤 구조에서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가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특히 지역별 최저임금제도를 논의할 경우, 안일하게 지역 간 금액 차이를 설정하는 문제에 그쳐서는 안 된다. 지역 산업 구조, 인구 이동, 지방소멸 문제 등을 함께 고려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 일본의 경우, 중앙과 지방의 역할 분담과 지방최저임금위원회를 통한 의사결정 구조가 운영되고 있지만, 이러한 구조는 결과적으로 오랫동안 지역 간 격차를 제도적으로 고착시키고, 낮은 수준의 최저임금을 정당화하는 경향을 보여왔다는 점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

2005년 일본에서 보았던 시급 700엔은 당시 한국과의 분명한 격차를 상징하는 숫자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 격차가 거의 사라지는 가운데, 한일 양국 모두에서 최저임금은 중요한 정책으로 부상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노동시장 관행이 유사한 한국과 일본은 서로의 제도를 참고할 수 있는 여지가 있지만, 그 과정에서는 각국의 제도가 형성돼온 맥락과 노동시장 구조의 차이, 그리고 최저임금제도를 둘러싼 다양한 정책 간의 정합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이는 지역별 최저임금이 정치적 타협 속에서 형성될 경우 반드시 바람직한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올해도 3월31일 고용노동부 장관이 최저임금위원회에 심의를 요청하면서 한국 최저임금위원회의 공식 절차가 시작됐다. 주휴수당이나 지역별 최저임금이 단순히 인상 폭을 억제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기에는, AI 기술 도입에 따른 노동시장의 변화가 지나치게 급격하다.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정책 비전 아래 다양한 정책과의 연계 속에서 인상 폭을 논의하는 방향으로 생산적인 논의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Copyright © Copyright © 2026 매일노동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