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아리 피멍에 실신…13살 소녀들은 왜 죽도록 맞았나

김옥천 2026. 4. 10.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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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드려뻗쳐서 손은 뒤로 하고 이마를 시멘트에 들이받고, 1시간 넘게 벌을 서는 거예요. 그러다 넘어지면 와서 몽둥이로 엉덩이를 때리고…."

"중학교 3년 동안 교복 치마 입고 다닌 기억이 없어요. 맨날 종아리에 멍이 들어 있으니까, 창피하니까 항상 체육복을 입고…."

"보리밥만 있으니까, 도시락을 열면 부끄럽잖아요. 일부러 수업 끝나고 나면 길에서 먹었어요. 그러다 보니 몸이 참 약했거든. 학교 조례 시간에 쓰러지더라고."

- 아동 학대 보육원 '덕성원' 1972년 12월 입소자들의 증언

1972년 12월, 중학교에 갓 입학할 나이였던 3명의 여학생이 부산 덕성원에 입소합니다. "그곳은 고아원이면서, 폭행을 일삼는 '지옥'이었다"고 증언합니다.

3명의 여학생은 54년이 지나 노년을 바라보고 있지만, 여전히 어제의 일처럼 당시 상황을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트라우마가 있어 어지간하면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면서도, "국가에 책임을 묻고 진심 어린 사과를 받기 위해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말합니다.

■폭행에 얼룩진 청춘…"다들 이렇게 사는 줄 알았다"

덕성원 국가폭력 피해 생존자 협의회 (안종환 대표 제공)


부산을 떠나 살고 있는 A 씨는 "우리가 덕성원에서 가장 많이 맞은 세대일 것"이라고 운을 뗐습니다. A 씨는 원장을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아버지'는 아침저녁 없이 마당에 집합시켜 엎드려뻗치게 한 뒤, 이마를 시멘트 바닥에 들이받게 했다고 합니다. 1시간 넘게 벌을 세우고, 넘어지면 몽둥이로 엉덩이를 때렸다고 합니다.

아버지 지인이 하는 여관, 해장국 식당 등에서도 일하고, 돌아오면 폭행당하기 일쑤였다고 합니다. "덕성원에 있으면 맞고, 도망가면 굶어 죽을까 참고 살았다"고 말합니다. "불평이고 불만이고 어디 있어요? 다들 그렇게 사는 줄 알았죠. 더 맞을까 봐 신고도 못 했어요."

A 씨는 당시 폭행의 후유증으로 평생을 허리 통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생존을 위해 스무 살쯤 덕성원을 나왔고, 공장과 식당에서 궂은일을 다하며 살고 있다고 합니다.


B 씨는 원장 가족의 수발을 드는 일을 했습니다. 원장 아내의 다리를 종일 주물렀는데, 원장은 "왜 밖에서 일하지 않고 여기 있느냐"며 종아리를 때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시 밖으로 나가면, 아내가 다시 B 씨를 불러 다리를 주무르게 했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B 씨의 종아리는 멍으로 가득했습니다. 중학교에 다니는 동안, 종아리에 항상 피멍이 들어있어 교복 치마도 입지 못했다고 합니다.

덕성원 건물 옥상에서 자살을 결심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덕성원 원장의 "죽으려고 그러냐, 빨리 내려와라"라는 말에 시도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심리적 지배 상태에 놓여있다 보니 극단 선택조차 원장의 말 앞에서 멈춘 겁니다.

B 씨는 폭행 후유증으로 이명에 시달린다고 말합니다. 큰 목소리를 듣거나, TV 소리를 크게 켜기만 해도 괴성이 들린다고 말합니다.

C 씨는 개울에서 빨래하는 일을 주로 했습니다. 먼 산까지 가 빨래를 하고 돌아오는 건 보리밥뿐. 학교에서도 도시락을 꺼내기에 부끄러워 먹지 않다가 수업이 모두 끝나고 몰래 먹기도 했다고 합니다. 몸은 날이 갈수록 약해졌고, 학교 조례 시간에 쓰러지기도 했다고 합니다.

100여 명의 빨랫감을 들고 산을 오가고, 고무장갑도 없이 찬 물에 빨래하다 보니 손은 항상 튼 상태였다고 합니다. C 씨는 지금도 손 상태가 좋지 않아 무거운 짐을 들지 못합니다.

■42명에서 109명으로…"국가가 한 번만 살폈다면"


사실, 덕성원 피해자 42명은 국가로부터 '인권 유린' 피해자임을 인정받았습니다. 지난해 12월 부산지법 민사 11부에서 국가의 배상책임이 인정된다고 봤고, 지난 1월에는 국가와 부산시가 항소를 포기하면서 394억 원의 국가배상이 확정됐습니다.

하지만, 세 여성은 당시 피해자로서 국가에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전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A 씨는 "겨우 잊고 살고 있는데, 좋지 않은 내 과거를 다시 들추는 기분이어서 부끄러웠다"고 말합니다. B 씨는 "신청하는지조차 몰랐다"며, "국가의 책임이 인정되는 걸 보면서, 우리와 같은 제2의, 제3의 피해자는 없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새롭게 신청하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일은 우리 세대에서 끝나고, 다음 부모 없이 자라 보육원 생활하는 아이들은 인격적인 존중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실제로 지난달 26일 출범한 제3차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 피해를 신고한 '덕성원' 출신 피해자는 109명입니다. 지난번보다 2배 넘게 늘었습니다.

B 씨는 인터뷰 마지막쯤 '국가'의 역할에 대해 말했습니다. "너희가 어떤 상황이냐고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고 우리에게 물어봤더라면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이게 안타까운 거죠. 원장에게 어떤 대접을 받고, 밥은 제대로 먹고 있는지, 쌀밥은 가끔 먹는지…나라에서 와서 물어봤으면 어린 마음에 조금이라도 말할 수 있었을 텐데…그러면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109명과 함께 다시 나선 '1차 배상자'…"우리보다 편히 인정받길"


지난 제2기 진화위에서 덕성원 피해자로 인정받은 인물 중에는 이번에도 다른 피해자들과 함께 목소리를 내는 인물이 있습니다. 덕성원 국가폭력 피해 생존자 협의회 안종환 대표입니다. 대표는 진화위를 오가며 어렵게 피해를 입증받았고, 이후 민사 소송을 벌여서야 국가 책임이 있음을 인정받았습니다. 안 대표는 "하루빨리 소송 없이 진화위 결정만으로 보상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덕성원 피해자들의 1심 승소 후 국가와 부산시의 항소 포기 결정이 내려진 다음 달, 정부는 학대 시설 피해자들을 위한 특별법을 추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법이 통과되면 진화위를 통해 피해자로 인정되는 대로 국가 지원을 받게 됩니다.

또 안 대표는 "범죄 사실, 증거, 피해자 목소리가 모두 뚜렷하게 밝혀진 상황"이라며 덕성원 운영 일가가 운영하는 시설 폐쇄도 요구했습니다. 덕성원 원장의 딸은 법인 이름을 바꾼 채, 부산 해운대구에서 노인요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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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천 기자 (hub@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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