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발 고유가, '원전 귀환' 촉진할까[천조국 리포트]
AI 전력 수요 급증…시장 기준 '전기 공급 능력'으로 변화
원전 투자 확대에도 병목 여전
(뉴욕=머니투데이방송) 염현석 특파원= 미국과 이란의 충돌은 에너지 시장의 구조적 취약성을 다시 드러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우려와 중동 내 생산·수송 차질 가능성이 동시에 부각되며 공급 불안이 확대됐다. 로이터 등 외신에서는 이를 두고 에너지 시장이 예측 불가능한 상태인 '트와일라잇 존'에 진입했다고 평가했다.
유가는 높은 수준에서 급등과 급락을 반복하고 있다. 여기에 AI 중심 산업 구조 재편이 맞물리면서 에너지 수요 자체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어, 불안정한 석유 의존도를 낮춰야 할 필요성도 함께 커지고 있다.
특히 AI 육성을 위한 대규모 데이터센터 확산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기존 전력 시장의 핵심이었던 피크전력 관리보다 24시간 안정적인 기저전원 확보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고유가 국면에서의 첫 번째 전환 에너지원으로 원자력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AI 산업 육성에 유가보다 전력…원전 필요성 확대에도 공급은 제한적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는 2030년까지 두 배 이상 증가할 전망이다. 특히 생성형 AI 확산과 함께 전력 집약도가 높은 연산 수요가 급증하면서, 기존 전망보다 더 빠른 증가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미국 전력 소비 역시 사상 최고치를 경신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단순한 경기 회복이 아니라 산업 구조 자체가 전력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에너지 시장의 기준도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연료 가격이 핵심 변수였다면, 현재는 “24시간 전력 공급 가능성”이 주요 판단 기준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는 에너지 가격보다 공급 안정성이 더 중요한 변수로 자리 잡았다는 의미다.
이 같은 변화 속에서 원전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원전은 대규모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대표적인 기저전원이며, 동시에 탄소 배출이 낮다는 점에서 정책적 수용성도 높아지고 있다.
실제 원전 산업의 투자 흐름도 확대되고 있다. 최근 5년간 원전 투자는 약 50% 증가했고, 미국에서는 디아블로캐니언 원전이 20년 운영 연장을 승인받으며 정책 변화도 나타났다. 이는 원전이 단순한 대체 에너지가 아니라 필수 인프라로 재평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시장은 이를 단기 공급 확대 요인으로 보지 않는다. 건설 기간과 인허가, 송전망 연결, 계통 승인 등 구조적 병목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기존 원전 재가동 역시 전력망 접속과 승인 절차가 변수로 작용하면서, 공급 확대 속도를 제한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빅테크 전력 확보 경쟁…자금은 기존 전력·장비 기업으로 이동
이 같은 환경은 주가 흐름에서 가장 먼저 확인된다. 시장 자금은 신규 원전 건설보다 이미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기존 전력 기업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는 불확실한 미래 투자보다 확정적인 전력 공급 능력에 프리미엄이 붙고 있음을 의미한다.

대표적으로 콘스텔레이션 에너지는 기존 원전을 기반으로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등 빅테크와 장기 전력 계약을 확대하며 재평가되고 있다. 신규 원전 건설보다 이미 가동 중인 원전 전력을 확보하는 전략이 우선시되면서, 기존 자산의 가치가 빠르게 상승하는 흐름이다.
비스트라와 NRG 역시 같은 맥락이다. 이들은 원전, 가스, 재생에너지, 저장장치를 결합한 포트폴리오를 통해 데이터센터 수요 증가에 대응하고 있으며, 필요 시 기존 발전 자산을 재배치하거나 전용 발전 설비를 구축하는 방식으로 공급을 확대하고 있다.
전력 장비 기업으로도 수혜가 확산되고 있다. GE 버노바 등 주요 기업들의 가스터빈과 전력 장비는 이미 수년치 납기가 밀린 상태로, 이는 전력 수요 증가 속도를 공급 인프라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전력 부족의 병목은 발전소 건설뿐 아니라 장비와 송전망으로 확산되고 있다. 시장에서는 발전원 종류보다 “즉시 공급 가능한 전력”과 이를 뒷받침할 인프라 확보 여부가 핵심 투자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게임 체인저' SMR, 상업성 확보는 미흡…관건은 경제성 확보
차세대 원전으로 꼽히는 소형모듈원자로(SMR)는 원전 르네상스의 핵심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공장에서 모듈 형태로 제작한 뒤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으로, 건설 기간 단축과 비용 절감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특히 대형 원전에 비해 초기 투자 부담을 낮출 수 있다는 점에서 정책적·산업적 관심이 동시에 확대되고 있다.
특히 데이터센터 인근에 설치할 수 있는 분산형 전원으로 활용 가능하다는 점에서 AI 시대에 적합한 전력원으로 거론된다. 전력 수요 발생지와 가까운 곳에 설치할 수 있다는 점은 송전망 부담을 줄이고 전력 손실을 낮출 수 있다는 장점으로 이어진다. 미국 증시에서도 뉴스케일파워와 오클로 등 관련 기업들이 투자 테마의 중심에 서 있으며, ‘차세대 기저전원’으로서 기대감이 반영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기대와 다소 거리가 있다는 평가다. 일부 프로젝트에서는 예상 비용이 크게 증가했고, 경제성 확보가 쉽지 않다는 점이 드러나고 있다. 특히 원자로 규모는 작아졌지만 단위당 건설비는 여전히 높게 형성되면서, '소형=저비용'이라는 전제가 현실에서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미국 유타 프로젝트나 루마니아 등에서 취소 사례가 나오면서 사업성 문제로 계획이 중단된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또한 SMR은 아직 상업적 대규모 운영 사례가 부족하다. 기술 검증과 규제 승인, 금융 조달 등 여러 단계가 남아 있어 단기간 내 전력 공급원으로 자리 잡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규제 승인 절차와 프로젝트 파이낸싱 구조가 확립되지 않은 점은 상업화 속도를 늦추는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SMR을 당장의 전력 해법이 아닌 중장기 성장 옵션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투자 역시 실적보다는 기대에 기반한 성격이 강하며, 기술 진전과 정책 지원 여부에 따라 변동성이 크게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최근 오클로가 미 에너지부(DOE)로부터 주요 설계 승인을 획득하며 다시 속도를 내고 있어 SMR에 대한 기대감도 높이고 있다.
염현석 머니투데이방송 MTN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