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 없는 시절, 끝까지 가도 절멸하지 않는 시집 [.txt]
고통과 상실 가득한 삶을 ‘어떻게 기억하느냐’
‘아름답지 않은’ 소네트 128편으로 빚은 ‘아름다움’

“나는 죽음과 사랑에 빠졌다, 그는 심술궂지 않다, 그의 키스는 축축하고/…/ 그는 기분이 내키면 황혼 무렵의 어느 초원에서 내게 전화를 걸어,/ 태양이 어떻게 스스로 제 무덤을 파는지를 설명해 준다, 그 구릿빛 잔광을.”
“나는 아빠가 아파서 기뻤다. 덕분에 아빠 곁에 갈 수 있었다. 아빠 옆에 앉아서/ 아빠의 차가운 뼈를 손에 쥘 수 있었다. (…)”
읽어도 읽어도 이 시집에 아름다운 시는 없다. 달곰한 시구 하나 없다. 관조가 없고, 승화 따위도 여기엔 없다. 자신의 지난 삶을 ‘원어’로 증언하는 여자와 살아온 그대로의 ‘원화’가 있을 뿐이다. 굳이 형상을 추리자면, 가난, 노동, 상실, 낙태, 외로움, 중독, 섹스, 사랑, 문학, 죽음, 그리고 욕망이 될 것이다. 두 딸을 지웠을 때나, 마약 중독자였던 아들 딜런과 부딪히고 얘기하고 감각하는 때는 아, 독하다.
그럼에도 무너지지 않는 시인의 삶이 마치 시행처럼 이어지므로, 시인의 어떤 과거, 어떤 현재 그리고 어떤 정념이든 시집을 구성한 128편의 시로서, 적어도 또는 많게는, 14줄짜리 소네트의 일정하고 일관된 형식으로 매듭지어진다. “시에서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한 행이 다음 행으로 넘어가며 침묵으로 사라질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이 죽음은 아니다. (…)” 이 형식부터가 웅크리고 갇히되, 소요하고 펼쳐져야 하는 삶, 그렇게 기억되리라는 삶의 강력한 은유 아닐까.
서구의 오래된 정형시인 소네트 형식을 두고, 시인은 2018년 한 문학 단체와의 인터뷰에서 “소네트를 지금 저의 가장 가까운 동반자로 여긴다”며 “마치 그림 속 주제가 세상으로 뻗어 나갈 수 있게 하는 액자 같다”고 말한 적 있다. 그것이 직접 화법이라면 시로는 이렇게 설명된다.
“소네트는, 가난처럼, 없이도 살 수 있는 게 무엇인지 가르쳐준다./ 어머니의 말대로라면, 한 손에는 소원을 쥐고/ 다른 손에는 똥을 쥐는 거다. (…)/…/ 똥을 쥐는 거지. 가난은, 소네트처럼, 훌륭한 선생님이다. 자로 손등을/ 탁탁 때리는 유형의 선생님, 교실에서 사전을 집어 던져/ 세상에 존재했던 모든 단어로 우리의 머리를 맞히는 유형의 선생님이 아니라./(…) 선생님은/ 말한다, 정관사 없이도 살아라. 접속사 없이도. 베이크드 빈스에/ 기다란 소시지가 들어 있지 않아도. 소네트는 어머니다. 모든 단어는 일 달러/ 은화다. 한 손에는 똥을, 어머니는 말한다. 다른 손에는 소원을.”
삶의 복잡한 원리를 이와 같이 갈파하는 시인의 이름은 다이앤 수스(70)다. 1956년 미국 인디애나주에서 태어나 미시간주에서 성장했고 시를 거의 독학하여 1998년 ‘너를 텅 비워버리는 것’(It Blows You Hollow)을 첫 시집으로 내놓았다. 2021년 시집 ‘프랭크: 소네트’로 이듬해 퓰리처상과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받았다. 최근 번역 출간된 ‘한 손엔 똥을, 한 손엔 소원을: 소네트집’의 원제다. 다이앤 수스를 국내 처음 소개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시집은 회고록이라 해도 무방하다. “사건에 대한 회고록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기억하는지에 대한 회고록이기도 하다”고 시인은 말했는데, 신묘하다. 사건과 시절은 무자비해도, 그에 대한 기억은 때로 자비로워진다. “황폐화된 오두막집이 그립”고 “동틀 녘에는/ 먼지 걸레 같은 하늘이 그립고 해 질 녘에는 생리대 같은 하늘이/ 그립다 그리고 무덤가에 접이식 의자를 가져와서 무덤을 돌보는/ 일을 잠시 쉬는 어머니가 그립다”. “오줌을 지린 일로 나의 뺨을 때”린, 하여 “환각에 빠져 악마를”, “내 다리 사이의 그곳만큼 작고 강력한 악마를” 보게 만든 선생도 용서하게 된다.
“트라우마가 가장 깊이 각인된 밑바닥”까지 파헤쳐 무심한 듯 노골적으로 응시하려는 태도엔 한때 수스가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정신 건강 상담가로 활동한 이력도 일조하겠다. 끝까지 가되 절멸하지 않아 “그 시절은 이곳에 넘쳐난다”.
원제의 프랭크(frank)는 ‘솔직하다’를 뜻하며, 미국의 요절 시인 프랭크 오하라(1926~1966)의 프랭크에게도 닿는 듯 읽힌다. 시집의 1편과 128편, 그러니까 열고 닫는 시에 그가 등장한다. ‘솔직함’과 ‘즉흥성’으로 둘은 연결되지만, 둘의 세계는 멀다. 뉴욕 현대미술관 큐레이터도 했던 미려한 감성주의자 오하라의 반대편이라 해도 좋을 만큼의 “기이한 사건은 일어나기 마련”인 “심지어 혀 자체도 쓴맛이 나”는 변두리 세계에 수스는 기거해 왔다. “세 살 이후로, 나는 구원을 찾으러 다녔다”는 시인에게 그 오하라가 불현듯 당도한다.
“반쯤 공공장소인 곳에 차를 세우고 내리자마자/ 땅에 오줌을 싸야 했다. 길가에 그냥 쪼그려 앉아서./ 내 방광이 왜 이런지 모르겠다. 오줌을 싸고 나서도/ 오줌을 싸고 또 싸야 한다. 관광하는 대신/ 차 뒷좌석에 기어들어 가 낮잠을 잤다./ 어쩐지 잘생긴 코와 페니스와 뉴욕파 동료와/ 래리 리버스가 없는 프랭크 오하라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오션 메디컬 센터에 가서 검진을 받아볼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아름다움이나 안도감에 대한/ 이 초조한 탐색은 대체 어떻게 설명하면 좋단 말인가?”
과거 인터뷰를 보면, 시인을 사로잡은 시집의 초기 가제는 ‘팜파탈: 소네트’였다. 프랭크와 팜파탈 사이, 말하자면 아름다움에 대한 투명한 욕망과 파괴적 욕망 사이 시집이 있달까. 읽고 읽으면 어떤 시는, 비로소 삶과 죽음 사이 가만하고 아름다워져 있다.
“이곳 끄트머리에서 나는 여러 사소한 환시를 보았다. (…)” “사랑과 만나려는 끔찍한 임무를 띤 대양과 대륙이 어떻게 본질적으로 사랑 그 자체인지./ 수면이 요동치는데도 어떻게 심연은 차분히 사랑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지. (…)” “(…) 아름다움을 닦아냄은 추함을 발견하는 일이고, 추함을 닦아냄은/ 화려함에 놀라는 일이고. (…)” “(…) 바람의 등뼈 맨 아래에는 어쩜 그런 고요가 깃들어 있는지. 묘비들도 조류에 따라 어쩜/ 그리도 휘고 부풀어 오르는지. 관들은 어쩜 그리도 사랑의 반대편 해안으로 향하는 고집 센 작은 배들인지.”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이란, 호르무즈 재봉쇄…“합작 투자” 이권 챙기겠다는 트럼프
- ‘명픽’ 정원오, 대세론 통했다…중도확장 무기로 서울시장 도전
- 미국 “쓰레기통” 넣었다는 10개항, 이란은 “협상 골자”…핵 기싸움
- “상민이가 그걸 또 봤대?” 전언까지 나왔지만…윤석열 “문건 기억 없다”
- 이 대통령 “똑같은 조건일 때 비정규직이 보수 더 많이 받아야”
- ‘깐느박’, 나홍진이 잇는다…조인성 출연 ‘호프’, 장편 경쟁부문 진출
- “10시 이후에 출근”…정부, 노인일자리 ‘출·퇴근 시간’ 조정한다
- 이란 지도부,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에 “협상 무의미해질 것”
- 전한길 “이영훈 목사, 이재명에 약점 잡혔나? 그럴지도 모르잖아?”
- 수컷 문어 ‘3번째 다리’로만 짝짓기…얼굴 안 보여도 연인 정확히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