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자유의지’는 없다…유전과 환경이 모든 걸 결정” [.txt]

한겨레 2026. 4. 10.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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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과학자 새폴스키, 치밀하고 도발적인 ‘결정론’
리벳 실험…행위자의 결정 앞서 뇌가 먼저 작동
‘응보적 사법 제도’를 ‘회복적 정의’로 전환 제안
미국의 신경과학자 로버트 새폴스키. 미국 하버드대 뉴스 누리집 ‘하버드 가제트’ 갈무리

장 폴 사르트르는 1943년 출간한 ‘존재와 무’에서 인간을 일러 “자유롭도록 선고를 받은” 존재라고 말한 바 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세상에 던져졌지만, 인간은 무엇을 할지 혹은 하지 말아야 할지 자유롭게 선택하며 본질을 만들어가는 존재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주체적으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말 그대로 자유의지를 지닌 존재다.

사르트르의 주장에 고개를 주억거린 적 있는 독자라면, 미국의 신경과학자 로버트 새폴스키가 최근 저작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에서 펼치는 주장에 생경함을 넘어 충격을 받을 수도 있다. 새폴스키는 인간에게 자유의지란 없으며, 모든 결정은 통제할 수 없는 요인들에 의해 이뤄진다는, 도발적 주장을 펼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결정론과 자유의지를 둘러싼 논쟁의 대다수는 철학의 전유물이었다. 자연과학과 의학 등의 발전과 함께 과학의 영역으로까지 확대된 이 논쟁은, 새폴스키의 지적처럼 이제는 종교와 사법 분야에서도 쟁점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해진 답은 없다. 지금은 인간 행동이 결정론과 자유의지의 영향을 모두 받는다는, 양립주의가 주류다. 그럼에도 새폴스키는 1983년 미국 신경과학자 벤저민 리벳의 실험을 주요 사례로 들면서 결정론의 손을 들어준다. 리벳 실험을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피험자는 앞에 놓은 버튼을 자유롭게 누를 수 있다. 실험에 참가하는 사람들에게 결정의 순간을 알려달라고 요청했는데, 대개 손가락을 움직이기 0.2초 전이라고 응답했다. 하지만 뇌파 측정 결과는 다른 대답을 내놓았다. 결정 0.3초 전에 이미 뇌가 버튼을 누를 준비를 했다는 측정값이 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뇌는 어떤 요소들을 감안하여 자유의지보다 먼저 작동한 것일까?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 l 로버트 새폴스키 지음, 양병찬 옮김, 문학동네, 4만3000원

새폴스키는 “몇 초에서 몇 분 전” 뇌에 입력된 어떤 감각 정보부터, 청소년기와 아동기의 어떤 경험은 물론, 장구하게는 수천 년 전 형성된 문화와 가치관 등 뇌 회로에 각인된 것들이 우리 행동을 결정한다고 말한다. 그는 “문화의 가치관에는 후손들이 그 가치관을 되새겨 ‘어떤 계통의 사람’이 되도록 만드는 방법이 포함되어 있다”고 덧붙인다. 유전적·환경적·문화적 요인들이 결합해 인간을 규정하고, 결국 행동 방식도 결정한다는 것이다.

새폴스키는 과학의 영역에서 자유의지를 떠받치는 카오스이론, 창발적 복잡성, 양자역학에 대한 반론을 통해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없음을 증명하고자 한다. 카오스 이론의 근간은 예측 불가능성인데, 새폴스키는 예측 불가능성 그 자체로 자유가 될 수는 없다고 강조한다. 창발적 복잡성이란 생물학적 시스템에서 그 구성 요소가 무한히 반복되며 상호작용할 때 새로운 차원의 복잡성과 최적화가 달성된다는 이론이다. 이에 대해 새폴스키는 어떤 시스템이 창발적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시스템이 원하는 모든 것을 선택할 수는 없다고 반박한다. 생물물리학적 시스템의 창발적 속성은 “경험과 의미에 대한 능력”에 대한 것일 뿐, 행동 조절 능력과 직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이 새폴스키 주장의 핵심이다.

이 책을 읽는 묘미는, 알 듯 모를 듯한 책 전반부의 과학적 증명보다는 책 후반부, 즉 자유의지가 없는 세계가 만들어낼 수도 있는 부정적 결과에 대한 새폴스키의 세밀한 전망과 대처법에 있다. 흔히 사람들은 “자유의지에 대한 믿음이 약해지면 사람들의 행동이 덜 윤리적으로 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자유의지가 부정되는 세계에서는 자기 행동에 대한 책임이 없다는 주장이 힘을 얻을 테고, 그 결과 우리 중 일부는 서슴지 않고 온갖 악행을 저지를 수도 있다. 자유의지가 없다면, 모든 것이 유전자나 태아기의 경험, 호르몬 수치, 환경 등에 의해 결정된다면, 무슨 수로 범죄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냐는 격렬한 항의에 봉착할 수 있다.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는지를 따져 묻는 것은 주로 철학과 신학의 영역이었지만 자연과학과 인지과학의 발달로 논쟁은 외려 더 확산하며 뜨거워지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이에 대해 새폴스키는 “감옥과 범죄라는 개념을 폐지”하는 한편 상호이해에 기반한 “회복적 정의” 운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물론 대중의 안전을 위해 최소한의 제약인 “격리”도 필요하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그 자신도 “누군가를 처벌할 때 느끼는 강렬하고 복잡하면서 종종 보람을 느끼는 감정” 때문에 이 방법이 성공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안다. 중요한 것은 “응보적 사법제도”를 고집하기보다 재활의 기회를 주는 방향으로 사회를 이끌어야 한다는 점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 인류가 행했던 과오를 생각해 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지금은 신경계 질환으로 인식되지만, 오랫동안 뇌전증은 전염되고 유전된다는 잘못된 믿음 탓에 “악마에 씐 현상”이라며 온갖 억압과 차별을 받아야만 했다. 지금도 세계 어디선가는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온갖 역사적 사례를 고찰하건대, 자유의지가 있다고 믿었던 인류는 적잖은 과오를 남기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새폴스키가 자유의지가 없는 세계에서 더 바람직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낙관론을 펼치는 이유다.

새폴스키는 신경과학의 다양한 연구 결과와 물리학은 물론 철학과 심리학, 역사학 등을 섭렵하며 자유의지가 없음을 증명하려고 한다.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는 명제를 증명하기 위한 엄정한 과정들이 망라되어 있지만, 결국 하나의 질문이 남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인간이란 무엇인가?’

결국 몇몇 책들을 곁에 두고 읽을 도리밖에 없다. 우선 새폴스키의 ‘행동’(2023, 문학동네)이 이번에 나온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 곳곳의 빈자리를 메울 수 있을 듯하다. 두 책은 사실상 연결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한편으로는 자유의지를 확고하게 신뢰하는 책들을 중첩해서 읽어 볼 필요도 있다. 새폴스키도 책에서 여러 번 언급한 생물철학자이자 인지과학자 대니얼 데닛의 ‘생각이란 무엇인가’(2026, 바다)가 가장 강력한 맞수가 될 만하다. 이와 함께 미국의 철학자 앨프리드 밀리의 ‘자유의지와 과학’(필로소픽, 2022)도 참고할 만하다. ‘현대 과학이 자유의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하지 못한 이유’라는 긴 부제가 지은이의 주장과 책의 내용을 압축적으로 짐작게 한다.

장동석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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