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미술 그룹 ‘30캐럿’은 어디로 갔는가 [.txt]

이유진 기자 2026. 4. 10.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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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90년대 피어난 페미니즘 미술
중심에서 밀려난 집단과 작품 소개
누락된 이들 부르는 대항서사 쓰기
김미경의 ‘알’, 1994, 석고·스티로폼·안료, 230×140×85㎝. 1994년 서울 공평아트센터에서 ‘뿌리찾기’라는 제목으로 여성의 시각에서 해석한 ‘한국성’을 표현한 것이다. 현실문화연구 제공

최근 몇년 동안 연륜 있는 미술 연구자들이 앞다퉈 한국 페미니즘 미술 연구의 성과를 집대성해 선보였다. 2024년 한국 페미니즘 미술 연구 1세대인 윤난지를 비롯한 연구자들이 ‘그들도 있었다 1·2’를, 김홍희가 ‘페미니즘 미술 읽기’를 각각 출간했고, 2025년에는 미술사가 겸 미술평론가인 이필이 ‘한국사회와 여성사진가’를 펴냈다. 하지만 여전히 관련 연구는 부족하고, 기록에서 누락된 여성 미술가와 작품도 적지 않다.

1980년대생 미술 연구자 고경옥이 쓴 ‘전시로 보는 페미니즘 미술’은 1980~90년대 전시를 중심으로 지금까지 한국 미술사 연구에서 배제된 작가와 작품을 복원하고 추적한다. 민주화 운동의 자장 안에 위치한 ‘86세대’가 아닌, 상대적으로 젊은 연구자의 눈으로 페미니즘 미술에 관한 다층적 아카이브를 새롭게 발굴, 수집한 셈이다.

김인순의 ‘그린힐 화재에서 스물두명의 딸들이 죽다’, 1988, 천에 아크릴릭, 150×190㎝.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안양의 그린힐 봉제공장 화재로 10대 젊은 여성들이 목숨을 잃은 끔찍한 사건을 다룬 그림이다. 그린힐 화재는 불법 기숙사와 무허가 공장을 숨기기 위해 사측에서 출입문을 잠근 탓에 공장에서 일하던 28명 중 22명의 여성들이 죽게 된 인재였다.

우선 페미니즘 미술사에서는 1980년대 ‘여미연’이라 일컬어지는 여성미술연구회를 빼놓을 수 없다. 페미니즘 미술의 구심점이었던 이 단체는 1986년 12월 민족미술인협회(민미협) 여성미술분과로 창립했다. 이후 민중운동 내부의 남성중심성과 가부장적 문화에 회의를 느낀 여성 작가들은 1988년 1월 여미연으로 이름을 바꾸고 독립한다. 1985년 창립한 본격 페미니즘 미술 그룹인 ‘시월모임’(윤석남, 김인숙, 김진숙)과 터 그룹, 김종례, 문샘(문형금), 이혜경, 민혜숙 등이었다. 그러나 1987년 9월 제1회 전시 도록은 만들지 못했고, 지금은 그때 선보인 작품 전체를 확인하기도 힘들다.

여미연의 제2회 ‘여성과 현실’(1988) 포스터.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정정엽 컬렉션. 쇠사슬을 끊고 있는 여성의 모습이 눈에 띈다.

1993년 창립한 ‘30캐럿’은 여미연과 차별화되는 그룹으로 집중 조명 받았지만 여미연보다 관련 기록과 연구가 훨씬 적다. 홍익대학교 서양화과 선후배로 만난 10명(김미경, 박지숙, 안미영, 염주경, 이승연, 이현미, 임미령, 최은경, 하민수, 하상림)의 작가에 대해 언론은 “진정한 페미니즘 부르짖는 홍대 출신 30대 화가 모임”이라며 상찬했다. 30캐럿 스스로 “기존의 ‘여성 해방 미술’과는 다르다”며 프로파간다적 정치 미술로서 페미니즘을 지양했기에 페미니즘 미술의 저항적 운동성을 껄끄럽게 여겼던 이들에겐 이 그룹의 탄생이 꽤 반가운 소식이었을 테다. 30캐럿은 인상적인 작품을 꾸준히 보여주었다. 1994년 김미경은 한반도의 난생설화에서 착안해 여성의 난자를 은유한 거대한 알을 제작했으며, 하민수는 모계적 족보를 구상하면서 ‘김씨가 이씨를 낳고, 이씨가 하씨를 낳고, 하씨가 신씨를 낳고’라는 신선한 바느질 작품을 선보였다.

하민수, ‘김씨가 이씨를 낳고, 이씨가 하씨를 낳고, 하씨가 신씨를 낳고’, 1994, 천에 바느질, 260×500㎝. 현실문화연구 제공
임미령의 ‘날개접은 우리의 아빠’, 1993, 종이에 아크릴릭, 191×133㎝. 현실문화연구 제공

30캐럿이라는 명칭은 프랑스 영화 ‘40캐럿’(1973)에서 이름을 따왔지만 다이아몬드가 지닌 부르주아적 인상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계급적 선입견을 주었다. “(남성성과 다른) 여성성을 강조하는 본질주의적 페미니즘”을 펼치겠다고 선포한 점도 ‘생물학적 여성’ 중심성 때문에 논란이 됐다. 제도권 화단 또한 이들의 강렬한 작품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2000년까지 각종 스터디와 테마 전시를 해나가던 30캐럿은 점차 미술계에서 멀어져 갔다. 이들을 정녕 페미니스트 아티스트라고 일컬을 수 없는 걸까?

저자는 30캐럿을 가리켜 페미니즘 미술이 아니라 보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라고 평가한다. “일상과 같은 현실에서 마주한 여타 문제를 다루는 것은 모두 페미니즘 미술”이라는 것이다. 사실 30캐럿은 환경 문제에도 관심을 두었고, 여성사 관련 저서 집필 계획을 세워 개인 서사를 기반으로 한 ‘여성적 말하기’를 선보이려고도 했다. 회원 각자 결혼 준비, 유산, 이혼, 사별 등 개인사 때문에 집필 계획은 무산되었지만 출판이 이뤄졌다면 미술사뿐 아니라 페미니즘 출판사에도 성과로 남았을 것이다. 미술계에서 권위를 갖고 지속적인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작가가 없었던 것도 30캐럿이 미술사에서 누락된 이유로 꼽힌다.

전시로 보는 페미니즘 미술 l 고경옥 지음, 현실문화연구, 2만8000원

그 밖에도 책은 ‘서울’과 ‘남성’ 중심의 미술계 헤게모니에서 벗어난 이들을 조명한다. 특히 지역 페미니즘 미술이 지닌 ‘이중 소외’를 살피고 ‘공백’을 메꾼 점이 돋보인다. 이와 함께 1980~90년대 한국 페미니즘 미술사가 서구 이론의 수용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군부독재, 민주화운동, 노동운동, 여성운동이라는 시대적 격랑 속에 능동적으로 변모해 왔음을 밝힌다. 한국 페미니즘 문화운동의 이론과 실천이 맹렬하고 독자적인 투쟁 속에 발전해 왔다는 것을 아직도 구태여 ‘증명’해야 하는 연구자의 수고로움도 새삼 느낄 수 있다.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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