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 대신 포탄’…유럽 재무장, 산업경계 허문다 [이란전發 글로벌 방산 재편 ②]

이진영 기자 2026. 4. 10.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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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란 변수에 유럽 군비 확장 가속
EU 방위비 5년 새 63% 급증
폭스바겐·라인메탈·르노, 생산라인 방산 전환 가속
전기차 둔화·과잉설비 속 대안으로 부상

유럽 전역에서 ‘재무장’이 본격화되면서 방산시장이 급속히 팽창하고 있다. 이에 기존 방산기업뿐 아니라 자동차사까지 잇따라 군수산업에 진출하고 있다.

9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유럽방위청(EDA)이 집계한 유럽연합(EU)의 국방비 지출액은 지난해 3810억 유로(약 658조원)로 2020년(1980억 유로)에 비해 63% 뛰었다. 특히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안보 불안이 구조화되고, 미국 의존 약화와 신형 무기 전쟁 양상까지 겹치면서 가파르게 증가했다. 여기에 이란 전쟁으로 인한 군사적 긴장까지 더해지면서 방산 수요는 더욱 확대되는 흐름이다.

유럽 최대 완성차 업체 폭스바겐은 아이언돔을 생산하는 이스라엘 국영 방산업체인 ‘라파엘’과 독일 북서부 오스나브뤼크 공장을 방공 생산 시설로 전환하는 방안을 놓고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오스나브뤼크 공장에서 아이언돔 시스템에 탑재되는 대형 트럭·발사대·전력공급 장치 등 주요 구성품을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독일 방산업체 라인메탈은 올해 베를린에 있는 자동차 부품 공장을 155mm 포탄 탄피 생산 시설로 전환했다. 회사는 2027년까지 연간 155mm 포탄 생산량을 110만 발 수준으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ZF·말레·보쉬 등 다른 주요 독일 자동차 부품업체들도 이미 소규모 방산 사업을 운영 중이며, 히르슈포겔도 감소하는 자동차 수요를 대체하기 위해 방산시장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프랑스 자동차기업 르노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르노는 방산업체 튀르지가이야르와 손잡고 다목적 드론을 매달 600대 목표로 생산에 들어갔다. 이 드론 생산 계약은 프랑스 국방부 산하 방위사업청(DGA)과 체결된 것으로, 10년간 최대 10억 유로 규모에 이를 수 있다.

핀란드 차량 제조업체 발멧도 방산사업을 새로운 대안으로 여기고 있다. 올 하반기부터 방산업체 파트리아와 협력해 장갑차를 생산할 예정이다. 시수와 협력해 연간 약 300대의 군용 트럭도 생산할 계획이다.

이 같은 잇따른 방산업 진출에는 자동차산업의 구조적 위기가 자리한다. 전기차 전환이 예상보다 지연되고 수요도 둔화하면서 생산설비 과잉 문제가 심화했다. 공장의 고정비 부담은 유지되는 반면 생산량이 줄어들면서 수익성 악화가 이어졌고, 일부 공장은 폐쇄 위기에 몰렸다. 반면 방산산업은 잇따른 지정학적 이슈로 수요가 폭증하면서 빠른 성장세를 구가하고 있다. 이에 자동차산업이 보유한 대규모 생산설비와 숙련된 인력이 방산 수요와 결합하며 새로운 산업 구조가 형성되는 셈이다.

FT는 “지정학적 긴장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방위비 증가는 구조적 추세로 자리 잡고 있다”면서 “자동차산업의 유휴 설비 문제와 방산 수요 확대가 맞물리면서 민간 제조업의 군수산업 편입은 앞으로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