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상갓집 가다가 기상청으로 내달린 사연…33년 전문가의 '날씨 짝사랑'
2009~2013년 총괄예보관 역임
"예보 안 맞을 때면 가슴 미어져요"
전국 청 예보관 200여 명 고군분투
기상이변 탓 예보 나날이 어려워져
폭염중대경보 신설, 특보 체계 손질
"예보관들 경험이 어느 때보다 중요"

흐드러진 꽃이 봄 내음을 내뿜던 3일, 서울 동작구 기상청 앞마당 벚나무에도 '연분홍 팝콘'이 한가득 달렸다. 이미선 기상청장은 "언제 이렇게 폈냐"며 놀라다가도 이내 "올해도 여름이 벌써 걱정"이라며 생각에 잠겼다. 조금 전 둘러본 국가기상센터의 수많은 모니터 안 기상실황, 레이더 실시간 영상의 잔상이 벚꽃보다 더 진하게 남아서일까. 꽃이 진 뒤 찾아올 폭염과 폭우, 태풍이 벌써 우려돼서일까. 8개월 전 취임하며 '국민 생명을 지키는 예보'를 목표 삼은 이 청장은 다가오는 여름을 분주히 준비하고 있다.
33년간 기상청에 몸담은 이 청장은 17년 전 날씨 예보의 최전선에 있었다. 2009년부터 전국 예보관의 수장 격인 '총괄예보관'으로 3년 10개월 일한 그는 2011년 16명의 목숨을 앗아간 우면산 산사태를 겪으며 예보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예보관들에게 날씨 예보는 마치 짝사랑 같아요. 온종일 날씨 생각만 하는데 속을 정확히 못 읽는 때도 있으니까요. 예보가 안 맞거나 오류가 있으면 가슴이 미어져요. '내가 뭘 놓쳤을까' 좌절감도 들고 돌아보면 눈물이 나려 할 때도 있죠."
한겨울인데 초여름 한낮 기온을 보이고,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비가 퍼붓는 날씨가 '뉴노멀'(새 표준)이 된 한국. 한국일보는 이 청장을 만나 기후위기 시대 기상 예보에 대해 물었다.
24시간 불 켜진 예보국... "선배 떠난 날도 뛰어가"
기상청 직원 1,395명 중 예보관은 200여 명이다. 본청과전국 9개 지방청·지청에서 열두 시간씩 4교대로 365일 빈틈없이 근무하려면 결코 많은 숫자는 아니다. 이들의 주 임무는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 일본, 영국 등의 10여 개 수치예보모델 결과값을 모두 살피고 수많은 관측 자료와 기상학적 지식을 총망라해 날씨를 예보하는 것. 수치예보모델은 현재 대기상태를 바탕으로 미래 날씨를 계산하는 밑그림 역할을 한다.
우리 기상청도 자체 개발한 '한국형수치예보모델(KIM)'이 있다. 이 모델은 얼마나 상세한 예측이 가능한지를 나타내는 격자간격(해상도)이 8㎞로 세계 1위고, 예측 정확도도 4, 5위 수준이다. 하지만 더 정확한 예보를 위해선 다른 국가에서 개발한 수치 모델들도 써야 한다. 며칠 뒤 날씨를 예보할 때는 모델들이 서로 엇갈린 결과를 내놓을 때도 빈번하다. 변화무쌍한 날씨를 내다보는 일은 그래서 어렵다.
인명·재산 피해가 우려될 땐 호우주의보, 폭염경보 등 특보도 발표해야 한다. 특히 폭우가 쏟아지는 날은 '비상' 걸리기 일쑤다. 이 청장은 2013년 이천 등 경기 남부 폭우로 사상자가 발생한 날을 아직 생생히 기억한다. "그날 기상청 선배가 돌아가셨어요. 상갓집에 가다 말고 비가 쏟아지니 예보국으로 내달렸죠."
지형에 더해 기후이변까지... 날로 어려워지는 예보

우리나라는 땅덩이가 작으니 기상 예보가 쉬울 거라 생각했다면 오판이다. 우선 독특한 지형 영향이 최대 난관이다. "'서해'는 블랙박스 같은 공간입니다. 바다를 지나며 비구름이 커지기도 사라지기도 하죠." 이 청장은 남북으로 길게 뻗은 태백산맥도 예측 난도를 높이는 요인이라고 짚었다.
기상청이 2009년 기상선진화추진단장으로 영입했던 켄 크로퍼드 미국 오클라호마대 교수도 한국의 기상 예보 난이도에 혀를 내둘렀다. 미국 기상협회장 등을 지낸 예보의 권위자인 그도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예보하기 어려운 나라 중 한 곳"이라는 말을 남겼다. 기상학자들도 "이 정도로 많지 않은 인원으로 현 수준의 예보를 해 온 건 기적에 가깝다"고 입을 모은다.
그럼에도 예보가 엇나갈 때 날아오는 뭇매는 뼈아프다. 이 청장도 비판을 겸허히 듣는다. "반도체 등 기술이 워낙 뛰어난 나라라 국민 기대치가 높은 것 같다"며 "(국민의 비판이) 예보 기술을 끌어올릴 유인이 돼 준다"고 말했다.

설상가상 최근 극한의 날씨가 잦아지면서 예보 난도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극단적 사례는 예보관들이 쓰는 수치예보모델들도 예측을 못 해요." 이 청장은 지난해 여름을 예시로 들었다. 강원 영동은 역대 최소 강수량을 기록하며 강릉에 돌발 가뭄 피해가 생긴 반면 서쪽 지역엔 시간당 100㎜ 넘는 극한 호우가 쏟아지는 '기후 양극화'의 전형이었다.
여름철하면 떠오르는 장마도 마찬가지다. "장마가 언제 시작했고 언제 끝났느냐 하는데, 시작·종료 조건에 수치로 나오는 조건이 부합이 잘 안되죠. 정체전선만으로 설명되지 않아 괴로워요." 이 청장은 "온 국민이 오래전부터 사용하던 용어 자체를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겠지만 장맛비에 대해 학술적 측면에서 포괄적 개념으로 재정의해야 할 때"라고 했다. 기상청과 학계는 장마 개념 재정립 방향을 검토 중이다.
"AI 활용해 예보 고도화 노력"... 만사는 아냐

예보 난도가 날로 어려워지니 기술 개발도 필수다. 기상청은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주관 국가 인공지능(AI) 프로젝트에서 첨단 GPU(그래픽 처리 장치)를 과기부, 산업통상부, 중소벤처기업부 등 산업 관련 부처에 이어 4번째로 많이 확보했다.
AI는 예보관들의 든든한 조력자다. "수치예보모델이 내놓는 예측 결과를 더욱 정밀하게 다듬어 줄 기술인 '수치예보 가이던스' 기술에 AI를 활용하고 있어요." 이 기술은 예측값을 정교한 알고리즘으로 보정하고 예보관이 바로 활용할 수 있는 정보로 다듬어 준다. 수치예보모델이 '서울 지역 비 예상' 등 거대한 대기 흐름을 그린다면, 가이던스는 그 위에 각 지역 특색과 과거 오차 정보를 반영해 '강남역 부근에 30㎜' 등 구체적인 결과를 입혀준다. 기상청은 예보관들이 과거 강수량 등 관측 자료를 빨리 찾도록 돕는 AI 서비스도 개발 중이다.
다만 'AI가 예보관도 대체 하는 거 아니냐'는 물음에 이 청장은 "인간 예보관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분명하다"고 선을 그었다. 한 끗 차이를 만드는 건 결국 '사람'이다. 오랫동안 날씨를 내다보는 일을 하며 쌓인 경험에 기대어 예보관들이 최종 판단을 한다.
특히 여러 수치예보모델 중 AI 모델은 과거 데이터를 학습해 결과치를 내놓는 만큼 기후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어 틀린 답을 줄 위험도 크다. 위성 영상을 제공하는 애플리케이션 이용자가 늘어나는 등 기상예보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가 커진 시민들의 기대치를 채우기 어렵다는 얘기다. 기상청은 올 2월부터 대국민 대상 예보 브리핑을 유튜브 채널로 생중계하고 있다.
"더위는 재난"... '자녀 경보' 체감형 정책도

예보 수준이 아무리 뛰어나도 시민들이 체감하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6월 도입을 앞둔 '폭염중대경보'와 '열대야주의보' 등 새 특보 체제가 이 청장의 역점사업 중 하나인 이유다. 지난해 여름철 평균기온(25.7도)과 서울 열대야 일수(46일)는 관측 이래 역대 1위였다. 4,460명의 온열질환자가 발생했고 29명이 사망했다. 이 청장은 "국민 생명을 위협하는 재난"이라며 더위 예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밖에 '핀셋형 집중호우'에 대응해 6월부터 특보 구역을 세분화(183→235개)한다.
폭염중대경보와 열대야주의보 기준은
폭염중대경보는 체감온도가 35도 이상인 날이 이틀 이상 관측된 지역 중 체감온도가 38도 이상 또는 기온이 39도를 넘길 것으로 예상될 때, 열대야주의보는 체감온도 33도 이상인 날이 이틀 이상 예상되는 지역 중 밤 최저 기온이 25도 이상으로 예상될 때 발표된다.
때로는 주의보, 경보 발표만으로는 부족할 때가 있다. 기상청 직원들이 극한날씨가 예상될 때 수화기를 붙들고 내려놓지 않는 이유다. "시간당 100㎜로 예보했더라도 해당 지방자치단체와 손에 불나도록 연락하며 '비가 더 올 수도 있으니 노약자들이 외출하지 않도록 경고 알람을 보내달라'고 요청하기도 해요."
이런 노력은 체감형 정책 아이디어로도 이어졌다. 기상청은 재작년 폭염 노출 노인을 위한 '자녀 경보' 서비스를 시작했다. 기상청이 자녀에게 '내일 낮 최고기온이 33도까지 오르니, 외출을 자제하고 물을 자주 드시면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시라고 어르신께 안내 부탁드려요'라는 식으로 메시지를 보내 부모에게 안부전화를 걸게끔 하는 구조다. 시행 2년 만에 이용자가 누적 2,401명을 돌파했다. 대구시의 정보 수신을 등록한 서울 거주 40대 자녀가 "농사짓는 부모님에게 수신된 폭염 정보를 활용해 어느 해보다 더 자주 전화드리고, 안부와 건강을 챙겨드렸다"는 감사 인사를 보내오기도 했다.

이 청장은 그래서 '기상청 사람들'의 가치를 높이 산다. "예보관의 경험과 능력이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근무 환경을 개선하고 사람을 길러내는 데 힘을 더 쓰려고 해요." 이 청장이 오고 나서 국장급 '예보총괄관리관'이 새로 생겼다. 그는 '어떤 청장으로 기억되고 싶냐'는 물음에도 망설임 없이 이렇게 답했다. "기상청과 기상청 식구들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청장이라면, 성공한 거 아닐까요?"
이미선 기상청장은
이 청장은 지난해 8월 이재명 정부 첫 기상청장으로 임명됐다. 기상청 역사상 첫 여성 청장이다. 1992년 기상연구사로 입직한 뒤 △예보상황과장 △총괄예보관 △예보정책과장 △국가기상위성센터장 △관측기반국장 △지진화산국장 △광주지방기상청장 △기후과학국장 △수도권기상청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33년 근무 후 정년퇴임을 앞두고 공로연수를 받던 중 파격 발탁됐다. 이 청장의 취임 일성은 '과학 기반의 기후위기 대응 허브 구축'이었다. 단순 예보뿐 아니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능동적 역할을 하겠다는 포부다.
강지수 기자 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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