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가스 공급쇼크, 기아(飢餓) 재앙 우려된다 [이규화의 지리각각]
중동전에 비료 원료 LNG 수급 불안, 가격 급등
유엔 세계식량계획 등 식량위기 경고 공동성명
특히 저개발 국가에서 비료 부족 식량생산 감소
전쟁 장기화 시 4500만명이 추가로 기아 직면

중동 전쟁이 촉발한 에너지 공급 충격이 전 세계 식량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은 8일(현지시간) 공동성명을 통해 “석유·가스·비료 가격의 급격한 상승과 물류 병목이 결합되면서 식량 가격 폭등과 식량 불안정을 초래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들 국제기구들은 특히 저소득국가나 수입 의존 국가에 피해가 집중될 것으로 전망하며 국제사회의 긴급 대응을 촉구했다. 이미 전쟁으로 에너지 시장이 1970년대 오일쇼크 수준의 혼란을 겪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가 가격 폭등을 넘어 ‘식량 대란’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다행히 미국과 이란이 2주간 휴전에 합의했지만, 언제 깨질지 모르는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제 유가와 가스 가격은 내렸다 다시 오르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천연가스(LNG)다. 이번 중동 사태로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고, 카타르 등 주요 생산국의 LNG 시설이 타격을 입으면서 글로벌 가스 공급망이 급격히 위축됐다.
JP모건은 “천연가스 공급 차질은 단순한 에너지 부족을 넘어 비료 생산 붕괴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역시 이를 “역사상 가장 실질적인 에너지 공급 충격”으로 규정했다. 천연가스는 단순한 연료가 아니라 현대 농업을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핵심 인프라’이기 때문이다.
비료 생산 구조를 보면 그 이유는 명확해진다. 질소비료의 핵심 원료인 암모니아(NH₃)는 공기 중 질소와 수소를 결합해 만들어지는데, 이때 수소를 추출하는 과정에서 천연가스의 주성분인 메탄(CH₄)이 필수적으로 사용된다. ‘수증기 메탄 개질’ 공정을 통해 수소를 얻고, 이를 질소와 결합하는 하버-보슈 공법을 거쳐 암모니아가 생산된다. 이후 암모니아에 이산화탄소를 반응시키면 요소비료가 완성된다.
결국 천연가스는 비료 생산의 출발점이자 공정 전반을 떠받치는 절대적 자원이다.
이처럼 화석연료 기반 비료는 현대 농업 생산량의 상당 부분을 지탱하고 있다. 질소는 식물의 단백질과 DNA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이자, 엽록소 형성과 광합성의 중심 역할을 한다. 비료 공급이 줄어들면 작물의 생장 자체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천연가스 가격 상승 → 비료 생산 감소 → 작물 생산 감소 → 식량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는 연쇄 충격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한다.
이미 경고음이 들리고 있다. 로이터통신과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필리핀과 태국 등 동남아 지역에서는 유가 급등과 비료 부족으로 수확을 포기하는 농민들이 속출하고 있다. 필리핀 농민들은 “수확을 할수록 손해”라며 작물을 밭에서 썩히고 있고, 태국에서는 농기계 연료 부족으로 파종 자체가 지연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고 한다.
인도 역시 상황이 심각하다. 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인도의 비료 생산용 천연가스 공급이 약 30% 감소하면서 주요 곡창지대 농민들이 파종을 앞두고 ‘공황 상태’에 빠졌다.
국제기구들의 전망도 비관적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비료 가격 상승이 장기화될 경우 식량 공급 전반에 구조적 충격이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WFP는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최대 4500만명이 추가로 심각한 기아 상태에 직면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아예 식량 공급이 끊겨 ‘대량 기아(飢餓)’나 ‘대량 아사(餓死)’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배경이다.
가격 지표 역시 위험 신호를 가리키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달 중동산 요소 가격은 톤당 670달러로 전달 대비 38.1%, 전년 대비 172.3% 급등했다. 세계 질소비료지수도 전년 대비 168.6% 상승했다. 비료의 핵심 원료인 천연가스 가격 역시 메가와트시(MWh)당 53유로로 전년 대비 126.4% 급등했다. 연구원은 이러한 흐름이 이어질 경우 국제 곡물 가격 상승 압력이 더욱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요소비료의 약 43.7%가 중동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38.4%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해 들어온다. 정부는 단기적으로는 공급에 문제가 없다고 밝혔지만, 전쟁 장기화 시 수급 불안은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대체 수입선인 동남아산 요소 가격도 이미 50% 이상 상승해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위기가 기존의 기후변화로 인한 식량 문제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보고 있다. 기후 위기는 기술과 정책 대응 여지가 있었지만, 비료 생산의 ‘근간’으로서 천연가스와 에너지 공급이 흔들릴 경우 대응 수단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골드만삭스는 “비료 가격 상승은 곡물 생산 감소로 직결되는 가장 강력한 변수”라고 분석했다.
결국 현재 상황은 ‘에너지 위기 → 비료 생산 급감 → 식량 생산 감소 → 기아 확산’이라는 악순환 가능성을 예고한다. 중동전쟁 발 천연가스 공급 위축이 전 세계 식탁을 뒤흔드는 구조적 위기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2주간의 휴전이 합의됐지만, 호르무즈 해협 정상화와 LNG 시설 복구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글로벌 식량 시스템은 여전히 폭풍의 한가운데에 놓여 있다.
이규화 기자 david@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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