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우리 반에는 ‘길잡이 별’이 있다
‘아토피’의 어원은 ‘제자리에 있지 않은’이라는 뜻의 ‘atopos’이다. 이 뜻은 이 질환의 특성과 맞물려 ‘이해하기 어려운’ ‘설명하기 난감한’과 같이 해석된다. 하지만 ‘아토피’라는 이름을 붙인 이후 치료해야 할 질병으로 명확히 인식하고 해결을 위한 많은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름을 붙이는 일은 중요하다. 교실에서도 담임 교사들은 학생 개인별로 저마다의 이름, 즉 역할을 하나씩 부여하는 ‘1인 1역’이라는 방법을 많이 쓴다. 출석부 담당도 있고 냉난방기 끄기 담당도 있고 시험 범위를 정리해서 알려주는 역할도 있다. 고등학교 2학년 담임을 맡은 나 역시 아이들에게 하나씩 역할을 맡기려고 했다. 그런데 지적 장애가 있는 아이의 이름 앞에서 눈길이 멈춰 섰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 역할을 맡기기에는 아직 이른 것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공동체에서의 역할이라는 것은 반드시 특정 행동을 해야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타인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거나 행동의 방향성을 짚어줄 수 있다. 조그만 시골 동네에서 오래도록 서로를 보고 자란 우리 반 아이들은 그 친구를 위해 조금 기다려주고 급식을 먹을 때에도 챙겨서 데려간다.
나보다 부족한 사람을 기다려주고 함께 밥을 먹고 나와 똑같은 사람으로 여겨주는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추어야 할 아름다운 덕목이다. 그 아이는 그저 존재만으로도 우리 반 아이들에게 다정한 마음을 떠올리게 해주는 ‘기준점’이 되어주고 있는 셈이다.
‘1인 1역’ 편성이 완료되어 임명장을 수여하는 날, 그 아이를 앞으로 불러내 임명장을 낭독했다. “임명장. 위 학생을 2026학년도 2학년 1반의 ‘길잡이 별’로 임명합니다.” 길잡이 별은 북극성의 순우리말이다. 사회가 강요하는 경쟁과 압박에 갈 길이 보이지 않을 때 사실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건 서로에 대한 다정함이다. 이 친구는 그런 별로 오늘도 교실 안에서 조용히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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