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년 자매 피아노 듀오 “합 맞추려면 전투는 필수”

김성현 기자 2026. 4. 10.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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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6일 내한 공연 갖는
佛 피아니스트 라베크 자매
카티아와 마리엘 라베크 자매/G아트센터

피아노는 혼자 쳐도 되지만 둘이 함께 연주해도 아름다운 악기다. 오는 26일 내한 공연을 갖는 프랑스 정상급 자매 피아니스트인 카티아(76)와 마리엘 라베크(74)는 이 단순한 명제를 입증하기 위해 반 세기 이상을 쏟아부었다. 라베크 자매는 9일 서면 인터뷰에서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거의 전례가 없었고 ‘피아노 이중주는 정식 실내악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편견과도 맞서야 했다”고 말했다.

출발점은 이 자매가 파리 음악원에 재학 중이었던 1968년이었다. ‘현대음악의 성자(聖者)’로 불리는 프랑스 작곡가 올리비에 메시앙(1908~1992)이 자신의 피아노 이중주곡인 ‘아멘의 환영’을 연주할 제자를 찾고 있었다. 실은 빼어난 피아니스트였던 메시앙의 부인 이본 로리오(1924~2010)와 호흡을 맞출 연주자 한 명이면 충분했다. 하지만 당시 10대 후반이었던 라베크 자매는 스승의 제안을 듣고서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라베크 자매는 “우리가 시작하는 단계부터 나뉘어서 연주할 수는 없었다. 만약 독주자를 선택했다면 서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10대 제자들의 당찬 거절은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 메시앙은 이 곡을 자매가 함께 연주해도 좋다고 흔쾌히 허락했고 이듬해 이들의 데뷔 음반이 된 것이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은 네덜란드 출신의 루카스·아르투르 유센 형제, 한국의 이혁·이효 형제처럼 피아노 이중주를 펼치는 형제자매 연주자들의 ‘원조’로 꼽힌다. 5년 전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라베크 자매는 “1968년 파리에서 일어난 학생 운동의 영향으로 기존의 관습과는 다른 일을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명절 가족 상봉에도 말다툼은 일어나는데 라베크 자매라고 해서 반세기 넘게 갈등이 없을 리 없었다. 라베크 자매는 “당연히 ‘전투(battle)’가 벌어지고 긴장이 존재하지만 의미 있는 일을 하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며 대비(contrast)는 필수적”이라고 했다. 실제로 언니 카티아는 주로 고음역, 동생 마리엘은 저음역을 연주한다. 언니 카티아가 에너지와 열정이 넘친다면, 동생 마리엘은 상대적으로 차분한 편이라고 한다. 국내에도 수차례 내한한 러시아 출신의 명지휘자 세묜 비치코프(74)가 동생 마리엘의 남편이다. 이 자매의 또 한 가지 ‘장수 비결’은 ‘따로 또 같이’의 연습 방식이다. 라베크 자매는 “처음에는 각자 따로 충분히 연습한 뒤 자유롭게 연주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면 그때 호흡을 맞춘다”고 했다.

이들의 예술적 반항 정신은 비단 클래식 분야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리게티·불레즈·베리오의 현대음악이나 바흐 같은 바로크 음악은 물론, 실험적인 록 음악과 재즈까지 도전하고 개척한 것이다. 재즈적 색채가 가미된 미국 작곡가 거슈윈의 ‘랩소디 인 블루’를 피아노 이중주로 편곡한 1980년 음반은 50만장 이상 팔리며 베스트셀러가 됐다. 재즈 트럼펫 명인 마일스 데이비스는 언니 카티아의 이름을 딴 ‘카티아’라는 곡을 발표했고, 인기 록 밴드 라디오헤드의 톰 요크는 자매를 위한 연주곡을 쓰기도 했다.

오는 26일 LG아트센터에서 열리는 내한 공연에서도 미국 미니멀리즘 거장인 작곡가 필립 글래스(89)의 오페라들을 피아노 이중주로 편곡해서 연주한다. 글래스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 ‘스토커’에 참여해서 국내에서도 친숙하다. 라베크 자매는 “지리적 거리는 있지만 언젠가 한국 아티스트들과 협업하게 될 지도 모른다. 특히 한국의 신세대 피아니스트들은 무척 뛰어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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