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업한 태권도장 갔더니… 휴대폰이 60만원대

안별 기자 2026. 4. 10.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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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통법’ 폐지된 지 9개월째
통신사 보조금 경쟁 재점화

“주차장에 도착하면 연락 주세요. 길 안내 전용 번호라 다른 문의는 안 됩니다.”

경기 수원에 사는 40대 A씨는 최근 휴대폰을 저렴하게 살 수 있는 이른바 ‘휴대폰 성지’를 방문했다가 황당한 경험을 했다. 주차장에서 신원 확인을 거친 뒤에야 사무실 위치를 안내받았기 때문이다. 촬영 금지 안내를 받고 도착한 곳은 뜻밖에도 폐업한 태권도장이었다. 직원들은 손님들에게 분주히 보조금 액수를 알려주고 있었다. A씨는 “일요일에 개통을 해주겠다며 신분증을 놓고 가라고 해 어쩔 수 없이 맡겼다”며 “단통법이 폐지돼 당당하게 싸게 살 줄 알았는데, 이런 첩보 작전을 벌일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정부가 휴대폰 판매 시장 정상화를 위해 작년 7월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 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을 폐지했지만, 시장은 오히려 더 깊은 음지로 숨어들고 있다. 통신사 간 보조금 경쟁이 다시 불붙으면서 지원금 차별 단속을 피하려는 유통점들의 폐쇄적인 영업 방식이 더욱 공고해지고 있는 것이다.

2014년 10월 도입된 단통법은 통신 3사 간 보조금 경쟁 과열로 인해 가격 정보에 밝은 일부 소비자만 혜택을 받는 ‘차별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다. 통신사 지원금을 투명하게 공개·제한해 휴대폰 구매 가격 격차를 줄이려는 취지였지만, 보조금 경쟁이 위축되면서 오히려 소비자 통신비 부담이 커졌고, 결국 폐지됐다.

그래픽=양진경

◇205만원짜리 휴대폰을 60만원대에 구매

8일 통신 업계에 따르면, 휴대폰 유통 현장에서 단통법 이전 시절을 방불케 하는 과도한 지원금이 살포되고 있다. 본지가 지난달 28·29일 수원 등 경기 지역의 휴대폰 시세표를 분석한 결과, 출고가 205만원 상당의 ‘갤럭시 S26 울트라(512GB)’ 모델은 번호 이동 시 구매 가격이 현금 기준 60만~80만원대까지 떨어졌다. 통신 3사가 막대한 지원금을 쏟아붓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LG유플러스로 번호 이동을 하며 10만원 이상 고가 요금제를 6개월 이상 유지할 경우, 갤럭시 S26 울트라 모델 구매 비용은 68만원(현금가)까지 떨어졌다. 출고가보다 약 137만원 저렴하게 살 수 있는 셈이다. 심지어 갤럭시 S26 모델(출고가 125만4000원)을 같은 조건으로 구매하면, 되레 11만원(LG유플러스 기준)을 받을 수 있었다. 공시 지원금(최대 50만원)을 훌쩍 넘는 출혈 경쟁이 다시 활개를 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정부의 지원금 차별 단속을 피하기 위한 음지 영업이 소비자들을 보안 사각지대로 내몬다는 점이다. 휴일이 지나고 개통해 주겠다며 소비자의 신분증을 맡겨두게 하는 과정에 대포통장 개설이나 개인 정보 유출 우려가 크다.

◇단통법 같은 규제 나오기 전에 자구책 마련 시급

통신 업계에서는 단통법 폐지의 취지였던 가격 투명화가 완전히 실종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보가 빠른 일부 ‘휴대폰 성지’ 이용자만 혜택을 보고 상당수는 단통법 이전 시절처럼 여전히 비싼 값을 치르는 ‘정보 격차’가 다시 심화하고 있는 것이다. 통신사 차원의 자구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통신 업계 관계자는 “현재 경쟁은 결국 가입자를 뺏어오는 ‘제로섬 게임’”이라며 “단통법처럼 정부의 강한 규제가 다시 도입되기 전에 통신 3사가 마케팅비 출혈을 줄이고 서비스 경쟁으로 전환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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