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 상영 안 하면 노동자 아니다? OTT 시대 후퇴하는 노동 환경
"표준근로계약서 없어지는 추세", "숏폼과 릴스 등 초단기 제작 늘어나며 사각지대 확대"
콘텐츠 산업 노동자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입법 토론회
[미디어오늘 정민경 기자]

OTT 중심으로 콘텐츠 제작 환경이 이동하면서 노동조건이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표준계약서 사용률은 낮고, 용역계약 비중은 높은 구조가 고착되면서 노동자 보호가 취약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숏폼과 릴스 등 초단기 인터넷 드라마 제작이 늘어나면서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콘텐츠 산업 분야 노동의 사각지대가 확대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8일 국회의원회관 제3간담회실에서 손솔 진보당 의원실 주최로 '콘텐츠산업 노동자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입법과제'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는 문화예술노동연대, '예술인 안전을 지키는 사람들'과 함께 공동주최로 진행됐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표준계약서 사용 의무화 △노동자 추정제도 도입 △노사정 거버넌스 구축 등 구체적인 입법 과제가 제시되었다.
이날 손솔 진보당 의원은 “콘텐츠 산업은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며 빠르게 성장했지만, 그 이면에는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이 존재한다”며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노동권 보장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 짚었다. 이어 “표준계약서의 실효성 확보, 노동자성 인정, 노사정 협의 구조 마련 등 구조적 개선 없이 K-콘텐츠의 미래는 없다”며 “국회가 책임 있게 입법으로 답해야한다”고 전했다.
최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중심으로 제작 환경이 이동하면서 근로조건이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공통적으로 제기됐다. 이날 토론회 발제를 맡은 이종수 노무법인 화평 노무사는 최근 영화·영상 콘텐츠 산업 현황을 전하면서 2024년 영화영상산업 시장규모가 3조 3322억원이었고, 영화 산업에서는 근로 표준 계약서를 활용하는 사례가 66%였으나 OTT 시리즈에서는 37.8%에 그쳤다고 전했다. 2024년 영화진흥위원회 실태조사에 따르면 용역(프리랜서) 계약 비중은 OTT 업계(49.7%)가 영화 업계(22.8%)의 두 배였다.
이종수 노무사는 “콘텐츠 제작 현장에서는 '위장 프리랜서'와 '위장 하도급'이 고착화되면서 노동법의 보호를 회피하는 구조가 일반화돼 있다”며 “근로계약이 아닌 업무위탁 계약이 관행처럼 사용되는 현실은 종사자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표준계약서 권고만으로는 현장을 바꿀 수 없다”며 “법적 강제와 제도 설계가 병행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OTT 제작으로 오히려 근로조건 후퇴…“표준근로계약서 다시 없어지는 추세”
이날 발제에서는 영화와 OTT 시리즈 스태프들이 전한 현장의 목소리로 “OTT 제작으로 인해 표준근로계약서가 다시 없어지는 추세”, “4대 보험 미갑으로 향후 노후에도 큰 타격이 있을 것 으로 예상”, “드라마 제작사에서 OTT를 제작할 경우 노동시간이나 이동시간 계산 방법이 다 다르고 훨씬 가혹한 제작 환경이 되었다”, “OTT 시리즈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산업환경에 놓이면서 하루 12시간 근로시간조차 지켜지지 않는 현장에 놓이게 됐다”는 지적이 전달됐다.
안병호 영화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은 “같은 영상콘텐츠임에도 극장 상영 여부에 따라 근로기준법 적용이 달라지는 모순이 발생하고 있다”며 “제작사의 편의에 따라 노동자성이 부정되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플랫폼 변화가 노동권 후퇴의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안 위원장 역시 △표준근로계약서 사용 의무 △근로기준법, 표준근로계약서등의 교육 △문화예술산업에 맞는 노동감독관 제도의 도입 △단체교섭 불응에 대한 산업적 제재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김기영 공공운수노조 희망연대지부 방송스태프지부 지부장은 “최근 비드라마 분야에서는 관행적인 구두계약, 위장 프리랜서 양산, 일자리 상실과 숙련도 저하의 문제가, 드라마 분야에서는 노동시간 단축의 무력화, 제작비 양극화, 관리 사각지대 발생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며 “숏폼과 릴스 등 초단기 인터넷 드라마 제작이 늘어나면서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노동의 사각지대가 확대되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동일한 노동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영화 제작사가 OTT 작품을 제작할 때 '극장 상영' 여부를 근거로 근로계약 체결을 회피하는 등 법적 보장의 차별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김 지부장은 △현재 문체부, 고용노동부, 방통위 등으로 분산된 소관 부처와 관련 법령을 통합해 단일적 독립 법안 제장을 할 것 △근로기준법의 전면 적용 및 실효성 강화 △방송사의 책임 강화(비드라마 분야에서 최종 승인권자인 방송사가 하청 제작사에 대해 근로기준법 준수 여부를 확인하도록 의무화) 등을 제안했다.
차기환 한국실연자권리협회 전문위원은 “현재 제작현장에서는 근로계약이 아닌 '업무위탁계약'이라는 형식이 일반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계약 형태가 종속적 관계를 은폐하고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사전에 차단·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현행 법체계는 방송연기자를 '예술인' 범주로만 포섭해 근로기준법의 보호 밖에 두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 결과 방송연기자는 장시간 촬영, 불규칙한 노동 제공, 반복적인 계약 종료 등 전형적인 불안정 노동의 특성을 가지면서도 노동법적 권리 보장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 놓여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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