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벌레야, 난 그저 남들이 싫어하는 널 싫어했던 거야[책과 삶]

신주영 기자 2026. 4. 9.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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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벌레 이야기
매슈 맥스웰 지음 | 김선형 옮김
동아시아 | 132쪽 | 1만9000원

식탁 위로 바퀴벌레 한 마리가 지나간다. 저녁을 먹던 소년은 이를 보고 비명을 지른다. 책은 이렇게 시작된다. 그런데 에필로그에서의 소년은, 저녁 식사 중 나타난 바퀴벌레에게 “늘 환영이야”라고 말한다. 소년에겐 어떤 일이 있던 걸까.

소년은 바퀴벌레를 싫어하게 된 이유를 생각해본다. 바퀴벌레를 발견한 어머니가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본 뒤 소년은 바퀴벌레가 더럽고 위험하다고 믿기 시작했다. 소년은 자신이 바퀴벌레를 무서워하는 게 아니라, ‘바퀴벌레라고 믿게 된 어떤 것’을 무서워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선입견 없이 대상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바퀴벌레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있는 그대로 마주하기보다, 감정이나 기억을 덧씌워 편견 섞인 시선에서 바라보곤 한다.

심지어 나 자신에게도 그렇다. 소년은 항상 자신이 엉망진창이라고 생각해왔고, 거울 앞에 서면 실망하곤 했다. 그러다 자신에게 묻는다. “너는 누구니?” 스스로를 ‘아무도 원치 않는 사람’으로 규정한 자신이 궁금해지고 가여워진다.

소년은 바퀴벌레와 ‘나’를 포함해 자신이 끔찍하게 싫어하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려 노력한다. 돌이켜보니 그것들은 유년 시절의 아픈 기억과 맞닿아 있었다. 할머니의 임종을 지키며 소리 지르던 할아버지의 모습은 죽음을 두려워하게 했고, 열심히 숙제를 해갔는데도 야단을 친 선생님은 할 일에 대한 압박감을 심어줬다. 소년은 그 이유를 알고 나니 오히려 후련한 마음이 든다.

소년은 삶을 ‘선택’하기로 한다. 그제서야 부정적 인식을 만든 무섭고 끔찍한 기억이 아니라 따뜻하고 다정한 기억들이 소년의 머릿속을 채운다. 소년은 ‘삶이 어김없이 내려준 매 끼니와 지붕’을 기억하며, 자신을 두렵게 만든 이야기들 밖으로 걸어 나간다.

믿음은 힘이 세다. 우리는 세상을 원점에서 다시 바라볼 수 있으며, 우리의 세계를 스스로 형성할 수 있다.

신주영 기자 j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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