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유머 넘치는 늙음일 수 있다면[책과 삶]

박경은 기자 2026. 4. 9.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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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노 지즈코 지음 | 은혜 옮김
후마니타스 | 312쪽 | 1만9800원

잘 싸워주고 든든한 왕언니라는 이미지가 강한 여성학자 우에노 지즈코의 책을 즐겨 읽었던 독자라면 조금은 당혹스러울 수도 있겠다. “응, 이런 모습이?” 혹은 “이런 생각을 했다고?” 싶을 만큼 내밀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풀어놓은 에세이다. 저자 말마따나 “나도 후기 고령자는 처음이라…” 하며 써내려간 성찰의 글들은 유머가 넘치고 따뜻하다. 어려서 오빠와 남동생 사이에 낀 고명딸로 자라며 가부장제를 체감했던 그의 소녀 시절은 책과 개만이 친구였다.

꿈도 의욕도 없이 방황하던 대학 시절을 지나고 절망감의 터널을 넘어 학생들을 가르치다 이제는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 친구와 선배들을 ‘떠나보내며’ 들려주는 그의 이야기는 흐트러짐 없고 논리적인 그 어떤 설득보다 훨씬 깊은 공감을 준다.

특히 ‘돌봄’이라는 주제에 천착해온 그가 몸의 ‘늙음’에 따르는 감각과 단상들을 툭툭 던져놓는 방식은 세대를 아울러 실체적으로 다가온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개를 키우기엔 너무 나이가 들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개의 수명이 인간의 수명보다 짧다지만 나는 이미 개의 마지막 순간을 책임질 수 없는 나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미성숙한 연인이었던 과거의 자신을 떠올리며) “그때 이랬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이미 모든 건 돌이킬 수 없다. 그중 몇명은 고인이 되었다”, (낙상으로 3주간 통증 속에 칩거하며) “들어봤다고,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타인의 고통은 결국 타인의 고통일 뿐이었다”.

작가 헨미 요가 노년의 투병생활에 관해 쓴 글을 소개하는 부분에선 무력함에서 오는 비애와 고통이 살갗을 파고드는 것 같은 느낌마저 준다. 그렇다고 늙음에 관한 넋두리나 한탄이라고 이해하면 곤란하다. 저자는 거듭해온 실패 속에서 ‘산 자’의 책무를 기억하고 계승한다. 책 후반부에 실린, 일본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지성들에 대한 추도사는 이 책을 읽을 독자들이 살아낼 시간에 대한 격려이자 위로다.

박경은 선임기자 k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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