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의 지능을 인간의 잣대로 재지 말라[책과 삶]
제임스 브라이들 지음 | 김보영 옮김
코쿤북스 | 460쪽 | 2만5000원

인간의 것으로만 치부되는 ‘지능’
비인간 존재로까지 확장시켜 논의
동물·식물·박테리아에 기계까지
각자 방식으로 관계 맺고 문제해결
자연까지 연결된 ‘집단 지능 정치’
전 지구적 기후위기 해법으로 제시
‘인간다움’을 정의하는 가장 중요한 속성 중 하나는 지능이다. 사회 전반을 바꿔놓을 것이라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일반인공지능(AGI)’ 역시 인간의 지능과 비슷한 수준의 AI로 정의된다. 많은 지능 테스트는 특정 자극에 인간처럼 반응하는지를 체크하는데, 대표적으로 거울 테스트가 있다. 초기에는 일부 영장류들과 코끼리, 돌고래 등만 테스트를 통과했다. 나머지는 ‘하등’ 동물일까? 동남아에서 관광객에게 행패 부리는 원숭이로 유명한 마카크는 거울에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하는 등 자기 인식 능력이 부족하다고 평가받았다. 하지만 눈맞춤이 위협으로 여겨지다보니 회피했다는 반론이 나왔다. 실제 원숭이들은 얼굴보다 엉덩이를 보여주며 소통하는 성향이기 때문에 “원숭이에게 인스타그램 계정이 있다면 엉덩이 셀카가 수두룩할 것이다.”
심지어 문어는 두족류이지만, 수족관을 능란하게 탈출할 정도의 높은 지능으로 유명하다. 지능을 ‘수행’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인데, 그저 인간의 경험과 기준에 국한하여 판단해온 셈이다. <새와 나무와 돌멩이의 지적 세계>는 ‘인간의 것’으로만 치부되는 지능 개념을 비인간 존재로 확장하며 인간중심주의를 흔드는 책이다. 예술가이자 기술학자, 철학자인 제임스 브라이들은 지능을 동물과 식물, 기계까지 저마다의 방식으로 환경과 관계 맺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역량으로 바라본다. 한발 더 나아가 기술 담론으로만 소비되던 AI를 생태적 상상력과 연결시켜, 오늘날 전 지구적 위기를 넘어 인간과 비인간 존재가 공존하기 위한 색다른 시각을 제시한다.
저자는 인간이 자연과 스스로를 분리하려는 사고방식을 극복하는 ‘인간 너머의 세계’라는 개념을 강조한다. 동물, 식물, 곰팡이, 박테리아, 바이러스 등 모든 생물권이 포함된다. 우리를 지탱하고 때로는 뒤흔드는 강, 바다, 바람, 돌, 구름도 포함된다. 책에선 이러한 얽힘을 생태계의 거대한 연결망인 우드와이드웹, 여러 고인류 간 교섭의 결과인 현생 인류, 멈춰 있는 듯 보이지만 ‘매우 느린 동물’인 식물의 이동 등으로 다양하게 보여준다.
인류만이 주인공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는 ‘탈중심화’는 우리 세계를 축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의 ‘중첩’을 통해 풍요로워지는 일이다. 하지만 17~18세기 계몽주의와 과학 혁명 이후 세계를 단일 존재로 보는 잘못된 이해를 가지게 됐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세상을 납작하게 만드는 이러한 오류를 영속시키는 것은 ‘기술’이다. “하나의 정답을 끊임없이 찾기 위해 한 가지를 다른 것으로부터 떼어내는 오랜 추상화 및 분리 과정”을 통해 테크놀로지를 구축해왔다는 것이다. “계산을 1과 0의 양자택일, 즉 이진법으로 환원한 것”이 단적인 예다.
저자는 서구과학의 환원적, 이분법적 세계관을 비판하며, 세계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자연에 더 많이 ‘연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연을 분석하거나 이론화하는 대신 그들이 직접 지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주라는 것이다. 비생물 지능의 한 예는 진화의 근간이기도 한 ‘무작위성’이다. 컴퓨터는 ‘난수’를 만들 수 있지만, 실제로는 특정 메커니즘을 따라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무작위가 아니다. 진정한 무작위성을 위해 컴퓨터는 대기의 변동, 광물의 부식, 용암의 움직임 등 다양한 불확실성의 원천과 직접 연결되어야 한다. 책에선 일본에서 점균류를 실제 지리적 환경 제약을 반영한 지도상에 번식하도록 두자 도쿄 일대 교통망과 매우 흡사한 형태가 됐다는 사례 등을 소개한다. 복잡한 현실 문제를 생물학적 시스템이 계산해내는, 자연이라는 ‘비이진법적 기계’의 놀라운 능력이다.
저자는 추첨이 고대 그리스 민주정의 중요 원리였음을 상기시키며, 무작위성의 힘을 정치의 영역으로도 확장한다. 오늘날 현실의 선거 민주주의는 의회 정당, 정치자금, 기업 로비 등으로 선택이 왜곡되기 쉽다. 대안으로 주목하는 것은 다양성을 반영해 무작위로 선발된 시민들의 숙의에 기반한 시민의회다. 책은 임신중지가 불법이던 아일랜드에서 시민의회가 합법화 논의의 전환점이 된 사례를 들며 무작위성이 정치적 변화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이제 저자의 사유는 인간 바깥으로 나아간다. 기후위기와 기술의 통제 불가능성처럼 오늘날의 문제들은 인간만의 이해관계 안에서 풀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자가 모색하는 것은 ‘모두’가 참여하는 집단 지능의 정치이며, 그 핵심에는 연결과 참여가 있다. 여기에는 인간뿐 아니라 나무와 문어, 이끼와 강, 돌멩이 같은 비인간 존재들 역시 포함된다. 이들의 목소리를 제도 안에 들여오기 위해 저자는 자연물과 비인간 존재에 법적 인격과 발언권을 부여하는 가능성을 검토한다. 뉴질랜드 황가누이강처럼 자연에 ‘법인격’을 인정한 사례는 그 상상이 단순한 비유에 그치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 지점에서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를 넓고 정교하게 조정할 수 있는 도구가 AI이다. 인간의 욕망과 통제를 강화하는 기술이 아니라, 더 많은 존재의 신호와 이해를 감지하고 연결하는 ‘동물 인터넷’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석유를 효율적으로 채굴할 방법을 계산하는 도구가 아니라, 제비를 돌아오게 하고 숲을 회복시키는 등 이 행성의 다양한 존재들과 지적 ‘연대’를 가능케 할 도구다. AI를 둘러싼 논의를 생태와 민주주의의 문제로까지 확장하는 대목이 책의 독특한 지점이다.
“내가 그 어느 때보다 더 깊이 이해하게 된 것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불평등과 권력과 지식의 중앙집중화이며, 이러한 위협에 대한 해답은 교육, 다양성, 정의다. 이를 위해서는 인공지능이 아니라 진짜 지능이 필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 동물, 식물, 벌레, 모든 생명체와 돌, 모든 자연물과 비자연 시스템 등의 지능이 모두 필요하다는 것이다. … 문제는 기술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컴퓨터도 세계와 같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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