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석의 문화유랑]붕괴한 현실의 거울, 공포

영화 <살목지>가 8일 개봉했다. 최근 아이돌 캐스팅과 과도한 자극에 의존하던 일부 호러 영화들과는 달리, 스토리 전개에 설득력이 있으며 공포감을 적절하게 유지한다. 김혜윤과 이종원의 연기도 인상적이다. 추정컨대 순제작비가 약 30억원인 영화는 손익분기점(70만명)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1998년 <여고괴담>의 신드롬, 2003년 <장화, 홍련>의 대성공으로 한국 호러는 잠시 인기 장르였다. 하지만 외국 호러의 느슨한 모방과 충격 효과(점프 스케어와 거슬리는 효과음)에 기댄 소모성 기획물이 양산되면서 관객의 신뢰를 잃었고, 오랜 정체기에 들어갔다. <파묘>(2024)가 천만 관객을 넘으며 비로소 호러 영화는 산업의 기대를 받는 장르가 됐다.
세계는 지금 호러 붐의 재현이다. 할리우드는 <할로윈>과 <스크림> <컨저링>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등 인기 시리즈의 신작이 속속 만들어지고, 아리 애스터의 <유전>과 <미드소마>와 티 웨스트의 3부작 등 A24의 작가주의 호러가 한 축을 담당한다. 호러 전문 OTT 셔더(Shudder)는 꾸준히 가입자가 늘고 있다. 일본에서는 <링>과 <주온>으로 세계를 뒤흔든 J호러가 힘을 잃었지만, 우케쓰의 <이상한 집>과 세스지의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 등 모큐멘터리와 인터넷 괴담을 결합해 사실감이 압도적인 호러 소설이 SNS를 타고 폭발적으로 확산돼 영상 매체로까지 세대교체를 이뤄냈다. 공포물의 부활에는 산업적 이유도 있다. 스타 캐스팅이 아니어도 참신하고 도발적인 비주얼과 설정 하나만으로도 마케팅 파워를 발휘한다. 제작비는 적지만 수익률은 엄청난, 의외의 히트작이 많다.
호러의 부활은 무엇보다 사회적 무의식에 기인한다. 1970년대 초, 미국 사회는 베트남전의 패배와 경제위기로 불안했다. 이성과 진보에 대한 믿음이 무너지던 시절, <엑소시스트>(1973)와 <오멘>(1976)이 대중을 극장으로 불러들였다. 합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악의 출현은 붕괴하는 기성 질서의 은유였다. 일본은 거품경제가 꺼지고 ‘잃어버린 10년’을 거친 1990년대 말, 사다코와 가야코가 탄생했다. 고도성장의 꿈이 끝나고 사회가 정체와 허무 속으로 가라앉을 때, 공포는 불안과 절망에 형태를 부여하는 새로운 언어로 부상했다.
지금 우리가 <심야괴담회>와 유튜브의 괴담 영상에 몰입하는 이유는 단순히 자극을 원해서가 아니다. 도저히 상식으로 설명되지 않는 세상을 날것으로 보여주는 호러의 정직함에 일면 안도하기 때문이다. 어설픈 위로나 희망보다, 붕괴한 현실을 그대로 비추는 거울이 위안이 되는 기묘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다카하시 도시오는 이미 10년 전 저서 <호러 국가 일본>에서 우리가 믿어왔던 상식, 즉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를 예측하게 해주던 논리적 근간이 기능을 상실했다고 진단했다. 합리와 상식의 자리를 채운 것은 ‘괴물화’된 현실이다. 평온했던 가정이 폭력의 지옥이 되고, 성실한 학생과 직장인이 혐오의 대변자가 되며, 국가 간의 신뢰가 전쟁과 학살로 변모한 세상. 다카하시가 말하는 ‘현실의 호러적 변용’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호러의 본질은 ‘붕괴’에 있다. 공포영화의 주인공은 사투 끝에 살아남지만, 그가 돌아갈 평화로운 세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호러 거장 구로사와 기요시의 <스파이의 아내>는 호러가 아니다. 하지만 <스파이의 아내>는 호러에서 파고들었던 질문을 관통한다. 일본 제국주의의 광기에 환멸을 느낀 주인공은 미군의 폭격으로 타오르고 무너지는 도시를 보며 슬퍼하는 대신 ‘아름답다’고 말한다. 파멸에 대한 찬미가 아니라,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추악한 세계가 드디어 끝났다는 것에 대한 기괴한 안도감이다.
공포영화는 참담한 비극으로 끝나거나, ‘최후의 생존자(파이널 걸)’가 살아남아도 가족과 친구들을 잃고 홀로 남겨진 폐허의 시간만이 남는다. 살아남았지만,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것이 공포 장르의 정직함이다. 세계는 붕괴했으며, 붕괴 이전으로의 귀환은 없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호러에는 희망이 있다. 붕괴한 세계를 정면으로 직시하고 나서야 비로소 다음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카하시의 제언대로 ‘작은 균열’을 만들고, ‘작은 해결’을 쌓아가는 것. 지금 호러가 부흥하는 이유이자, 우리가 호러에 매혹되는 본질적인 이유다.

김봉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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