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식의 이세계 ESG]이재명 정부 전력 정책, ‘4무’에서 ‘4유’로 가야 한다

중동에서 벌어지는 전쟁이 언제, 어떻게 끝날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이번 사태가 각 나라의 에너지 정책에 중대한 전환의 계기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흐름에 대응하는 정책에 따라 중장기적인 국가 에너지 경쟁력이 결정될 것이다.
당장은 에너지 절약이 절실하지만 구조적 한계도 분명하다. 수입선 다변화도 추진되고 있으나 현실적으로 어렵다. 원유 정제 과정에서 나오는 ‘산업의 쌀’ 나프타는 주로 경질유에서 많이 나오는데, 우리가 주로 수입하는 중동산 원유는 중질유다. 추가로 나프타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고도화 설비가 필요하지만, 국내 정유 시설은 중질유에 맞춰져 있다. 이러한 문제는 에너지 수급보다는 ‘산업 원료’ 측면의 걱정으로 별도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에너지’ 측면의 근본적인 대책은 우리의 노력에 따라 상당 부분 대응이 가능하다. 바로 에너지 수입 수요 자체를 줄이는 ‘일렉트로테크(Electrotech)’ 정책이다. 일렉트로테크는 전력의 공급·연결·수요 전반에서 혁신을 일으키는 기술을 총칭한다. 공급 측면에서는 풍력·태양광·원자력 등 국산 무탄소 전원을 확대하고, 연결 측면에서는 초고압직류송전(HVDC)·분산전원·에너지저장장치(ESS)를 통해 전력망의 유연성을 높인다. 수요 측면에서는 전기차와 히트펌프 도입 등 ‘수요의 전기화’를 통해 에너지 소비 구조를 전환하는 것이다. 결국 일렉트로테크는 외부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추고, 국내 무탄소 에너지 공급을 늘려 가격 안정성과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는 정책이다.
이러한 일렉트로테크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해관계자의 선택을 결정해주는 ‘시장 가격’이 있어야 하고, 이를 보완하기 위한 수단으로 배출권 거래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돼야 한다. 문제는 우리나라 전력산업은 ‘관치 요금’만 있고 ‘시장 가격’이 없다는 점이다. 배출권 거래제도 행정지도 수준의 가격에 머물러 있다.
비전·일정·원가·시장 ‘비전’ 없어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전력산업에 대한 뉴스가 많이 나오고 있다. 원자력 전기의 필요성을 인정하며 관련 정책을 추진하는 한편, 재생에너지 확대 역시 연일 강조하고 있다. ‘햇빛 소득’ ‘바람 소득’에 이어 전력망 통과 지역을 보상해주는 ‘계통 소득’까지 거론되고 있다. 현재 약 37기가와트(GW) 수준의 누적 설비용량을 2030년까지 100GW로 늘리겠다고 선언했다. 재생에너지의 지산지소(地産地消)를 위한 지역별 차등 요금제를 도입하고, 재생에너지 100% 공급을 목표로 하는 RE100 산업단지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런 와중에 특이한 점은 트레이드마크인 ‘에너지고속도로’에 대한 언급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에너지고속도로는 흔히 HVDC로 오해되지만, 정확하게 표현하면 ‘실시간 전력 유통망’이다. 여기에는 HVDC와 ESS와 같은 물리적인 설비도 필요하지만, 지역 편재성·간헐성·변동성을 지닌 재생에너지의 발전과 수요를 실시간으로 연결시켜 주는 ‘실시간 시장 가격’이 핵심이다. 전기요금을 계절별·시간별(계시별)로 정해주는 지금의 전기요금 체계는 화석 전기 시대에나 통할 정책이다. 재생에너지 시대에는 AI와 결합한 스마트그리드, 즉 이해관계자가 AI를 통해 알아서 예측하고 대응해서 소비자 편익을 높이고, 관련 산업의 성장을 견인할 수 있는 구조로 전환돼야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아직까지 이재명 정부의 전력 정책은 4무(無)이다. 비전, 일정, 원가, 시장이 없다. 산발적인 선언은 많은데 이를 종합한 비전이 없다. 비전은 재생에너지 100GW 같은 목표 수치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이 이해할 수 있는 명확성과 믿고 따라가면 개인과 국가 모두 좋아진다는 가치 지향성을 포괄하는 미래의 바람직한 모습이어야 한다.
구체적 일정 역시 보이지 않는다.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100GW 확대가 정말 달성 가능할까? 현재도 호남 지역의 재생에너지 계통 접속은 2031년 이후에나 가능하다. 동해안~수도권 HVDC는 계획대로라면 2019년 가동됐어야 했지만 현실은 2026년 내 준공조차 불투명하다. 그렇다면 서해안 HVDC는 언제 계획을 세우고 언제까지 완공할 것인가.
질적 전환 돼야 일렉트로테크 가능
원가에 대한 논의도 부족하다. 원가를 얘기할 때 흔히 인용하는 게 장기균등화발전단가(LCOE)다. LCOE는 발전소의 건설, 운영, 연료비, 폐기 등 전 수명 주기 동안 발생하는 총비용을 예상 총 발전량으로 나눈 평균 원가다. 우리나라의 LCOE는 글로벌 평균 대비 몇배 이상 높다. 문제는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높아질수록 그에 비례해 계통 안정화를 위한 송배전 원가도 높아진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재생에너지를 멈추자는 얘기는 아니다. 햇빛·바람·계통 소득 같은 정책도 필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예상되는 원가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그 원가를 합리화하기 위한 투자 시장이 조성된다.
마지막으로 소매 시장의 부재다. 중동전쟁의 충격을 줄이기 위해 정부는 정유사 출고 가격을 통제하면서 주유소 소매 가격은 자율화를 유지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비록 제한된 가격이지만 최종 소비자 가격의 자율화로 에너지 절약이 자발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이것이 ‘가격의 발견’이자 ‘시장의 힘’이다. 그런데 전기 소비에서는 이것이 불가능하다. ‘시장 가격’이 없기 때문이다. 기껏 나오는 얘기가 주택용 요금에도 ‘계시별 요금제’ 도입을 검토한다는 것이다. 이는 재생에너지 시대에 역행하는 정책이다. 실시간 시장 가격이 없는 관계로 이 전쟁 중에도 ‘반바지 난방, 개문 냉방’ 같은 비효율적 소비 관행이 이어지고 있고, 이는 재생에너지 위기에 화석 전기의 수요를 초래하는 역풍을 부를 것이다(박주헌 교수). 이미 이번 전쟁을 계기로 석탄발전 상한이 해제되고, 폐쇄 계획도 연기됐다.
일렉트로테크는 전기 4무 정책을 4유(有) 정책으로 전환해야 성공할 수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로 출범했지만 물리적 통합에 불과하고 질적 변화는 전혀 없다. 부처의 이름을 바꾼다고 에너지가 국산화되지는 않는다. 관치 요금의 사슬을 끊고 시장 가격의 엔진을 다는 ‘질적 전환’이 기후부의 진짜 성적표가 될 것이다.

김경식 ESG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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