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년 전 압독국 가계도 복원…신라 ‘근친혼 사회’ 실증
순장자 가족 단위 희생 확인…고대 신분 질서 단면 드러나

베일에 싸여 있던 고대 한국인의 친족 네트워크와 사회적 풍습이 현대 과학의 '고유전체(Ancient genome)' 분석을 통해 1500년 만에 그 실체를 드러냈다. 신라시대 지방 권력층 내부에 존재했던 근친혼 관습은 물론, 일가족이 통째로 희생된 순장의 참혹한 단면까지 과학적으로 증명되며 고대사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다.
영남대학교 박물관 김대욱 학예연구원과 세종대 우은진 교수, 서울대 정충원 교수 연구팀은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 연구소가 참여한 국제 공동연구를 통해 삼국시대 압독국(押督國) 후예들의 집단 묘역인 '임당동·조영동 고총군'(경북 경산 소재)의 유전적 구조를 완벽히 규명했다고 9일 밝혔다.

연구팀은 고총군 내 44개 무덤에서 출토된 인골 78구로부터 DNA를 추출해 분석했다. 그 결과, 당시 경산 지역에 거주했던 고대 한국인들 사이에서 근친혼과 족내혼이 빈번하게 행해졌음을 확인했다.
이는 엄격한 '여성 족외혼'을 유지했던 고대 유럽 및 중세 사회와는 확연히 대비되는 결과다. 고대 사회에서 이러한 유전적 양상이 보고된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도 신석기시대 튀르키예와 중국 정도에 불과해 학술적 희귀성이 매우 높다. 특히 '삼국사기' 등 문헌에 기록된 신라 왕실의 근친혼 풍습이 지방 사회에서도 보편적으로 존재했음을 유전학적으로 증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연구는 그간 고고학계의 난제였던 순장자들의 관계도 명확히 규명했다. 한 무덤에 묻힌 순장자들이 부모-자식 혹은 형제 관계인 사례가 다수 확인돼 특정 주인을 위해 일가족이 한꺼번에 순장됐음을 시사하며 무덤의 주인(주피장자)과 순장자 사이에는 유전적 친족 관계가 거의 나타나지 않아 매장 신분에 따른 철저한 친족 구조의 분절을 의미한다.
또한, 인근에 조성된 무덤 주인들이 실제 부부 관계였음을 가계도 복원을 통해 확증함으로써, 기존 고고학계가 추정해 온 '연접분=부부묘' 가설에 쐐기를 박았다.
논문의 공동 제1저자이자 교신저자인 김대욱 학예연구원은 "임당동·조영동 고총군은 인골뿐만 아니라 식단, 질병 등 당시의 삶을 복원할 수 있는 특별한 유적"이라며 "이번 연구를 통해 고총군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친족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음을 밝혀냈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는 경산시의 '압독국 문화유산 연구 활용 프로젝트'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으로 수행됐으며, 세계적 권위의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 2026년 4월 9일 자에 게재됐다. 연구팀은 향후 고대 병원균 및 유전병 분석을 통해 삼국시대 지역 사회의 이동성과 생활상을 더욱 구체적으로 복원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