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톱 체호프 <바냐 아저씨> 원작 공연이 잇달아 열리는 이유는

주성희 기자 2026. 4. 9.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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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일 경남도립극단 정기공연에 이어
내달 LG아트센터, 국립극단 저마다 선봬
“풍족한 사회 속 허무함, 호소력 강해”

경남도립극단이 올해 첫 정기공연으로 9~11일 9~11일 경남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선뵈는 <반야삼촌>(서해 각색·장봉태 연출)은 러시아 극작가 안톱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가 원작이다. 공간 배경으로 러시아에서 경남으로 바꾸고, 시대 배경을 1997년께 외환위기로 재설정했다.

우연하게도 경남도립극단 말고도 같은 작품을 원작 그대로 혹은 각색해 공연하는 곳이 두 곳이나 더 있다. 안톱 체호프의 작품은 늘 다양하게 선택되기는 하지만, 이처럼 같은 작품이 동시에 공연되는 일은 흔치 않다. 이유는 뚜렷하지 않다. 다만, 원작 <바냐 아저씨>가 풍요로운 현대사회의 결핍, 허무함을 다루고 있는데, 이것이 요즘 시대에 호소력이 있다는 분석이다.

서울 LG아트센터 <바냐 삼촌>
서울 LG아트센터가 제작한 <바냐 삼촌> 홍보물. /갈무리

서울 LG아트센터가 제작한 <바냐 삼촌>(손상규 각색·연출)이 다음 달 7일부터 31일까지 관객을 만난다. 이반 빼드로비치 보이니쯔끼, 즉 바냐 역은 이서진 배우가 소피아 알렉산드로브나, 소냐 역은 고아성 배우가 맡는다.

바냐와 소냐는 평생을 바쳐서 시골의 한 영지를 지켜왔다. 영지의 주인이자 바냐의 죽은 누이의 남편인 세레브랴코프 교수는 시골로 돌아오더니 재산을 처분하겠다고 한다. 바냐의 조카이자 세레브랴코프 교수의 딸인 소냐는 의사 아스트로프를 짝사랑하고 있다. 아스트로프는 세레브랴코프 교수의 새로운 부인 옐레나에 마음을 두고 있다. 바냐와 소냐의 상실감이 점점 커진다. 특히 바냐는 자신의 인생을 부정당했다는 절망에 휩싸이면서 억눌린 분노를 드러낸다.

바냐, 소냐는 삶의 터전과 가족, 그 안의 질서에 헌신했다. 어느 순간 일상이 무너지면서 삶이 흔들리는 평범한 인물을 그린다. 작품은 삶의 보편적인 고통과 기쁨, 아이러니를 다룬다. LG아트센터 제작 프로덕션은 고전인 안톤 체호프의 <벚꽃동산>, 입센의 <헤다 가블러> 등을 각색해 동시대 관객에게 전하고 있다.

연출을 맡은 손상규는 2024년에 연극 <타인의 삶>으로 데뷔했다. 이야기, 배우 본연의 색을 극대화하는 자신만의 연출 방식을 구축했다는 평을 받는다.

국립극단 <반야 아재>
국립극단 연극 <반야 아재> 출연진 조성하(왼쪽), 심은경 배우. /국립극단

국립극단도 다음 달 22일부터 31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반야 아재>(조광화 번안·연출)를 무대에 올린다. 이 작품 또한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듯한 일상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인간의 감정을 담아내는 것을 중점에 뒀다.

<반야 아재>의 지역적 배경은 충북 영동에 있는 한 정미소다. 박이보는 가족의 생활을 위해서 정미소를 관리했다. 그의 조카딸 서은희도 이곳을 오랫동안 지켜왔다. 두 사람은 도시에 사는 서병후 교수가 학문적으로 명성을 쌓을 수 있도록 뒷받침해 왔다. 어느 날 서병후는 젊은 아내 오영란을 데리고 정미소로 온다.

박이보는 흘러간 세월을 서병후에게 탓하면서 분노에 휩싸인다. 서은희는 의사 안해일을 사랑하지만 이를 감춘다. 오영란은 지루한 결혼 생활 속에서 의사 안해일에게 흔들린다. 이때 서 교수가 정미소 재산 처분을 말하자 이보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 소동을 벌이지만 결국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비극과 희극이 공존하는 삶의 아이러니를 바라보며 등장인물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하루를 버티며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그린다.

바냐는 박이보로 불리며 조성하 배우가 연기한다. 소냐는 서은희로 부르며 연극 무대에는 처음인 심은경 배우가 나서서 주목받고 있다. 세레브랴꼬프는 서병후, 옐레나는 오영란, 아스뜨로프는 안해일로 친숙하게 역할 이름을 바꿨다.

경남도립극단 <반야 삼촌>
경남도립극단이 9~11일에 선보이는 정기공연 <반야삼촌>의 한 장면. /주성희 기자

앞서 두 작품보다 먼저 공연하는 경남도립극단 <반야삼촌>(서해 각색·장봉태 연출)은 평범한 사람들의 조용한 일상을 재미나게 표현하면서 시작한다.

이반야는 죽은 누이의 남편이었던 서준형 교수를 위해서 농촌에 남아 일을 한다. 그에게 매달 돈을 보내줘야 한다. 토지에 있는 빚도 조카인 수연과 갚아나가야 한다. 그동안 성실하게 일해왔지만, 윤예나를 마음에 품은 이반야의 삶은 갈등과 분노, 답답함으로 응축되는 듯하다. 수연은 의사 김민호를 오랫동안 사랑했지만, 이 뜻을 전하던 윤예나와 김민호가 오히려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

여러 갈등과 충격에 이반야는 총을 들지만, 아무런 결과를 낳지 못한다. 허무함, 슬픔, 체념과 무감각 그 언저리에서 떠도는 이반야는 그럼에도 수연과 함께 삶을 나아가보기로 한다.

국가 배경이 바뀌면서 등장인물을 새롭게 지었다. 퇴직한 교수 세레브랴꼬프는 서준형, 옐레나 안드레예브나는 윤예나다. 바냐는 이반야. 소냐는 서수연으로 바꿨다. 바냐의 어머니 마리야는 이정숙, 의사이자 바냐 친구인 아스뜨로프는 김민호로 부른다. 몰락한 지주인 쩰레긴은 이일구다.
경남도립극단이 9~11일에 선보이는 정기공연 <반야삼촌>의 한 장면. /주성희 기자

경남도립극단만의 매력 충분

비슷한 시기에 경남도립극단을 포함한 세 곳에서 같은 작품을 상연하게 된 우연에 장봉태 경남도립극단 예술감독 또한 놀랐다고 한다. 그는 연극계가 안톤 체호프 작품을 다루는 일은 흔하다고 했다. 그의 대표적인 희곡 <갈매기>, <바냐 아저씨>, <세 자매>, <벚꽃 동산> 등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꾸준히 상연되고 있다. 체호프 작품은 큰 사건을 다루기보다는, 일상에서 삶의 본질을 꿰뚫는 작가로 두꺼운 애호가층을 지니고 있다고 장 감독은 설명했다.

그는 "현대사회는 풍족하고 풍요로운 반면 그 속에 사는 인간은 허망함, 허무함을 경험하고, 가족에게서도 이해받지 못하는 삶을 산다"며 "이런 점이 현시대에 호소력을 가진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장 감독은 다른 공연과 비교해 경남도립극단만의 매력이 분명히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립극단이나 LG아트센터에서 제작한 작품과 경남도립극단의 작품은 배우의 인지도, 제작비 등 비교할 지점은 있지만 그럼에도 경남도립극단의 작품 또한 뛰어날 것이라 자부한다"고 밝혔다. 지역, 인물 모두 경남에 배경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또 "철학적, 관념적인 대사를 경남 배우가 경남 말씨로 잘 표현했기에 관객은 작품을 친밀하게 느낄 수 있다"며 "고전작품을 쉽게 받아들이며 우리 가족, 우리 마을 이야기로 보이도록 했다"라고 말했다.

/주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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