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망기업 리포트] AI 시뮬레이션으로 제조 혁신 이끈다

이성현 기자 2026. 4. 9.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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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스타트업 '에브리심'
클라우드·AI 결합… 고비용 시뮬레이션 장벽 낮춰
설계·해석·검증 통합… 개발기간·비용 획기적 절감
이석근 에브리심 대표가 미국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세계 최대 규모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플러그앤플레이에서 기업 소개를 하고 있다. 에브리심 제공

현대 제조 산업에서 '실패 비용'을 줄이는 것은 기업의 생존과 직결된다. 특히 항공우주, 자동차, 정밀 기계 등 고부가가치 산업일수록 실제 시제품을 제작하기 전 가상 세계에서 물리적 현상을 정밀하게 구현해 보는 '엔지니어링 시뮬레이션'의 가치는 절대적이다. 시뮬레이션 산업의 문턱을 낮추고 글로벌 시장 공략에 나선 대전의 딥테크 스타트업 '에브리심'의 기술적 성과와 비전을 소개한다.

◇시뮬레이션, 고효율·고비용 높은 장벽

항공기 기체나 자동차 엔진처럼 정밀도가 중요한 제품일수록 설계 단계에서 성능을 검증하는 과정은 필수다. 과거에는 시제품을 만들어 테스트를 반복했으나, 이는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수반했다.

이를 대체하기 위해 '전산유체역학(CFD)'과 '유한요소해석(FEA)'이라는 기술이 도입됐다. 이 기술들은 공기의 흐름이나 물체의 강도 같은 복잡한 물리 법칙을 수학적으로 계산해 내는 방식이다. 엔지니어들은 이 계산 기술이 탑재된 전용 소프트웨어를 통해 컴퓨터 화면 속에서 가상 실험을 진행하며 설계 오류를 미리 수정했다.

하지만 활용 환경은 지극히 제한적이었다. 물리 법칙을 계산하는 소프트웨어 라이선스 비용은 연간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에 달했다. 복잡한 수학 계산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일반 PC가 아닌 고성능 컴퓨터(워크스테이션) 같은 전용 장비도 별도로 구축해야 했다. 40-50시간 이상의 전문 교육을 받은 석·박사급 인력까지 요구되면서, 시뮬레이션은 일부 대기업이나 국책 연구기관의 전유물로 머물러 왔다.

에브리심 웹사이트

◇클라우드·AI로 해법…장비·인력 장벽 낮춘다

최근에는 이런 구조가 바뀌고 있다. 고성능 연산을 개별 장비가 아닌 클라우드에서 처리하는 방식이 확산되면서다.

각 기업이 값비싼 별도의 장비를 구축하지 않아도 원격 서버의 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셈이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에서 스핀오프한 '에브리심'은 국가 슈퍼컴퓨팅 인프라 개발 경험을 바탕으로 설치가 필요 없는 웹 기반 시뮬레이션 환경을 구축했다.

자체 엔진에 AI 자동화를 적용해 복잡한 전처리 과정을 줄였고, 격자 생성 등 핵심 작업도 자동화했다. 사용자는 별도의 고사양 장비 없이도 브라우저에서 구조해석과 유동해석을 수행할 수 있다.

공간을 디지털 단위로 쪼개 계산을 준비하는 '격자 생성' 과정을 자동화해 비전문가도 설계값만 입력하면 결과를 얻도록 설계했다. 비용 역시 사용한 만큼만 지불하는 방식을 도입해 도입 부담을 줄였다.

에브리드론(EveryDrone) 프로그램

◇CES 2026 혁신상 빛나는 'AI 3-엔진' 설계 혁신

에브리심의 기술은 드론 설계 자동화 플랫폼 '에브리드론(EveryDrone)'에서 가장 직관적으로 드러난다.

이 플랫폼은 사용자가 목표로 하는 비행시간이나 탑재 중량을 문장으로 입력하면 AI가 설계부터 검증까지 전 과정을 주도한다.

핵심은 세 단계로 이루어진 'AI 3-엔진' 구조에 있다.

첫째, 개념 엔진(Concept Engine)이 입력된 요구 조건에 맞춰 초기 설계안을 도출한다. 둘째, 탐색 엔진(Discovery Engine)이 수백 가지 이상의 설계 조합을 시뮬레이션하며 최적의 형상을 찾아낸다. 마지막으로 검증 엔진(Validation Engine)이 고정밀 물리 법칙을 적용해 최종 성능을 확정한다. 단순히 AI가 결과를 예측하는 방식에 그치지 않고, 실제 물리 법칙 기반의 고정밀 엔진이 최종 성능을 확인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복잡한 전처리 과정도 크게 줄었다. 시뮬레이션에서 가장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격자 생성(Mesh) 단계가 자동화되면서, 사용자는 별도의 설정 없이 조건 입력만으로 해석을 수행할 수 있다.

설계, 해석, 검증이 각각 나뉘어 진행되던 기존 방식과 달리, 하나의 흐름으로 통합된 점도 특징이다. 복잡한 항공우주 엔지니어링 과정을 보다 직관적인 형태로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플랫폼은 CES 2026 혁신상을 수상하며 기술 완성도를 인정받았다

에브리드론(EveryDrone) 프로그램

◇항우연 실증으로 검증된 신뢰도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의 핵심 지표는 실제 물리 현상과의 일치율이다.

에브리심은 한국항공우주연구원(KARI)이 참여한 실증 사업을 통해 풍동시험(Wind Tunnel Test) 데이터 대비 97%의 정확도를 확보했음을 증명했다.

실제 프로젝트 적용 결과, 비행 성능은 20% 향상되었으며 개발 기간과 비용은 각각 57%, 70% 절감되는 성과를 거뒀다.

활용 범위 역시 항공·드론 분야를 넘어 방산, 산업기계, 로보틱스 등으로 확장되는 추세다.

관련 솔루션도 항공 특화 CFD 솔루션인 '에브리에어로'를 비롯해 실내 공기질 해석용 '에브리에어', 구조해석 솔루션 '에브리스트럭처' 등 분야별 전문 라인업을 구축했다

설립 1년 반 만에 100개 이상의 기업 고객을 확보하고 7개 산업 도메인에서 600건 이상의 실증 사례를 축축한 점은 기술의 범용성을 입증한다.

이석근 에브리심 대표가 미국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세계 최대 규모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플러그앤플레이에서 관계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에브리심 제공

◇대전 딥테크 저력, 세계로

에브리심의 시선은 북미를 포함한 해외 시장으로 향한다. 플러그앤플레이(PnP)와 500글로벌로부터 시드 투자를 유치하고 실리콘밸리에 사무실을 마련하는 등 글로벌 표준 솔루션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이석근 대표는 "시뮬레이션은 지금까지 일부 대기업 중심의 도구로 인식되어 왔으나, 에브리심은 그 문턱을 낮추고 비용과 시간의 비효율을 줄여 시뮬레이션의 대중화를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연구소의 기술이 시장으로 나와 산업 현장의 비효율을 개선하고 있는 에브리심의 행보는 딥테크 스타트업이 전통 제조 환경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주요 사례가 되고 있다.

"모든 산업·사람 위해 기술 대중화 이끌 것"

이석근 에브리심 대표

"꿈을 꾸고 도전하는 일이 생각보다 위험한 일은 아닙니다."

대전 유성구 어운동에서 초·중·고를 모두 졸업한 '대전 토박이' 이석근 에브리심 대표가 인터뷰 내내 강조한 말이다.

그는 기술력에 대한 과시보다 '도전'의 가치를 먼저 꺼내 들었다. 대전에 본사를 두고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결정 역시 거창한 전략 이전에, 하고 싶은 일을 주도적으로 해보겠다는 개인의 선택이었다

이 대표가 선택한 길은 클라우드와 인공지능(AI)을 결합해 공학 시뮬레이션의 문턱을 낮추는 것이었다. 국가 연구소 재직 시절, 수많은 기업이 시뮬레이션의 필요성을 절감하면서도 수억 원에 달하는 비용과 전문 인력 부족으로 인해 포기하는 현실을 목격한 것이 창업의 발단이 됐다. 특정 전문가의 전유물로 머물러 있는 기술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야 한다는 확신이 든 순간이었다.

회사 이름인 '에브리심'에는 이러한 그의 진심이 투영됐다.

'모든 것을 시뮬레이션한다(Every Simulation)'는 의미의 사명은 모든 산업과 사람이 제약 없이 이 기술을 활용하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이 대표의 최종 목적지를 가리킨다.

그는 전문가용 툴의 복잡한 절차를 자동화하고, 처음 접하는 엔지니어도 즉각 이해할 수 있는 직관적인 환경을 구축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

하지만 지역에서 혁신을 이어가는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기술보다 더 어려운 문제는 사람이었다. 서울과 동일한 조건으로 채용 공고를 내도 지원자 수는 20배 가까이 차이가 났다.

그는 우수한 인재들이 전공과 무관하게 '대기업 간판'을 우선하는 현실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석근 에브리심 대표가 해외 바이어들 사이에서 제품 소개를 하고 있다. 에브리심 제공

그러면서 "시뮬레이션을 평생 연구한 박사가 갈 곳이 없다는 이유로 전혀 다른 분야를 다시 공부하겠다고 할 때 큰 허탈함을 느꼈다"며 "전공을 살려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대전에도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청년들에게는 조직의 이름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기준으로 선택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는 뜻이었다.

기업의 자생력을 키우기 위한 제도적 뒷받침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지금은 요리사에게 조미료 쓰는 법만 알려주는 수준이다. 중요한 건 실제 시장에서 경쟁해볼 기회다"며 현재의 지원 방식이 실무적인 경쟁력을 키우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글로벌 기업과 기술을 직접 겨룰 수 있는 실증(PoC) 중심의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의 실무적 지원만큼이나 이 대표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혁신을 지속할 수 있는 내부의 힘, 즉 '사람 중심 조직 문화'다.

외부의 지원에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성과를 내기 위해 에브리심은 직원의 40%가 카이스트 출신일 만큼 탄탄한 기술력을 확보했다.

동시에 학력과 관계없이 오직 실력으로 핵심 역할을 맡는 실무 중심 조직을 지향한다. 대표의 발표에도 자유롭게 의견을 내고 비판할 수 있는 수평적 문화는 에브리심이 글로벌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기반이 되고 있다.

이석근 대표가 꿈꾸는 미래는 명확하다. 시뮬레이션이 일부 전문가의 도구가 아니라, 제품 개발 과정에서 누구나 사용하는 기본 인프라가 되는 시대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는 대전의 가능성과 도전을 준비하는 이들을 향해 마지막 멘트를 남겼다.

그는 "대전은 생각보다 멀지 않은 곳이고, 이곳에도 세상을 바꿀 준비가 된 스타트업이 많다. 남들이 무시해도 좋은 타이틀보다 자신의 애정과 실력을 쏟을 수 있는 곳을 찾아달라. 바보 같아 보일지라도 꿈을 향해 던지는 도전은 결코 위험하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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