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사남' 1600만 흥행 속 울고 있는 한국 영화계…모두가 살 방안은
스크린 집중 제한 제도·대규모 펀드 조성과 세제 혜택 필요성 강조
배우 유지태· 감독 봉준호 등 영화인 581명 정책 제안에 이름 올려
[미디어오늘 정민경 기자]

“일본 영화 '국보'의 경우 1000만 관객이 넘는데 6개월 이상이 걸렸다. 그러나 최근 '왕과 사는 남자'의 경우 한 달 만에 1000만 관객이 넘었고 최근에는 1600만 명이 넘었다. 이는 다른 영화를 틀지 않고 한 영화만 몰아서 틀었던 결과다. 하나의 영화가 잘 될 때 한 영화만 틀면, 영화관이 '반짝' 잘될 수는 있다. 극장 입장에서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점유율이 낮은 영화는 떨어뜨리고 단기간 이익을 보려는 구조다. 그러나 이 구조가 누적되면서 전반적 영화 산업계의 손해가 올 수 밖에 없었다.”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열린 '2026년 한국 영화 산업의 위기와 대책' 정책제안 기자회견에서 이은 한국영화제작가협회장이 한 말이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영화인들은 △스크린 집중 제한 제도 즉시 도입 △1000억 대 대형 펀드 조성 △대형펀드와 중급펀드를 위한 정부지원책과 조세 감면제도 도입을 제안했다.
김병인 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 이사장, 김승범 나이너스엔터테인먼트 대표, 박경신 변호사, 박관수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부대표, 이은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회장, 황경선 애니메이션 제작자가 이날 기자회견에 참여했다. 이은 한국영화제작가협회장은 “이번 정부 들어 대통령께서도 영화 산업 문제와 그 해결책에 대해 귀를 열겠다고 했고 현장인들의 조언도 구하고 있다”며 “지금이야말로 이 어려운 문제에 대해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타이밍이고, 정말로 바뀔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배우 유지태· 감독 봉준호 등 영화인 581명 정책 제안 함께 이름 올려
이번 정책 제안에는 여성영화인모임,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지역영화네트워크, 한국독립애니메이션협회, 한국독립영화협회, 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 한국예술영화관협회, 한국영화감독조합이사회, 한국영화마케팅사협회, 한국영화미술감독조합,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한국영화촬영감독조합,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등이 서명했다. 배우 김규리, 문성근, 문성환, 문소리, 박중훈, 박철민, 유지태와 감독 백승우, 봉준호, 윤가은, 임권택, 임순례, 정지영 등 영화인 581명이 이번 제안에 이름을 올렸다.
정책제안자들은 기자회견에서 “2025년 한국은 순제작비 30억 원이 넘는 상업 영화의 개봉 편수가 30편을 넘지 못했다. 2000년대 초중반에 100편 이상을 만들어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 시기를 이루었던 기억이 가물거릴 정도”라며 “한국 영화 산업의 위기는 2020년부터 약 2년간 전 세계를 뒤흔들었던 팬데믹 사태와 그 사이 안방을 차지한 넷플릭스 공세때문으로 인식되고 있다. 2019년 2억3000만 명이었던 관객수가 2025년말 기준 1억600만명으로 그 절반도 넘지 못한 46%를 기록하고 있다”며 영화 산업의 현실을 지적했다.
이들은 “3개사로 과점된 국내의 극장 체인들은 오랜 기간 동안 흥행하는 한 두 영화에 좌석을 몰아주는 관행을 되풀이 했다”며 “흥행 여부와 관계없이 영화가 극장에 머무는 시간이 극도로 짧아졌다. 조기 종영된 영화가 바로 IPTV나 글로벌 OTT 플랫폼으로 넘어 가면서 관객들은 굳이 개봉관을 찾을 필요가 없어졌다. 극장은 스스로 무너진 것”이라 강조했다.

스크린 집중 제한 제도·대규모 펀드 조성과 세제 혜택 필요성 강조
이들은 첫 번째 정책 제안으로 '스크린 집중 제한 제도' 도입을 꼽았다. 이들은 “극장 체인을 소유하고 있는 소수의 대기업들의 독과점과 그들이 제작과 유통까지 차지하고 있는 수직계열화”를 지적하며 '좌석 몰아주기' 문제점을 설명했다. 이들은 “2025년 12월17일부터 올 초까지 약 3주간은 '아바타3'와 '주토피아2'가 전체 극장 좌석점유율의 85%를 차지했다”며 “이 시기에는 소비자인 관객이 극장에 가도 볼 수 있는 영화가 단 두편이 전부였다. 갈때마다 상품이 두세개 뿐인 매장을 손님들이 자주 찾겠느냐”면서 집중 제한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 정책 제안은 '대형 펀드 유치'다. 이들은 “2025년 한국에서 상업 영화의 평균 제작비는 100억원 전후로 추정된다. 최근 제작비 규모가 조금 낮아지고 있지만 이미 커져버린 제작비 규모를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500억원 규모의 펀드가 4~5개 이상, 1000억원대 규모의 펀드가 2개는 조성되어야 하고 정부가 앵커 출자자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세 번째 제안은 일반투자자(LP) 유치를 위한 세제 혜택이었다. 이들은 “2024년과 2025년 조성된 창투사들의 영화 관련 펀드의 경우 모태펀드의 50% 출자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일반 투자자(LP)의 투자 유치를 하지 못해 펀드 조성에 실패하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한시적이라도 세제 혜택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이들은 최근 임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영비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 철회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법안의 핵심은 극장 종료 후 6개월 동안은 어떠한 플랫폼에도 영화를 공급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라며 “글로벌 OTT의 공세를 막아 극장을 보호해주겠다는 취지는 알겠으나 스크린 몰아주기로 1개월만에 1000만명 관객을 모으고 조기 종영하는 현재의 극장 운영 하에서 수많은 영화들의 상영 기회가 박탈되는 현실에서는 임오경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잘못된 처방”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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