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보도…도시의 표면에서 발견하는 새로운 풍경
7월19일까지 전남도립미술관서
개관 구성…회화·드로잉 61점
“지역 풍경, 현대미술로 재조명”

일상의 공간인 도로와 보도, 교차로, 주차장 등을 '지구의 피부'라고 표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전시가 열린다.
전남도립미술관은 오는 7월 19일까지 벨기에 화가 쿤 반 덴 브룩(Koen van den Broek)의 작업 세계를 조명하는 개인전 '지구의 피부'를 개최한다고 9일 밝혔다.
쿤 반 덴 브룩은 도로와 보도의 균열, 차선, 그림자처럼 우리가 평소에 무심코 지나치는 '땅의 작은 흔적들'을 통해 익숙한 장소를 새롭게 보게 만든다.
그의 시선은 남도의 해안과 갯벌, 콘크리트 제방과 아스팔트 도로가 함께 있는 풍경과도 닿아 있고 관람객이 일상의 표면을 다시 바라보도록 이끈다.
작가는 어린 시절, 학교에 가는 길에 보도블록의 타일 수를 세거나 틈 사이에 자란 풀과 이끼를 바라보며 긴장을 풀곤 했다. 이러한 경험은 땅의 표면을 단순한 바닥이 아니라, 생각과 감각이 머무는 공간으로 받아들이는 계기로 이어졌다.
전시 제목 '지구의 피부'는 이러한 개인적인 기억에서 출발해 우리가 서 있는 세계를 다시 느끼게 하려는 시도를 담고 있다.
건축과 공학을 전공한 그는 회화로 전향한 이후 25년 넘게 도로, 보도, 교차로, 주차장 등 도시의 주변 공간을 꾸준히 탐구해왔다.
로스앤젤레스, 뉴욕, 라스베이거스, 사막의 고속도로뿐 아니라 일본, 쿠바, 한국 등 세계 여러 도시를 여행하면서 직접 촬영한 사진을 바탕으로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그의 작품은 영화의 한 장면과 같다. 포착된 순간들이 빠르게 지나가면서도 동시에 멈춰 있는 듯한 분위기를 준다.
작가는 사진은 작품의 바탕으로, 회화는 장면의 구도와 시점으로 표현했다.
화면 아래에서 잘려나간 차선과 비스듬히 가로지르는 보도, 화면 밖으로 이어지는 그림자와 경계는 실제 장소를 보여주면서도 점차 단순한 선과 면, 색의 조합으로 바뀌면서 추상적인 화면으로 이어진다.
반복해서 등장하는 균열, 연석, 그림자, 새와 같은 요소들은 우리가 쉽게 지나치는 장면을 다시 보게 만들고 익숙한 풍경을 낯설게 바꿔 놓는다.
오늘날 기후 위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작가가 주목해온 '땅의 표면'은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표면은 웅장한 자연 풍경이 아니라, 닳아버린 아스팔트, 덧칠된 차선, 빗물 자국, 갈라진 틈 사이로 드러난 흙과 같은 모습이다.
작가는 실제 도로 공사에 쓰이는 타르와 교통 표지용 페인트를 캔버스에 사용해 인공적인 재료와 자연이 만나는 지점을 화면에 드러낸다. 이를 통해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땅에 쌓인 시간과 흔적을 느끼게 한다.
이번 전시는 1990년대 후반부터 최근작까지의 회화와 드로잉 61점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사진과 인터뷰 영상 등 다양한 자료도 함께 소개된다.
특히 작가가 전남도립미술관 설치 기간 동안 전시장에 머무르면서 벽면에 직접 그린 드로잉이 포함돼 선과 리듬이 전시 공간 전체로 확장된다.
완성된 작품과 현장에서 그려진 드로잉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이번 전시는 총 다섯 개의 전시실로 구성돼 연대기적 배열이 아닌 이미지와 물질의 흐름에 따라 작가의 시선이 확장되는 과정을 따라간다.
1전시실 '도시의 장면들'에서는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작업을 중심으로 연석과 차선, 그림자 등의 도로 요소가 도시 구조를 드러내는 풍경의 단면으로 제시된다.
2전시실 '도로의 이미지들'에서는 'Dead End', 'The Edge' 연작을 통해 도로와 건축의 일부가 강렬한 색면과 단순한 구도 속에서 추상적 구성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3전시실 '균열의 풍경'에서는 갈라진 아스팔트, 타르 자국, 교통 표식 등이 확대돼 도시 표면에 축적된 시간성과 물질성을 드러낸다.
4전시실 '이미지와 개입'에서는 존 발데사리(John Baldessari)와의 협업작 'This is an Example of That'(2008)을 비롯해 영화 스틸 이미지 위에 색면과 선을 개입시키는 작업, 그리고 타르와 도료를 활용한 회화를 통해 이미지 차용과 회화의 물질성을 탐구한다.
5전시실 '지구의 피부'에서는 사막, 교외, 도시 외곽 등 다양한 경계 공간에서 포착된 도로 풍경과 함께 사진, 작업 노트, 인터뷰 영상 등 아카이브를 제시하면서 서로 다른 장소에서 수집된 이미지들이 하나의 표면 위에서 중첩되는 장면을 구성한다.
도립미술관 관계자는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활발히 활동해온 쿤 반 덴 브룩의 개인전을 남도에서 선보이게 돼 뜻깊다"며 "이번 전시는 일상적인 도로와 표면을 통해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세계를 새롭게 인식하게 하고 지역의 풍경을 동시대 미술의 맥락 속에서 재조명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