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실 배양 '미니 뇌'로 개발한 뇌질환 치료법 올해 첫 임상

실험실에서 인간의 뇌세포로 키운 '미니 뇌'인 오가노이드가 뇌과학 연구 판도를 바꾸고 있다.
8일(현지시간) 국제학술지 '네이처' 보도에 따르면 뇌 오가노이드가 뇌 발달 연구는 물론 뇌질환 연구를 송두리째 바꾸고 있다.
뇌 오가노이드는 성인의 세포를 초기 발달 상태로 되돌린 유도만능줄기세포(iPSC)로 만든 3차원 뇌 모형이다. 지름 4밀리미터 안팎의 작은 구형 조직이지만 실제 뇌처럼 신경세포가 생겨나고 이동하며 서로 연결되는 과정을 재현한다. 실험 동물이나 구하기 어려운 인간 뇌 조직에 의존해온 기존 연구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오가노이드 기술의 첫 돌파구는 2013년 매들린 랭커스터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원이 열었다. 네이처에 발표된 이 연구는 실험 중 세포들이 뭉치는 현상을 관찰하다 우연히 배아 뇌와 닮은 구조를 발견한 데서 시작됐다.
인간 세포로 만든 오가노이드가 쥐의 것보다 훨씬 오래, 훨씬 많은 세포를 만들어냈다. 쥐의 오가노이드는 9일이면 신경세포 생성을 마치지만 인간의 오가노이드는 200일 이상 계속 자랐다. 인간의 뇌가 다른 포유류보다 훨씬 느리게 발달하는 특성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이후 연구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페르난다 쿠골라 브라질 상파울루대 연구원 등 국제 공동연구팀은 2016년 네이처에 발표한 연구에서 브라질에서 유행한 지카 바이러스가 신경 전구세포를 집중적으로 감염시켜 소두증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오가노이드로 규명했다. 소두증은 뇌가 정상보다 작게 발달하는 질환이다.

자폐증·조현병 같은 신경발달 질환이 뇌에서 어떻게, 언제 나타나는지 추적하는 연구도 활발하다. 알리손 무오트리 미국 샌디에이고캘리포니아대(UC샌디에이고) 교수는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를 현대 인간 오가노이드에 넣어 인류 진화 과정에서 뇌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연구한 결과를 2021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공개했다.
최근에는 여러 뇌 부위 오가노이드를 융합한 '어셈블로이드'도 등장했다. 세르지우 파슈카 스탠퍼드대 교수는 뇌의 바깥층인 대뇌피질과 안쪽 기저 영역 오가노이드를 붙였더니 다른 신경세포의 흥분을 가라앉히는 역할을 하는 억제 신경세포가 실제 태아 뇌에서처럼 피질 쪽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하는 것을 처음으로 발견하고 연구결과를 2017년 네이처에 발표했다.
파슈카 교수팀은 척수·피질·근육 오가노이드를 합쳐 척수 부분을 전기로 자극하자 근육 부분이 실제로 수축하는 것을 재현했다. 고추의 매운 성분인 캡사이신으로 감각 오가노이드를 자극했더니 뇌 피질 부분에서 전기 신호가 발생하는 것도 확인했다. 피부에서 느낀 통증 신호가 척수를 거쳐 뇌까지 전달되는 과정을 실험실에서 구현한 것이다.
올해는 오가노이드를 활용한 연구를 토대로 개발한 치료법의 첫 임상시험이 진행될 예정이다. 유전자 돌연변이로 신경세포가 제자리를 찾아 이동하지 못해 뇌전증과 자폐가 나타나는 희귀 질환인 '티모시증후군' 치료법에 대한 임상시험이다.
파슈카 교수팀은 2024년 네이처에 발표한 연구에서 어셈블로이드 안에서 유전자 오류를 교정하자 신경세포 이동이 회복된다는 것을 확인하고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을 추진하고 있다.
한계도 남아 있다. 오가노이드는 실험실에서 수개월 이상 유지하기 어렵고 혈관이나 면역세포 같은 복잡한 구조를 재현하지 못한다. 사춘기 이후 발병하는 조현병 같은 질환을 연구하려면 수십 년 치 뇌 발달을 재현해야 하는 것도 과제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오가노이드가 더 복잡해지면서 언젠가 고통을 느끼거나 의식에 가까운 무언가가 생겨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현재 수준에서는 불가능하지만 연구자들 사이에서 미리 윤리적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파슈카 교수는 지난해 신경생물학자·사회과학자·윤리학자들을 모아 관련 논의를 진행했으며 국제적인 감시 체계를 촉구하는 논문을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위르겐 크노블리히 빈 분자생명공학연구소 소장은 "오가노이드 분야는 지금 변곡점에 있다"며 "기술이 빠르게 성숙한 만큼 윤리·규제·기술적 한계 같은 새로운 도전에도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
[임정우 기자 jjw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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