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기장 아홉산숲 기행] 시공간 사라진 무념의 세계에 댓잎 소리만 귓가 스쳐

김진성 2026. 4. 9.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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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평 문씨 일가 9대에 걸쳐 지켜온 자연
산림청 '보존해야 할 아름다운 숲' 선정
금강송 군락 장엄한 풍경 보는 이 압도
200년 전 중국서 들여온 맹종죽도 인기
드라마·영화 촬영지 부각되며 유명세도
400년 전부터 남평 문씨 일가가 9대째 가꿔온 부산 기장군 아홉산숲. 맹종죽으로 조성된 만평대숲의 대나무들이 하늘을 빼곡히 메우고 있어 장관이다.
세상이 온통 꽃 천지다. 매화와 산수유꽃. 이제는 벚꽃이다. 봄의 절정을 알리는 꽃 만큼이나 미세먼지가 극성이다. 마음껏 꽃 구경을 하려 해도 미세먼지가 말썽이다. 미세먼지를 피하고, 들뜨고 어지러운 마음을 내려 놓기에 숲 만한 곳이 없다. 화려한 꽃 세상인 요즘 울창한 숲은 또 어떤 모습일까. 부산 기장군 철마면 아홉산숲에 다녀왔다.
왼쪽부터 금강송 구갑죽 편백림.

■소박한 첫인상의 반전, 장엄한 금강송·맹종죽

부산 기장군에는 아홉산(361m)이 있다. 봉우리가 9개로 이뤄져 있다고 해서 아홉산이란 이름이 붙었다. 아홉산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아홉산숲이다.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부산의 대표적인 힐링 장소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아홉산숲의 첫인상은 소박했다. 매표소를 지나 오른 완만한 능선은 마치 마을 뒷동산 같았다. 능선에서 보이는 도로변 벚꽃나무를 바라보다 바람결에 실려온 향긋한 봄 꽃 향기에 취했다. 장성한 아들이 함께 걷고 있는 나이든 아버지의 옷 매무새를 고쳐주는 모습이 정겹다. 훈훈한 가족의 뒤를 따라 걸으며 “별 것 없는데…”라고 느끼는 순간, 엄청난 반전이 벌어졌다. 향긋한 소나무 향기와 함께 장엄한 금강송 군락지가 눈 앞에 나타났다. “아직 시작도 안 했다”며 아홉산숲이 미소지었다.

성인 한 사람이 안지도 못할 정도로 굵은 금강송. 목을 한껏 꺾어 위를 올려 봐야만 보일 듯한 소나무의 자태가 웅장했다.

하늘을 뚫을듯한 기세로 솟아있는 금강송들 밑에는 ‘누운 주목’들이 잔디처럼 깔려 있다. 바닥에 누워 옆으로 자라는 누운 주목과 금강송의 조화는 신비로웠다. 영남 지방에서 보기 힘든 아홉산숲의 금강송들은 수령이 400년을 넘었다. 100그루가 넘는 금강송들은 모두 기장군 보호수로 지정돼 있다.

금강송 군락지에 잠시 앉았다. 솔향이 코를 스치더니 오랜 세월 한 자리에서 버텨 온 그들의 기운이 온몸에 스며들었다. 단전이 묵직해짐을 느끼고 일어서려는데 또 다른 광경이 시선을 압도한다. 맹종죽숲이다. 맹종죽은 키 10~20m에 지름 20cm 정도로 대나무 중 가장 굵다. 200년 전 중국에서 들여와 심어진 것으로 아홉산숲의 대표적인 장소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곳은 과거 마을에서 굿을 하는 곳이어서 지금도 ‘굿터’로 불린다. 안쪽에 공터가 있는데, 번식력 좋은 대나무가 유독 여기만 자라지 않아 신령스러운 땅으로 여겼다. 그러다 2020년 드라마 ‘더 킹:영원의 군주’에 등장하면서 유명해졌다. 이곳에 세워진 돌기둥은 당시 드라마 세트로, 전 세계 관광객이 몰린다. 인도네시아와 미국 등에서 온 관광객들이 이 돌기둥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고 줄을 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곳에서 영화 ‘군도’, ‘협녀, 칼의 기억’, ‘대호’의 명장면이 탄생했다. 기념샷을 남기려다 줄이 길어 포기했다.
관미헌

■피톤치드 가득한 편백숲과 만평대숲

굿터를 지나니 왠지 모르게 시원함이 전해진다. 개잎갈나무와 맹종죽이 양쪽에 마주보고 있다. 아홉산숲에서 가장 시원한 곳이어서 ‘바람의 길’로 불린다. 시원한 바람에 봄 기운이 가득하다. 바람의 길 끝에 영화 ‘대호’ 촬영 때 지은 서낭당이 있다. 여기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왼쪽 길은 편백숲, 오른쪽 길은 평지대밭으로 이어진다.

편백숲으로 길을 잡았다. 편백숲에 오면 늘 머리가 맑아진다. 피톤치드 덕분이기도 하지만 곧고 일정한 크기의 편백나무들을 보고 있으면 안정감이 든다. 편백숲을 지나면 이제 막 꽃을 피우는 진달래 군락을 만날 수 있다. 성급한 진달래는 이미 꽃을 피웠다. 몇 주 뒤면 활짝 핀 연분홍 진달래 무리를 볼 수 있을 것 같다.

진달래 군락을 지나면 평지대밭을 만난다. 아홉산숲의 또 다른 맹종죽숲인 ‘만평대숲’이다. 그 면적이 1만 평(3만 3000㎡)에 이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1960~1970년대 숲지기가 동래 지역 식당을 돌며 잔반을 얻고 시내를 오가는 분뇨차를 끌고 와 밭에 비료로 주면서 숲을 가꿨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만평대숲에 들어서자 자연스레 눈이 감긴다. 도시 소음은 사라지고 바람에 흩날리는 댓잎 소리만 귓가에 스친다. 간간이 들리는 새소리는 추임새다. 시·공간이 사라진 무념의 세계. 숨소리조차 잊었다.

맹종죽 숲을 한 바퀴 돌고 지름길을 따라 입구 쪽으로 내려오면 100년 된 은행나무와 ‘관미헌’이라는 이름의 전통 가옥이 있다. 관미헌은 ‘고사리조차 귀하게 여긴다’는 뜻으로 숲을 지키는 남평 문씨 일가의 철학이 담겨 있다.

고택 주변에는 거북 등딱지처럼 생긴 대나무 ‘구갑죽’‘이 눈길을 끈다. 구갑죽은 짧고 굵다. 맹종죽이 고개를 꺾어 올려다봐야 한다면, 구갑죽은 무릎을 굽혀 낮은 자세로 봐야 한다. 겸손해지는 법을 깨우치게 한다. 1950년대 중국에서 일본을 거쳐 들여온 뿌리를 이식한 것이 작은 정원을 이뤘다. 구갑죽을 보면 어느새 출발 지점으로 돌아와 있다. 총 탐방로 3.2km 구간 약 1시간 30분 정도의 숲속 산책이 금방이다.

■400년간 고집스레 가꾸고 지켜온 명품숲

아홉산숲은 사유지다. 남평 문씨 일가가 무려 9대에 걸쳐 지켜온 숲이다. 금강송, 참나무, 편백, 대나무가 뒤덮고 있다. 숲의 규모는 자그마치 52만㎡(15만 7000여 평)나 된다.

이 숲의 시작은 1592년 임진왜란 때로 거슬로 올라간다. 당시 부산에 살던 남평 문씨 일가는 난리를 피해 철마면 웅천 미동마을로 옮겨왔다. 이후 자손이 번창한 문씨 일가는 이 지역에 적잖은 전답과 임야를 소유하게 됐고, 이웃을 도우며 함께 살아 왔다. 문씨 일가는 ‘자연과 인간은 하나’라는 이치를 가지고 있었고, 이를 실천하며 400년 전부터 숲을 가꾸기 시작했다. 이곳에 대나무와 금강송·편백·참나무 등을 심으며 자연의 소중함을 몸소 실천한 것이다.

여러 차례 위기도 있었다. 가장 큰 위기는 일제강점기였다. 군수물자 조달을 위해 집안의 쇠젖가락까지 빼앗아 간 일제가 아홉산숲의 나무를 베기 위해 들이닥친 것이다. 이때 문씨 일가 어른이 일부러 놋그릇을 숨기다 들킨 것처럼 놋그릇을 내주고는 아홉산숲을 구한 일화는 지금도 유명하다.

해방과 한국전쟁의 무수한 위기를 넘긴 아홉산숲은 또 다른 위기를 맞는다. 1990년대 지자체에서 내건 ‘테마가 있는 임도’ 정책으로 아홉산숲에 행락객들이 몰려들었고, 대나무와 야생난, 희귀식물들이 뿌리채 뽑혀 갔다. 결국 문씨 일가는 아홉산숲을 폐쇄하고 숲 살리기에 나섰다.

‘자연과 인간은 하나’라는 집안 신념을 살려야 겠다고 생각한 문씨 일가는 2003년부터 학술적 탐방 등을 위해 부분 개방을 했다. 아홉산숲은 이듬해 산림청으로부터 ‘22세기를 위해 보존해야 할 아름다운 숲’에도 선정됐다.

자연상태 그대로의 숲을 지켜오던 문씨 일가는 영화와 매체 등에서 아홉산숲이 알려지고, 관람객들의 개방 요구가 잇따르자 2015년 3월 일반에 공개했다. 현재 연간 10만 명이 이곳을 찾는다. 남평 문씨 종손 문백섭 대표는 “임진왜란, 일제 강점기, 해방과 전쟁을 거치고 21세기에 들어서도 결코 숲을 개방하지 않았던 고집이 자연 생태를 그대로 살린 지금의 숲으로 지켜졌다”면서 “우리 아이들에게 맑고 건강한 자연을 오롯이 전해주고자 개방했다. 사람보다 훨씬 오래 사는 숲은 사람과 하나다”고 밝혔다.

‘자연과 인간은 하나다’는 변화지 않는 진리는 아주 오래전부터 전해졌고 누군가에 의해 이렇게 실천돼 왔다.

글·사진=김진성 기자 paper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