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본질 찾던 혜가·승찬 스님”…‘선종 사찰’ 중국 호남성에서 안휘성까지 [정용식의 사찰 기행]
한국 불교 뿌리를 찾아서 (2)

‘마음이 부처요, 마음이 곧 법이니, 법과 부처는 둘이 아니다’라며 기성 불교에 반하며 소림사에서 면벽수행을 하던 달마를 찾아가 제자 되기를 간청하는 사십초로의 신광이라는 스님이 있었다.
사흘 밤낮을 눈 속에 선 채 꿈쩍하지 않고 있었지만 냉정하게 거부하며 쫓을 심상으로 말한다.
“만약 하늘에서 붉은 눈이 내리면 법을 주겠노라”며 자신 앞에 쌓인 눈이 붉게 변할 때까지 받아주지 않겠다고 했다.
그 순간 그 스님은 칼을 빼 단칼에 자기 왼팔을 잘라 붉은 피가 눈밭에 사방으로 휘날리며 붉은 눈처럼 됐다. 그때 달마가 혜가를 향해 무언가를 던졌고, 혜가는 본능에 따라 그것을 잡으려 했으나 이미 팔을 잘라낸 뒤였다.
혜가는 ‘없는 팔로 무엇인가를 잡으려는 행위’를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간절함을 들어낸 입설단비(立雪斷臂, 팔을 잘라 붉은 눈을 휘날리다)란 말이 이렇게 생겨났다. 소림사 스님들이 한 손으로 인사하는 이유, 스님들이 붉은 천을 두른 복장 등도 바로 혜가선사에게서 비롯됐다고 한다.
달마는 신광 스님에게 혜가(慧可)라는 법명과 부처가 가섭을 통해 물러준 ‘금란가사’를 신표로 줘 중국 선종 법맥의 제2조로 인정됐다.
십수 년 만에 찾은 중국의 모습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아무 곳에서나 담배 피우고 꽁초를 함부로 버리는 것은 똑같지만 거리는 깨끗했고 농촌지역도 잘 정비됐다.
7일 동안 한국의 고속철도(KTX)보다 빠르고 쾌적한 대륙열차를 세 번이나 타고 하남성, 안휘성, 호북성, 호남성, 광동성 등 남한의 9배에 가까운 면적과 인구를 가진 5개 성을 지나가면서의 느낌이었다.
정보기술(IT), 인공지능, 자율주행, 첨단로봇 등 최첨단 과학기술을 선도하는 강국으로 성장한 2대 강국(G2)의 단면을 본 것이다.

달마(470~543년)가 “깨달음은 밖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지금 이 마음을 바라보는 데에 있다”며 혜가에게 전달된 선불교는 3조 승찬·4조 도신·5조 홍인으로 이어졌다.
마침내 6조 혜능대사에 와서 남종선으로 완성돼 한국과 일본으로 흘러들어왔다.

안휘성 성도 합비를 지나 잠산 완공산에 3조 승찬(~606년)이 주석했던 삼조사(산곡사)가 있고, 잠산에서 가까운 호북성 황매현에 4조 도신대사의 사조사(정각선원)와 5조 홍인선사의 오조사(서풍선원)가 있다.
선종의 계보, 법맥을 따라 순례길을 떠난다.

하남성 숭산 소림사에는 입설전이 있고, 달마대사가 면벽 수행했던 달마 동굴에도 혜가선사의 팔이 부조돼 있다.

혜가선사가 주석했던 이조암은 소림사에서 1㎞ 정도 떨어진 숭산 발우봉 아래 자리잡고 있고 리프트카를 타고 10여분 올라가야 한다.

한국 사람들이 소림사를 많이 오는 듯 이조암 가는 길엔 한글 말 표지판도 있고, 도교 영향인 듯 무당집처럼 소원을 비는 나무들에는 붉은띠들이 빼곡히 묶여 있다.

혜가선사가 팔을 자르고 불법을 얻은 후 머물며 수행한 이조암에는 큰 높이를 자랑하는 오래된 고목들과 단맛, 쓴맛, 신맛, 매운맛의 네 가지 맛이 나는 우물 네 개가 있다.


물이 나지 않아 고생하는 이조암에 달마가 제자를 위해 지팡이로 땅을 쳐서 물이 솟아나는 우물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조암 법당에는 팔 하나가 없는 2조 혜가상이 모셔져 있다.

9년 동안 면벽수행 하던 달마대사를 찾아가 제자가 된 혜가 선사는 시경, 서경, 도덕경 등 세속적인 서적에 통달한 마흔을 넘긴 초로의 나이였다고 한다.

출가는 일찍 했지만 도를 구하지 못해 헤매다 달마라는 스승을 만났지만 구하고자 하는 도는 아득했다. 불안한 마음에 달마에게 아뢰었다.
“부처님의 법인을 들려주십시오.”
이에 달마가 “부처님들의 법인은 남에게 얻는 것이 아니니라”고 했다.
그러자 혜가가 말했다.
“제 마음이 편안치 못합니다. 편안케 해 주소서.”
그 말을 들은 달마가 답했다.
“그 마음을 가져오너라. 그리하면 내가 편안히 해 주겠다.”

혜가가 한참을 생각한 후 말했다.
“아무리 마음을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자 달마가 “내가 이미 네 마음을 편안케 하였다”고 답했다.
혜가는 이 말을 듣고 홀연히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불안한 마음은 내 마음에 잠시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허상임을 통찰한 것이다.
마음의 정체를 깨달은 혜가는 6년간 걸식 탁발로 스승을 섬기면서 가르침을 받고 법을 전해 중국 선불교의 2대 조사가 됐다.

달마와 혜가 사이에 이뤄진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는 안심문답(安心問答)은 ‘달마선’ 일명 ‘조사선(祖師禪)’의 출발이라 한다.
‘안심’은 단지 감정의 평온만을 일컫는 게 아니라 두려움과 장애가 사라진, 생사와 득실을 초월한 마음의 본래 자리 해탈을 의미한다.
선불교는 단칼에 번뇌, 망상을 베어 버림으로써 마음을 즉시 구하는 것이다. 모든 고통의 근원이 망상 분별에 있으며 오직 마을 깨달음으로써만 해탈이 가능하다는 것이 중국 선불교의 핵심이 됐다.
혜가는 여러 제자 중 3조 승찬에게 법을 물려주고 천민들과 어울리며 막행 막식하다 교학법사(스님)가 제상에게 밀고로 처형당해 입적했다.

소림사와 이조암이 있던 하남성의 정주에서 삼조사가 있는 안휘성의 남쪽 잠산현을 가기 위해선 정주에서 대륙열차를 타고 안휘성의 성도 합비를 가야만 했다.

대형 공항만큼 크고 여권과 검색을 수시로 하는 중국 철도 역사와 300㎞ 이상 달리는 중국의 대륙열차는 그 자체도 관광 거리였다.
잠시 구경한 열차의 특실 칸은 대형 항공기의 최고 등급인 퍼스트 클래스보다 더 넓고 편리하게 꾸며졌다.

3시간 10여분 수백㎞를 달리는 내내 창밖은 온통 유채꽃이고 산을 볼 수 없는 넓은 평야 지대가 계속됐다. 간헐적으로 풍력발전기가 들판에 설치돼 있고 농촌지역은 깔끔하게 정리된 모양이다.
격세지감을 느낀다.
7500만 인구가 사는 안휘성은 정치중심지라는 안경시와 경제중심지라는 휘주시의 이름을 따서 안휘성이라고 했다.
여름이 길어 1년 2모작이 가능하고 상해로 거쳐 서해로 빠지는 양자강이 안휘성 중부를 관통하고 있다.
안휘성은 신라시대 김교각 스님의 등신불이 있는 불교 성지 고화산과 중국의 500나한 중 455번째 나한이라는 신라 무상 스님의 흔적도 있는 곳으로 아마도 양자강 따라 신라인들이 많이 들어왔을 것으로 보인다.

800만 도시 안휘성의 수도 ‘합비’는 지붕 위에 말머리를 세우는 마두문화와 청색 기와, 흰 벽의 건축물이 특징이다.

합비 기차역에서 버스로 50여분 정도 가면 세 하천이 만나는 곳에 형성된 마을 ‘삼하고진(三河古津)’은 그러한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는 곳이다.
이천년이 된 도시로서 명나라, 청나라를 거치면서 강을 따라 상업이 발달한 곳이다.

수로를 따라 관광 쪽배를 타고 15분 정도 이동하면서 보니 좌우에 흰색 벽체와 청기와의 고택이, 그리고 수로 중간중간 돌다리들이 비교적 온전하게 보존돼 있다.


좁은 골목길로 이어진 마을 내부는 흰색 전통 건축물이 연속적으로 배치돼 있고 관광객들을 위한 상점가로 이어져 있다.


곳곳에는 태평천국 당시 격전지 중 하나임을 증명하듯 관련 박물관과 기념관, 전시 공간들도 눈에 들어온다.

보존 구역으로 지정된 ‘삼하고진’에는 중국 소수민족 전통 복장들을 대여해주고 있다.
많은 내외국인이 전통의상을 차려있고 사진 촬영과 관광을 즐기고 있는 모습이 서울 북촌과 광화문을 연상케 한다.

어느 날 40세쯤 되어 보이는 사나이가 2조 혜가 앞에 나타나 절을 하고는 다음과 같이 물었다.
“저는 오래전부터 풍병(나병)을 앓고 있습니다. 무슨 죄가 그리도 많은지 스님께서 참제(懺除)해 주십시오.”
이에 혜가가 말했다.
“죄를 가지고 오너라. 그러면 없애 주리라.”
사내는 한참 생각해 본 후에 “죄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고 했다.
그러자 혜가는 “그러면 너의 죄는 벌써 없어졌다, 앞으로 불,법,승 삼보에 의지하라”고 말했다.
사내가 물었다.
“앞에 스님이 계시니 승보는 알겠지만 무엇이 불보와 법보입니까?”
이에 혜가는 “마음이 부처요, 마음이 법이다. 법과 부처가 둘이 아니며 승보 또한 그러하다”고 답했다.
사내는 마음이 열려 비로소 깨달음을 얻게 되자 혜가는 그를 갸륵히 여겨 손수 머리를 깎아주고 “너는 나의 보석이다. 앞으로 승찬(僧璨)이라 부르리라”며 달마로부터 받은 금란가사와 정법을 물려주니 곧 제3조인 승찬대사인 것이다. < 최인호 ‘길없는길’ 2권 66~67에서>
혜가는 북주의 무제가 불교 탄압(破佛, 574~ 577년)을 하자 이를 피해 남쪽으로 수행처를 옮겨 삼조 승찬을 만나 사공산에 머물렀다.
혜가로부터 의발을 전수받은 승찬은 사공산과 천주산을 오가며 이름을 숨기고 수행과 교화를 했다. 승찬은 무제가 죽은 후 불교 부흥이 다시 일어나자 천주산 삼조사에 주석하며 ‘신심명(信心銘)’을 저술하고 본격적으로 교화를 펼쳐나갔다.

승찬의 삼조사는 안휘성 안경시 잠삼현 천주산 도로변 옆에 있다. 505년 건원선사가 창건해 양무제가 산곡사로 이름을 바꿨고 3조 승찬이 이곳에서 교화를 펼치면서 삼조사로 불리게 됐다.
1400여년의 역사를 가진 삼조사는 산 능선에 계단식으로 전각들이 배치돼 있어 웅장하게 보이고, 뛰어난 풍광으로 소림사보다 큰절로 느껴지지만 요란하지 않고 조용한 수행 사찰 같다.

중국 사찰 사천왕문은 포대화상이 입구 중앙에 자리하고 좌우에 사천왕이 포진돼 있다.


사천왕문을 지나 높은 계단 위에 대웅보전이 있는데, 올라가는 길에 승찬이 저술한 선종의 핵심 사상을 기록한 ‘신심명’ 전문이 벽면에 새겨져 있다.


대웅전 뒤에는 승찬이 수행했던 작은 동굴인 ‘삼조동’이 있다.

그 옆 산을 오르는 길목에는 승찬의 법을 이어받은 4조 도신스님과 기인한 만남의 설화가 담긴 ‘해박(解縛)’이라는 붉은 글씨가 새겨진 바위가 있다.

대웅전 옆에는 ‘구건자수보전’이란 현판이 붙은 전각 안에는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셨다는 금동 사리탑도 있다.
승찬의 사리탑 가는 산길을 좀 더 올라가면 삼조사(산곡사)의 개산조인 지공스님의 설화와 관련된 유적들이 있다.

지공과 경합을 했던 백학도인의 설화를 담아 자태를 뽐내는 백학송(白鶴松)과 지공선사가 수행했던 동굴인 ‘보공동’이 길목에 있다.

승찬스님이 법회 하다가 큰 나무 아래서 합장한 채 선 채로 입적한 곳이라는 ‘입화탑(立化塔)’도 길가에 있다.

‘삼조동’에서 10여분 정도 올라오니 또 하나의 절이 나오는데 이곳은 오로지 승찬의 유물 및 발자취가 있는 곳이다.

절 입구에는 청나라 순치황제가 썼다는‘내가 누구냐?’라는 물음이 반복되는 출가 시가 있다.

황제를 그만두고 출가했다고 하니 언뜻 조선 태조 이성계가 떠 오른다.

절 중앙에는 승찬의 묘를 파서 화장한 뒤 나온 사리 300과 중 100과를 모셨다는 사리탑인 ‘각적탑(覺寂塔, 3조탑)’이 웅장하게 자리하고 있어 탑돌이를 시작했다.

조사전에는 삼조사의 창건주 지공선사와 달마대사, 혜가선사, 승찬대사 등 조사상들과 그들의 게송 등 유물들이 전시돼 있다.

승찬이 지은 선어록 ‘신심명(信心銘)’은 대승불교의 중도사상과 공사상 등 모든 가르침과 선의 근본을 짧은 글 속에 모두 포함해 ‘문자로서 최고의 문자’라는 극찬을 받고 있다.

선종의 사상적 기반을 마련하였다고 하여 한국 불자들도 많이 공부하는 선어록이다.
“차별하고 선택(분별)하는 마음이 없다면 도 자체는 어려움이 없다(至道無難 唯嫌簡擇)” <‘신심명’에서>
글·사진 = 정용식 ㈜헤럴드 상무
정리 = 민상식 기자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마약 집유 기간에 시속 182㎞ 음주운전 남태현 1심서 징역 1년…법정 구속은 피해 [세상&]
- 前 야구선수 오재원, 2심 징역 1년 9개월…후배 협박 수면제 대리 처방
- ‘도박·음주운전’ 개그맨 이진호, 뇌출혈 중환자실 입원…“생명 지장 없어”
- 신지 “하루 스케줄 14개씩 소화했는데 수입은 0원” 코요테 무수익 시절 고백
- ‘대림 4세’ 이주영 ‘200억 탈세’ 차은우에 ‘좋아요’ 꾹
- “고산병이네” 눈뜨니 2천만원 헬기…역대급 사기, 에베레스트 ‘발칵’
- “보복 두려워” ‘故김창민’ 또 피해자가 떠나야 하나…스마트워치 지급받았다
- ‘땅콩회항 폭로’ 박창진, 한국공항공사 자회사 임원됐다
- “개미들은 벌벌 떨었는데”…세계 최대 부자들, 하루새 자산 ‘392조원’ 늘었다
- 곽튜브 공무원 아내 ‘김영란법’ 위반 금품 수수했나…‘초고가 조리원’ 협찬 논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