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진 천만영화냐"…스크린 몰아주기에 쓴소리 쏟아졌다

유승목 2026. 4. 9.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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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단체연대회의 기자회견
'스크린 집중 제한 제도' 법제화 주장
“흥행 영화에 스크린 몰아주기 심각
한국만 시장 침체 이유 모르나”

"與 '홀드백 법안'은 '블랙아웃 법' 비판도
지난달 25일 서울 용산구의 한 영화관에서 관람객들이 1500만 관객 돌파를 앞둔 영화 '왕과 사는 남자' 티켓을 구매하고 있다. /뉴스1


관객 감소와 신작 부재 여파로 투자·제작·배급으로 이어지는 한국 영화산업의 밸류체인이 붕괴 직전에 다다랐다는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영화인들이 9일 ‘스크린 집중 제한 제도’의 도입을 주장했다. 수익성 회복을 위해 ‘왕과 사는 남자’ 등 일부 흥행영화에만 스크린을 몰아주는 최근 극장가 상영방식이 오히려 산업 기반을 흔들고 있다는 진단에서다.

영화단체연대회의는 이날 서울 통인동 참여연대에서 ‘2026년 한국 영화 산업의 위기와 대책’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정책을 제안했다. 영화단체연대회의는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 한국예술영화관협회 등 13개 영화 관련 단체가 모인 협의체다.

영화단체연대회의는 이날 발표한 기자회견문에서 “한국영화만이 다른 나라와 비교해 코로나19 이전의 회복력을 보이지 못하는 이유는 취약한 산업 구조 때문”이라며 “산업의 건정성과 수익성을 회복하기 위해 합리적인 규제가 시급하다”고 밝혔다.

 "영화 위기 원인은 스크린 몰아주기"

이들은 산업의 구조적 취약성을 유발하는 원인으로 스크린 독과점을 꼽았다. 흥행 1위 영화에 좌석을 몰아주는 관행이 고착화돼 극장 다양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흥행에 성공하지 못한 영화들은 극장에 머무는 대신 조기 종영 후 다른 플랫폼으로 빠르게 넘어가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관객이 극장에 갈 유인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김병인 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 이사장이 9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2026년 한국영화산업의 위기와 대책' 정책 제안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

김병인 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 이사장은 “한국영화의 위기를 단적으로 얘기하자면 만드는 쪽의 실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라며 “한 두 영화가 극장 전체를 잡아먹는 방식의 배급 관행이 실력 약화를 불러왔다”고 말했다.

이들이 거론한 단적인 예가 지난해 연말 ‘아바타3’와 ‘주토피아2’의 흥행이다. 지난해 12월 중순부터 약 3주간 두 영화는 전체 극장 좌석점유율의 85%를 차지할 만큼 스크린을 독식했다. 올해 최고 흥행작인 ‘왕사남’ 역시 3·1절 연휴였던 지난달 1일 55.7% 상영점유율을 기록했다. 일각에서 ‘만들어진 천만영화’란 말이 나올 만큼 극장 밀어주기 수혜를 본 영화인 셈이다.

영화단체연대회의는 구체적으로 스크린 집중 제한의 상한 기준을 ‘좌석점유율 기준 20%’로 제시했다. 이은 한국영화제작가협회장은 “지난해 영화 ‘국보’가 일본에서 천만 관객을 넘길 때까지 6개월이 걸렸지만 ‘왕사남’은 4주 만에 천만을 넘겼다”며 “스크린 집중을 제한하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될 것”이라고 했다.

흥행 영화 몰아주기를 할 경우 단기적으로 극장 수익 등을 극대화할 수 있지만, ‘극장에 볼 영화가 없다’는 인식을 키워 중·장기적인 영화관람 수요가 낮아질 것이란 우려다. 양우석 영화감독은 “극장에 온 관객에겐 스크린은 많은데 한 두 영화 밖에 없어 선택이 제한되는 것”이라며 “(영화 티켓) 가격은 올랐는데 서비스는 제한되는 문제가 있다”고 했다.

 與 '홀드백 개정안'도 철회해야 

지난달 19일 서울의 한 영화관의 모습. /연합


영화계는 그간 코로나19 팬데믹과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활성화 겹악재가 낳은 관객 감소 등 외생변수를 주된 영화시장 장기 불황의 원인으로 인식해 왔다. 하지만 이날 영화단체연대회의는 불공정한 시장 관행과 이에 따른 제작시장 전반의 품질 저하가 위기를 심화하고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팬데믹 이후에도 유독 한국 영화시장만 회복을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내부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다. 실제로 영화계에 따르면 일본은 지난해 극장 관객 수가 1억8800만 명으로, 2019년(1억9400만)에 근접한 수준으로 회복했다. 프랑스 역시 80%의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한국은 지난해 관객 수가 1억 명으로 2019년(2억3000만) 대비 반토막에 불과한 상황이다.

이런 관점에서 영화단체연대회의는 최근 한국 영화시장의 뜨거운 화두였던 ‘홀드백 법제화’에 대한 정부와 여당의 대책에도 날을 세웠다. 특히 최근 임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극장 상영 종료 후 6개월 간 어떤 플랫폼에도 영화를 공급해선 안 된다는 내용을 골자로 발의한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영비법) 개정안을 두고 “전면 철회해야 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임 의원의 법안은 정상적인 홀드백이 아닌 ‘블랙아웃’ 법안”이라며 “절대 지지하지 않는다”고 했다. 박 교수는 “영화를 못 보게 하는 게 아니라 극장에 오래 머물도록 하는 상영기간 보호가 중요하다”며 “스크린집중제한제도가 도입되면 극장에 머무는 기간이 길어지고, 자연스럽게 홀드백도 정상화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유승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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