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전방 ‘철책선 뚫렸다’고 지휘관 줄징계 안 한다…경계 개념 ‘영역’으로 전환

권혁철 기자 2026. 4. 9. 16:21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5년 8월 최전방 지오피에서 장병들이 경계 근무를 하고 있다. 육군본부 페이스북

앞으로 ‘철책이 뚫렸다’는 이유만으로 전방 경계부대 지휘관이 징계받지 않는다. 그동안 북쪽에서 누군가 군사분계선(휴전선)을 넘어 남방한계선 철책까지 내려왔는데 경계병력이 이를 발견하지 못했을 경우 해당 사단장·연대장·대대장 등 지휘관이 줄줄이 보직 해임되고 징계를 받았다.

군 관계자는 8일 “최근 일반전초(GOP) 전방에서 적을 격멸하도록 한 경계작전 원칙을 지오피 종심(작전 범위나 길이)을 포함한 경계작전 지역에서 격멸하는 방식으로 바꿨다”며 “최전방 경계작전 방식을 ‘선 개념’에서 ‘벨트 개념’으로 바꾸는 차원에서 이뤄진 조처”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예전처럼 ‘철책 전방’이면 철책을 넘어오기만 하면 ‘경계 실패’가 되고 지휘관이 책임져야 했다”며 “‘‘부대 책임지역’으로 변경된 이후에는 북에서 철책을 넘어와도 책임지역 안에서 신속하게 추격·차단·섬멸하면 경계 실패가 아니므로 지휘관이 징계받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현재 최전방 경계는 군사분계선에서 남쪽으로 약 2㎞ 내려온 남방한계선 일대 철책을 지키는 지오피와 비무장지대 내부 감시초소(GP)가 맡고 있다. 이는 다수 병력을 활용한 최전방 밀집형 선형 방어(linear defense) 방식이다. 철통 경계를 위해 한반도 서해안에서 동해안까지 휴전선을 따라 최전방에 10여개 사단 병력이 한줄로 늘어서는 것이다. 육군 10개 사단이 20개 지오피와 수십개 지피를 운용하며 대북 감시·경계 임무를 맡고 있다. 지피, 지오피는 선형방어의 가장 선두에 있는 부대이다.

군사분계선(MDL) 비무장지대(DMZ) 개념도.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 제공

선형방어 전략은 남방한계선 철책 앞에서 적을 발견해 차단하는 ‘선’의 개념이다. 선형방어는 ‘물 샐 틈 없는 철통경계’ 신화의 뿌리다. 지난 70여년간 군 당국은 “155마일 휴전선을 국군 장병들이 24시간 불철주야 개미 한 마리 얼씬하지 못하도록 철통경계하고 있다”고 홍보해왔다. 비무장지대 철책을 살피는 총을 든 장병의 모습은 ‘튼튼한 안보’를 상징하는 모습으로 국민들의 머리 속에 각인돼 있다.

안규백 국방부장관은 지난 7일 기자간담회에서 인구절벽 시대에 인공지능(AI) 기술을 적극 활용해 기존 철책선 경계병력을 대폭 줄이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안 장관은 “현재 최전방 지오피에는 2만2천명 정도의 경계병력이 있는데, 에이아이 기반 과학화 시스템으로 경계병력 수를 6천명 정도로 줄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머지 1만6000명은 페바(FEBA·지오피 바로 밑 최전방) 지역에서 상황 발생 시 바로 투입될 수 있도록 하는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최전방 일대의 경계작전 개념을 철책선을 따라 병력이 늘어선 ‘선형' 방어에서 ‘지역' 방어 개념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안 장관의 발언을 두고 일부에서는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높아지고 있는데 지오피 경계병을 4분의 1로 줄이면 방어 태세에 결정적인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반응이 나왔다. 심지어 ‘무장해제’란 비난도 나왔다.

안 장관은 이에 대해 9일 “단계별 검토를 거쳐 2040년께 계획 중인 목표치”라며 진화에 나섰다. 이날 페이스북 계정에 올린 게시물을 통해 안 장관은 “마치 내일 병력이 줄어든다는 공포감으로 해석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며 “수십만 대군이 철책을 따라 줄지어 서던 과거의 방식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어 “인구절벽기 경계 작전의 효율화·과학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강조했다.

안 장관은 “경계병력을 절약하고 작전부대를 증강하자는 개념은 초당적 컨센서스를 공유한 사안”이라며 “모처럼 전환의 물꼬를 틔운 경계작전 개념이 섣부른 정치화로 인해 동력을 상실하는 것은 아닌지 심각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안규백 국방부장관이 지난 7일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한국전쟁 휴전 이후 70년간 이어진 선형방어 개념에 기반한 철통경계가 현실에선 불가능한데다 북한군의 침투 전술과 위협이 바뀌었고, 군대 올 젊은이도 부족하기 때문에 최전방 경계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 보수 정당과 군 내부에서도 비슷한 주장이 나왔다.

지난 2005년 6월 경기 연천군 28사단 지피에서 총기 참사가 벌어진 뒤인 2005년 7월 박진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한 월간지에 ‘남북한 지피 상호 철수해 비무장지대 비무장화하자’는 글을 기고했다. 박 의원은 28사단 총기 참사의 원인으로 전방 부대의 열악한 근무 여건을 꼽았다. “지피, 지오피 장병들이 잠도 제대로 못 자고 하루 종일 경계와 작업에 투입되고 고립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지피 총기 사고 재발을 막으려면 장기적으로 휴전선에 감시관측 장비를 갖추고 휴전선 경계부대를 뒤로 배치하고 기동성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임종득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2024년 10월 국방부 국정감사에서 “6·25전쟁 이후 70여년간 유지해온 경계작전 개념을 새롭게 변경해 실질적 교육 훈련이 가능토록 하고, 그에 따라 절감되는 국방운영비로 병사들과 초급간부의 삶의 질을 향상시켜 강군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임 의원은 육군 소장 출신으로 윤석열 정부 국가안보실 제2차장을 지냈다.

임 의원은 △지오피나 해안선에서 적 침투를 차단하는 선 개념에서, 지피와 지오피, 철책선 후방에서 적 침투를 차단하는 벨트 개념으로 변경 △과학화 경계작전 체계에 인공지능(AI), 드론을 통합 운영해 병력 절약 △축선별로 경계 전담 여단을 편성해 운영 △상비사단을 축선 종심에 배치 등 4가지 방안을 고려한 경계작전 개념을 제시했다.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것과 거의 같다.

지난 2016년 12월 육군 15사단 장병들이 철책 점검을 하고 있다. 육군본부 페이스북

지난 2024년 10월 국정감사 때 당시 김용현 국방부 장관은 ‘경계작전 개념 전면 전환이 필요하다’는 임 의원 질의에 “적극 동의한다. 군이 나가야 할 방향을 잘 제시한 만큼 적극 검토하겠다”고 답변했다.

특히 당시 임 의원은 병역자원 감소에도 불구하고 군의 가용병력 70%가 전후방 경계작전에 투입되는 바람에 실전적 훈련을 못 하고 장병 삶의 질이 악화되는 등 복합적인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전쟁 이후 북한의 대남침투 현황을 살펴보면 육상과 해상을 통한 북한의 직접 침투는 1960년대에 집중됐다. 1980년대부터 직접 침투가 급격히 감소해 1998년 이후에는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고 있다. 28년째 휴전선으로 오지도 않는 간첩을 잡는 경계작전에 군의 가용 병력 70%가 투입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국방개혁비서관을 지낸 강건작 예비역 육군 중장은 각종 토론회에서 “세계 어느 나라에도 정규 상비군을 이렇게 대규모로 경계 작전에 투입하는 군대는 없다”며 “한국군이 현행작전(전쟁준비나 훈련이 아니라 경계 등 현재 진행중이거나 단기적으로 실행되는 작전)에만 몰입하고 정작 군대의 본질인 전쟁 준비와 훈련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대전의 성격을 놓고 볼 때 최전방 지피, 지오피의 군사적 기능이 떨어진 지 이미 오래다. 지피, 지오피의 군사적 쓰임은 북한군 남침 조기경보 기능, 남침 시 1차 방어, 휴전선 간첩 침투 대응 등이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지피 근무 병사의 육안 관측과 망원경 같은 감시장비에 의존한 조기경보 기능은 쓸모가 크게 떨어졌다. 인공위성을 통해 수백㎞ 밖에 있는 북한군의 움직임을 안전하게 살필 수 있는데, 굳이 젊은 장병들에게 위험을 무릅쓰며 지피나 지오피에서 지켜보라고 할 이유는 없다.

남침 시 1차 방어 기능도 제한적이다. 북한군은 전쟁이 벌어지면 위치가 노출된 지피, 지오피를 집중 포격할 것이다. 전방 밀집형의 군 배치와 노출된 지피 운용은 북한의 기습공격에 매우 취약하고 개전 초 막대한 피해가 불가피하다. 지난 2013년 박근혜 정부 첫 국방장관에 지명됐던 김병관 전 한미연합부사령관은 전쟁 발발시 아군 피해를 우려해 휴전선을 따라 ‘병력 띠’를 형성하고 있는 방어 개념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편 바 있다. 선형방어 방어 전략을 고수할 경우 개전 초 5일 만에 한국군 인명 피해가 10만 명 이상 발생한다는 시뮬레이션 결과도 있다고 한다.

지난 2017년 강원도 화천 지오피에서 15사단 장병이 경계를 하고 있다. 육군본부 페이스북

현재 선형방어 개념은 간첩 침투나 북한군이 휴전선을 몰래 넘어오는 것을 막는게 가장 중요했던 시절의 유산이다. 군 당국은 시대 및 군사 환경 변화 등에 맞춰 휴전선에 감시관측 장비를 보강하고 경계 부대를 뒤로 배치해 병력 기동성을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하려고 했지만, 매번 ‘철통경계’ 신화가 발목을 잡았다.

군사분계선을 넘는 월북이나 월남 사건이 생기면 ‘철통경계’ 신화에서 비롯된 ‘경계 실패’란 비난이 들끓었고, 해당 경계부대 지휘관들이 대거 징계됐다. 영관급 장교나 장군들은 징계받으면 진급이나 보직에 불이익을 받아 남은 군생활이 힘들어진다. 이런 점 때문에 ‘경계작전 체계 개선’에 대해 군 내부에선 누구나 동의하지만 ‘해야 한다’고 정작 나서는 사람을 찾기 힘든,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가 됐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려면 군 내부에선 ‘철책이 뚫렸다’는 이유만으로 전방 경계부대 지휘관을 징계하지 않아야 하고, 군 외부에선 국민들이 ‘155마일 휴전선을 물 샐 틈없이 철통 경계한다’는 비현실적 믿음을 현실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

합동참모본부(합참)는 지난해 10월 국회 국방위원회의 국정감사 업무보고를 통해 지피와 지오피 경계작전 체계를 2040년까지 개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합참은 경계작전 지역을 일정한 종심을 가진 군사분계선(MDL)-지피-지오피 지대로 구분(벨트화)하여 기존 선 개념을 지대 개념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합참은 앞으로 인공지능 기반 유·무인 복합 경계작전체계 구축을 1·2·3단계로 나눠 추진할 계획이다. 1단계(~2027년)에서는 지오피 대대 유·무인 복합체계 시범운영 등을 하고, 2단계(2028~2029년)에서는 인공지능 통합관제플랫폼 전력화 등 체계를 구축한다. 3단계(2030~2040년)에서는 인공지능 기능 기반 병력절약형으로 지오피 경계부대 구조를 전환한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