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의 창] 우크라이나의 찬란한 봄

부활절을 전후한 시간은 황홀한 시간이다. 길고 긴 겨울을 지나 아침저녁으로 봄 냄새가 몰려오고 기온이 따뜻하여 겨우내 죽은 듯하던 나무에 새싹이 돋아난다. 강아지와 산책하다 나무와 꽃의 새싹을 보느라 강아지를 몇 번 잃었다가 찾았다. 지난겨울은 유난히 춥고 공습경보가 많았다. 추위에 떨던 거리에는 동상에 걸려 새까만 발가락을 보여 주는 전선의 용사들 사진에 "참호 속 우리 용사들도 춥습니다."라는 공익광고는 눈물 나게 했다.
이제 지독히 춥던 전선에도 봄기운은 완연할 것이다. 이란과의 전쟁으로 우크라이나 전쟁 뉴스가 뒤편으로 밀리고 있지만 도네츠크 지방에서는 한치라도 더 차지하려는 러시아군과 조국의 땅을 지키려는 우크라이나군 사이에 치열한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수적 우세 속에 러시아군은 드넓은 허허벌판을 야금야금 훔치고 있다.
올 부활절은 우리나라 기독교에서는 4월 5일, 우크라이나 정교에서는 4월 12일이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여러 사람이 고향으로 가는 날이고 농사가 시작되는 날이다. 집마다 달걀에 그림을 그려 나누고 예수님의 부활을 기뻐하고 축하하며 음식을 나누며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만나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하면 답례로 "진정으로 부활하셨습니다."라고 인사한다.
지난 3월 8일 여성의 날에는 쌀쌀한 날씨 속에서도 많은 사람이 꽃을 나누고 샴페인과 초콜릿을 즐겼다. 전선을 생각하면 가벼운 사치였지만 전쟁 5년째 접어들며 전선의 뉴스는 남 이야기같이 들리고 전쟁은 일상이 되어 소름 돋는 공습경보와 드론의 폭발음에도 일상을 유지하고 있다.
곧 우크라이나 전역은 꽃으로 뒤덮인다. 전선, 교회, 벌판, 산, 평지, 구릉, 주택지 근처, 거리, 대학, 공원 등 모든 곳이 꽃으로 화사하다. 목련, 개나리, 라일락 등 온갖 꽃과 체리 살구 자두 사과 배등 과실이 열리기 위해서는 한 송이 꽃이 피어야 열매가 맺힌다. 교외로 나가면 집집이 하얀 꽃으로 덮인다. 꽃에 취해 얼마나 여러 번 교외에서 고로쇠 물과 술을 마시며 객기를 부리고 울고 웃었는지 모른다.
유사 이래 어떤 전쟁도 시작과 끝이 있다. 전쟁을 시작한 자나 전쟁을 당하는 자나 수천수만의 목숨을 건 처절하고 장황한 이유가 있지만, 지나고 보면 하찮은 이유로 전쟁하는 것이다. 수천만의 목숨을 앗아간 1, 2차 세계 대전의 이유가 지금 생각해보면 유치하기까지 하다. 100~200년 후에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이란 전쟁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푸틴이나 트럼프가 이야기하는 전쟁 원인을 본다면 사고가 비정상적인 미친 인간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찬란한 봄빛 속에 우크라이나의 미래를 생각해 본다. 60만㎢가 넘는 비옥한 흑토와 풍부한 지하자원, 4000만이 넘는 인구, 높은 교육 수준을 가지고 있는 우크라이나는 오래전부터 유럽의 빈국이 아니었다. 지금은 몰도바, 알바니아, 코소보 등과 더불어 전쟁하는 유럽의 가난한 나라로 평가받지만, 우리나라보다 이른 1960년에 지하철이 개통됐고, 1960~70년대 이미 구 단위로 실내 풀장과 빙상 경기장이 있었고, 국명을 달리하지만 여러 명의 노벨 수상자가 태어났으며 동·하계 올림픽에서 수백 명의 메달리스트를 배출한 나라이다.
곧 전쟁이 끝나면, 세계 여러 나라의 도움과 협력 속에 우크라이나는 국가 재건의 개발이 일어나고 전쟁의 피해를 극복하는 새 나라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면 세계의 웃음거리로 정말 유럽의 빈국으로 전락할 것이며 그 후유증은 오래갈 것이다. 찬란한 봄에 우크라이나 미래의 영광을 꿈꾼다.
/김석원 우크라이나 키이우국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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