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신의 한 수는 버그 유도한 파격”…이세돌이 AI시대 우리에게 던진 복기(復棋)

심화영 2026. 4. 9.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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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 대국 10년’ KAIT 디지털 인사이트 포럼 기조강연

‘알파고 대국 10년’ KAIT 디지털 인사이트 포럼 기조강연

울산과학기술원 이세돌 특임교수가 9일 오전 조선팰리스 서울 강남에서 열린 디지털 인사이트 포럼에서 알파고 대국 10년을 맞아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KAIT
울산과학기술원 이세돌 특임교수가 9일 오전 조선팰리스 서울 강남에서 열린 디지털 인사이트 포럼에서 알파고 대국 10년을 맞아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심화영기자
울산과학기술원 이세돌 특임교수가 9일 오전 조선팰리스 서울 강남에서 열린 디지털 인사이트 포럼에서 알파고 대국 10년을 맞아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심화영기자

“이길 수 없다 깨달은 순간이 전환점…이제는 활용·복기의 시대”
“AI가 중간층 대체…탑클래스만 생존, 얕고 넓은 지식 재평가 필요”

[대한경제=심화영 기자]“‘질 자신이 없다’고 믿었던 30년 바둑 인생의 확신은 10년 전 알파고 대국에서 무너졌다. 두 점을 깔고도 지는 현실, 20초의 AI와 무제한 시간의 인간이 맞붙어도 뒤집히기 쉽지 않은 격차 앞에서 ‘평생을 두어도 이길 수 없다’는 벽을 실감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도 AI는 여전히 진화하고 있다.”

인류를 대표해 인공지능(AI)과 세기의 대결을 펼쳤던 이세돌 울산과학기술원(UNIST) 특임교수가 알파고 대국 10주년을 맞아 AI 시대의 인간 역할을 재정의했다. 그는 AI가 일상이 된 오늘날, 단순히 기술을 활용하는 수준을 넘어 ‘고정관념을 탈피한 협업’과 ‘사유를 통한 복기’가 인류의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제언했다.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KAIT)는 9일 오전 서울 강남 조선팰리스에서 ‘제13차 디지털 인사이트 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기조강연자로 나선 이세돌 교수는 ‘알파고 대국 10년: 새로운 시대, 새로운 생각’을 주제로 30년 바둑 인생과 AI 대국 이후의 통찰을 공유했다.

“78수 이전에 68수 있었다”…신념 꺾고 던진 ‘가장 인간적인 수’

이 교수는 이날 강연에서 2016년 알파고와의 4국에서 거둔 유일한 승리의 비화를 상세히 공개했다.그는 “초기에는 이길 수 있다고 판단했지만, 3국까지 내리 패하고 나서야 실력 차이를 인정했다”며 “복기를 해도 왜 졌는지 이해가 안 되는 경험은 처음이었다”고 돌아봤다.

유일한 승리였던 4국 역시 ‘정면 승부’가 아니었다. 통상 정석에서 벗어난 68번째 수를 던져 AI의 오류를 유도한 결과였다. 그는 “신념을 위배한 수였지만, 결국 가장 인간적인 선택이었다”고 평가했다.

흔히 ‘신의 한 수’로 불리는 78수에 대해 그는 “사실 78수는 연계된 수순이었고, 진짜 승부수는 68수였다”고 털어놓은 것. 그는 “당시 실력적으로 알파고가 위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정상적인 정수(正手)로는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해 의도적으로 버그를 유도하기 위한 비틀기 수(68수)를 던졌다”고 회상했다. 평생 지켜온 바둑 철학에는 위배되는 수였지만, 위기 상황에서 던진 이 파격이 결국 AI의 허점을 찔렀다는 설명이다.

“격차는 더 벌어지고 허리층은 대체될 것”

이 교수는 AI의 보편화가 가져온 바둑계의 변화를 산업 전반에 투영했다. 그는 AI가 정답을 제시해주면서 실력의 ‘상향 평준화’가 일어날 것으로 예측했으나, 실제 결과는 정반대였다고 진단했다.

흥미로운 점은 AI가 등장하며 ‘격차 해소’가 아니라 오히려 ‘격차 심화’가 나타났다는 분석이다. 이는 바둑계를 넘어 산업 전반에도 적용된다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같은 AI 수를 보고도 고수는 원리를 이해하고, 하수는 정답만 외운다”며 “결국 상위권과 하위권의 격차는 더 벌어졌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산업 현장에서 AI가 중간 허리층 인력의 90%를 대체할 가능성을 경고하며, “전문 분야에만 매몰되지 않고 AI를 접목해 활용할 수 있는 ‘얕고 넓은 지식’의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AI를 통해 어떤 사람은 생산성이 10배, 20배 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도태된다”며 “특히 중간층이 대거 대체되는 구조가 이미 시작됐다”고 강조했다.

“복기(復棋) 없는 이용은 종속일 뿐”

이 교수는 AI 시대의 창의성을 ‘고정관념의 탈피’로 정의했다. 인간 기사들이 수백년간 초반에는 피해야 할 수로 여겨온 ‘3·3 침입’을 알파고가 거리낌 없이 선택하는 모습을 보며 충격을 받았다는 그는, 이제는 AI를 통해 기존의 정석과 관념을 넘어서는 새로운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AI의 압도적 성능에도 불구하고, 인간만의 영역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봤다. 이 교수는 “AI는 결과는 내지만 서사와 감정은 없다”며 “인간은 이야기와 맥락, 감동을 만들어내는 존재”라고 말했다. 또한 “앞으로는 ‘얕고 넓은 지식’이 오히려 경쟁력이 될 수 있다”며 “한 분야 전문가라도 다른 영역과의 연결을 이해하지 못하면 뒤처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강연의 마무리에서 그는 바둑의 핵심 절차인 ‘복기’를 강조했다. “바둑은 결과가 나왔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되짚어보는 복기가 끝나야 비로소 한 판이 완성된다”며 “AI가 제시한 답을 그대로 쓰는 것은 위험하다”며 “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 되짚어보는 과정이 있어야 AI를 도구로 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복기 없이 결과만 소비하면 결국 AI에 이용당하는 구조가 된다”고 경고했다.

심화영 기자 dorot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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