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예향] 광주·전남 유니크 베뉴를 가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은 회의를 위한 공간을 넘어 머무는 경험이 자연스럽게 확장되는 장소다. 회의가 끝난 후로도 사람들은 바로 자리를 떠나지 않고 회의장을 나서 전시를 둘러보고 공연을 관람하며 휴식을 취하며 쌓인 피로를 씻는다.
광주 동구 옛 전남도청 일대에 자리한 ACC는 2015년 개관한 국립문화시설이다. 지상에는 넓은 광장이 펼쳐지고 주요 시설은 지하에 배치된 독특한 구조를 갖춘 복합문화공간으로, 전시·공연·교육·연구·교류 기능이 한곳에 모여 있다. 단순한 문화시설을 넘어 국제회의와 기업행사까지 가능한 ‘코리아 유니크 베뉴’로 2019년 첫 지정된 이후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ACC의 가장 큰 특징은 공간의 성격에 있다. 국제회의실을 중심으로 한 회의 기능에 더해 전시, 공연, 투어 프로그램이 하나의 흐름처럼 이어진다. 문화정보원 지하에 위치한 국제회의실은 728㎡ 규모로 최대 500명까지 수용 가능하며 인근에는 리셉션홀과 다목적홀 등 다양한 행사 공간이 함께 구성돼 있다.
회의가 끝난 뒤 참가자들은 전시관을 둘러보거나 공간 해설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야외 광장이나 실내 정원에서 휴식을 이어간다. 하나의 행사가 공간 전체를 경험하는 일정으로 자연스럽게 확장되는 구조다. 기존 컨벤션센터에서는 쉽게 구현하기 어려운, ACC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특징이다.
ACC는 단순히 공간을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자체적으로 콘텐츠를 생산하는 기관이라는 점도 차별성을 갖는다.
개관 이후 누적 방문객은 2000만 명을 넘어섰고, 연간 방문객도 300만 명 수준에 이르는 등 광주를 대표하는 문화·관광 거점으로 자리 잡았다. 전시·공연·융복합 콘텐츠 등 자체 창·제작 비율이 높은 문화기관으로, 공간 자체가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콘텐츠’라는 점도 특징이다. 이러한 공간적 특징은 행사 참가자에게 단순한 방문이 아니라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같은 공간이라도 시기마다 다른 콘텐츠를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재방문 유도 효과도 크다. ACC에서는 상설 전시와 기획 전시, 공연 프로그램이 연중 이어진다. 문화정보원과 문화창조원 일대에서는 미디어아트와 융복합 콘텐츠 전시가 상시 운영되며, 어린이문화원과 예술극장에서는 체험형 프로그램과 공연이 꾸준히 진행된다.
행사 참가자들이 특히 선호하는 공간은 실내외 휴식 공간이다. 문화정보원 내부의 열린 공간과 대나무 정원, 넓은 광장은 전시와 공연 사이 잠시 머무르며 쉬어갈 수 있는 장소로 활용된다.
접근성도 뛰어나다. 문화전당역과 직접 연결되고 KTX 광주송정역과도 25분 거리다. 행사 참가자들은 회의 이후 자연스럽게 충장로와 금남로, 동명동 일대의 음식점과 카페거리로 이동하며 도시를 경험할 수 있다.
무엇보다 ACC 일대는 5·18 민주화운동의 역사적 현장이기도 하다. 옛 전남도청과 민주평화교류원 등 인근 공간과 연결되며 단순한 관광을 넘어 지역의 역사와 의미를 함께 체험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다.
유니크 베뉴의 핵심은 회의 자체가 아니라 ‘특별한 경험’이라는 점에서 ACC는 이를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10년후 그라운드
특정 건물이 아닌, 마을 전체가 행사장이 되는 방식도 있다. 광주 양림동에 자리한 ‘10년후 그라운드’는 유니크 베뉴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외 형만 보면 카페와 전시, 강연이 가능한 소규모 복합문화공간이다. 20~70명 규모의 워크숍과 세미나를 수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기업 워크숍이나 강의, 소규모 행사가 주로 열린다. 하지만 이곳의 진짜 특징은 공간의 크기가 아니라 공간이 확장되는 방식에 있다.
10년후 그라운드는 하나의 건물에 머무르지 않는다. 필요에 따라 양림동 일대 갤러리, 작업실, 문화공간을 연결해 행사를 구성한다.
대표 사례가 지난해 개최된 ‘2025 코리아 유니크 베뉴 협의회’다. 이 행사에서는 10년후 그라운드를 중심으로 한희원 미술관, 고양이숲 갤러리, 이이남 갤러리,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 등 마을 곳곳의 공간을 활용해 분산형 회의를 진행했다.

참가자들은 공간을 이동하며 회의에 참여하고, 동시에 양림동의 문화와 골목을 경험하기도 했다. 회의가 특정 공간 안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동 자체가 하나의 프로그램이 되는 구조다. 마을 전체를 하나의 베뉴로 활용하는 방식, 이른바 ‘마이스 빌리지(MICE Village)’ 개념이다.
10년후 그라운드가 주목받는 또 하나의 이유는 공간 운영 주체가 단순한 시설 관리자가 아니라 문화기획자 그룹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예술가, 상인, 주민과 협력해 행사를 만들어간다. 대표 프로그램인 ‘양림 골목 비엔날레’는 마을 전체를 전시장으로 활용하는 프로젝트다. 작가들의 작업실과 갤러리는 물론 카페, 식당, 빈 집까지 전시장으로 바꾸며 30여 개 공간이 하나의 전시 동선으로 연결된다.
참여 규모도 작지 않다. 지역 작가와 외부 작가를 포함해 30여 명의 예술인이 참여하고 기획자와 도슨트, 상인, 주민까지 더하면 100명 안팎이 하나의 프로젝트를 함께 만든다.
이 과정에서 카페와 음식점은 행사와 연계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지역 상권도 자연스럽게 행사에 참여한다. 대형 연회장이 없는 대신, 식권 형태로 마을 식당을 이용하도록 하는 방식도 특징이다.

10년후 그라운드는 유니크 베뉴 가운데서도 규모가 작은 편에 속한다. 하지만 마을 전체를 이용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행사의 중심은 공간이 아니라 ‘네트워크’라는 점이 중요하다. 마을 안에 형성된 예술가와 상인, 주민의 협력 구조가 곧 베뉴의 핵심 자산이 된다.
이같은 특징을 바탕으로 10년후 그라운드는 2023년 코리아 유니크 베뉴로 선정된 데 이어, 2024년에는 전국 52개 베뉴 가운데 우수 사례로 꼽히며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10년후 그라운드는 ‘지역 기반 MICE’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로도 꼽힌다. 대형 시설과 국제회의 중심의 기존 구조와 달리 이곳은 마을의 문화와 사람, 일상을 자원으로 삼는다. 행사 참가자는 회의에 참석하는 동시에 골목을 걷고, 전시를 보고, 지역 상점을 이용하며 자연스럽게 관광을 경험하게 된다.
양림동이 가진 역사성과 문화 자산도 중요한 요소다. 근대 건축과 선교사 유적, 예술 공간이 밀집한 지역은 그 자체로 하나의 콘텐츠가 된다. 최근에는 건축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 기획과 국제 교류 확장도 추진되고 있다.
10년후 그라운드에서 중요한 것은 공간의 크기나 화려함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구조다. 주민이자 예술가, 상인이자 기획자로 참여하는 이 마을의 특성은 행사 운영 방식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개발보다는 유지, 확장보다 연결을 택한 10년후 그라운드와 양림동 협의체의 시도는 유니크 베뉴가 단순한 행사 공간을 넘어 지역과 함께 작동하는 플랫폼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GS칼텍스 예울마루
공연장과 전시장에 머무르지 않고 바다 건너 섬까지 이어지는 유니크 베뉴도 있다. 여수 장성지구 해안에 자리한 GS칼텍스 예울마루는 자연과 문화가 결합된 복합문화예술 공간이다.
2012년 개관한 예울마루는 대극장과 소극장, 전시관 등 공연·전시 시설을 갖춘 문화시설로 출발했다. 세계적인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가 설계한 건축물은 바다를 향해 열린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실내 공간과 외부 풍경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이 특징이다.
예울마루가 유니크 베뉴로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시설 규모나 건축미 때문만은 아니다. 회의와 공연, 전시가 하나의 공간 안에서 이루어지는 데 그치지 않고, 자연 환경과 결합되며 경험의 범위를 넓히기 때문이다.
예울마루의 공연장과 전시관은 기업 행사와 국제회의, 문화 프로그램이 가능한 공간으로 쓰인다. 대극장은 1000석 규모를 갖추고 있으며, 다양한 공연과 대형 이벤트를 수용할 수 있다. 전시관과 야외 공간 역시 행사와 연계해 활용되며 공간 전체가 하나의 행사 무대처럼 작동한다.

다만 예울마루는 공연장과 전시 기능을 중심으로 설계된 공간인 만큼, 대형 국제회의가 집중적으로 열리는 전통적인 MICE 시설과는 성격이 다소 다르다. 대신 공연과 전시, 자연환경이 결합된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기업 행사나 문화 프로그램, 중·소규모 이벤트에 적합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예울마루에서의 경험은 실내에서 끝나지 않는다. 건물 외부로 나서면 바다를 따라 이어지는 산책로와 야외 공간이 자연스럽게 동선에 포함된다. 참가자들은 공연과 회의, 전시를 경험한 뒤 해안 풍경을 따라 걷거나 휴식을 취하며 공간을 따라 이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예울마루의 또 다른 특징은 장도로 이어지는 연결 구조다. 해안과 연결된 작은 섬인 장도는 예울마루 2단계 사업으로 조성된 공간으로, 하나의 문화예술공원 개념 안에서 함께 운영된다. 방문객들은 육지의 문화공간에서 시작해 섬으로 이동하며 경험의 범위를 넓힐 수 있다.
여수라는 지역적 특성도 중요한 요소다. 바다와 해안 경관을 배경으로 한 공간은 행사 자체에 차별화된 분위기를 더하며, 참가자들에게 여수라는 도시의 인상을 자연스럽게 남긴다.
/이보람 기자 bora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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