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답게' 올림머리 긴 치마… 거부한 '공채' 출신 女의원, 국회 깜짝 놀래킨 신기술

이시은 2026. 4. 9.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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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라디오(FM 94.5) [YTN 뉴스FM 슬기로운 라디오생활]

□ 방송일시 : 2026년 04월 09일 (목)

□ 진행 : 박귀빈 아나운서

□ 대담 : 김희정 국민의힘 의원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 박귀빈 : 20년 전 33살의 나이에 '최연소 여성 국회의원'이라는 기분 좋은 파란을 일으키면서 여의도에 입성했던 97세대 정치인의 선두 주자가 있습니다. 늘 '최연소'와 '최초'의 수식어를 훈장처럼 달고 다녔던, 입법과 행정을 두루 섭렵한 실무가이자 디지털 시대의 문을 앞서 열었던 선구자. 2004년 17대 국회 최연소 여성 청년 의원, 청와대 대변인, 여성가족부 장관 등을 역임한 김희정 의원, 이제는 후배들을 이끄는 선배 리더로 돌아왔습니다. <슬기로운 라디오생활> 'K-여성 정치 시민학교' 제5 번째 수업의 선생님으로 모셨습니다. 의원님 어서 오세요.

◇ 김희정 : 네, 반갑습니다. 선생님으로 불러줘서 너무 감사해요.

◆ 박귀빈 : 저기 앞에 카메라가 있는데요. 짧게 인사 말씀 좀 해 주세요.

◇ 김희정 : 네, 반갑습니다. 저는 국민의힘 소속이고요, 지역구는 부산 연제구입니다. 부산시청이 있는 곳이고요. 법원, 검찰청, 경찰청, 시립의료원, 국세청, 종합운동장 다 있는 그런 동네입니다. 그리고 부산 유일의 육거리인 연산 로터리가 있는 곳이니까 혹시 부산 방문 계획하고 계신 분 있으면 부산 연제구 기억해 주시고요. 저는 좀 전에 소개를 엄청 막 장황하게 해 주셨는데 저는 좀 젊은 나이에 국회의원이 돼서, 국회의원을 하면서 최초로 결혼도 했고 출산도 했고 임산부로 당선도 됐고 그래서 누구보다도 '워라밸'에 관심이 많은 그런 김희정입니다. 오늘 즐거운 수업 시간 되길 바랍니다.

◆ 박귀빈 : 어서 오세요. 저희가 '시민학교 K-여성 정치 학교'이기 때문에 오시는 분들께 선생님으로 이렇게 부르고 이제 수업을 하게 되는데, 사실 워낙 프로필이 정말 소개하고 싶은 프로필이 너무 많지만 저희가 추려 추려 추려서 앞서 그렇게만 짧게 소개를 해 드린 거고, 오늘 아마 이야기를 나누시면 그동안 걸어오셨던, 정치인으로서 걸어오셨던, 행정가로서 걸어오셨던 그 길에서 아마 우리 젊은 여성분들 후배들에게 참 많은 것들을 알려주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선생님과 이야기해 볼 주제는 '디지털 리더십'입니다. 아니, 그 전에 제가 이 말씀드린다고 하고, 빨간색 목도리인가요?

◇ 김희정 : 네, 오늘 사실은 목도리 안 하고 이러고 왔는데 날씨가 너무너무 춥습니다. 우리 아나운서 목소리가 너무 좋은데 저는 그러지 않아도 목소리 안 좋은데 목 안으로 바람이 들어오고 있으니까 너무 팽팽한 거예요. 그래서 사실 제가 그 차에 각종 빨간색이 좀 이렇게 준비가 되어 있어서요.

◆ 박귀빈 : 그렇군요. 네, 차에 준비된 각종 빨간색 아이템 중에 오늘 날씨에 딱 걸맞은 빨간색 목도리를 하고 오셨어요. 들어오시자마자 너무 눈에 띄고 너무 잘 어울려 가지고 제가 그 말씀을 드린다는 걸, 잘하고 오셨습니다. 목 아껴야 됩니다. 오늘 선생님과 이야기해 볼 주제 '디지털 리더십'인데요. 쭉 이야기를 하기 전에 일단 처음에 정치에 입문하시게 된 스토리부터 전해 듣고 수업을 좀 본격적으로 시작을 해 볼게요.

◇ 김희정 : 요즘이랑은 약간 좀 다른데 입시 제도부터가 조금 달라요. 제가 이제 97세대, 90년대 학번, 70년대생인데 딱 '선지원 후시험' 하던 그 학번입니다. 그러니까 대학교를 가려면 무슨 과 정해놓고 그 과 대학에 가서 시험을 봐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상당히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좋아하는 과목과 하고 싶은 게 조금 달라서요. 뭐냐하면 누구나 다 대학교 갈 때, 과 정할 때 고민하지 않으세요?

◆ 박귀빈 : 당연히 고민하죠.

◇ 김희정 : 네, 많이 하죠. 그리고 정말 이게 맞는지, 내가 잘못 선택하면 언제 바꿀 수 있는지 뭐 이런 것도 있고 뚜렷하게 자기가 좋아하는 거를 발견 못 할 수도 있는 거고 사실 또 너무 많을 수도 있는 거고 그런 거잖아요. 그런데 저는 이 소설책이나 관련된 책 읽으면 그것도 좀 해보고 싶고 왜 이런 거 이것저것 다 해보고 싶은 거예요. 그런데 특히 위인전 읽으면서 공통점을 발견을 했어요. '아, 내가 이 세상의 모든 훌륭한 위인이 될 수는 없지만 정말 이 사람들을 빛내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구나.' 그게 정치인이더라고요.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장영실이 제가 있는 조금 전에 부산 연제구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부산에도 노비로 와 있고 막 그랬어요 관청에. 그랬었는데 소위 우리의 '킹 세종' 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에 신분을 격파하고 훌륭한 과학자가 될 수 있었잖아요.

◆ 박귀빈 : 맞아요.

◇ 김희정 : 만약에 약간 그 폭군 시대에 있었으면 오늘날의 장영실이 있을까?

◆ 박귀빈 : 맞네요. 그러네요.

◇ 김희정 : 그래서 장영실의 발명품이 너무 부럽고 과학자가 되고 싶다가도 '아니야, 장영실을 있게 해준 그분이 또 멋있어 보이더라고요.' 그다음에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할 때도 콜럼버스가 사실은 이 항해를 하려고 하면 돈이 되게 많이 필요해요. 배를 띄우고 선원들 이렇게 하려고 하니까. 그래서 사실은 공적 투자를 받아야 되는데 다른 나라에서 약간 좀 미치광이로 취급한 쪽도 있고 막 그랬는데 투자를 해준 또 여왕이 있었잖아요. 그래서 사실은 처음에는 인도를 발견하려고 가긴 했지만 어쨌든 새로 대륙을 발견하게 된 게 그 사람의 얘기에 귀를 기울여주고 믿어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과 아닌 사람의 차이, 이런 거. 그래서 저는 과학자가 되거나 탐험가가 되거나 막 그런 꿈을 가졌다가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서포트해 주는 그 시대의 정치인, 그래서 '이 모든 걸 내가 다 할 수는 없지만 모든 거를 다 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난 정외과 가야겠다.

◆ 박귀빈 : 그래서 정치외교학과로 선택해서 들어가신 거네요.

◇ 김희정 : 그리고 정외과를 졸업을 하고 보통 이제 어떤 분들이 국회나 이런 데 나와서 보통 정치인 그러면 국회의원을 제일 많이 떠올리잖아요. 대통령은 한 명밖에 없지만 국회의원은 여러 명 있으니까요. 그랬는데 어떤 분들이 소위 선출직을 하는지 봤더니 대부분 이렇게 다른 직업을 해서 그 직업에서 훌륭한 성공을 한 다음에 오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았어요. 예를 들어서 행정가를 쭉 하다가 마지막에 정치를 오거나 교수님을 하다가 오거나 의사 선생님 하다 오거나 약사 선생님 하다 오거나 또는 언론인 하다 오거나. 근데 궁극적으로 정치를 하기 위해서 각 분야의 이런 거를 쌓는 것도 좋지만 '처음부터 내가 좋아하는 정치권에 갈 수 있는 일은 없을까?' 봤더니 이제 유럽이나 미국 같은 경우는 처음부터 이제 스태프로 정당에서 일을 하는 것과 이제 의원 보좌관으로 하는 것과 이런 길들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처음부터 누구의 비서나 보좌관으로 해서 하는 것보다 조금 폭넓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서 정당 사무처 공채에 이제 갔습니다. 그래서 뭐냐 하면요, 남들은 영입 받아서 이렇게 정당 가입을 하거나, 또는 가입해 주세요 해서 저희가 막 당원 원서 받고 막 이러잖아요. 시험 보고 당원 된 사람입니다.

◆ 박귀빈 : 공채 출신이시네요, 그러니까.

◇ 김희정 : 시험 보고 당원 된 사람이에요.

◆ 박귀빈 : 20대 때시겠네요, 그러면.

◇ 김희정 : 그렇죠. 대학원 졸업하고 마지막 학기에 했는데 시험도요, 여의도 중학교, 고등학교 다 빌리고요. 저희 20명 뽑는데 1,000명 넘게 왔었어요.

◆ 박귀빈 : 보통 어떤 문항들이 시험에 나오나요?

◇ 김희정 : 1차는 다 뭐 서류 시험, 어느 회사든지 마찬가지로 그렇고요. 2차 과목은 헌법, 정치학, 행정학...

◆ 박귀빈 : 너무 어려운데요. 공채 출신 정치인!

◇ 김희정 : 그다음에 영어도...

◆ 박귀빈 : 영어도 시험 봐야 돼요?

◇ 김희정 : 네, 영어도 그때는 토익이 아니라 토플이었어요. 그 마지막 시험이 더 재밌는데 2차 통과하고 나서 3분 스피치를 요즘으로 얘기하면 당 대표나 원내대표 이런 분들 앞에서, 딱 들어가기 전에 주제를 뽑아요. 그리고 자기가 생각하는 3분이라고 생각하는 시간 동안 그걸 가지고 스피치를 해야 되는 거예요.

◆ 박귀빈 : 어머나.

◇ 김희정 : 예, 그런 것까지 했습니다. 그다음에 집단 면접도 보고요. 그랬는데 그때 "대통령 누구 뽑았냐"고 막 물어보고 그러는데 저는 사실 그때 그 신한국당의 대통령이 김영삼 대통령이었거든요. 너무 옛날 얘기하는 것 같아요.

◆ 박귀빈 : 아닙니다.

◇ 김희정 : 그때 제가 "그분을 뽑지 않았다"라고 얘기를 했어요. 그런데 뽑아주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마음에 들었어요. '여기 반대해도 뽑아주는 당이구나.'

◆ 박귀빈 : '이곳은 내가 일할 만한 당인 것 같아, 괜찮은 것 같아'라고 우리 선생님도 이곳을 함께 평가를 하신 거예요.

◇ 김희정 : 그리고 사실 공채를 하는 당이 하나밖에 없었어요.

◆ 박귀빈 : 그때가 공채 동기가 또 누가 있나요?

◇ 김희정 : 공채 동기가 지금 방송통신심의위원으로 이번에 간 김우석 동기고요. 그다음에 정해용이라고 지금 대구에서 구청장 후보로 준비를 하고 있는데 대구에서 부시장을 지냈습니다. 그리고 권신일이라고 아덴만 코리아 홍보 회사의 한국 대표를 맡고 있고요. 그러니까 다 같이 정당에 들어왔다가 이제 사무처에 끝까지, 국장까지 한 사람이 있고 저처럼 이렇게 중간에 각자 각 분야로 나간 사람도 있고.

◆ 박귀빈 : 그래도 동기면 굉장히 끈끈하잖아요. '동기 사랑 나라 사랑' 이런 말이 있을 정도로 정기적으로 만나시고 막 그러세요?

◇ 김희정 : 그렇죠. 또 있다, 박희조 우리 지금 대전에서 구청장을 하고 있어요. 지금 현재 구청장.

◆ 박귀빈 : 너무 재밌는 이야기, 어디 가서 들을 수 없는...

◇ 김희정 : 근데 제일 중요한 게 그거잖아요. 남들은 "오라, 오라" 해도 요즘 그 당 마음에 안 들어 안 가, 막 그러는데 그 당에 들어가겠다고 시험 봐서 갔으니까.

◆ 박귀빈 : 몇 년도죠? 그때가.

◇ 김희정 : 95년이었습니다. 1995년.

◆ 박귀빈 : 95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정치를 시작하셨어요, 20대에. 그리고 나서 33살에 실제로 국회에 입성하신 거예요.

◇ 김희정 : 그렇죠. 2004년에 입성을 했는데 출마를 생각보다 조금 빨리 결심하게 된 이유는 그때 이제 야당이 됐어요, 제가 속한 당이. 그런데 어느 정도로 당 사정이 안 좋았냐면 막 '차떼기 정당' 뭐 이런 얘기를 들었는데, 세상에 그래 의원들은 차떼기 정당 하면서 우리는 그 월급을 제대로 안 줬어요. 당이 무너져 가지고 두 번 대선에서 지고 나서 그래가지고 저 과외 아르바이트했다니까요. 당 사무처에 있을 때.

◆ 박귀빈 : 아, 당 사무처에 있을 때. 봉급을 제대로 못 받아서 과외를 하셨어요?

◇ 김희정 : 그래서 보니까 세상에 의원들은 그렇게 차떼기 정당에서 돈 먹었다고 그러는데, 실제 이 당에 와서 젊음을 불태웠던 사람들에게는 제때 월급도 안 나오는 그런 상황까지 된 거예요, 공채 직원들에게. 그래서 출마를 결심한 건 정말 이렇게 그 열정을 불태우고 젊은이들, 그러니까 그런 나쁘게 뉴스에 드러난 몇 명만 이렇게 보수 정당을 지키고 있는 게 아니라 정말 젊고 열심히 일하고 있는 사람도 우리 보수 정당에 있다는 걸 보여주자.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직접 뛰는 게 가장 좋을 것 같다라고 해서 이제 출마하겠다고 선언했죠.

◆ 박귀빈 : 그렇게 해서 30대 초반에 실제로 국회에 입성하셨고 최연소셨잖아요. 어딜 가나 계속 막내셨겠어요.

◇ 김희정 : 일단 저보다 그 당시에 헌정사상 젊은 나이에 국회의원 당선되신 분은 당시 김영삼 대통령 한 분이 저보다 더 빨리 돼 있는 상태였고, 그다음에 그분은 20대 때 되셨어요. 그다음에 이제 제가 30대 초반에 이렇게 됐기 때문에 사실은 정치인은 주목을 받는다는 점에서는 굉장히 이득이 있어요.

◆ 박귀빈 : 그렇죠. 정치인 입장에서는 '최연소 정치인'이라고 일단 주목을 받으니까요.

◇ 김희정 : 네, 그런 거는 도움이 되는데 일은 몇 배로 뛰어야 돼요. 왜냐하면 상임위원회 같은 거를 할 때도 여성가족위원회, 지금은 '성평등 가족위원회'로 바뀌었는데 당시에는 겸임으로 여자들만 그거를 다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리고 또 원내대표는 선수가 높으신 분들이 하지만 원내부대표는 지금은 이제 국회 선진화법 때문에 몸싸움 같은 게 없습니다. 그런데 그때만 해도 막 이 뉴스에서 많이 봤던 그런 상황일 때 사실 '국회 지킴이'는 젊은 의원들이 해야 된다...

◆ 박귀빈 : 아니, 젊은 의원 너무 힘들어요. 너무 힘드네요.

◇ 김희정 : 그러면은 이제 원내부대표를 하거나 하면 국회 운영위원회를 또 들어가게 되어 있어요. 그리고 또 예산결산위원회가 또 일이 많은 데거든요. 그러면 이제 또 추가로 들어가서 저는 상임위원회를 보통 하나만 하면 되는데 제가 원래 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에다가 여성가족위원회에다가 운영위원회에다가 예산결산위원회로 4년 내내 4개 상임위원회를 동시에 했을 뿐만 아니라, 그리고 여성 관련된 행사나 청년 관련된 행사가 있으면 의원들 중에 누군가는 가서 소통을 해야 되잖아요. 축사만 하고 오는 게 아니라 가서 얘기도 좀 듣고. 그러면은 지금처럼 여성 의원이나 청년 의원이 많이 없을 때니까 그 행사를 다 '행사 뛴다' 이렇게 얘기하면 좀 그렇고 가서 열심히 소통하고, 그럼 행사 갔다 오면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거기서 나온 얘기를 보고서 만들고 그런 거 해야 되잖아요.

◆ 박귀빈 : 어머나, 그러니까 제 생각에는 일단 워낙 열정적이고 일을 잘하셨기 때문에 맡으신 것도 분명히 있을 건데, 젊은 일하는 여성 정치인. 왜냐하면 이제 소통 이런 거에 아무래도 훨씬 더 좀 부드러운 소통이 좀 가능하잖아요. 그래서 이제 일을 맡으셨던 것 같은데 20년 전 이야기를 해 주시는 거잖아요.

◇ 김희정 : 그때의 젊은이들이 겪는 어려운 점이나 여성들이 겪는 어려운 점이 많이 나아졌긴 했지만 지금도 똑같이...

◆ 박귀빈 : 마침 그 말씀드리려고 했어요. 20년 전과의 어떤 변화를 느끼시는지를 여쭤보려고 그랬거든요.

◇ 김희정 : 분위기가 그래도 정치를 하는 여성이나 청년에 대한 분위기가 변한 걸 보면 일반 여성이나 청년에 대한 분위기도 조금은 변한 걸 느껴요. 예를 들면 제가 처음 출마를 했을 때 아무도 제가 후보라고 생각을 안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느 후보 딸이냐, 그래서 "누구누구 후보 딸로 누구 후보 지지하러 저기 선거운동 나왔느냐" 해서 "제가 후보입니다" 이렇게 얘기를 하고. 또 하나는 지금도 저 보면 이렇게 바지에 이렇게 짧은 머리 이러고 다니잖아요. 그런데 당시에 여성 정치인 중에 가장 유명하신 분은 이제 박근혜 전 대통령님이 당 대표 하시고 전재희 장관님 뭐 이런 분들 계실 때였어요. 제가 당선됐을 때 지역구 여자 국회의원이 저희 당에 총 5명 됐을 때였으니까, 그러니까 '여성 정치인' 하면 가지는 이미지가 왜 머리도 좀 이렇게 올림머리도 좀 하고...

◆ 박귀빈 : 영화에서 많이 보는 머리 있잖아요.

◇ 김희정 : 치마도 좀 긴 치마 입고, 좀 이런 여성 정치인에 대한 개념을 원하고 약간 그런 이미지를 상상하시는 분들이 많으셨어요. 그래서 20년 동안 그래도 지금은 많이 이렇게 운동화 신고 바지 입고 이런 분위기에 대해서 다 수용하고 하는 분위기입니다만, 그때만 해도 오히려 지금처럼 하고 다니는 게 '더 튀는 거 아니야?' 약간 이런 분위기.

◆ 박귀빈 : 그러면 선생님은 그때 어떻게 하고 다니셨어요?

◇ 김희정 : 그냥 지금처럼 하고 다녔어요.

◆ 박귀빈 : 그때도요? 그러니까 늘 주목을 받으실 수밖에 없으셨던 것 같아요. 근데 이제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정치 분야가 남성 위주, 남자분들이 많다 보니까 보수적이기도 하고 분위기가 우리 직장 문화로 생각하면 그런 느낌이 있잖아요. 근데 너무나 젊은 에너지 넘치는 최연소 여성 정치인이 옷도 막 이렇게 막 입어요. 남자처럼 입고 막 운동화 신고 다니고 막 이래요.

◇ 김희정 : 남자처럼은 아니고 '샤방샤방'과는 아니다. (웃음)

◆ 박귀빈 : 그러고 다녔어요. 기존의 여성 정치인과 좀 다른 이미지로 막 다니고 이러면 뭔가 거기서 느껴지는 어떤 벽 같은 거, 좀 그런 게 있으셨을 것 같아요.

◇ 김희정 : 그래도 서로 적응하는 시기를 거친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에는 낯설지만 낯선 데서 오는 그런 거지 뭐 거부하거나 이런 분위기는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지역에서는 그랬고요, 국회에서는 사실 제가 오늘 우리 제목이 '디지털 리더십'이잖아요. 리더십이 제가 확실하게 한 게 있습니다. 이게 뭐냐 하면 사실 국회에서 제가 사무처를 할 때도 그랬고 대학원 다니면서도 한국의회발전연구회 연구원으로 국회에서 프로젝트를 하고 했었어요. 국정감사 기간이 되면 앉은키 말고 선 키만큼의 자료가 옵니다. 서류가, 왜냐하면 소관 기관이...

◆ 박귀빈 : 생각만 해도...

◇ 김희정 : 100개씩 막 되고 그러면 한 기관당 이만큼씩 하니까 그래서 왜 어떤 의원은 자료 요청한 게 뭐 1톤이었다 이런 기사가 나오고 하던 시절이에요. 당시에 그랬는데 이 종이로 이렇게 하는 게 안 되고 저희는 대학교, 대학원 다닐 때 이미 왜 디스켓 들고 다닐 때였거든요. 그래서 이제 '디지털라이즈드' 해서 이렇게 종이로 하지 말고 보고 자체를 그렇게 하자. 근데 마침 우리 상임위원회가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에 있기 때문에 선도적으로 해보자고 제안을 했는데 제가 야당이었는데도 받아주셨어요. 그래 가지고 CD 거기에 이 모든 키만큼의 자료를 넣어서...

◆ 박귀빈 : 획기적인 개혁 아닌가요?

◇ 김희정 : 네, 그래서 제가 디지털 국회 자문위원도 했거든요. 하나 더 있습니다.

◆ 박귀빈 : 예. 뭐 있나요?

◇ 김희정 : 저는 정보 검색을 지금은 모바일 휴대폰이라서 꼭 컴퓨터가 없어도 이렇게 정보 검색이 되잖아요. 그런데 얘기하는 시대는 지금 2000년대 초반입니다. 2000년대 초반에는 아직 이렇게 모바일 인터넷이, 무선 인터넷이 제대로 안 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컴퓨터가 이제 놓여 있어야 되거든요. 그래서 그 컴퓨터라는 하드웨어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네트워크망이 이제 연결이 돼 있어야 되는데 그게 국회에 설치가 안 돼 있는 거예요. 각자 개인 사무실만 되지 회의장에는 없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회의장에서도 같이 이제 정보 공유를, 지금 제출한 CD 카피만 확인하는 게 아니라 뉴스도 보고 실시간으로 홈페이지도 들어가 보고 하려면 그게 필요하다. 설치해 달라"고 해서 그것도 설치하게 했어요. 하나 더 있어요.

◆ 박귀빈 : 벌써 2개도 전 너무 대단하신 것 같아요. 또 뭐 있죠?

◇ 김희정 : PPT를 활용한 국회의 의정 질문을 헌정사상 제가 처음으로 한 거예요.

◆ 박귀빈 : 그게 몇 년도입니까?

◇ 김희정 : 2004년.

◆ 박귀빈 : 2004년에 벌써요?

◇ 김희정 : 그러니까 뭐냐 하면 그전에는 아까 이 대비도 없었을뿐더러 말로만 질의하고 말로만 답변하던 시절이었어요. 그나마 16대 국회 때까지는, 2003년 때까지는 한 명이 질문 다 하고 국회의원 20명이 질문만 다 하고 나면, 질문만 끝나고 나면 답변만 모아서 한꺼번에 하던 시절이었어요. 2003년까지는.

◆ 박귀빈 : 2000년대 초반에 그랬던 시대에...

◇ 김희정 : 근데 2004년 들어와서 처음으로 일문일답 제도로 바뀐 거예요. 국회 제도가.

◆ 박귀빈 : 그렇군요.

◇ 김희정 : 그래서 의원들이 공부했는지 아닌지와 장관이 공부했는지 아닌지가 이제 왜 국민들에게 만천하에 드러날 수 있게 돼 있는데, 그 말로만 해가지고 시간이 맨날 5분, 10분밖에 안 주는데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PPT로 말로 안 해도 되고 왜 팩트는 수치 같은 거는 화면으로 하고 첫 질의를 했는데 국회 사무처에서 이제 회의가 일어났어요. 보통 속기록에는 국회의원들이 말로 하는 것만 속기록에 들어가게 되어 있는데, 내가 직접 말을 하지 않고 하지만 내 질의 시간에 화면에 띄우거나 거기서 혹시 음성을 들었을 때 나온 거는 속기록에 어떻게 남기고 이 효력을 어떻게 할 건지에 대해 회의를 2004년에 국회에서 처음 연 거예요.

◆ 박귀빈 : 진짜 국회 지금 모습이 쭉 이어져 있는 거잖아요. 지금 그 모습을 하고 있잖아요, 계속.

◇ 김희정 : 그렇죠. 그러니까 지금은 이게 우리나라 사람들한테 너무나 이런 인터넷 문화나 디지털 문화가 당연한 건데 2004년에는 처음 제기했을 때 "이게 이런 게 있어?" 이런 시절이었어요.

◆ 박귀빈 : 우리 김희정 선생님이 그거를 2000년대 초반에 다 만드신 거예요. 길을 닦으신 분인데 선생님 큰일 났어요. 시간이 3분밖에 없어요.

◇ 김희정 : 우리 얘기 다 해버린 거예요?

◆ 박귀빈 : 네, 그래서 꼭 짚고 가야 되는 거, 이 디지털 시대에 여성 리더들에게 필요한 역량이 그래서 무엇인가?

◇ 김희정 : 네, 뭐냐 하면 보통 여성들이 가지는 한계가 물리력을 많이 얘기를 하잖아요. 그다음에 사회적인 네트워크에서 남자들 중심의 사회에서의 그 끈끈함, 왜 막 학교, 직장, 형의 형, 막 만나면 "형님" 막 이러는 거. 그런 데서 이제 사람 관계가 많을수록 사실은 소통하는 정보도 많아지고 삶에 대한 얘기도 많이 들을 수 있거든요. 그런데 디지털이라는 거는 여성들이 상대적으로 오프라인 세상에서 취약했던 그런 물리력을 써야 되는 거라든지, 일가정 양립하면서 부족한 시간을 메우는 거라든지 그 장소의 공백이라든지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이 모든 거를 뛰어넘게 해주는 거예요.

◆ 박귀빈 : 맞네요. 그러네요.

◇ 김희정 : 그래서 소위 자신만의 확고한 콘텐츠가 있으면 누구든 커뮤니케이터가 될 수 있는 거예요. 소통가. 그래서 오프라인에서의 한정된 소통가가 온라인 세상에서는 마음껏 진짜 소통가가 될 수 있다.

◆ 박귀빈 : 그래서 준비는 돼 있습니다. 기회는 얼마든지 마련돼 있는데 그렇다면 내가 키워야 될 역량, 갖춰야 될 역량 있어야 될 것 같아요.

◇ 김희정 : 마음을 '온(ON)' 해야 돼요.

◆ 박귀빈 : 마음을 온? 어떻게 온 하면 될까요?

◇ 김희정 : 그러니까 어쨌든 제가 방금 얘기했듯이 디지털 세상에서는 오프(OFF)를 하면 연결이 될 수가 없는 거잖아요. 그런데 '새로운 도전에 응해 보겠다', '내가 기회가 오지 않는다면 내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 보겠다', '내가 먼저 손 내밀고 다가가겠다'라는 그 온, 또는 '나에게 다가와 주세요'라는 사인을 보내는 것도 온.

◆ 박귀빈 : 사인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까요?

◇ 김희정 : 온이요?

◆ 박귀빈 : "나한테 다가와 주세요, 난 마음을 열 준비가 돼 있습니다."

◇ 김희정 : 디지털 세상에서...

◆ 박귀빈 : 네, 이제 AI 시대가 되고 많은 좀 참여를 좀 해봐야 될까요? 공부를 해야 되고.

◇ 김희정 : 예를 들어서 오늘 같은 '슬라생'에 댓글도 남겨주시고, 오늘 참석한 국회의원 저 5교시인데 1, 2, 3, 4, 5교시 의원들 당도 다 다르고 하거든요. 거기에 쪽지도 남겨보시고 직접 연락처 모르는 분들은 '슬라생'을 통해서 연락 주셔도 돼요. 여러분, 온(ON)입니다. 온.

◆ 박귀빈 : 진짜 너무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는 걸 느껴지는 오늘이었고요. K-여성 정치 시민 학교, 제2, 제3의 김희정을 꿈꾸면서 더 나은 세상 만들고 싶은 후배들에게 10초입니다. 오늘 핵심 포인트 한 줄 정리 부탁드려요.

◇ 김희정 : 일단 퍼즐을 맞추는 거예요. 나 혼자 전체 그림을 다 그릴 수는 없고, 우리 어린 시절에 그림 맞추기 할 때 한 조각이라도 부족하면 그 그림이 완성이 되지 않는 거잖아요. 그래서 세상살이가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나의 쓸모는 반드시 있고 상대방의 쓸모도 반드시 있는 거예요. 그래서 '함께 이 퍼즐 맞추기를 해 나간다'라는 그 마음을 가지고 서로가 소중하게 생각하면 정치든 사회생활이든 멋지게 해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 박귀빈 : 오늘의 선생님 김희정 의원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김희정 : 네, 온 하세요.

YTN 이시은 (sieun0805@ytn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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