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틀막 서커스에 확 바뀐 사파리, 에버랜드의 봄 [여밤시]

양형모 기자 2026. 4. 9.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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튤립축제가 절정을 이루고 있는 에버랜드 포시즌스 가든. 올해는 꽃으로만 제대로 승부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사진제공 |에버랜드
[스포츠동아 양형모 기자] 그야말로 ‘전원적’인 날씨다. 하늘에서 베토벤 전원교향곡 1악장의 주제가 빰빠라밤 울려 퍼지는 것 같다.  평일임에도 현장 체험학습을 온 학생들과 놀이공원 드레스코드로 교복을 빌려 입은 20대 청춘들, 유모차를 앞세운 가족들까지 사람들로 북적북적하다. 에버랜드는 튤립축제 개막 십여 일 만에 벌써 25만 명의 상춘객을 불러 모았다. 완벽한 봄의 상륙이다.

첫 코스는 포시즌스 가든. 에버랜드 ‘꽃바람 이박사’ 이준규 그룹장이 싱글벙글 일행을 맞았다. 예년보다 꽃을 훨씬 많이 심었단다. 이런저런 거창한 무대나 장치는 과감하게 치워버렸다. 오직 꽃. 고객에게 진짜 예쁜 꽃을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뚝심이다. 수선화, 무스카리, 튤립 등 100여 종 120만 송이가 융단처럼 눈부시게 깔렸다.

튤립축제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마이크를 잡은 ‘꽃바람 이박사’ 이준규 그룹장
조화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을 뽐내는 튤립. 빨간 튤립의 꽃말은 ‘사랑의 고백’이다.
튤립은 볼 때마다 신기하다. 조화라고 해도 믿을 것 같다. 꽃잎 하나하나가 신의 선반으로 깎아 놓은 듯 비현실적인 형태를 하고 있다. 오래전 유럽에서 튤립 한 송이가 집 한 채 값이었다는 얘기가 있는데, 정말인지도 모르겠다. 아무렴 어떠랴. 대충 찍어도 인생샷 각이라 셔터 누르기 바쁘다.

발걸음을 돌려 실내 공연장 그랜드스테이지로 향했다. 4월 1일 오픈한 서커스 공연 ‘윙즈 오브 메모리’를 볼 차례. 캐나다 3대 서커스 제작사 엘로와즈가 스태프로 대거 참여했다. 솔직히 자리에 앉을 때까지만 해도 방심했다. 놀이공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충 만든 어린이 공연물이겠지. 내가 이래 봬도 공연담당 19년 차 기자란 말씀.

‘윙즈 오브 메모리’의 공연 장면. ‘태양의 서커스’ 출신 스태프들이 참여해 2년에 걸쳐 완성한 고품격 서커스 공연이다. 사진제공 |에버랜드
그런데 완전 ‘경기도 평택 옆 오산’이었다. 소녀 이엘(EL)의 신비로운 등장에 이어 고니가 하늘로 훌쩍 날아오르면서부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 이거 장난 아닌데?’ 콘토션, 에어리얼 폴 등 7종의 서커스가 40분간 쉴 새 없이 터진다. 공중을 가르는 단원들의 아크로배틱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2년 이상 공들였다더니, 과연 태양의 서커스의 가성비 버전이라 할 만했다. 이런 하이레벨 공연을 입장객 대상 추첨제로 무료 관람할 수 있다. 참고로 주인공 이름 이엘은 에버랜드를 부르는 직원들의 애칭이라고 한다.
더욱 와일드해진 사파리월드로 들어가는 게이트
놀란 가슴을 진정시킬 새도 없이 하이라이트가 또 밀려온다. 사파리월드다. 1년여 꼼꼼한 리뉴얼을 마치고 4월 1일 더 와일드하게 돌아왔다. 사파리 입장 직전. 롤러코스터가 꼭대기에서 뜸을 들이는 순간과는 또 다른 쫄깃한 설렘이 있다. 자동차도 완전히 바뀌었다. 매연 뿜는 낡은 트램 대신 호랑이, 사자, 불곰 얼굴을 귀엽게 본뜬 친환경 EV버스가 기다린다. 길이 11m, 13톤짜리 거구지만 전기차 특유의 정숙함 덕분에 조용하고 부드럽다.

사파리에 오면 누구나 하게 되는 상상. 호랑이와 사자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짜장면과 짬뽕 급의 영원한 떡밥이다. 개인적인 결론은 이렇다. 일진 호랑이와 모범생 사자가 싸우면 호랑이가 이긴다. 반대면 사자가 이긴다. 평소 숨쉬기 운동만 하는 배 나온 아저씨 기자와 20대 현역 여성 파이터의 대결쯤으로 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그냥 싸움 잘하는 놈이 이기는 거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거친 북방의 숲에서 왔을 백두산 호랑이가 제일 늠름하고 잘생겨 보인다.

사냥 나간 암사자들을 기다리며 포스를 뿜고 있는 수사자의 위용. 그런데 현실은 상상과 달랐다.
더크고 귀여워진 사파리월드의 친환경 EV버스. 곰도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사진제공 |에버랜드
호랑이 구역을 지나 탁 트인 사바나 초원으로 넘어왔다. 사자 동네다. 사자 세계에서 사냥은 암사자들 몫이다. 수사자는 가장 높은 바위에 궁둥이를 붙이고 황금빛 갈기를 폼나게 휘날리며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는 먼 곳을 응시하고 있다. 일인자의 절대 고독. 카리스마가 좔좔 흐른다.

그런데 동승한 가이드 대원의 말은 좀 달랐다. 최근 젊고 힘센 수사자에게 서열 1위를 뺏겼단다. 그 말을 듣고 다시 녀석을 올려다보니 뿜어내던 포스는 온데간데없다. 어깨는 축 처지고 눈빛은 우울해 보인다. 권력의 무상함이라니. 인간사나 짐승의 세계나 권력은 허무하기 짝이 없구나.

사파리월드의 굿즈상점. 사파리에서 보았던 백사자 굿즈도 있다.
스페셜 불꽃쇼 ‘빛의 수호자들’ 사진제공 |에버랜드
해가 뉘엿뉘엿 기울기 전 에버랜드를 빠져나왔다. 야간에 펼쳐지는 대형 불꽃쇼 ‘빛의 수호자들’은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는 수밖에. 그래도 서운하지 않다. 생화인지 조화인지 헷갈리던 120만 송이 튤립, 입을 떡 벌어지게 한 40분간의 서커스, 그리고 처량해서 더 기억에 남는 수사자의 눈빛만으로도 오늘치 봄날의 행복은 차고 넘쳤으니까. 에버랜드, 낭만 합격!

[여밤시] 여행은 밤에 시작된다. 캐리어를 열고, 정보를 검색하고, 낯선 풍경을 상상하며 잠 못 드는 밤. 우리들의 마음은 이미 여행지를 향해 출발하고 있었다.

용인 |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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