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 하나가 ‘비트코인 발명가’ 정체 단서됐다…110조 갑부 된 암호학자

김슬기 기자(sblake@mk.co.kr) 2026. 4. 9.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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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T 1년 추적끝에 사토시 정체 폭로
영국 55세 암호학자·개발자 애덤 백
과거 게시물 오타·문장 습관 등 분석
3만4000명 후보에서 한명으로 추려
지목당한 백 “난 사토시 아니다” 부인
애덤 백 [Blockstream]
“사이버펑크, 암호학자, 프라이버시/전자화폐 전문가, 해시캐시(비트코인 채굴) 발명가, 컴퓨터 과학 박사”

자신의 이력을 이렇게 설명하는 55세의 영국인 암호학자가 21세기 가장 미스터리한 발명을 한 은둔자의 정체로 지목됐다.

비트코인 창시자를 찾기 위해 1년 동안 수십 년 전 인터넷 게시물 수천 개를 샅샅이 뒤지는 필사의 추적을 한 끝에 뉴욕타임스(NYT)는 사토시 나카모토의 정체가 영국의 55세 개발자 애덤 백이라고 보도했다.

8일(현지시간) 보도된 이 탐사 보도를 이끈 인물은 퓰리처상을 두 번이나 수상하고 엘리자베스 홈즈 스캔들을 고발한 스타 기자 존 캐리루다. 다만 비트코인 커뮤니티에서 크게 화제가 된 보도 직후 애덤 백은 소셜미디어 X에 “나는 사토시가 아니다”라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2024년 가을의 어느 날, 기자는 꽉 막힌 퇴근길 차 안에서 우연히 팟캐스트를 듣고 있었다. 화면 속에서는 HBO 다큐멘터리가 비트코인의 창시자 ‘사토시 나카모토’의 정체를 폭로했다며 떠들고 있었다. 다큐멘터리는 캐나다의 젊은 개발자 피터 토드를 사토시로 지목했지만, 그의 직감은 다른 곳을 향했다.

기자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다큐멘터리 속 한 장면이었다. 라트비아 리가의 한 공원 벤치에 앉아 있던 영국의 암호학자 애덤 백(Adam Back). 감독이 사토시 용의자들의 이름을 나열하다가 그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애덤 백의 몸이 굳었다. 흔들리는 눈빛, 어색한 웃음, 부자연스러운 손놀림. 거짓말쟁이들의 미세한 떨림을 읽어내는 데 도가 튼 기자의 본능이 경고음을 울렸다. ‘저 남자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

이 작은 의심은 곧 2.4조 달러(약 3500조 원) 규모의 제국을 창조하고 사라진 세기의 천재를 추적하는 거대한 사냥의 신호탄이 됐다.

제1장: 유령이 남긴 언어의 지문
비트코인. AFP연합뉴스
사토시는 인터넷상에 어떤 디지털 발자국도 남기지 않은 완벽한 유령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인간이기에 ‘글’이라는 흔적을 남겼다. 비트코인 백서, 포럼 게시글, 그리고 초기 개발자들과 주고받은 수백 통의 이메일이 기자의 유일한 단서였다.

사토시의 글은 기묘했다. 그는 영국식 철자와 미국식 관용구를 섞어 썼고, 90년대 사이버펑크(정부 감시를 피해 암호화 기술을 연구하던 아나키스트 그룹) 특유의 분위기를 풍겼다. 기자는 사토시의 글에서 “네트워크의 위협(a menace to the network)”과 같은 독특한 표현 100여 개를 추출했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유력 용의자들의 과거 글을 샅샅이 뒤진 결과, 기자의 노트에 적힌 100개의 표현 중 거의 모든 항목에 ‘체크 표시’가 된 단 한 명의 인물이 등장했다. 바로 애덤 백이었다. 아드레날린이 솟구쳤다. 게다가 애덤 백은 비트코인 채굴의 핵심 기술인 ‘해시캐시(Hashcash)’의 창시자이자, 사토시가 백서에서 직접 인용한 인물이었다.

제2장: 라스베이거스의 조우, 그리고 소름 돋는 평행이론
애덤 백의 이메일과 사토시 나카모토의 글이 매우 흡사하다. [NYT]
기자는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비트코인 콘퍼런스에서 애덤 백과 첫 대면을 가졌다. 얇은 은테 안경을 쓴 55세의 덥수룩한 수학자. 그가 비트코인 110만 개(약 110조원)를 쥐고 있는 세계 최고의 갑부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대화를 나눌수록 퍼즐 조각은 기막히게 맞아떨어졌다. 애덤 백은 분산형 컴퓨터 시스템을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비트코인 초기 버전과 동일한 C++ 언어로 코딩을 했다. 더 충격적인 것은 1990년대 후반 ‘사이버펑크’ 메일링 리스트에 남긴 그의 과거 기록들이었다.

애덤 백은 이미 1997년부터 1999년 사이에 비트코인의 거의 모든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었다. 중앙 서버가 없는 분산형 전자 화폐, 연산 능력을 통한 화폐 발행, 퍼블릭 타임스탬프, 심지어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한 채굴 난이도 조절 알고리즘까지. 사토시가 10년 뒤에 발표한 비트코인 백서의 내용은 애덤 백이 과거에 주장했던 논리와 소름 돋을 정도로 일치했다. 심지어 스팸 메일을 극도로 혐오하여 이를 막기 위해 화폐 시스템을 활용하자는 독특한 발상조차 두 사람은 똑같았다.

제3장: 우연을 가장한 완벽한 엇갈림
행적의 교차점은 더욱 의심스러웠다. 사토시 나카모토가 비트코인을 세상에 내놓은 2008년, 전자 화폐의 열렬한 옹호자였던 애덤 백은 돌연 모든 인터넷 포럼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2011년, 사토시가 “이제 다른 일로 넘어간다”며 영원히 사라진 직후, 거짓말처럼 애덤 백이 다시 나타나 비트코인 커뮤니티의 전면에 나섰다.

2013년, 사토시의 막대한 자산 규모가 세상에 폭로된 바로 그날, 애덤 백은 비트코인 포럼에 가입해 맹렬히 활동을 시작했다. 곧이어 ‘블록스트림(Blockstream)’이라는 회사를 세워 비트코인 생태계의 절대적인 지배자가 되었다.

압권은 2015년 비트코인 블록 크기를 둘러싼 내전 상황이었다. 애덤 백이 블록 크기 확장에 반대하며 수세에 몰려 있을 때, 해킹당한 줄 알았던 사토시의 이메일 계정에서 기적처럼 메일이 날아왔다. 사토시는 애덤 백과 정확히 똑같은 논리와 단어를 사용하며 그의 반대파를 맹비난했다. 애덤 백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유령이 나타나 그를 구원한 것이다.

제4장: 3만 4천 명을 걸러낸 치명적인 오타
결정적인 스모킹 건(Smoking gun)이 필요했다. 기자는 뉴욕 타임스의 AI 데이터 분석팀과 함께 1992년부터 2008년까지 사이버펑크 커뮤니티에 글을 남긴 3만4000명의 데이터를 전부 분석했다.

아무리 천재적인 암호학자라도 문법적인 무의식까지 완벽히 숨길 수는 없었다. 사토시와 애덤 백은 기묘한 문법적 결함을 공유하고 있었다.

  • ‘proof-of-work(작업 증명)’ 같은 명사형에 불필요한 하이픈(-)을 넣는 습관.
  • ‘it’s’와 ‘its’를 혼동하는 실수.
  • 문장 끝에 ‘also’를 붙이는 독특한 버릇.
  • 영국식(cheque)과 미국식(check) 스펠링을 혼용하는 방식.
이러한 수백 개의 교집합 필터를 거치자, 3만4000명의 명단은 620명으로, 다시 114명으로, 마침내 단 한 명의 이름으로 좁혀졌다. 화면에 남은 마지막 이름은 애덤 백, 그뿐이었다.
제5장: 엘살바도르의 호텔에서 마침내 가면이 벗겨지다
모든 증거가 완성되었다. 기자는 엘살바도르의 한 고급 호텔에서 애덤 백과 마주 앉았다. 두 시간 동안 숨 막히는 진실 공방이 이어졌다. 애덤 백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고, 끊임없이 자세를 바꾸며 불안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그는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 뿐”이라며 사토시임을 완강히 부인했다.

하지만 승부는 뜻밖의 찰나에 결정되었다. 기자가 사토시의 과거 발언인 “나는 글보다는 코딩에 더 능하다(I‘m better with code than with words)”라는 문장을 꺼내려는 순간이었다. 기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애덤 백이 다급하게 말을 끊으며 튀어나왔다.

“글쎄요, 나는 누군가 치고는 말을 꽤 많이 한 편이죠. 내 말은, 내가 글에 소질이 있다고 말하는 건 아니지만, 인터넷에서 수다를 정말 많이 떨긴 했잖아요.”

순간 정적이 흘렀다. 애덤 백은 은연중에 ‘글보다 코딩이 편하다’고 말했던 사토시의 심리를 스스로 변호하고 있었다. 방어벽이 무너진 찰나의 순간, 애덤 백이라는 외피가 벗겨지고 16년간 숨어있던 ‘사토시 나카모토’의 맨얼굴이 드러난 것이다.

며칠 뒤, 애덤 백은 이메일을 통해 “단순한 대화의 흐름이었다”며 서둘러 수습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세상을 바꾼 암호화폐의 창시자, 1180억 달러의 비밀을 품은 천재와의 길고 길었던 체스 게임은 기자의 체크메이트로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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