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흔한’ 근친혼, 부모가 서로 4촌 이내…첫 DNA 분석 대반전
왕실뿐 아니라 사회 전반 근친혼 성행
성별 편향 없는 친족 구조…세습형 순장

1500여년 전 신라 초기 사회의 친족 구조와 혼인, 장례 관행이 고유전체 분석 기술을 통해 상세하게 드러났다.
서울대와 영남대, 세종대,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공동연구진은 경북 경산의 임당-조영동 고분군에서 출토된 유골들의 DNA를 분석한 결과, 당시 신라는 상하 계층을 불문하고 근친혼을 축으로 남녀 성별 편향이 없는 친족 구조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8일 발표했다. 또 장례는 인신공양 형태의 순장으로 치러졌으며, 부모와 자녀가 같이 순장을 당하는 가족 단위 순장 풍습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공동 교신저자인 정충원 서울대 교수(생명과학)는 “이번 연구는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첫 대규모 고유전체 연구로, 유전자 역사와 고대 사회의 구성을 동시에 들여다보았다는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임당-조영 고분군은 4~6세기에 걸쳐 약 100년 동안 조성된 것으로, 4세기경 신라에 복속된 압독국 지배계층 가문으로 여겨지는 사람들의 무덤이다. 현재까지 1600여기의 고분과 259구의 유골이 발굴됐다. 이번 연구는 44기 고분에서 수습한 172명의 유골 중 전체 게놈 분석이 가능한 78명의 유골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지배층과 순장자는 동일 인구 집단
연구진이 근친혼 여부를 판별하기 위해 활용한 방법은 ROH(Runs of Homozygosity, 동형접합 연속 구간) 분석이다. 사람은 부모로부터 각각 하나씩 염색체를 물려받는데, 부모의 혈연관계가 가까울수록 동일한 유전자 구간을 양쪽에서 물려받을 확률이 높아진다. 이처럼 양쪽 염색체에서 동일하게 나타나는 긴 구간을 ROH라고 한다. 근친혼일수록 이러한 구간의 길이가 길고 개수도 많아진다.
분석 결과 지배층에 속한 한 여성(IMD003)은 부모가 사촌 또는 그보다 더 가까운 친척 관계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신라 왕실이나 귀족들이 권력 유지를 위해 근친혼을 했다는 문헌 기록을 뒷받침하는 유전학적 증거다.
지배층뿐만 아니라 순장자 집단에서도 같은 사례가 발견됐다.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오지원 연세대 의대 교수(해부학)는 “근친혼이 왕실 엘리트만의 관행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문화였을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무덤 주인인 지배 계층과 피지배층인 순장자들 사이에 생물학적, 유전적 차이는 전혀 없었다. 두 집단 모두 삼국시대 다른 한반도인들과 유사한 유전적 구성을 가진 동일한 인구 집단에 속했다. 일본 열도 이주민 계통인 조몬 관련 유전자도 발견되지 않았다.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 이상희 교수(인류학)는 “이는 외부에서 이방인을 데려와 제물로 바친 것이 아니라, 같은 지역 집단 내에서도 철저히 계급을 분리해 서로 혼인을 맺지 않는 특정 계층 사람들을 순장했음을 뜻한다”고 말했다. 신분 차이가 생물학적 뿌리가 다른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가문이나 사회적 관습에 의해 결정되었다는 얘기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순장되기도
고대 유럽에서 흔히 나타나는 부계 중심의 ‘여성 외혼제’(여성이 태어난 집단을 떠나 결혼하는 관습)와 달리, 성인 여성이 모계 친족과 함께 매장되거나 본인이 주인공인 무덤에 묻힌 사례도 여럿 발견됐다. 당시 사회가 엄격한 부계 중심 사회가 아니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사례다. 오지원 교수는 “고대 DNA 기반 혈연관계(ancIBD) 네트워크 분석에서도 성인 남녀 간 유전적 연결 정도에 통계적 차이가 없었다”며 “이는 유럽과는 다른 ‘성별 편향 없는 친족 구조’ 사례라는 점에서 고유한 문화적 구조를 가졌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문헌으로만 전해지던 걸 유전체로 확인
이상희 교수는 “이 지역에 순장 풍습이 있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었으나, 무덤의 주인공과 순장자 간의 생물학적 관계를 유전학적으로 규명한 최초의 연구라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매우 크다”고 말했다.
오지원 교수는 “이번 연구는 단일 유적에서 13개 가족 족보를 복원한 규모 자체가 한국 고고유전학의 이정표”라며 “문헌으로만 전해지던 신라의 근친혼·순장 관행이 유전체 데이터로 처음 뒷받침된 점에서 역사학-유전학 학제간 연구의 모범적 사례”라고 말했다.
*논문 정보
Ancient genomes reveal an extensive kinship network and endogamy in a Three-Kingdoms period society in Korea.
DOI: 10.1126/sciadv.ady8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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