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흔한’ 근친혼, 부모가 서로 4촌 이내…첫 DNA 분석 대반전

곽노필 기자 2026. 4. 9. 09:36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곽노필의 미래창
왕실뿐 아니라 사회 전반 근친혼 성행
성별 편향 없는 친족 구조…세습형 순장
신라 사람들의 옷차림을 포함해 생활상의 실마리를 엿볼 수 있는 토용. 1986년 경주 용강동에서 나왔다. 국가유산청 누리집

1500여년 전 신라 초기 사회의 친족 구조와 혼인, 장례 관행이 고유전체 분석 기술을 통해 상세하게 드러났다.

서울대와 영남대, 세종대,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공동연구진은 경북 경산의 임당-조영동 고분군에서 출토된 유골들의 DNA를 분석한 결과, 당시 신라는 상하 계층을 불문하고 근친혼을 축으로 남녀 성별 편향이 없는 친족 구조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8일 발표했다. 또 장례는 인신공양 형태의 순장으로 치러졌으며, 부모와 자녀가 같이 순장을 당하는 가족 단위 순장 풍습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공동 교신저자인 정충원 서울대 교수(생명과학)는 “이번 연구는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첫 대규모 고유전체 연구로, 유전자 역사와 고대 사회의 구성을 동시에 들여다보았다는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임당-조영 고분군은 4~6세기에 걸쳐 약 100년 동안 조성된 것으로, 4세기경 신라에 복속된 압독국 지배계층 가문으로 여겨지는 사람들의 무덤이다. 현재까지 1600여기의 고분과 259구의 유골이 발굴됐다. 이번 연구는 44기 고분에서 수습한 172명의 유골 중 전체 게놈 분석이 가능한 78명의 유골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경북 경산 임당동 고분군. 국가유산청 누리집

지배층과 순장자는 동일 인구 집단

연구진은 우선 유골의 DNA 분석을 통해 친족 관계에 있는 54쌍을 찾아내고, 이를 바탕으로 13개의 가계도를 복원했다. 10개는 최소 한 쌍 이상의 2차 친족(조부모 공유 관계), 3개는 2차~3차 친족(증조부모 공유 관계)으로 연결된 가계였다.

연구진이 근친혼 여부를 판별하기 위해 활용한 방법은 ROH(Runs of Homozygosity, 동형접합 연속 구간) 분석이다. 사람은 부모로부터 각각 하나씩 염색체를 물려받는데, 부모의 혈연관계가 가까울수록 동일한 유전자 구간을 양쪽에서 물려받을 확률이 높아진다. 이처럼 양쪽 염색체에서 동일하게 나타나는 긴 구간을 ROH라고 한다. 근친혼일수록 이러한 구간의 길이가 길고 개수도 많아진다.

분석 결과 지배층에 속한 한 여성(IMD003)은 부모가 사촌 또는 그보다 더 가까운 친척 관계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신라 왕실이나 귀족들이 권력 유지를 위해 근친혼을 했다는 문헌 기록을 뒷받침하는 유전학적 증거다.

지배층뿐만 아니라 순장자 집단에서도 같은 사례가 발견됐다.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오지원 연세대 의대 교수(해부학)는 “근친혼이 왕실 엘리트만의 관행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문화였을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무덤 주인인 지배 계층과 피지배층인 순장자들 사이에 생물학적, 유전적 차이는 전혀 없었다. 두 집단 모두 삼국시대 다른 한반도인들과 유사한 유전적 구성을 가진 동일한 인구 집단에 속했다. 일본 열도 이주민 계통인 조몬 관련 유전자도 발견되지 않았다.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 이상희 교수(인류학)는 “이는 외부에서 이방인을 데려와 제물로 바친 것이 아니라, 같은 지역 집단 내에서도 철저히 계급을 분리해 서로 혼인을 맺지 않는 특정 계층 사람들을 순장했음을 뜻한다”고 말했다. 신분 차이가 생물학적 뿌리가 다른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가문이나 사회적 관습에 의해 결정되었다는 얘기다.

경북 경산의 임당-조영동 고분군 전경. 국가유산청 누리집

부모와 자녀가 함께 순장되기도

연구진은 특히 부모와 자녀가 같은 무덤에 함께 순장된 3개의 사례를 발견했다. 연구진은 “이는 무덤 주인 계층을 위해 대대로 제물로 바쳐진 가족이 존재했음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지배층 특정 가문을 위해 대를 이어 희생되는 ‘순장자 신분 세습’이 작동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고대 유럽에서 흔히 나타나는 부계 중심의 ‘여성 외혼제’(여성이 태어난 집단을 떠나 결혼하는 관습)와 달리, 성인 여성이 모계 친족과 함께 매장되거나 본인이 주인공인 무덤에 묻힌 사례도 여럿 발견됐다. 당시 사회가 엄격한 부계 중심 사회가 아니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사례다. 오지원 교수는 “고대 DNA 기반 혈연관계(ancIBD) 네트워크 분석에서도 성인 남녀 간 유전적 연결 정도에 통계적 차이가 없었다”며 “이는 유럽과는 다른 ‘성별 편향 없는 친족 구조’ 사례라는 점에서 고유한 문화적 구조를 가졌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무덤 주인 간 유추된 가족 관계와 가족 순장이 된 경우들을 도식화한 가계도. 순장묘를 묘사하는 사각형과 해당 묘의 무덤 주인은 점선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사촌 간 근친혼으로 태어난 여성(*)은 무덤 주인으로 추정. 회색 인물은 친족 관계를 기반으로 유추가능한 인물들을 표시한 것이다. 서울대 제공

문헌으로만 전해지던 걸 유전체로 확인

논문 공동 교신저자인 우은진 세종대 교수(역사학)는 “삼국사기를 비롯한 문헌 기록으로만 전해지던 근친혼 사례를 유전학적으로 입증한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다”며 “이번 연구를 통해 밝혀진 사실이 주변 지역에도 확장 적용될 수 있는지 검증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상희 교수는 “이 지역에 순장 풍습이 있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었으나, 무덤의 주인공과 순장자 간의 생물학적 관계를 유전학적으로 규명한 최초의 연구라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매우 크다”고 말했다.

오지원 교수는 “이번 연구는 단일 유적에서 13개 가족 족보를 복원한 규모 자체가 한국 고고유전학의 이정표”라며 “문헌으로만 전해지던 신라의 근친혼·순장 관행이 유전체 데이터로 처음 뒷받침된 점에서 역사학-유전학 학제간 연구의 모범적 사례”라고 말했다.

*논문 정보

Ancient genomes reveal an extensive kinship network and endogamy in a Three-Kingdoms period society in Korea.

DOI: 10.1126/sciadv.ady8614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