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마을 호숫가에 켜진 ‘형광의 빛’…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박경일기자의 여행]

박경일 전임기자 2026. 4. 9.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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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경일기자의 여행 - 43년만에 열린 뱃길 따라 대청호 탐방 충북 옥천
‘내륙의 바다’로 불렸던 대청호
1980년 댐 준공후 유람선사고
소형선박·어선만 부정기 운행
지난달 40t급 정기여객선 투입
옥천 시인 ‘정지용’ 이름 붙여
고립됐던 마을 곳곳 연결 역할
굽이굽이 돌때마다 새로운풍경
수몰 버드나무서 돋은 연두잎
숨겼던 등불 같은 찬란함 뽐내
‘육지 속 섬마을’ 오대리도 장관
둔주봉 중턱엔 좌우반전 한반도
물에 잠겨 더멋진 ‘부소담악’도
대청호 장계관광지 선착장에서 오전 9시에 출항한 ‘정지용호’를 타고 가다 마주친 신록. 이즈음의 신록은 눈부신 ‘형광’이다. 신록의 연두색이 어찌나 눈부신지 나무 안에다 환하게 불을 켠 것 같다. 수변의 신록 풍경이 유난히 근사한 건 그 모습이 수면 위에 그대로 찍혀서다.

옥천=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 봄꽃보다 아름다운 수변의 신록

봄꽃이 지나고 나니 찬란한 신록의 시작이다. 신록은 꽃보다 더 전격적이고, 더 화려하다. 신록 중 최고는 수변에 피어난 신록이다. 물감을 왈칵 엎지른 것 같은 연두의 신록이 데칼코마니처럼 고요한 수면 위에 도장처럼 찍힌다. 잔잔한 수면은 빛이 산란하는 거대한 반사판이 되고, 연두색 잎사귀 뒷면을 투과한 빛은 형광으로 반짝인다. 지금 충북 옥천의 대청호에 가면, 그런 찬란한 신록을 볼 수 있다.

절정의 미감을 완성하는 자연조건은 두 가지. 첫째 짧아야 한다. 둘째 희소성이 있어야 한다. 짧게 피고 질수록 아름답고, 꼭꼭 숨은 것일수록 각별하다는 의미다. 종합하면 미감의 조건은 ‘쉽게 볼 수 없으며, 흔하지 않은 것’이다.

결론은 우리가 느끼는 미감이 상대적인 것이며 인문적 감각이란 얘기. 짧게 볼 수밖에 없어서, 또는 귀한 풍경이라 아름답게 보인다는 뜻이다.

대청호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록은 고립된 내륙 오지마을 수변에 있다. 미감의 조건을 신록에 대입해 검산해보자.

먼저 ‘짧아야 한다’는 조건의 충족. 수변의 신록은 물드는 속도도 빠르고 저마다 다른 채도로 구분되던 초록의 경계가 무너지는 것도 한순간이다. 짧아서 합격. 두 번째는 희소성이다. 대청호 담수로 길이 끊겨 고립된 오지마을은 접근 불가의 장소였다. 하물며 시기를 딱 맞춘 신록의 시간에는 더 그렇다. 그렇다면 이것도 합격.

보기 어려웠던 대청호 깊숙한 오지마을의 수변 신록을 이제는 마음껏 볼 수 있게 됐다. 지난달 24일부터 대청호에 여객선 운항이 시작됐기 때문. 무려 43년 만의 운항 재개다.

배가 뜨자마자 때마침 오지마을 수변이 온통 신록으로 물들고 있으니, 봄날의 옥천여행 얘길 하면서 어찌 먼저 그 얘기를 꺼내지 않을 수 있을까.

충북 옥천 구읍의 정지용 생가 입구에 세워진 시인의 조형물. 투명한 구조로 시인 얼굴과 주변 풍경이 하나가 되도록 설계했다. 시가 된 풍경, 그리고 풍경이 된 시인을 말하고자 했을까.

# 대청댐에는 왜 배가 안 다녔을까

대청댐이 준공된 건 1980년 12월. 당시까지만 해도 국내 최대의 수 면적을 자랑했던 대청호는 ‘내륙의 바다’라 불리며 일약 인기 관광지로 부상했다. 담수가 다 끝나기 전부터 대청호에는 유람선과 여객선이 수시로 운항했다. 대표적인 것이 충북 옥천 장계관광지에서 청주 문의문화재단지까지 47㎞ 뱃길 구간을 다니던 유람선이었다. 승객들은 넘쳐났고 정부는 정부대로 대청호 일대를 ‘최고 관광지’로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펼쳐 보여줬다.

대청호 주변의 경치도 좋았겠지만, 다목적 댐은 압도적인 위용과 함께 뿌듯한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는 진기한 볼거리이기도 했다. 관광객들은 대청댐의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을 혀를 내둘러가며 봤다. 국토개발의 거대한 토목공사가 경제를 이끌며 성장의 상징으로 간주됐던 시절 얘기다.

그런데 댐 완공 이듬해 이런 계획에 찬물을 끼얹은 사건이 발생했다. 1981년 8월, 대청호에서 2.5t 규모의 무허가 유람선 ‘동명 1호’가 뒤집히면서 승객 9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진 것. 선상 술판이 벌어지면서 취중에 술잔을 주고받다가 승객이 한쪽으로 몰려 배가 전복된 것이었다. 배는 같은 마을 60세 동갑 계원 부부를 포함해 정원의 두 배가 넘는 30명을 태우고 유람 중이었다.

사고 후 대청호에서 유람선 운행은 전면 중단됐다. 사고의 여파는 컸다. 사고를 계기로 상수원보호구역인 대청댐에서의 선박 운행으로 인한 환경오염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결정적이었던 건 대통령 별장 건립에 따른 보안 문제였다. 1983년 대청호반에서 청남대 영빈관 공사를 시작하면서 선박 운항이 중단됐고, 이어 관광지개발 계획도 전면 철회됐다.

여기까지가 배 운항이 중단되기까지의 경위이자, 정부를 믿고 기대에 부풀어 은행 빚까지 져가며 상가와 여관을 짓고 모터보트와 유람선을 산 주민들이 하루아침에 쫄딱 망하게 된 사연이다.

옥천에는 두 개의 금강 지류가 있다. 서화천과 보청천이다. 두 곳 모두 봄 풍경이 근사한 곳이다. 서화천 변의 이지당. 조선 중기 성리학자이자 임진왜란 때의 의병 조헌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당이다.

# 시인의 이름을 배 이름으로 삼다

다음, 대청호에 다시 배가 뜨기까지의 얘기를 해보자. 그동안 대청호에 아예 배가 다니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대청호 담수가 시작되면서 수몰지역 측량 잘못으로 길이 끊겨 고립되는 마을이 속속 늘어나자 주민들을 위한 ‘마을 배’ 운항이 허가됐다. 주민들이 마을이나 경작지를 드나들 때만 타는 소형선박이었다. 내수면 어업허가를 받은 주민들의 어선까지 합쳐봐야 대청호를 다닐 수 있었던 배는 몇 척에 불과했다. 그렇게 40여 년의 시간이 지나갔다.

옥천군은 그동안 줄기차게 뱃길 복원을 요구했다. 관광객 유치의 기대가 있었겠지만, 앞세웠던 건 호수에 둘러싸여 ‘육지 속의 섬’이 된 마을 주민들의 이동권 확보였다. 부정기적으로 운항하는 마을 배 말고, 정기 여객선을 투입하자는 게 옥천군의 주장이었다.

2003년 청남대가 민간에 개방되면서 기대가 부풀기도 했지만, 상수원보호라는 강력한 명분에 밀려 선박 운항 요구는 번번이 좌절됐다.

그러다가 지난해 8월 환경부가 ‘팔당·대청호 상수원 수질보전특별대책지역 지정 및 특별 종합대책 고시’를 개정하면서 새로운 전기가 마련됐다. 개정 고시에는 ‘권역 내 친환경 도선의 운항을 허용한다’는 조항이 들어있다.

이를 근거로 여객선 운행 협의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옥천군은 곧바로 지방소멸기금 33억8500만 원을 들여 전기 선박을 건조했다. 길이 18.5m, 폭 5.5m의 40t급 선박이다. 최대 속도는 8노트, 승선정원은 40명이다. 선명(船名)은 ‘정지용호’. 옥천 출신 시인 정지용의 이름을 붙였다.

정지용호는 매일 오전 9시와 오후 2시에 옥천 장계관광지 도선장에서 출항한다. 장계관광지에서 출발한 배는 호수에 갇힌 오지마을인 주막말과 오대리, 석탄리를 거쳐 연주리까지 갔다가 되돌아온다. 운항시간은 편도 1시간 20분 남짓. 요금은 어른 8000원, 어린이는 5000원으로 다소 비싸게 책정됐다.

유람선이 아니라 ‘내륙 오지 주민의 교통수단’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관광객의 호주머니를 염두에 둔 가격책정이란 합리적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지역 주민은 승선 요금의 절반만 낸다.

# 배 타고 ‘넓은 벌 동쪽 끝’을 가다

지난달 24일 첫 운항을 시작한 이래 정지용호는 인기폭발이다. 좌석이 40석에 불과하니 주말은 말할 것도 없고, 주중에도 연속 매진이다. 가장 인기 있는 건 오후 2시대 승선권. 승선권은 예약 판매를 하지 않고 도선장 뒤편의 매표소에서 현장 매표만 한다. 출항 1시간 전에 매표소를 여는데, 보통 2시간 전부터 매표소 앞에 줄이 만들어진단다.

오후 배에 비하면 오전 9시 배는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편이다. 좌석 숫자가 적어 매일매일 편차가 있긴 하지만, 지난주 금요일 오전 9시에 출항한 배는 ‘텅텅 비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자리가 넉넉했다. 타 보니까 대청호반 경관은 오후 2시보다는 오전 9시 무렵이 훨씬 더 근사했다. 빛도 좋고, 수면도 잔잔하다. 배표가 넉넉한 편인 데다 수변 경관도 더 좋으니 대청호 여객선을 탄다면 고민할 것도 없이 ‘오전 9시 배’다.

정지용호는 소음도, 진동도 거의 없다. 전기 배라는 강점이자 특성이다. 순조로운 항해를 흔히 ‘미끄러지듯’이라 표현하는데, 정지용호를 타고 느끼는 감각이 딱 그 말 그대로다. 배가 수면 위를 부드럽게 미끄러지며 나아간다.

금강 물길을 가둬 만든 대청호는, 저수지라기보다는 몸집을 불린 강(江)의 형상이다. 살아서 흐르는 강물처럼 구불구불하고 길다. 정지용호는 이 구불구불한 물굽이를 거슬러 올라간다.

수몰되기 전 금강변 마을 풍경은 정지용의 시에 자주 등장한다. 얼룩배기 황소가 울고, 실개천이 휘돌아나가는, 그래서 꿈에도 잊힐 리 없는 고향 모습이다. 그 고향 땅이 잠긴 물 위를 정지용호를 타고 지나간다.

배가 굽이를 하나씩 돌 때마다 장면전환을 하듯 새로운 경관이 펼쳐졌다. 굽이를 앞두고 그다음에 나올 경치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배가 가장 먼저 닿은 곳은 주막말이다. 나룻배로 강을 건너던 ‘보내나루’가 있던 마을이다. 나루터 옆에 주막이 있었다고 해서 ‘주막 마을’로 불리던 것이 ‘주막말’로 굳어졌다. 주막은 사라진 지 오래이고 눈으로 금세 다 셀 수 있을 정도의 집들만 물을 바라보고 있다.

배가 선착장에 닿았지만, 아무도 타거나 내리지 않았다. 내다보는 이들도 없었다. 정물 같은 고요한 풍경이었다. 손님을 잠깐 기다리던 배가 다시 운항을 시작했다.

장계관광지 선착장에 정박 중인 대청호 여객선 ‘정지용호’.

# 향수호수길과 용이 승천한 용댕이

배가 주막말을 지날 때 마성산 자락의 수변 비탈에 길게 놓은 나무 덱이 눈에 들어왔다. 대청호를 끼고 아득하게 이어진 도보 코스 ‘향수호수길’이다.

옥천에는 정지용의 대표 시 ‘향수’에서 이름을 딴 길이 여럿 있다. ‘향수호수길’이 있고, ‘향수바람길’도, ‘향수100리길’도 있다. 정지용의 시 ‘향수’가 고향의 농촌 서정을 듬뿍 담고 있으니까, 길 이름으로 맞춤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얼룩배기 황소가/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정지용 시 ‘향수’ 부분)

향수호수길은 2019년 조성됐다. 수몰돼 잠긴 37번 국도 대신 산허리에 나무 덱을 놓아 이은 길이다.

옥천읍 수북리 선사공원에서 출발한 길은 날망마당~물비늘 전망대~황새터~용댕이를 거쳐 주막말까지 5.6㎞가 이어진다. 처음부터 끝까지 대청호의 푸른 물빛을 끼고 걷는 길이다.

이 근사한 길이 아쉽게도 개통도 하기 전에 중간에서 끊겨버렸다. 황새터~용댕이~ 주막말로 이어지는 2.3㎞ 구간이 걷기길 조성과정에서 낙석사고가 나서 출입이 통제된 것. 올해로 7년째. 아직까지도 닫힌 길이 언제 다시 열릴지 기약이 없다.

정지용호를 타면 먼발치에서나마 닫힌 향수호수길 구간을 볼 수 있다. 갈 수 없어 궁금했던 ‘용댕이’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용댕이는 용이 승천하다 계곡으로 떨어져 절벽을 이리저리 긁어대는 바람에 그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있다는 전설이 깃든 바위다.

용댕이 안쪽 깊숙한 자리에 자그마한 사찰이 있다. 끊긴 길 너머의 적막한 공간에서 세상과 등 돌리고 앉은 절집은, 그저 거기 있는 것만으로도 절반쯤의 수행을 이미 완성한 것처럼 보였다.

# 신록은 색이 아니라, 빛이다

주막말을 출발한 정지용호가 석탄리를 향해 물굽이를 도는 순간, 예기치 않은 신록의 습격을 받았다.

수변의 수몰 버드나무에서 돋아난 연두색 이파리들로 물가가 다 환했다. 그 뒤로 연분홍 벚꽃이 줄지어 도열했다. 역광을 받아 반짝이는 신록은 색이 아닌 ‘빛’이 만들어 낸 감동이었다. 이파리 저 안쪽에는 화려한 등불이라도 감춰둔 것 같은 경관이었다.

이런 장면을 어떤 표현으로 적확하게 옮길 수 있을까. 고르고 골라 찾은 형용사가 ‘찬란(燦爛)’이다. ‘빛날 찬(燦)’에 ‘빛날 란(爛)’자. 의미 중첩이다. ‘찬란하다: 빛이 번쩍거리거나 수많은 불빛이 빛나는 상태다. 또는 그 빛이 매우 밝고 강렬하다.’ 찬란이란 말의 의미대로 대청호를 끼고 있는 내륙의 오지마을 신록은 빛나고 또 빛났다.

석탄리 선착장에 섰던 배가 코앞에 빤히 마주 보이는 오대리에 다시 섰다. 석탄리에서 오대리 사이의 거리는 불과 200m 남짓. 석탄리도 내로라하는 오지로 꼽히지만, 오대리는 배가 아니면 도무지 들고날 방도가 없는, 말 그대로 ‘육지 속의 섬마을’이다. 대청호 권역을 통틀어서 길로 들어갈 수 없는 마을은 오대리가 유일하다.

정지용호의 종점은 둔주봉 아래 작은 마을 연주리다. 마을 이름은 ‘연꽃 연(蓮)’자에 ‘배 주(舟)’자를 쓴다. 지형이 연꽃이 물 위의 배처럼 떠 있는 형상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일제강점기에 깨뜨려 버린 ‘배(舟) 닮은 바위’가 있었다 해서 ‘배바우 마을’이라고도 불린다.

연주리 선착장 바로 옆에는 400여 년 전 조선 선조 때 지은 정자 독락정(獨樂亭)이 있다. 층암의 벼랑과 호수의 경관, 그리고 정자의 풍류가 어우러져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곳이다.

연주리 뒤편의 둔주봉 중턱에는 ‘옥천 8경’의 ‘제1경’으로 꼽히는 ‘한반도지형 전망대’가 있다. 금강 물줄기가 휘돌아나가면서 만든 한반도 지형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자리다.

다른 지역의 한반도 지형 명소와는 달리, 이곳에서는 좌우가 반전된 한반도 형상을 볼 수 있다. 부산이 왼쪽이고, 목포가 오른쪽에 있다는 얘기. 전망대 앞에 볼록반사경을 설치한 건 거울을 통해 온전한 한반도 모습을 보라는 뜻이다. 전망대까지 가는 길은 완만한 솔숲길이어서 가볍게 다녀올 수 있다.

‘정지용호’의 종점은 한반도경관 전망대가 있는 둔주봉 아래 연주리다. 배는 여기까지 와서 왔던 길을 되짚어 돌아간다. 둔주봉에서 내려다본 대청호의 모습. 물이 감아 돌아 만든 왼쪽의 물방울 형상의 땅이, 둔주봉 중턱에서 보면 한반도 형상으로 보인다.

# 물에 잠겨 근사해진 곳도 있다

대청호에서 물과 어우러진 최고의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명소가 또 있다. 추소리 부소무늬 마을 앞에 병풍처럼 떠 있는 ‘부소담악(芙沼潭岳)’이다.

부소담악은 수면 위로 솟은 칼날 같은 바위가 병풍을 두른 듯 길게 펼쳐져 있는 경관 명소다. 뱀의 머리처럼 가늘고 길게 물로 뻗어 나간 바위의 길이가 700m나 된다.

부소담악은 대청호 담수로 만들어진 풍경이다. 대청호 건설로 산자락의 아랫도리가 물에 잠기면서 물 위로 드러난 바위 능선이 긴 돌 병풍처럼 남았다. 근사한 돌을 주워 수반에 담고 물을 부어 연출한 품격있는 수석 같다.

이 정도로 빼어난 명승이라면 옛이야기 몇 개쯤은 있을 법한데, 그런 게 없다. 유배를 가던 송시열이 일대의 풍경을 통틀어 ‘소금강’이라 했다는 것 정도가 전해지는 이야기의 전부다. 그도 그럴 것이 부소담악의 아랫도리가 물에 잠기지 않았을 때는 이런 비범한 경관이 될지 누군들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댐 건설과 수몰이 모든 걸 지워버리기만 한 건 아니었다. 물에 잠겨서 잃은 것들이 훨씬 더 많기는 하지만, 물이 차올라 더 근사해진 경관도 있다.

부소담악이 그랬고, 43년 만에 정지용호를 타고 들어가서 보는 내륙의 섬마을 봄 풍경도 그랬다. 대청호는 지금 연둣빛 신록이 한창이다. 눈부신 신록을 보러 가기에 지금이 가장 좋은 때다.

■ 정지용 詩 간판

충북 옥천에는 ‘구읍(舊邑)’이 있다.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면서 옥천역을 중심으로 새로운 시가지(지금의 옥천읍내)가 형성되자, 예전 읍사무소가 있던 곳을 일러 ‘구읍’이라 부른다. 구읍을 대표하는 건 그곳에서 나고 자란 정지용 시인이다. 구읍은 정지용의 시구(詩句)와 결합되면서, 한때 시적 공간으로 재해석됐다. 그 시절 구읍 거리 상점 간판에는 정지용의 시 한 줄이 적혀 있었다. 그런데 지금 가보니 간판은 대부분 떨어져 나갔고, 그나마 남은 간판의 글씨도 거의 다 지워졌다.

박경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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