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뒤섞여 가치 평가도 어려워… 사모 대출, 의미 변질됐다”

“제대로 분산 투자를 하는 대신, 한 업종에 몰아서 투자를 한 사모 대출은 그 분야에 충격이 발생할 경우 투자자에게 돌려줄 돈이 사라질 위험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최근 위기론이 번지는 소프트웨어 부문에만 몰아서 투자를 한 펀드라면 이런 일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바비 레디(Reddy) 영국 케임브리지대 법대 교수는 최근 인터뷰에서 “지금의 사모 대출 중엔 담보 가치를 엄밀히 평가해 보수적으로 돈을 빌려주는 사모 대출과는 완전히 다른, 헤지펀드 수준의 고위험 대출이 뒤섞여 있다. 이런 모호함과 불투명함을 해소해야 한다”고 했다. ‘사모 대출’이란 펀드를 통해 돈을 빌려주는 일종의 사채다. IMF(국제통화기금)는 전체 사모 대출 규모를 약 2조1500억달러로 추산한다. 최근 AI(인공지능) 및 소프트웨어 기업을 중심으로 규모가 불어난 사모 대출의 위험이 부각되는 가운데 레디 교수는 최근 논문 ‘사모 펀드와 순자산 가치 대출: 시한폭탄인가 시의적절인가’ 등을 통해 사모 대출, 그중에서도 불어나는 ‘순자산 가치 대출’의 위험을 경고했다.
‘NAV(net asset value·순자산 가치) 대출’이라 흔히 불리는 이 대출은 여러 기업을 담은 펀드의 총체적인 순자산 가치(자산-부채)를 산정해 돈을 빌려주는 대출을 뜻한다. 최근 불어나는 사모 대출 펀드가 NAV 대출 방식으로 대출액을 산정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관심이 커지고 있다. NAV 대출은 건전하거나 부실한 기업을 섞어 펀드 전체의 ‘순자산’을 평가하는 방식으로 위험을 분산하는 효과가 있지만, 한편에선 부실한 자산의 위험이 쉽게 발라내지 못한다는 우려도 나온다. 글로벌 사모 펀드 회사인 ‘파트너스 그룹’은 지난 1월 보고서에서 전 세계 NAV 대출 규모가 약 1000억달러이며 2030년까지 6000억달러로 성장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사모 대출과 관련해 NAV 대출을 특히 주목할 이유가 있습니까.
“제 논문은 경영권 인수(바이아웃)를 위한 사모 펀드 연관 NAV 대출을 다뤘습니다. 이들 사모 펀드 중 상당수가 인수 자금을 사모 대출로 조달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 중 포트폴리오 다각화가 되어 있지 않은 펀드가 위험하다고 판단됩니다. 예를 들어 소프트웨어 부문에만 집중적으로 투자해 온 펀드의 경우 최근 우려처럼 소프트웨어 업종에 위기가 오면 대출 산정의 기준이 되었던, 펀드 전체의 NAV가 크게 하락하며 채무 불이행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집니다. 원래대로라면 이런 일은 극히 드물어야 하지만, 소프트웨어 자산에만 몰아서 투자한 펀드라면 이런 일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분산 투자를 잘해 둔 펀드라면 건전한 투자 자산을 매각해서 대출금의 일부를 상환함으로써 채무 불이행을 해결할 수 있을 테지만요.”

-이런 위험을 감안해서 대출을 하는 것 아닙니까.
“NAV 대출의 중요한 위험 요소는 펀드의 자산 가치 평가가 불투명하다는 점입니다. 사모 대출 펀드 운용사가 대출 자산의 가치를 평가하고 가치 변동에 따른 상환 가능성을 파악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투명성이 부족한 탓에 포트폴리오 내 대출 자산 가치를 과대평가할 가능성이 크며 이로 인해 대출 기관은 문제가 발생했음을 너무 늦게 인지할 위험이 있습니다. 펀드가 매출 채권, 후순위 채권 또는 위험한 대출담보부증권(CLO, collateralized loan obligation)과 같은 부실 자산에 투자하면서 정보 공개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위험은 더 커집니다. 예를 들어 사모 대출 펀드가 여러 단계에 걸쳐 부채를 보유한 다른 사모 대출 펀드에 투자하기도 하는데, 이처럼 펀드의 투자·차입 전략이 복잡다단해지면 돈을 댄 투자자는 자신의 대출이 어느 정도 후순위인지 파악하는 일조차 어려워집니다. 현재로선 투명성을 의무화하는 규제가 없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전통적 의미 ‘사모 대출’과 괴리
사모 대출 펀드의 위험은 지난해 사모 대출을 많이 받은 기업인 퍼스트브랜드(First Brands)·트라이컬러(Tricolor) 등이 연쇄 파산하면서 부각되기 시작했다. 퍼스트브랜드는 자동차 부품 회사, 트라이컬러는 저신용자 자동차 담보 대출 및 중고 자동차 판매 회사다. 이들은 매출 채권 등을 담보로 사모 대출을 통해 돈을 빌렸는데 같은 자산을 여러 곳에 담보로 제공한 것이 드러나 큰 논란이 됐다. 이들의 사기 행각보다도, 사모 대출 펀드 운용사가 이런 ‘이중 담보’를 알아채지 못한 채 대출을 한 사실이 더 충격을 줬다.
-퍼스트브랜드·트라이컬러 파산 사건은 개별 기업의 도덕적 해이로 봐야 할까요.
“먼저 강조하고 싶은 점이 있습니다. ‘사모 대출’이라는 용어가 이제는 기존의 전통적인 사모 대출의 개념을 넘어선 다양한 대출에 포괄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전통적인 사모 대출은 사모 펀드가 기업이나 펀드, 혹은 개별 자산을 인수하는 특수목적법인 등에 대출을 제공하고 해당 펀드가 기업의 지분을 인수하는 방식을 의미했습니다. 비교적 보수적이고 안전한 대출이었죠. 하지만 최근엔 ‘사모 대출 펀드’라는 용어가 퍼스트브랜드 사례처럼, 부채와 관련된 모든 자산과 관련한 펀드를 포괄하는 의미로 확장돼 쓰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퍼스트브랜드는 매출 채권을 펀드에 매각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했는데, 동일한 매출 채권을 여러 펀드에 매각해 큰 문제가 됐습니다. 사기이지요. 전통적인 사모 대출 펀드는 펀드 자산이 일반적으로 신용도가 높은 우량 자산으로 구성되지만, 최근의 사모 대출은 이처럼 위험도가 높은 대출 자산에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대출이 부도날 가능성이 더 커졌다는 뜻입니다.”
-소프트웨어 업종의 위기론에 따른 사모 대출 불안과 퍼스트브랜드 사태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퍼스트브랜드·트라이컬러 사례는 사기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소프트웨어 사모 대출은 몇몇 회사가 아닌, 업계 전반의 문제라는 점이 차이입니다. 퍼스트브랜즈의 채권을 인수한 사모 펀드는 해당 자산에 대한 손실만 입을 뿐입니다. 수익을 창출하는 다른 자산을 포트폴리오에 담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입니다. 소프트웨어 사모 대출은 업계 전반에 걸친 문제인 만큼, 해당 업계의 자산 인수에 집중하는 사모 펀드에 자금을 지원한 광범위한 채권자가 손실을 입을 우려가 생깁니다.”
◇“단일 업종 ‘쏠림’ 펀드, 위험 키운다”
‘사스(SaaS·software as a service)’라고도 불리는 소프트웨어 업계의 위기론은 빅테크 기업들의 첨단 AI가 대부분의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대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며 불거졌다. 국제결제은행(BIS)이 공시 의무가 있는 상장 기업개발금융회사(BDC)만을 토대로 집계한 소프트웨어 기업의 사모 대출 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 5389억달러로 10년 전 76억달러의 70배로 급증했다.

-지금 소프트웨어 업계의 상황이 그런 일이 발생할 정도로 위험하다고 보십니까.
“소프트웨어의 위험이 사모 대출로 번지려면 이들 기업의 가치가 일제히 엄청나게 급락해야만 합니다. 현재로서는 아직 시스템적 위험이라고 볼 정도는 아닙니다. 아울러 이런 충격이 발생한다면 이는 사모 대출만의 문제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즉 은행이 소프트웨어 기업에 직접 대출하는 경우에도 동일한 문제에 노출될 겁니다.”
-제기되는 여러 우려를 줄이기 위해, 규제를 정비할 필요는 없을까요.
“대부분의 국가에서 사모 대출에 대한 규제 체계는 상당히 완화돼 있습니다. 저는 지금보다는 투명성이 강화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펀드가 보유한 자산의 평가, 해당 자산의 성격, 투자 대상 자산의 유형, 펀드 구조 전반에 걸친 부채 활용 현황 등에 대한 정보 공개가 필요합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몇 년 전 사모 대출 펀드 운용사에 자산 가치 평가와 관련한 투명성 및 공시 규정을 부과하려 했지만 법원이 SEC가 권한을 남용했다는 이유로 막았습니다. 하지만 개인 투자자의 사모 대출 펀드 투자가 더욱 확대된다면 규제는 더욱 엄격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레디 교수는 “일부 환매를 약속한 사모 대출 펀드라 해도 쉽게 현금화하기 어려운 자산에 돈을 넣은 상태로 ‘펀드런’이 발생하면 투자자들의 환매 요구를 충족하기 어려워진다”며 “이미 환매 제한 등 문제가 발생 중”이라고 했다. 사모 대출 펀드는 투자자를 많이 모집하기 위해 만기까지 돈을 못 빼는 ‘폐쇄형 펀드’와 달리 어느 정도 비율까지 환매를 약속한 상품이 많다. 하지만 최근 사모 대출 부실 우려가 번지며 환매 요청이 일시에 몰리자 블루아울(Blue Owl) 캐피탈, 아레스(Ares) 자산운용 등 다수의 사모 대출 운용사가 환매를 중단하거나 제한한다고 발표했다.
-사모 대출이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에 버금갈 큰 위기를 촉발할 수 있을까요.
“현재로서는 시스템적 위기가 발생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은행은 사모 대출 펀드에 대해 신중히 접근했기 때문에 대규모 채무 불이행이 은행의 위험으로 번질 가능성은 작습니다. 현재 가장 큰 우려는 사모 대출 펀드에서 손실이 발생할 경우 일반 개인의 자산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연기금·보험사 등이 사모 대출 펀드에 넣은 자금을 회수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물론 그 정도의 대규모 채무 불이행이 발생하려면 엄청난 경제적 재앙이 닥쳐야 하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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