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원전은 왜 다시 돌아왔나...고리 2호기 재가동의 진짜 기준

박치현 대기자 2026. 4. 9.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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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학전문기자 칼럼]
설계 안전보다 사고 대응?
수명연장이 남긴 핵심 논쟁

"설계냐, 대응이냐" 원전 안전 기준 뒤집혔다

2026년 4월 4일, 부산 기장군 고리원자력발전소 2호기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2023년 4월 8일 설계수명 만료로 가동이 중단된 지 3년 만이다. 고리 2호기는 1983년 상업운전을 시작해 40년의 운전허가 기간을 채운 뒤 멈췄다. 
한국수력원자력이 지난해 12월 웹진에서 고리2호기 계속운전 승인 관련 소식을 전하던 당시의 이미지. (사진 한국수력원자력 웹진 KHNP플러스) 

이후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2022년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에 계속운전 안전성 평가서를 제출했고, 심사를 거쳐 2025년 11월 다시 가동해도 된다는 승인을 받았다. 정지 기간 동안 설비 개선과 안전성 검사를 진행했고, 규제기관의 정기 검사를 통과하면서 재가동에 이르렀다.

김회천 한수원 사장은 "고리2호기의 성공적인 재가동을 시작으로 현재 추진 중인 원전 9기의 계속운전도 철저히 준비해 안정적인 전력공급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탈핵부산시민연대 등 시민단체는 7일 기자회견을 열고 "노후 원전 수명연장 과정에서 주민들의 생명권과 안전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다"며 "재가동 승인을 철회하고 영구 폐쇄를 선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리2호기 재가동은 논쟁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됐다. 전문가들도 수명연장 심사 과정에서 사고관리계획이 핵심 판단 기준으로 부상한 점에 주목하고 있다. 사고를 예방하는 설계보다 사고 이후 대응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한 것 아니냐는 문제 제기다. "노후 원전을 어떻게 다시 돌릴 수 있었는가?', 그리고 이런 판단 기준은 앞으로도 유지될 것인가?" 

문제는 단순한 수명연장이 아니다

정부는 환경영향평가를 거쳐 계속운전을 승인했다. 한수원도 안전성 평가보고서를 원안위에 제출해 사고 대응 체계를 검증받았다. 물론 관계기관 협의도 거쳤다. 이번 심사의 핵심 요소는 사고관리계획이었다. 노후 원전을 계속 돌릴 수 있는지 판단하는 절차였지만 논쟁은 컸고 쟁점은 깊었다. 그동안 원자력 안전은 사고를 최대한 줄이는 설계 중심이었고, 대응은 다음 단계였다. 그러나 이번 심사에서는 순서가 뒤집혔다는 평가가 제기됐다.

국내 원전의 수명연장 판단에 사고관리계획이 반영된 것은 사실상 첫 사례로 평가된다. 해외에서도 수명 연장과 사고 이후 대응 체계를 별도로 운영한다. 설계 기반 안전과 사고 대응을 어디까지 함께 평가할 것인지, 이번 사례는 새로운 기준의 출발점이 될 가능성을 남겼다.

고리 2호기 수명연장, 기준을 묻는 시험대

고리 2호기는 40년 이상 가동된 1세대 노후 원전이다. 주요 설비는 교체와 보강이 이뤄졌지만, 원자로와 격납건물 등 주요 구조물은 초기 설계를 기반으로 유지되고 있다. 정부는 안전성 심사에서 사고 발생 때 관리 계획을 핵심요소로 반영됐다. 설계만으로는 중대사고를 막기 어렵고, 후쿠시마 이후 강화된 국제 기준을 반영해 사고 대응 체계를 포함한 종합 평가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이 부분이 논쟁을 키웠다. 안정성 심사과정에서 설계와 대응의 순서가 뒤집혔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제시하는 '심층방어' 구조에서 사고관리계획은 마지막 단계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이번 평가에서는 이 단계가 설계 안전성을 보완하는 근거로 활용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데이터가 보여주는 '설계 중심' 원칙

원자력 안전은 경험과 통계로 축적된 분야다. OECD 원자력기구와 IAEA 자료에 따르면, 원전 사고 확률을 낮추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소는 설계다. 최신 원전은 설계 개선을 통해 노심손상 확률을 10만분의 1 이하로 크게 낮췄다. 반면 사고관리계획은 피해를 줄일 수는 있어도 사고 발생 확률 자체를 낮추지는 못한다. 이 두 요소는 서로 다른 축에 속한다.

고리 2호기 사례에서는 이 두 축이 하나의 평가 기준 안에서 결합되면서 논리적 쟁점이 충돌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수명연장 기준은 어디까지 흔들렸나?

심사의 본질은 노후 설비가 여전히 설계 기준을 충족하는지 검증하는 데 있다. 금속 피로, 배관 열화, 전기계통 노후화 같은 물리적 요소가 핵심이다. 그러나 사고관리계획이 주요 판단의 근거가 되면서 평가 성격이 달라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병섭 원자력안전연구소장은 "설계상의 한계를 운영과 대응으로 보완할 수 있다는 정부의 논리는 설계 기준이 상대적으로 완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수명연장 판단의 문턱 자체가 낮아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독자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사진 Pixabay)/뉴스펭귄

재가동 이후 안전 논쟁, 실제로 어떤 사고 위험이 커지나

고리 2호기 안전 논쟁은 더욱 가열될 전망이다. 한수원은 중대 사고를 가정한 대응 체계를 사전에 마련하고, 최신 기준에 맞춰 안전 설비를 보강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설계 중심의 원전 안전 원칙이 무너진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며 "대응 능력이 강조될수록 사고 발생 자체를 줄이는 설계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희석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노후 원전에서 가장 우려되는 시나리오는 전력 상실과 냉각 기능 마비다. 대표적인 사례가 후쿠시마 원전 사고다. 외부 전원이 끊기고 비상전원까지 실패하면서 냉각 기능이 무너져 노심이 손상되고 수소폭발이 이어졌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국제사회는 대응보다 설계 자체를 강화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전기가 끊겨도 자동으로 냉각이 이뤄지는 수동형 냉각 시스템을 도입했다. 그리고 전원 공급이 중단되지 않도록 전원 독립성도 확보했다. 또한 하나의 안전장치에 문제가 생겨도 다른 장치가 작동하도록 다중 안전계통을 강화했다. 대응은 상황에 따라 실패할 수 있지만, 설계는 구조적으로 사고 가능성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노후 원전에서 설계 보완 없이 대응에만 의존해 위험이 더 커진 사례도 있다. 스리마일 사고는 계측 오류와 운전원 판단 착오가 겹치며 대응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켰다. 체르노빌 사고는 설계 결함과 규정 위반 속에서 대응 자체가 무력화됐다. 두 사례 모두 예상된 절차와 대응이 제대로 작동한다는 전제에 의존했지만, 실제 상황에서는 그 전제가 무너지면서 사고가 확대됐다. 대응만으로는 근본적인 안전을 담보하기 어렵고, 설계 단계에서의 구조적 안전 확보가 필수적임을 시사한다. 

해외는 어떻게 다루고 있나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는 환경영향평가에서 설계를 안전 분석의 중심에 두고 있다. 사고관리계획은 참고 요소로만 다룬다. 영국 규제기관 ONR과 프랑스 ASN도 같은 입장을 유지한다. 사고관리계획은 원전 수명연장의 근거가 아니라 비상 대응 체계로 분류된다. EU 역시 원자력 안전 지침을 설계기준으로 정하고 중대사고 대응은 별도의 계층으로 다룬다.

원자력 정책·안전 분야 전문가인 윌리엄 매그우드는 "원전 안전에서 안전 설계와 사고관리 조치는 역할이 구분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사고관리계획은 보완 수단이라는 것이 국제 안전 기준의 기본 원칙이라고 설명한다. 사용후핵연료 전문가인 앨리슨 맥팔레인도 "원전 안전성 평가에서 사고관리계획을 과도하게 포함하면 사고 자체의 발생 가능성에 대한 평가가 약화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국내 전문가들이 보는 위험과 정부의 방침

국내에서도 같은 우려가 나온다. 한병섭 원자력안전연구소장은 "사고관리계획은 마지막 단계다. 이를 평가의 근거로 삼는 순간 안전철학의 축이 흔들린다."고 강조한다. 그는 설계 단계에서 제거해야 할 위험이 운영 매뉴얼로 정당화되는 구조를 가장 큰 문제로 지적했다. 원자핵공학 분야의 한 교수도 "확률론적 안전성 평가는 설계 위험을 줄이기 위한 도구다. 대응 능력을 중심으로 안전을 설명하면 규제 방향이 달라진다"며 비슷한 의견을 내놨다.

하지만 정부는 사고관리계획을 포함한 종합적인 안전성 평가를 통해 계속운전을 승인했다고 밝혀 이러한 방식을 향후 노후원전 재가동 심사에도 적용할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환경영향평가는 사고 발생 가능성과 영향을 사전에 검증하는 절차다. 그러나 대응 계획이 중심 요소로 부각되면서 원전 재가동 평가 성격이 달라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술적 안전성을 검증하는 문서에서 운영 중심의 설명 구조로 이동할 수 있다는 우려다.

지금 필요한 질문, 그리고 작은 변화와 큰 파장

고리 2호기 수명연장과 재가동은 하나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같은 기준이 다른 원전에도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안전을 어디에서 확보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설계인가, 대응인가.

이는 기술 문제가 아니라 기준의 문제다. 그리고 역할도 다르다. 그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 안전을 판단하는 기준도 함께 흔들린다. 그렇다면 노후 원전 재가동을 위해 초기 설계와 사후 대응 중 어느 쪽을 먼저 선택할 것인가. 고리 2호기는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을 보여줬다. 하지만 그 답이 최선인지에 대한 논쟁은 이제 막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