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팬입니꺼? 드이소”…옆자리에서 온 막걸리 두병

자이언츠 열혈팬들의 도시
낯선 이와도 야구로 대동단결
고등어구이·복국·회·대구탕
느긋하고 맛있고 풍성한 여행
프로야구가 개막했다. 예상했던 대로 올해 야구 열기 역시 뜨겁다. 개막전을 치른 구장마다 관중들로 가득 찼다. 고백하자면, 나는 롯데 자이언츠의 팬이다. 1982년 프로야구가 이 땅에 처음 생겨날 때부터 그랬다. 최동원, 윤학길, 염종석, 손민한 선수가 내 우상이다. 지금은 전준우 선수의 팬이다. 자이언츠 팬들의 오랜 꿈이자 열망이라면 ‘가을 야구’를 보는 것이다. 해마다 시즌 초면 ‘올해는 다르겠지’ ‘올해는 뭔가 달라’ 하며 기대감을 한껏 갖지만, 벚꽃이 슬슬 지고, 여름이 지나고, 가을에 접어들면서 그 기대는 마른 잎처럼 시들고 만다. 부푼 희망과 기대는 ‘롯데가 그렇지 뭐’ ‘봄데(봄에만 반짝 잘하는 롯데 자이언츠를 부르는 별칭)가 어디 가나?’ 하는 자조와 푸념으로 바뀐다. 그런데 올해는 ‘진짜’ 다르다. 일단 외인 투수들이 좋다. 현재 평균 자책점이 전체 구단 1위다. 타선도 강력하다. 지난달 마지막 주말 삼성 라이온즈와 2연전을 하며 홈런을 무려 7개나 쳤다. 11년 만의 개막전 연승을 기록했다. 자이언츠의 마지막 ‘가을 야구’는 2017년이었다. 올해 ‘가을 야구’를 하게 되면 9년 만이다. 자이언츠의 마지막 우승은 1992년. 그러니까, 자이언츠의 우승은 지난 세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지금에서 자이언츠의 마지막 우승까지는 34년, 자이언츠의 마지막 우승에서 한국전쟁까지는 42년이다. 올해는 가능할까?

자갈치시장 고등어구이 백반
“마, 봄 자이언츠는 양키스도 못 이긴다 아이가.” 내가 경상도 사투리로 말했다. 여러번 밝혔듯, 내 고향은 부산 옆 동네인 김해다. 평소엔 사투리를 거의 안 쓰지만(나는 이렇게 주장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내가 서울말을 쓰는 걸 본 적이 없다고 한다) 경부고속도로 회덕 분기점 아래로만 내려오면 사투리가 자동으로 장착된다. 봄의 자이언츠는 지구 최강의 야구팀이다. 옆자리에 앉아 막걸리를 드시던 어르신이 내게 물었다. “롯데 팬입니꺼?” “네. 92년 우승할 때 대학생이었습니다.” 내가 공손하게 대답했다. 고등학교 다닐 때 자주 ‘야자’(야간 자율학습)를 빼먹고 사직 야구장으로 달려가곤 했다. “캬, 그때만 해도 멤바가 좋았지예.” 후배와 함께 김민호, 김응국, 박정태, 염종석, 주형광, 박동희 등등 당시의 ‘멤바’들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우리 테이블로 막걸리 두병이 건너왔다. 옆자리 할아버지가 말했다. “드이소. 롯데 팬인데 멀리서 오싰네.” 부산은 그런 도시다. 자이언츠 선수의 아들이 반에서 꼴찌를 해도, 아빠가 자이언츠 선수라는 이유만으로 전교 회장을 하는 도시다. 아무튼 그렇다.


요즘 부산으로 여행을 떠나는 이들은 어디로 가는지 잘 모르겠다. 아마도 해운대, 광안리, 자갈치시장 등이겠지.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루프톱 카페며 야간 경관이 좋은 포장마차 등이 주르르 나온다. 내가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다. 나는 부산을 아주 ‘올드하게’ 여행한다. 자갈치시장에서 고등어구이 백반을 먹고 해운대에서 복국을 먹는다. 달맞이고개 아래에서 대구탕을 먹을 때도 있다. 아주 오래된 온천에서 느긋하게 온천욕을 즐기고, 초량동이나 구포에서 군만두를 먹거나 낙곱새를 먹을 때도 있다. 부평시장에서 대창을, 반여동의 꼭꼭 숨겨둔 횟집에서 자연산 회를 먹을 때도 있다. 아주 ‘아재스럽게’ 여행한다.
자갈치시장 앞에는 진주식당과 오복식당, 할매집 등 고등어구이를 내는 집들이 나란히 있다. 백반을 시키면 탁자 위에 반찬 대여섯가지와 된장국, 공깃밥이 오른다. 그리고 한가운데에는 노릇하게 구워진 고등어가 담긴 접시가 놓인다. 이런 일도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고등어구이를 먹는데, 가게 앞에 주황색 택시가 서는 것이었다. 기사님이 내려서 철판 앞에서 고등어를 굽던 아주머니께 검은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이거 좀 꾸주소(구워주세요).” 아주머니가 비닐봉지를 받아들며 물었다. “이기 뭔데?” 기사가 팔짱을 끼고 짝다리를 짚으며 말했다. “돼지고기 아잉교.” “돼지고기를 와 내한테 주는데.” 기사가 말했다. “아 진짜, 사람이 우째 맨날 고등어만 묵고 사능교. 얼른 좀 꾸주소. 넉넉하게 사왔으니 다른 손님들도 좀 노나 주고.” 그렇다. 부산에서는 고등어구이집에 돼지고기를 사다 주면 구워준다. 치지직. 고등어를 굽던 철판에 삼겹살이 올라갔고 얼마 후 우리 탁자 위로 매콤하게 잘 볶아진 돼지고기 한 접시가 서비스로 나왔다. 건너편 테이블에서 택시 기사님이 말씀하셨다. “드이소. 모자라믄 말하이소. 더 꾸드리라고 하지예.”

온천 후 복국 한그릇
온천을 하고 나와서는 초원복국으로 갔다. 김기춘의 “우리가 남이가”로 유명한 그 초원복국이다. 부산에서 복국 하면 금수복국과 초원복국을 꼽는데, 개인적으로는 초원복국을 더 좋아한다. 송도탕에서 초원복국 해운대점이 걸어서 5분 거리. 참복 지리탕을 먹었는데 지금까지 쌓여 있던 모든 숙취가 날아가는 것 같았다. 참복국의 그 황홀한 맛을 몇 문장으로 묘사할 능력이 내게 없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복국을 먹은 후 해운대 바닷가 앞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어디라도 가볼까요?” 하고 묻는 후배에게 “잠자코 바다나 보자”고 답했다. “서울에는 없잖아.”

지겹도록 바다를 보다가 숙소로 와 낮잠을 잤다. 그러다가 저녁 무렵이 되었는데, 영도로 가서 만두 백반을 먹을까 하다가 귀찮아서 그만두었다. 부산 사람들은 만두 백반을 즐긴다. 사골 육수로 만든 만둣국에 공깃밥, 단무지와 김치가 함께 나온다. 경상도와 부산에서는 만둣국에 밥을 말아서 먹는다.
대신 가까운 반여동으로 갔다. 새총횟집이라는 곳에서 회를 먹었다. 도다리, 도다리 세꼬시, 게르치(노래미를 뜻하는 부산말), 졸복, 참돔, 돌돔 등이 예쁘게 담겨 나오는 곳이다. 부산에서 먹는 회 맛은 서울에서 먹는 그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렇게 기분 좋게 마시고 다음날 아침 해운대에 있는 ‘속시원한대구탕’에서 해장을 한 후 커피 한잔을 느긋하게 마셨다. 올라오는 길에 아주 오래된 중국집인 신흥관에서 간짜장과 볶음밥을 먹고 올라왔다. 간만에 맛보는 제대로 된 간짜장과 볶음밥이었다.
부산에서는 그렇게 여행했다. 해운대 주위를 걸어서 맴돌았다. 그래도 그 어느 곳보다 좋고, 느긋하고, 맛있고, 풍성한 여행이었던 것 같다. 더 바라는 것이 있다면, 롯데만, 자이언츠만 조금만 잘해주면 된다. 그럼 더 바랄 것이 없다.

B급 음식
부산 사람들은 양곱창을 좋아한다. 곽경택 감독의 영화 ‘친구’에서도 준석(유오성)이 친구 상택(서태화)을 만나 회포를 푸는 곳이 바로 양곱창집이다. 그들은 철판에 지글지글 익어가는 곱창과 대선소주를 마시며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눈다. 부평시장에 양곱창집이 늘어서 있다. 부산의 양곱창은 서울과는 스타일이 약간 다르다. 고춧가루 양념을 쓰지 않는다. 대창, 소창, 염통이 한번에 나오는데 한꺼번에 번철에 올리고 지글지글 굽는다. 가격도 싸서 모둠구이 큰 것이 4만~5만원 선이다. 곱창이 구워지고 기름이 뚝뚝 떨어지면서 고소한 연기가 가득 뿜어져 나오면 길을 지나가던 행인들도 이 연기와 냄새에 이끌려 자기도 모르게 문을 열고 들어온다. 내가 주로 찾는 곳은 대양양곱창이다. 석쇠 위에 두꺼운 양을 푸짐하게 올리고 구워 먹는데, 질겅질겅 씹는 맛이 대단하다. 고소한 육즙을 가득 머금고 있는데다 기름 맛도 풍부하다.

그리고 만두. 부산 하면 돼지국밥을 떠올리지만, 나는 부산 하면 만두부터 떠올린다. 부산역 앞 차이나타운에 신발원, 홍성방, 마가 등 만두를 잘하는 중국집이 늘어서 있다. 내공 있는 만둣집이 서울보다 많다(고 생각한다). 구포역 앞 금룡, 대신동의 편의방 등 부산의 오래된 동네 곳곳에 내공 있는 만두집이 숨어 있다. 영도에 있는 복성만두는 깡깡이마을 골목에서 40년째 만두를 팔고 있다. 아침 9시에 가서 군만두와 찐만두, 그리고 만두 백반을 먹곤 한다. 만두가 하나 남았을 때 그걸 톡 터뜨려서 국물에 풀고 밥을 마는 것. 만두 백반을 먹는 올바른 방법이다.

아시다시피, 낙곱새 원조는 부산이다. 낙지와 곱창, 새우를 한 냄비에 넣고 끓이는 전골이다. 중앙동에 옹골찬이라는 낙곱새집이 있다. 메뉴는 단출하다. 낙지볶음과 낙곱새. 미역줄기볶음, 정구지(부추)무침, 깍두기 등 밑반찬이 깔끔하다. 낙곱새를 시키면 낙곱새가 푸짐하게 담긴 냄비가 보글보글 끓으며 나오고 하얀 밥이 담긴 대접을 하나씩 내준다. 여기에 낙곱새 한 국자를 붓고 김 가루를 뿌려 비벼 먹으면 된다.
부산에 갔으니 밀면도 먹어야지. 부산역 앞 황산밀면은 초량시장 한 귀퉁이에서 장사하다가 돈을 벌어 그럴듯한 건물에 들어갔다. 지금까지 부산에서 먹은 밀면 중에 제일 맛있었다.
최갑수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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