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T야?’ 부진 터널 빠져나온 현대캐피탈 황승빈 “선수 형과 대한항공 선수들? 코트 위에선 그저 적일 뿐” [남정훈의 오버 더 네트]

남정훈 2026. 4. 9. 08:02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천안=남정훈 기자] 주전 세터가 그날 경기가 잘 풀렸음을 보여주는 바로미터가 있다. 물론 승리다. 또 하나를 꼽자면 바로 백업세터가 코트를 밟지 않게 하는 것? 그런 의미에서 현대캐피탈의 주전 세터 황승빈은 챔프전 3차전까진 심하게 흔들렸다. 1차전은 5세트까지 모두 선발 출장했지만, 팀은 패배했다. 팀 공격 성공률도 46.88%로 50%를 밑돌았다. 2차전은 급기야 3세트까지는 선발로 나왔으나 4세트부턴 이준협에게 코트 위 사령관 자리를 내주고 벤치를 지켜야했다. 3차전도 팀은 3-0 셧아웃 승리를 거뒀고, 세 세트 모두 선발 출장했지만, 승리의 순간에 코트를 지킨 건 백업 세터 이준협이었다.

4차전엔 달랐다. 1세트 처음부터 3세트 마지막까지 오롯이 황승빈이 팀의 공격 조율을 도맡았다. 그만큼 황승빈의 토스워크나 공격 배분이 흠잡을 데 없었다는 얘기다. 특히 3세트 듀스 상황에서 허수봉에게 올려준 퀵오픈 토스 2개는 그야말로 완벽했다. 최대한 잡아서 상대 블로킹을 교란시키고, 빠르고 정확한 토스로 허수봉의 완벽한 공격을 이끌어냈다. 흔들리던 황승빈의 컨디션이 돌아온 만큼 현대캐피탈의 ‘리버스 스윕’ 가능성은 더 높아졌다.

현대캐피탈은 8일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열린 2025~2026 V리그 남자부 챔피언결정전 4차전에서 대한항공에 3-0(25-23 25-23 31-29) 셧아웃 승리를 거뒀다. 인천 원정에서 열린 1,2차전에서 패하며 벼랑 끝에 몰렸던 현대캐피탈은 홈인 천안에서 3,4차전을 압도적인 경기력을 뽐낸 끝에 셧아웃 승리를 거두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리는 데 성공했다. 이제 현대캐피탈은 10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리는 최종 5차전에서 승리하면 V리그 남자부 역대 최초로 ‘리버스 스윕’ 우승을 달성할 수 있다.
경기 뒤 수훈선수로 허수봉과 인터뷰실에 들어선 황승빈은 “1,2차전을 마치고 천안 숙소로 돌아오면서 감독님, 동료들과 다짐했다. ‘절대 천안에서 상대가 축포를 터뜨리게 하지 말자, 우리집 안방에서는 그런 일은 없어야 한다’고. 분노를 코트에 녹여내자는 블랑 감독님의 주문대로 그 결과가 나타나서 오늘은 참 행복한 하루였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데뷔팀인 대한항공에서 오랜 기간 한선수의 백업으로 머물다 2021년부터 삼성화재, 우리카드, KB손해보험에서 주전 세터 자리는 따냈지만, 한 시즌만 뛰고 트레이드됐던 ‘저니맨’ 황승빈은 지난 시즌 현대캐피탈로 다시 한 번 트레이드됐고 드디어 ‘우승 세터’ 반열에 올라섰다.

그러나 올 시즌은 부침이 컸다. 1라운드 초반 부상을 당해 3라운드 초반까지 한 달 넘게 결장을 해야했고, 정규리그 막판부터 다소 슬럼프 기미가 보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묻자 황승빈은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정규리그 6라운드 초반부터 좋은 흐름을 잃었다는 느낌이다. 볼 컨트롤도 자신있게 하는 느낌이 아니라서 지금도 고민을 하고 있다”라면서 “챔프전을 치르며 ‘너무 간절하지만 간절해하지 말자’고 되뇌이고 있다. 잘 해야 할 것을 하고, 하면 안 되는 것을 하지말자고 다짐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블랑 감독도 이날 황승빈의 경기 운영을 칭찬했다. “세터를 바꾸려면 명분이 필요한데, 황승빈은 오늘 속공 배분이 다소 적었을 뿐, 교체할 필요를 못 느꼈다”

평소 속공을 즐겨 사용하는 황승빈에게 이날 속공 점유율이 낮았던 이유를 묻자 “경기를 준비하며 항상 플랜을 짜서 나오긴 하지만, 상대 블로킹을 보며 변화를 가져간다. 그냥 오늘은 공을 셋팅하는 순간에 속공보다는 사이드로 빼주는 퀵오픈이나 속공을 엮어 사용하는 파이프(중앙 후위공격)이 더 끌렸던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한항공 시절, 오랜 기간 뒷모습만 지켜봐야 했던 한선수와 2년 연속으로 챔프전에서 만난 황승빈이다. 그러나 황승빈은 그리 감상에 젖지 않는 타입이다. “(한)선수 형과의 대결로도 볼 수 있긴 하다. 선수형이 상대방 코트에 있고, 오랜 기간 뛰었던 대한항공에 가족 같은 선수들이 있지만, 코트에 들어가면 그저 이겨야만 하는 상대, 적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MBTI에서 ‘T’냐고 묻자 “네. T입니다”라고 웃었다.

이날 황승빈은 3세트 초반 멋진 오픈 공격을 성공시켰다. 평소에 공격 연습도 하냐는 질문에 황승빈은 “아니오. 잘 하지 않아요. 제가 공격 연습을 하면 동료들이 놀리고 그러거든요. 공격 본능이 있긴한데, 비웃음거리가 되어서 자제하는 편이에요. 오늘 공격은 진짜 1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장면이 나온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 옆에 있던 허수봉에게 황승빈의 공격을 평가해달라고 하자 “살짝 아포짓 느낌이 나더라고요. 길게 쭈욱 때리는 것을 보면서”라고 답했다. 황승빈은 “이런 식으로 연습 때 조롱을 한다니까요”라며 볼멘소리를 했다.

올 시즌을 마치면 황승빈은 생애 세 번째 FA 자격을 얻는다. 마침 옆에 있던 허수봉도 생애 두 번째 FA 자격을 얻기에 ‘예능용 질문’으로 FA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황승빈은 “FA라는 사실을 잊지는 않지만, 지금은 챔프전에 몰두하고 있다.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라고 답했다. 허수봉 역시 “챔프전 우승을 해야 더 좋은 조건이 들어오지 않을까, 그 생각 정도하고 있습니다”라며 챔프전이 먼저라는 뜻을 분명히 했다.

천안=남정훈 기자 che@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