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감사로 통제 강화” vs “중앙회 역할 유명무실화” 맞서
당정, 독립 감독기구 설치 추진
농협 본연 기능 축소·관치 우려
인력·시스템 구축 논의는 ‘깜깜’
출범 서두르다 후폭풍 커질수도


당정이 추진 중인 농협개혁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농협감사위원회’ 설립이다. 농협 외부에, 사실상 정부가 임명하는 위원들로 구성되는 감사·감독 기관 설치에 대한 시각이 여러갈래로 엇갈린다.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 강화를 위해 필요한 조치라는 의견과 함께, 한편에선 농협 경제·신용 계열사의 중심을 잡는 중앙회를 유명무실화하고 정부가 협동조합 경영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 농협 전담 감독기관 내년초 목표=당정이 구상하는 ‘농협감사위원회’는 농협 관련 조직 전체를 감사·감독하고 임직원을 징계하는 역할을 맡는다.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전북 정읍·고창)이 3월 발의한 ‘농업협동조합법 개정안’에 따르면 농협감사위원회의 위원장은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제청해 대통령이 임명한다. 여기에 상임위원 추천권을 ▲농식품부 장관(1인) ▲금융위원장(1인) ▲대한변호사협회장(1인) ▲한국공인회계사회장(1인) ▲농협중앙회장(2인)에 각각 부여한다. 위원장을 포함한 위원 다수를 정부가 지정하고 농협과 관계없는 협회에 추천권을 부여한 점에서 ‘협동조합 자율성’ 침해 논란이 제기된다.
농협감사위원회는 현재 농협중앙회의 감사위원회와 조합감사위원회 기능을 흡수하는 독립기구다. 전국 농축협, 농협중앙회, 농협경제지주·NH농협금융지주의 자회사 모두가 감사 대상이다. 감사 결과에 따라 임원 재선출, 직무 정지, 직원 징계 요구를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개정안은 현재 농식품부가 농협중앙회장에 위탁한 부실 농축협 경영지도 기능을 농협감사위원장이 맡도록 했다. 농협감사위원회 설립 비용은 농협중앙회가 부담하고, 매년 소요되는 운영비는 범농협 계열사가 납부하게 했다.
그러면서 감사기구 독립이 필요한 이유로 조직 운영 투명성과 내부통제 실효성 강화를 꼽았다. 최근 농협에서 불거진 금품선거 의혹, 임직원 비위 등 각종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중앙회 유명무실화” 우려도=일각에선 이처럼 ‘통제 강화’에 초점을 맞춘 농협감사위원회가 협동조합 본연의 역할을 저해할 수 있다고 바라본다.
특히 법안 개정으로 삭제될 처지에 놓인 ‘농협법 제142조 2항’을 문제로 짚는다. 이 조항은 농협중앙회에 ‘자회사가 업무수행 시 중앙회의 회원 및 회원 조합원의 이익에 기여할 수 있도록 지도·감독하여야 한다’는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기업체 형태인 금융·경제 계열사들이 이익만 좇지 말고, 농축협과 농민에 실익을 안기는 협동조합 역할을 하도록 중앙회가 중심을 잡으라는 의미다.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몇해 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무기질비료가 폭등할 때 농협경제지주와 자회사인 남해화학이 가격 상승분을 보전했는데, 이는 농협중앙회가 지도·감독권을 근거로 경제지주에 요구한 것”이라며 “일반 상법상 자회사 조사권으로는 이런 역할을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한 협동조합 연구자는 “농협은 공적 영역과 민간 영역 사이에서 기업을 운영하면서 농민 지원사업을 병행하고, 농협중앙회는 농민 편에서 자회사들의 지나친 시장화를 경계하는 역할을 한다”며 “이 역할을 없애면 자회사들이 농협중앙회 영향권에서 이탈하고, 농협중앙회는 유명무실해질 것”이라고 했다.
최근 농협이 자체적으로 가동한 농협개혁위원회에 참여한 이승호 한국농축산연합회장은 “농민을 위하는 조직으로 만드는 데 농협개혁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행정이나 외부 통제로 움직이는 ‘관치 조직’을 만들 게 아니라 일을 잘할 수 있도록 관리하는 방안을 고민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농협은 내부통제가 취약하다는 지적을 수용하되, 자정 장치 강화로 사태 재발을 막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미 농협중앙회는 농식품부의 감독·감사를, NH농협금융지주와 자회사는 금융감독원의 감독을 받고 있다. 현행 구조에서 발생하는 사각지대를 제거하고 보다 철저히 감독·감사를 받겠다는 것이다.
농협개혁위원회는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모델을 참고해 전원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범농협 준법감시위원회’ 설치를 권고했다. 계열사별로 흩어진 내부통제를 일원화하고 범농협 전반에 준법경영 기틀을 정착시키라는 취지다.
◆실무 준비 없는데 못 박힌 출범 시한=농협감사위원회 설립이 기한 내 물리적으로 가능할지도 물음표가 붙는다.
당정은 농협감사위원회를 내년 1월1일 출범시킨다는 구상이지만 대규모 인력·시스템 구축을 위한 구체적 계획이나 논의가 없는 상태다. 방안이 실현되려면 농협의 감사·행정 인력만 해도 400명가량이 소속을 옮겨야 해 진통이 예상된다. 독립된 사옥과 전산시스템 구축 등에 관한 비용이 추산되지 않고 있지만, 이런 실질적 사안은 관심받지 못하는 분위기다.
2000년대 후반 농협의 사업분리 작업에 참여했던 농협 관계자는 “당시는 정부와 농협에 각각 태스크포스(TF)가 꾸려져 정부 입법을 통해 관계자 의견수렴, 내부 협의, 토론회, 공청회, 국회입법조사처 의견수렴 등의 과정을 거쳤다”며 “이런 과정이 생략된 채 급속도로 추진되는 이번 개혁의 후폭풍은 결국 농협 조직과 조합원들에게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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